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박은율
열렸다 닫혔다 하며 날아다니는 소책자
세상에서 가장 얇은 전집
표지도 서문도 추천사도 없는
표지가 곧 내용인
누구도 읽은 적 없는 올봄의 신간
나비 채집광 나보코프조차 읽어내지 못한 신비의 책
읽으려 들면 휘발해 버리는 비밀의 금박 문자
허공에 찍는 태양의 무늬
샤프나 르랫이 여렷 붙은 춤추는 악보
바람결에 흔들리는 돛단배, 몸보다 커다란 날개 속에 떨림을 감춘
무작정 떠나고 보는 탐험가
배낭도 나침반도 행기 지도도 없이
바람에 나부끼는
너는 늘 네 일에 열중하지
긴 더듬이로 빛의 씨실 날실 더듬으며
꿀샘 깊숙이 대롱을 꽂고
작은 몸 떨면서 굼을 음미하지
허나 뭐니 뭐니 해도 나의 시선은 시멘트 담벼락 위 내려앉은
네 가느다란 다리에 머문다네
그리고 너무 작은 내 발 들여다보지
가까스로, 이 땅에
서 있는
- 시운동지 계간 『시와시와 』2014 겨울호
세상을 사는 어떤, 그 무엇이든 존재감을 나타낼 때는 그 존재감 만큼 무수한 시련을 견디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박은율 시인의 나비는 바로 그러한 자기 존재감이 얼마나 커다란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나비가 이 세상 가장 얇으면서도 가장 깊은 내용의 책이라는 것, 그리고 그 책의 내용을 나비 채집광도 다 읽어내지 못했다는 것, 그러나 그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나비는 갸녀린 발로 이 세상을 가까스로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안스럽다. 세상은 아름다움이 존재하기에는 위험하다. 생명이 영원하기에는 시간을 이겨내는 방법을 아직 다 찾아내지 못했다. 그 만큼 풀어내지 못한 삶의 숙제가 많은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나비라 해도 봄빛 넘어 그 넘어의 거리를 예축하지 못한 내용만 몸에 담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나비라는 책은 쓰여져 읽히지 않고 우리들 가슴으로 달아들어 스며드는 책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임영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