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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시리아의 새 지도자는 정치적으로 명민하다…그러나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BBC국제편집장 / 12/21(토) / BBC News
제레미 보웬(Jeremy Bowen) BBC 국제편집장 시리아 다마스쿠스(Damascus)
내가 2주 가까이 전 런던에서 출발한 것은 시리아 반정부 세력이 알레포를 장악한 뒤의 일이다. 그 후의 전개의 대단함에 잠겨버렸지만, 알레포 제압은 그 시점에서 경이로운 승리였다. 그것을 받아 시리아로 향한 나는, 격렬한 총격전에 대해 보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문중 경칭 생략).
"하야트 타흐리르 알 샴(HTS '샴 해방기구'라는 뜻)"으로 불리는 이들은 당시 이미 자신들 앞에 있는 것을 모조리 털어놓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사드 정권이 반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거 아사드 정권은 발 디딜 틈이 없을 것 같으면 반드시 반격했기 때문이다. 2015년 러시아가 개입해 시리아의 마을과 마을을 철저히 폭격해 잔해더미로 만들기 전까지는 아사드 정권은 그렇게 반격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바샤르 알아사드를 지탱해 온 러시아, 이란, 레바논의 동료들은 다른 전쟁으로 바빴다. 그것은, 확실하다.
징병된 의욕이 없는 병사는 다루기 어렵지만 예전 같으면 반드시 정권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울 기개가 있는 시리아인이 언제든지 발견된 것이다. 2011년에 시작된 내전이 최고조에 달했을 무렵, 반정부 세력이 다마스쿠스의 중심부 이외는 수도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을 무렵, 베이루트에의 길도 지배하고 있을 무렵에도,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전선에 있는 그런 남자들을 여러 번 방문하곤 했다.
특히 전투력이 뛰어난 부대는 아사드와 같은 이슬람 알라위파 커뮤니티 출신 장교들이 이끌고 있었다.
2015년경에 알레포에서는, 아라위파의 장군이 완벽하게 완성된 증류주 아락을 잔에 따르고 있었다. 이 아락 병은 한때 잭 다니엘 위스키 병이었다.
향신료인 아니스시드를 사용해 만드는 아락은 중동 각지에서 널리 사랑받고 있다. 그리고 알라위파 장군은 자신이 휘두른 아락은 라타키아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있는 아사드 가문 출신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의기양양하게 자랑했다. 밖에서는 반정부 세력이 지배하는 알레포 동쪽을 이 장군의 부대가 철저히 포격하고 있었다.
아사드 정권의 편은 알라위파만이 아니었다. 다마스쿠스 중심부와 가까운 조바르 지역에서는 아사드에게 충성하는 기독교인 시리아 아랍군 장교가 반정부 세력을 공격하기 위해 잔해 밑을 파고든 터널로 나를 안내했다.
이 장교에 따르면 반정부 세력도 터널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가끔 서로 상대방의 터널에 침입해 어둠 속에서 상대방을 죽이는 것이라는 얘기였다.
젊은 장교는 손목에 십자가 문신을 새기고 목에도 십자가를 걸고 있었다. 그리고 적의 이슬람 성전주의(지하드) 과격세력으로부터, 자신의 커뮤니티를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직감적으로 아사드 정권에 충성하는 병사들은 수는 적어도 전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완전히 틀렸다.
12월 7일 토요일 중부 홈스 함락 소식을 듣고 나서 나는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바샤르 알아사드는 이미 러시아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반정부 세력 전투원들은 수도 다마스쿠스의 왕래로 승리를 축하하기 시작했다.
정권을 무너뜨린 전투원들은 아사드파 병사들을 공격하기 위해 쏜 것보다 더 많은 총탄을 축포로 하늘을 향해 쏘고 있었다. 그 무렵 아사드파의 병사는, 생명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레바논과의 국경에서 수백 대의 차량이 줄을 섰고 패배에 불만스러운 남자들과 공포에 질린 가족들로 가득했다.
많은 병사들은 한 발도 쏘지 않은 채 제복과 무기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사드 정권은 부패와 잔학행위를 거듭한 끝에, 그리고 자국민의 생명을 잔혹하게 경시한 끝에, 텅 비어 붕괴했다. 아사드 일족이 속한 알라위파 커뮤니티조차 대통령을 위해 싸우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19일 홈스나 하마나 어딘가의 어는 거리에서 포탄이나 총탄을 피하려고 몸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수도 다마스쿠스에 있었던 것이다. 전쟁터가 된 어느 거리에 자신이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대통령궁에 있었다. 시리아의 사실상 지도자가 된 아흐메드 알 샤라아와 나란히 대통령궁 대리석 복도를 거닐고 있었다.
