평생을 거듭 해 온 동경대전 주해 작업의 유종
이 책의 저자 윤석산은 시인이며 동학 연구자이다. 동학 경전에서 ‘동경대전’과 짝을 이루는 ‘용담유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래, ‘동경대전’ 연구로까지 그 폭을 넓히고, 동학 창도지인 경주의 용담을 비롯하여 전국의 동학 사적지를 발로 답사하며 수운과 해월의 숨결이 살아 있는 동학의 정서와 정론을 살려내고 전파하고자 애써 왔다.
윤 교수는 1994년 ‘주해 동경대전’을 처음 간행한 이후, 지속적으로 보완을 통한 주해서 개정판을 간행해 왔다. 금번 2021년 6월에 간행된 ‘주해 동경대전’은 네 번째 주해서이며, 스스로도 내 생의 마지막 주해서라고 밝히는 주해서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집중적으로 진행해온 ‘동경대전’과 ‘용담유사’ 시민강좌 등을 통해 새롭게 길어 올린 동학의 진수를 보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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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대전 주해」, 「한글 동경대전」, 「판본 연구」, 「영인본」
특히 이번 주해서에는 ‘동경대전’ 원문에 대한 주해만이 아니라, ‘동경대전’ 초기 판본과 ‘동경대전’ 간행의 역사를 다시 짚어본 그동안의 연구 성과들도 함께 수록했다. 그리하여 이 책은 Ⅰ 주해 동경대전 편, Ⅱ 한글판 동경대전(영인본과 한글판 대역), Ⅲ 동경대전 문헌 연구(동경대전 판본과 해월신사법설 연구), 4부 자료 편(목활자본과 최초 활자본 등)으로 구성되었다.
1부의 동경대전 주해는 한자로 된 원문을 소개하고 그 대의(大意)를 제시하며 한글로 일일이 풀이하고, 어려운 한자어(字源) 풀이, 판본 간에 서로 다른 표기 등의 비정(批正) 등을 통해, 한국사상의 정수이자, 세계적인 한국사상의 대표격인 동학사상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2부 ‘한글 동경대전’은 이론과 이해에 앞서서 ‘동경대전’을 마음으로 음미하고 그 진수를 체감, 체득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편성했다. 수운의 동학은 어렵고 복잡한 이론 체계라기보다는 내 스스로가 내 삶의 주인으로, 그리고 우주적 존재로서의 내 존재의 진면목을 알고, 믿고, 느끼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하고, 쓰고, 실천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동경대전 원본 중 계미중하판과 한글편을 대역(對譯)으로 수록하여, ‘경전을 공부하는 묘미’를 느낄 수 있다.
https://youtu.be/5sDlP7Xj2vY
3부에서는 논리적으로 동경대전의 이해에 접근할 수 있도록, 그 역사적 형성 과정과 그에 따르는 철학적인 문제, 서지적인 사항들을 학술적인 언어와 방식으로 풀어낸 5편의 글을 수록하였다. 이것은 저자가 평생의 학문적 연찬을 거듭하며 쌓아온 경륜과 깊은 연구를 통해 축적한 내공을 바탕으로 한 글이어서, 동경대전과 동학에 대해 좀더 깊은 이해를 바라는 위해 안성맞춤한 대목이다.
4부에서는 동경대전의 역대 판본의 영인본들을 소개하였다. ‘동경대전’은 말 그대로 ‘경전’이므로, 그 저술자인 수운 선생의 숨결과 또 최초의 편찬자인 해월 선생의 흔적을 느껴보면서, 그 ‘오리지널리티’를 감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동학 공부’ ‘동경대전 공부’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저자가 평생에 걸쳐 모아온 영인본을 수록하였다.
