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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 암 환자가 약사궁 약사부처님께 간절히 기도해서 치유한 사례
세 가지 큰 병을 얻어가지고
그것도 말기암 환자가 뼈속까지 전이되어서 완전히 죽을 사람이
우리 약사궁 약사부처님한테 가 가지고 간~절히 기도해서 치유한 사례를
오늘 발표합니다.
서울 강동구 천호0동 00번지 000호에 사는 000이라는 선여인인데요,
이분이 이런 기적을 낳았는데 여러분한테 말로 발표하라고 하면
아무래도 충분하지 않잖습니까?
그래서 이 분이 쓴 글,
‘많은 페이지에 달하는 자상한 글을 아무리 줄여도 줄여도 이렇게밖에 않되겠습니다’하고
나한테 가지고 왔는데 일단 내가 소개를 하고,
그 분을 앞에 모시고 말씀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스님이 이것을 다 읽어 줄 수는 없으니 그냥 빠르게 읽을 게요.
『2009년 8월에 저가 유방암 3기말로 수술을 받고 퇴원했을 때
언니가 테이프(tape) 2개를 줬습니다.
큰스님 법문 테이프 내용은 부처님이 오셨다는 소식과 불과 이루신 두 분 큰스님이
계신다는 엄청난 소식은 생명불이 꺼져가는 저에게
세상을 다 얻은 기쁨과 환희에 찬 함성이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왔습니다.
‘야~! 이제 나는 살았다!’너무나 기뻐서 만세 삼창을 외쳤습니다.
그 후 항암치료를 받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2009년 12월 1일 대전분원 점안식에 참석해서
현지사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충청도에 있는 한 요양원으로 가게 되었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그때 그 요양원은 신청자가 밀려서 6개월은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점안식 참석 후 3일만에 들어오라는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았습니다. 3개월간 요양하면서 저는 두건을 쓰고
창백한 환자의 모습으로 요양원에서 새벽에 몰래 빠져나와 대전분원으로
부처님을 뵈러 다녔습니다. 교통이 불편하고 먼 거리여서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했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때 주지스님이었던 지원스님이 놀라시면서
약사여래부처님 기도와 현지사에 대한 자상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때부터 현지사 불교대학을 1기로 입학하여 부처님 공부를 하며
불교대학 1,2,3기를 졸업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척추와 대퇴부 골다공증이 매우 심해서 치료를 해야만 했는데,
약의 부작용이 심해서 치료도 못하고 악화만 되어갔습니다.
수술한 지 3년이 지나자 고관절 통증으로 인해 잘 걷지도 못하는 상태였는데,
설상가상으로 암이 임파선과 뼈로 전이되었습니다.
전이된 암을 병원에서는 수술을 권했는데 수술을 하면 꼭 죽을 것만 같아서
약이나 수술을 모두 포기하고 부처님께 매달리면서 이 병고를 해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2012년 4월, 병원에서는 암 수술을 한 후 2~3년이 되면 전이 여부를 확인하게 위해
전신 뼈 검사를 하는데 절차에 따라 동위원소주사를 맞았습니다.
결과는 암이 임파선과 뼈로 전신으로 전이 되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이 때부터 심한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병원치료를 거부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제 산다는 것은 포기하고 사는 날까지 통증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서울분원에 100일 기도를 올리고 부처님께 매달리기로 했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한 동네 사는 도반인 000, 000 불자님이 저의 집에 와서 차에 태우고
서울분원으로 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몸은 아프고 다리는 걷지를 못해도 부처님에 대한 믿음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012년 12월 말에 세 번째 천도재를 올렸습니다.
감사공양 때 큰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업으로 생긴 업병이니 약사궁에 가서 약사여래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간절히 매달리라’고 하셨습니다.
천도재 비용도 동생이 마련해주었는데, 천도재를 지내고 이틀 후부터
통증이 갑자기 심해져서 도저히 앉지도 서지도 걷지도 못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2013년 1월 10일 쯤 약사여래부처님 공양 신청을 했습니다.
공양 날짜 이틀 전부터 또 통증이 더욱 더 심해져서 남편이 대소변을 받아내고
꼼짝달싹을 못했습니다.
도저히 약사궁에 갈 수가 없어서 언니를 대신 보내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도반들은 ‘무슨 소리를 하느냐’하면서 ‘가다가 죽어도 본인이 약사궁에
가야한다’며 우리 집에 와서 저를 질질 끌고 들고 해서 차에 태워서 약사궁으로 갔습니다.