내전 중 아부 모하메드 알 조라니를 자처했던 시리아의 새 지도자는 본명인 알 샤라아를 쓰고 군복을 벗었다.
알-샤라아는, 과거 내걸었던 이슬람 성전(지하드)주의의 신념을 버리고, 그보다 관용적인, 종교를 기본으로 한 시리아 특유의 내셔널리즘으로 전환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주장을 많은 시리아인은 의심하고 있다.
그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오랫동안 지하디스트로 활동한 뒤 2016년 이슬람 무장세력 알카에다와 결별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사드의 궁전에서 내가 만난 차분한 말투로 장신인 40대 초반의 알 샤라아는 자신이 어떤 시리아를 원하는지 그다지 구체적으로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매우 지적이고 정치적으로 명민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많은 명민한 정치인들처럼 직구 질문에 직구로 대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알 샤라아는 시리아를 중동의 아프가니스탄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그에 따르면 탈레반이 지배하는 아프가니스탄은 씨족 사회이지만 시리아는 전혀 다르다. 그리고 시리아의 새로운 지배자들은 시리아의 문화와 역사를 존중한다고.
시리아의 여성이 당연시하게 된 자유는, 향후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가라고 질문하자, (HTS가 지반으로서 해 온) 이들리브현의 대학에서는 학생의 60%가 여성이라고 알·샤라아는 대답했다.
그러나 여성에게 히잡(이슬람교 복장)을 의무적으로 착용할 것인지 묻자 대답을 피했다.
다마스쿠스에서는 수염을 기른 HTS 남자들이 곳곳에서 여성에게 스카프로 머리를 가리라고 명령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알 샤라아와 사진을 찍고 싶다고 부탁한 여성이 촬영할 때 후드를 뒤집어쓴 것으로 소셜미디어에서는 일대 논쟁이 되고 있다고 나는 그에게 지적해봤다.
보수파는 가족 이외의 여성과의 사진 촬영을 허용하는 등 터무니없다고 알 샤라아를 비판했다. 자유주의자들은 그녀의 후드를 시리아의 미래에 어두운 징조로 받아들였다.
이 질문에 만약 질려 있다고 해도 알 샤라아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머리를 가리라고) 그녀에게 강제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건 내 개인적인 자유야. 내 사진은 나에게 맞는 형태로 촬영해 주었으면 해. 강제한 것은 아니었다. 전국적으로 적용되는 법이 있는 것과는 사정이 다르다. 다만 이 나라에는 법률이 인식해야 할 문화라는 것이 있다"
알·샤라아가 여기서 말하는 문화란, 시리아에서는 다수파의 수니파 이슬람교도에 한정하지 않고, 경건한 국민이 많다고 하는 사정을 가리킨다.
많은 여성들이 히잡을 쓰고 있다. 중요한 것은 선택의 자유가 있는 것이라고, 세속적인 시리아인이라면 그렇게 말할 것이다.
반세기 동안 이어진 아사드 부자의 지배를 통해 시리아인들은 살아남기 위한 기술을 여러 개 개발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도 그중 일부다.
특별히 신앙심이 강한 것은 아닌 세속적인 시리아인들은 충격을 받고 긴장한 표정으로 스마트폰 동영상을 내게 보여줬다. 거기에는, 15일의 일요일에 학생이 대학에 돌아왔을 때, 대학 밖에서 집단이 기도하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이것은 진정한 믿음에 의한 행동인가. 아니면 젊은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시키는 대로 따르는 것일까.
모든 것은 법률 전문가들이 모이는 위원회가 결정하는 새 헌법의 문제라고 알 샤라아는 말했다.
그 패널의 면면을 결정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알-샤라아가 아닐까, 비판적인 사람들은 말한다. 그리고 알-샤라아에 의하면, 그 위원회가 신헌법 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법률을 책정하게 된다.
알 샤라아는 무엇보다 아사드 정권이 어떻게 국민을 탄압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다.
"시리아가 안고 있는 문제는 당신이 질문하는 여러 가지 것보다 훨씬 크다. 인구의 절반이 시리아에서 쫓겨나거나 강제로 집에서 쫓겨난 것이다"
"시리아인들은 통폭탄이나 유도장치가 없는 부정확한 폭탄으로 공격받았고 250차례 이상 화학공격의 표적이 됐다. 많은 시리아인이 유럽으로 도망치려다 바다에 빠져 죽었다"
국제사회의 제재가 풀리지 않는 한 시리아가 안정적으로 재건하기 시작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알 샤라아는 인식하고 있다.
제재는 본래, 아사드 정권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제재를 유지하는 것은 탄압한 쪽과 마찬가지로 피해자를 다루는 것과 같다고 그는 말했다.
