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강성남
할머니, 들어가 계세요
오냐, 그때까지 썩지 않고 있으마.
썩지 않을 만큼의 추위가 방치된 노인
온도조절 장치가 소용없다
집을 비울 때마다 플러그를 뽑으신다
전화 받지 않는 아들에게 재다이얼을 누른다
속을 잘 닫지 않아 눈물이 샌다
텔레비전 켜놓고 주무시는 냉장고
들판 건너온 바람이 너른 집을 웅웅 돌린다
지난번 사다 드린 고등어가 악취를 풍긴다
코드 빼면 죽어요, 할머니
도청에서 나온 복지사가 락스로 속을 닦는다
저물녘이면 문밖으로 귀 기울이는 냉장고
손자들이, 명절 때 모셔간 노인을 다시 보관한다
한번 닫아놓고 몇 달 동안 열어보지 않는다
온도를 낮춰도 얼지 않는 마음 하나
바깥은 눈이 쌓여도 가슴엔 히터가 돈다
달빛이 드나들며
썩었나, 썩지 않았나 확인한다
카페 게시글
추천시, 산문
냉장고/ 강성남
함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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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4
24.03.06 19:2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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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언제쯤 저도 이런 시를 쓸 수 있나 싶네요. 잘 봤어요
아...
가슴이 참 아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