도반들의 팔에 매달려 서지도 못하고 주저앉은 저를 보고 약사궁 고성분원 스님들도
깜짝 놀라시며‘이 정도로 심한 줄은 몰랐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걱정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약사여래부처님 공양 올릴 때는 내가 머물던 펜션에서 법당까지 도반들의 목에 매달려
질질 끌려갔습니다. 공양을 올리고 서울로 돌아갈 때 승용차 뒷좌석에 누워서
부처님 정근을 하면서 갔는데 아주 특별하고 희유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2주 후 그 몸을 이끌고 도반들의 도움으로
부산분원 관음성전 점안식에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에게 도반들은 약사궁으로 가는 것이 사는 길이라며
약사궁 앞의 그 펜션에 방을 계약해주었습니다.
이 때부터 모든 생활은 언니의 도움으로 엎드려서 해야만 했습니다.
온 몸에 통증이 심해서 배를 바닥에 깔고 세수도 하고 밥도 먹고 했습니다.
그때 제 몸 상태로는 서서 전혀 허리를 굽힐 수가 없었습니다.
서 있거나 앉으면 오른쪽 다리 전체가 쥐가 나듯 당기고 오그라들어
기절할 것 같았습니다.
반듯하게 눕지도 못하고 엎드려서 풀릴 때까지 이를 악물고 견뎌야만 했습니다.
오른쪽 발은 얼음 덩어리같이 시리고 저렸습니다.
저는 여기 고성분원 약사성전에서 매일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기도시간을 몸부림치며 버텨가면서 제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갔습니다.
처음에는 잠도 1시간에서 3시간 정도밖에 못 잤습니다.
한 달 이상 기도를 했을 때에는 도저히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서
집으로 갈려고 남편한테 전화하니 큰 소리로 ‘다 나아서 오라!’고 고함치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 일도스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서울분원 공부모임에서 ‘100일 기도를 해봐라. 소원성취가 안 되면 나한테 따져도 좋다.’
하시는 그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래 나도 100일기도를 꼭 성취해보자!’다짐하고 약사여래부처님께
울면서 발원했습니다.
‘약사여래부처님! 제가 지은 지중한 죄업으로 인한 고통을 받아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발 제발 기도만큼은 할 수 있게 해주옵소서.’
엎드리면 어깨와 팔꿈치가 쓰라리고 아프고, 무릎을 꿇고 앉으면 무릎 연골 통증으로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손목으로 버티면 손목 통증이 심하고,
어떤 자세로도 편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몸으로는 매일매일 감당해야 할 고통이 너무너무 힘들어
‘차라리 죽어버리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텐데’하다가 이런 위험한 생각이
드는 순간 ‘죽으면 무주고혼이라는데...’하는 무서운 생각이 정신을 번쩍 들게 했습니다.
‘그래 다시 기도하자!’하고 눈물로 발원하기를 수십 번이었습니다.
‘부처님! 죽이시든 살리시든 부처님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러나 이렇게 죽기에는 너무도 억울합니다.
부처님! 제가 지금 죽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껏 부처님만 믿고 살아왔는데 결국 이렇게 가버리면 시댁 식구들이 다 기독교인인데
‘부처님 믿더니 그것 봐라, 뭐 좋은 것이 있느냐’하며 저를 비난할 것입니다.
제가 꼭 살아서 부처님 계신다는 증명을 해야 합니다.
제발 어느 한 곳만이라도 편하게 해주셔서 기도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다겁생 살아오면서 지은 악업 피눈물로 참회하고 또 참회합니다.’
이런 고통을 이겨내고 한달 반쯤 지났을 때 약사여래부처님께서 알게 모르게
온 몸을 차례차례 치유해주시는 가피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오른쪽 다리는 차갑고 발은 얼음 덩어리를 매달고 다니는 느낌이었는데,
어느 날 오른 발의 얼음 덩어리를 쑥 빼내주시고 난 다음
다리가 뜨거워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은 서지도 못하는 오른 쪽 다리에 지팡이를 고정시켜 놓은 듯 힘이 생겨서
오랫동안 서 있을 수 있게 해주셨고
그동안 아팠던 통증들이 하나 둘씩 치유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나서 인사를 하는데 허리가 쑤~욱 내려가
허리가 굽혀져 저는 깜짝 놀라서 주지스님한테 ‘저의 허리가 굽혀지네요!’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어느 날은 다리에 뭐가 싸~악 내려가는 느낌이 들더니 집에까지 걸어가는데
고통 없이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런 큰 가피는 꼭 재일날만 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스님들이 매달 올리는 열여섯 사부님 공양 시간에 나도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다보여래부처님 공양 시간에 온 몸이 뜨거워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음속으로 ‘다보여래부처님! 꼭 찾아뵙겠습니다.’다짐을 하고
4월 셋째주 춘천 법회에 가기로 언니랑 결정했습니다.