자신이 이끄는 그룹은 테러조직이 아니라고 알 샤라아는 주장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유엔도, 세계 주요국도 HTS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미 외국에서 외교관들이 속속 다마스쿠스를 찾고 있다. 제재의 해제, 테러리스트 지정의 해제가, 어느 쪽도 가능성으로서 있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제재나 테러리스트 지정의 해제에는 우선, HTS가 소수파의 권리를 존중해 포괄적인 정치 프로세스를 실행한다고 하는 약속을 지키고 있다고,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각국 외교관들은 이미 알 샤라아에게 그렇게 전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그 일을 언급해도 본인은 잘 다루지 않았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시리아 국민이 나를 믿느냐다. 우리는 국민에게 범죄적 독재정권으로부터 국민을 해방시키겠다고 약속하고 그 약속을 이행했다. 나에게는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에 대해 국외에서 무슨 말을 들을지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시리아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얼마나 진지하게 일하는지 세계에 증명할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2주간 많은 시리아인들이 자신들이 나라를 재건하는 동안 외국이 간섭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꿈 이야기로 들린다.
내전은 나라의 대부분을 파괴했다. 동시에 시리아의 주권도 지워졌다.
바샤르 알아사드는 이란과 러시아의 앞잡이가 됐다. 그리고 양국이 지원을 멈추자마자 나라에서 도망쳤다.
북동부에는 미국이 있다. 거기서 무장 세력 「이슬람국(IS)」의 잔당을 사냥해, 협력 관계에 있는 쿠르드인을 보호하고 있다.
북서부의 대부분은 터키가 지배한다. 그리고 터키는 아랍 세력이 이끄는 민병대를 갖고 있다.
터키 정부는 HTS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리고 터키 내 쿠르드 분리주의자에 가까운 시리아 내 쿠르드족에 대해 새로운 공세를 준비하고 있는 조짐이 있다.
지금의 이스라엘은 한동안 없었을 정도로 공격적이다. 시리아에서 권력의 진공이 생겼다고 보는 순간 그 기회를 아주 노골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시리아에 남는 군사 인프라를 계속 폭격해 1967년 이래 점령하고 있는 골란고원에 더해 그 이상의 시리아 영토도 빼앗고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언제나 그렇듯이 자신들의 행동은 어디까지나 자위라고 정당성을 주장한다.
유엔의 게일 페데르센 시리아 특사는 이스라엘의 행동은 무책임하다고 내게 말했다. 이스라엘은 「지금의 (시리아의) 지극히, 지극히 약한 상태에 있는 이행 프로세스를 불안정하게 하는 행동을 취해서는 안 된다」라고 특사는 말했다.
미국이 지원하는 이스라엘의 힘에는 대항할 방법이 없다. 알 샤라아는 그것을 알고 있다.
"이스라엘이 강하든 안 하든 시리아는 전쟁에 지쳤다. 시리아는 지금보다 확실히 힘을 비축하고 발전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이스라엘 공격 예정이 없다. 시리아는 이스라엘이든 누구든 누구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는다"
알 샤라아가 안고 있는 과제는 너무 많다.
시리아는 나라로서 망가져 있다. 그 부서진 나라를 그는 수복하고 재생시키고 싶다고 한다. 그러나 워낙 어려운 문제가 산적해 있어 복구나 재생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시리아 내에 있는 무장세력은 HTS만이 아니다. 그리고, 알·샤라아가 만들려고 하고 있는 신정권을 빨리 파괴하고 싶은 세력도 있다. HTS에 적대하는 IS계 조직이 불안정화를 꾀해 공격할 가능성도 있다.
자국민을 계속 죽인 구 정권의 인간에게, 그리고 전대통령 자신에게, 복수하고 싶다고 하는 욕구가 시리아 국내에는 있다. 국민의 목구멍을 군화로 짓밟듯 오랫동안 시리아인을 억압해 온 자들에게는 법의 심판을 받게 할 것이며, HTS가 실제로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는다면 국민의 복수심이 파괴적인 분노로 폭발할 수도 있다.
시리아는 중동의 중심에 있는 지점이라고 알 샤라아는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시리아는 전략적 위치에 있는 중요한 나라다. 세계에서 매우 영향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한쪽에는 미국이 있다. 반대편에는 러시아가 있다. 터키 이란 이스라엘 등 이 지역 국가들도 시리아 안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은 시리아의 회복을 지원해야 하는 것이라고, 알·샤라아는 말한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강력한 외국은 시리아의 회복을 인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영어기사 Jeremy Bowen: Syria's new ruler is politically astute - but can he keep his promises?)