선대로부터 이어 온 동학 천도교인의 삶 - 으로 밀어온 동경대전 공부와 연구
머리말에서 윤석산 교수는 자신이 동학 천도교와 인연을 갖게 된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인연이 어떻게 동학 연구자의 길을 가게 하였는가를 기술하고 있다. 이를 통해 동학 천도교의 공부와 연구가 단지 이성과 논리의 문제만이 아니라, 삶과 밀착된, 역사와 관련된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과정임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또한, 수운의 동학 창도 과정에서 중요한 모티프가 되는 종교체험의 하나인 ‘을묘천서’를 ‘천주실의’라고 하는 문제, 동학의 신앙대상의 명칭이 ‘한울님’이 아닌 ‘하느님’이어야 한다고 하는 주장에 대한 입장, 동경대전 간행이 해월 최시형의 구송(口誦)이 아닌 원본이라는 주장에 대한 비판적 접근 등이 담겨 있어, 관심의 대상이 된다.
윤석산 교수는 지닌 2010년에 간지가 없는 새로 발견된 ‘동경대전’이 최초의 판본인 강원도 인제(麟蹄)에서 1880년에 간행한 경진판 가능성을 두고 깊이 논찬한 논문을 최초로 발표한 바 있다(본서에 수록되). 도올 김용옥 교수는 금번 주해 동경대전에서 윤석산 교수의 이 논문을 주요한 논거의 하나로 제시하며, 이 판본이 경진판이 분명하다는 입장 아래 저술을 하고 강연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윤석산 교수는 수많은 개연성에도 불구하고, 새로 발견된 ‘동경대전’이 경진판이라고 속단할 수 없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끝끝내 ‘경진판’으로 단정하는 것을 유보한다. 윤 교수는 경진판이기 위해서는 몇 가지 더 충족되어야 할 문제를 지녔다고 지적하고 있다. 첫째 경진판은 목활자본이 아니라 목판본이라는 증거를 동학 최초의 역사서인 ‘도원기서(道源記書)’에서 밝혀 제시하고 있다. 또한 경진판 ‘동경대전’을 간행할 때 서유사(書有司)와 도원기서 서유사가 같은 사람이므로, 경진판 동경대전과 도원기서의 글씨가 같은 사람의 글씨임이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경대전 공부 - 우리 삶의 자리에서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묻고 그 답을 찾는 일
윤석산 교수의 ?주해 동경대전?은 소박한 문체가 특징이다. 그러나 그 소박함은 소략범박(疏略凡朴)만이 아니라 수많은 산모퉁이와 강의 굽이를 돌고 돌아 도달한 장강대해의 고요함과 원망무애(遠望無碍)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에는 동학 천도교의 역사와 삶을 대대로 이어온 개인적인 내력, ‘용담유사 연구 박사’로서의 엄정한 학문적 수련을 거친 이력, ‘시인으로서의 상상력과 표현력’을 쌓아 온 경력, 그리고 연구자로서 ?동경대전?과 ?용담유사?에 대한 숱한 시민강좌로 쌓아온 소통력, 또한 수운의 평전 ?동학교조 수운 최제우?, 해월의 평전 ?일하는 한울님-해월 평전?을 저술하는 동안 넓혀 온 공력이 모두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160년 전에 저술된 ?동경대전?을 공부하는 의미와 재미와 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지 ‘우리 것’에 대한 호기심이나 기대만이 아니라, 그것을 포월(包越)하여 내 삶의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자리에서 나의 삶의 이유, 가치, 전망을 모색하는 소중한 지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요, 오늘의 한국 사회에 이르기까지 지난 1세기 반 동안의 한국사에서 가장 분명한 족적을 남겨 온 동학 천도교의 역사와 철학과 사상을 알아가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의 한국 사회가 왜 이런 모습, 이런 정도에 도달하게 되었는지를 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오늘의 세계는 기후위기와 빈익빈부익부, 그리고 피로와 위험과 불공정에 대한 피해의식(피해)가 차고 넘치는 시대이다. 동학 천도교의 사상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물 위의 구름[=水雲 최제우]처럼, 바다 위의 달[=海月 최시형]처럼 우리 곁에 영원히 존재하며, 그 밝음과 맑음과 풍성함을 발견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동학 천도교의 사상-철학이기도 하다. 바로 이 책이 그리로 향하는 또 하나의 길을 열어 놓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