터미널까지 간신히 걸어가 버스를 탔지만 앉을 수가 없어서 바닥에 담요를 깔고
의자에 엎드려 양손으로 안전벨트를 움켜쥐고 3시간을 버텨가며 춘천법회에 참석했습니다.
춘천법회의 법문 중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이것을 외우세요. 아셨죠?’
큰스님의 이 말씀은 전에도 여러 번 있었지만 이날은 특히 제 가슴에
이 말씀이 와서 박혔습니다. 생각으로 아는 것만으로는 별로 소용이 없었습니다.
가슴으로 절절하게 ‘내가 짓고 내가 받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인과응보다’하고
100% 본인이 진심으로 인정을 할 때 가피가 있다는 것을
저는 절실하게 경험하고 깨달았습니다.
큰스님께서 강조하시며 외우라고까지 하신 깊은 뜻을 저는 나름대로 알았습니다.
제가 밤마다 고통과 싸워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였습니다.
많이 아플 때에는‘태사부님 큰스님! 살려주세요!’하고 외치기도 했습니다.
짜증내고 화내고, 가슴에서 치밀어 올라 열이 나고, 억울하고 상대방이 밉고
상대방 잘못인 것만 같았던 이 모든 것이 내 욕심이고 내 탓이라는 것을
가슴속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버려라! 내려놓아라!’하면 나는 버렸고 내려놓았다고
생각했지만 가슴에 매달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언제인가 기도할 때 가슴에서 무엇인가가 싹 내려가는 것을 느꼈고
마음이 편안해지며 기도할 때에도 마실 가는 놈(-번뇌)이 적어졌습니다.
5월 첫째주 법회도 춘천이었습니다.
지난 번에 다보여래부처님을 뵈러 가서는 걷지를 못해서 뵙지 못하고 그냥 왔었습니다.
그래서 춘천법회를 또 갔습니다.
이날 법문 말씀 중에 ‘우리 몸속에는 전갈, 지네같은 98가지의 독충들이 살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아! 그렇구나. 순간에 의문이 풀렸습니다.
왜냐하면 다리에서 이상 야릇, 표현도 글로도 쓸 수 없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에요.
발에서 얼음덩이가 빠져나간 후부터는 반대로 발에서 열이 나고 뜨거워졌습니다.
‘언니! 내 발 좀 만져봐. 뜨거워 죽겠어.’언니가‘정말 뜨겁네! 별일이다.
이런 일을 누가 믿겠냐!’며 오랜만에 서로 웃었습니다.
이때부터가 시작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고춧가루를 뿌린 것처럼 매워 죽겠고. ‘아휴! 매워 매워.’ 만질 수도 없었어요.
잠잘 때에는 왼발로 이불을 들고 그 밑에 발을 살며시 놓고 밤을 지샜습니다.
이것이 사라지면 다음날은 쓰라려 쓰라려 죽겠고,
이것이 없어지면 다음날은 바늘로 콕콕콕 찌르는 느낌이 있다가 또 없어지고,
다음날은 다른 것이 나옵니다. 이번에는 칼로 자르는 느낌이랄까,
어느 날은 시려서 죽겠고, 어느 날은 잠을 못 이룰 정도로 반복적으로 찌릿찌릿 따끔따끔
수십 번을 차례로 겪었는데 말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음력 3월 그믐이 약사궁에 온 지 100일이라 4월 초하룻날 발원을 했습니다.
‘약사여래부처님! 약사궁에 온 지 100일이 되었습니다.
4.8절 날 하루만이라도 도반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앉고 서고 걸을 수 있게
가피 주옵소서!’하고 간절하게 발원했습니다.
4월 5일 약사궁 분원 행사 때 제 자신도 깜짝 놀랐습니다.
서울지역 합창단 단원들도 참석하여 보신 분도 있지만 처음으로 하루 종일 편안했습니다.
그 때는 다 완쾌된 느낌이었습니다.
4.8절 날 아침에 버스를 타고 춘천까지 가는데 다리가 저려서 앉았다 일어섰다
무릎을 꿇고 구부렸다 하기를 여러 번 반복하면서 도착했습니다.
큰스님 법문이 시작될 때 ‘부처님! 부디 앉게 해주옵소서!’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법문 도중에 갑자기 다리에서 볼록볼록 종아리로 줄줄 내려가는 느낌이 들더니
편안해졌습니다. 그날 법문을 앉아서 끝까지 다 듣고 점심공양도 잘하고
탑돌이 열다섯 번 다같이 돌고 버스 4시간 타고 약사궁까지 오는데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봉축행사 때 저는 엄청난 업장소멸 가피를 받았습니다.
기도할 때 ‘앉고 서고 걸어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발원하며 매달렸더니
지금은 모두 발원대로 되었습니다.
내가 발원한 대로 앉을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서 있을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걸어다닐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이제는 뛰어다니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행복합니다.
발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였습니다.
여러분들도 100% 믿고 기도하고 발원하십시오. 발원대로 들어주십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4.8절 이후로도 계속 부처님 가피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한달 반 전의 일입니다.
스님들과 기도를 하는데 불상에서 영롱한 아름다운 빛이 쏟아져
온 법당을 가득 채웠는데, 그 속에 있던 나는 어떠한 번뇌망상도 끊어진 채
안락하고 무한히 편안하다는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순간의 일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또한번 느끼고 싶었으나 그때 이후로 그런 경험은 맛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무척 행복합니다.
요즘은 심하게 아픈 사람이 있으면 찾아가서 저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현지사 천도재 하고 약사궁 공양 올리라고 하고, 포교도 하고,
부처님 전에 열심히 기도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금생의 이 고통을 다음 생에는 다시는 겪지 않기 위해.
여러분 세상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공양을 올리든 100일 기도를 올리든 정말 소원성취하고 싶으시면,
다겁생 살아오면서 저지른 악업에 대해 부처님 앞에 절절히 참회하고
부처님 법을 만난 것을 감사하며 바라는 소원대로 발원한다면
반드시 가피가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다만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셨다면
그건 저처럼 처절하게 매달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분! 현지사를 다니다가보면 일이 더 안 풀리기도 하고,
중간에 저처럼 더 아플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 중생들은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럴 때 조심해야 합니다.
좋고 안 좋은 상황은 내 업으로 생기는 것이지 일부러 부처님께서
상황을 나쁘게 만들어 시험에 들게 하지는 않습니다.
상황이 안 좋을 때 일수록 모든 것을 부처님께 맡기고 매달린다면
그때부터의 가피는 눈에 띄게 쏟아진다는 저의 경험을 주제넘지만
여러분께 꼭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또 한 가지! 붓다회상 만난다는 것은
천만생을 산다 한들 우리 중생들한테는 오기 어려운, 생사윤회를 벗어날 절호의 기회인데
내 소원을 들어주신다고 믿고 안 들어주신다고 안 믿는 그런 기복적인 종교를 벗어나
생사해탈을 목표로 선택이 아닌 필수로 부처님 계시다는 것을 100% 믿고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저는 부처님께서 주신 제2의 인생은 이제 제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 것입니다. 오직 모든 것을 부처님께 바칠 것입니다.
태사부님 큰스님! 감사드립니다. 현지사 신도분들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의 정성으로 약사궁이 생겼습니다.
약사궁에서 모든 가피를 혼자 받은 것 같아 감사하면서도 미안합니다.
그동안 가피받은 경험은 책을 써도 한 권이 넘겠지만 글로 표현하자니
두서없는 글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곳은 부처님 성전인 현지사입니다.
팔자도 운명도 바꿀 수 있는 곳이 현지사이고, 행복이 보장된 곳도 현지사이고,
윤회생사로부터 해탈을 할 수 있는 곳도 현지사입니다. 우리 모두 생사해탈 합시다.
부처님 만세!
태사부님 만세! 큰스님 만세!
현지사 불자님 만세!
아울러 목숨이 위태로울 때 부처님 성전으로 이끌어주신 우리 도반님들께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도반님들께서 베풀어 주신 사랑 잊지 않고
여러 어려운 사람들에게 회향하면서 살겠습니다.』
출처:2013년 자재 만현 큰스님 법문 중에 어느 불자님 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