(c) BBC News
https://news.yahoo.co.jp/articles/e186d34b95ad48fbd56b882fb6331905da7e36ad
【解説】 シリアの新指導者は政治的に明敏だ……しかし約束を守れるのか BBC国際編集長
12/21(土) 11:14配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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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News
【解説】 シリアの新指導者は政治的に明敏だ……しかし約束を守れるのか BBC国際編集長
ジェレミー・ボウエンBBC国際編集長 シリア・ダマスカス
私が2週間近く前にロンドンから出発したのは、シリアの反政府勢力がアレッポを掌握した後のことだ。そのあとの展開のすごさにかすんでしまったが、アレッポ制圧はあの時点で驚異的な勝利だった。それを受けてシリアに向かった私は、自分は激しい銃撃戦について報道するものと思っていた(文中敬称略)。
「ハヤト・タハリール・アル・シャーム(HTS、「シャーム解放機構」の意味)」と呼ばれるグループは当時すでに、自分たちの前にあるものをことごとくなぎはらっていた。しかし私は、アサド政権が反撃するものと思っていた。かつてのアサド政権は、足場を失いそうになると必ず反撃していたからだ。2015年にロシアが介入し、シリアの町や村を徹底的に爆撃してがれきの山にするまでは、アサド政権はそうして反撃していたのだ。
しかしそれから10年近くたった今、バッシャール・アル・アサドを支えてきたロシア、イラン、レバノンの仲間たちは、ほかの戦争で忙しかった。それは、はっきりしている。
徴兵されたやる気のない兵士は扱いにくいが、以前なら必ず、政権のために命を懸けて戦う気概のあるシリア人が、いつでも見つかったものだ。2011年に始まった内戦が最高潮に達していたころ、反政府勢力がダマスカスの中心部以外は首都のほとんどを掌握していたころ、ベイルートへの道も支配していたころでも、それは変わらなかった。
私は前線にいるそういう男たちのもとを、何度も訪れたものだ。
特に戦闘力に優れる部隊は、アサド氏と同じイスラム教アラウィ派のコミュニティー出身の将校たちに率いられていた。
2015年ごろにアレッポでは、アラウィ派の将軍が完璧な出来栄えの蒸留酒アラックをグラスに注いで回っていた。このアラックの瓶は、かつては「ジャック・ダニエル」ウィスキーの瓶だった。
香辛料のアニスシードを使って作るアラックは、中東各地で広く好まれている。そしてアラウィ派の将軍は、自分がふるまったアラックは、ラタキア港を見下ろす丘にあるアサド一族の出身地で作られたものなのだと、得意気に自慢した。外では、反政府勢力が支配するアレッポの東側を、この将軍の部隊が徹底的に砲撃していた。
アサド政権の味方はアラウィ派だけではなかった。ダマスカス中心部に近いジョバル地区では、アサド氏に忠誠を誓うキリスト教徒のシリア・アラブ軍将校が、反政府勢力を攻撃するためにがれきの下を掘り進んだトンネルへと、私を案内してくれた。
この将校によると、反政府勢力もトンネルを使っているので、時折お互いに相手のトンネルに侵入し、暗闇の中で相手を殺すのだという話だった。
若い将校は手首に十字架のタトゥーを入れ、首にも十字架をかけていた。そして、敵のイスラム聖戦主義(ジハード)過激勢力から、自分のコミュニティーを守らなくてはならないのだと話していた。
だからこそ私は直感的に、アサド政権に忠誠を誓う兵士たちは、数は少なくとも戦意はあるのだろうと思ったのだが、今回はまったく間違っていた。
12月7日の土曜日、中部ホムス陥落のニュースを耳にしてから、私は眠りについた。
目が覚めると、バッシャール・アル・アサドはすでにロシアへと向かっていた。そして、反政府勢力の戦闘員は首都ダマスカスの往来で勝利を祝い始めていた。
政権を倒した戦闘員たちは、アサド派の兵を攻撃するために撃ったよりも多くの銃弾を、祝砲として空に向かって放っていた。そのころアサド派の兵は、命からがら逃げ出していた。
レバノンとの国境で何百台もの車が列をなし、敗北に不満顔の男たちと、恐怖におびえる家族でいっぱいだった。
多くの兵士は一発も撃たないまま、制服と武器を捨てて家に帰った。
アサド政権は汚職と残虐行為を積み重ねた挙句、そして自国民の命を残酷なまでに軽視した果てに、空っぽになって崩壊した。アサド一族が属するアラウィ派コミュニティーでさえ、大統領のために戦わなかった。
だからこそ私は19日、ホムスかハマかどこかの凍える通りで砲弾や銃弾を避けようと身を潜めるのではなく、首都ダマスカスにいたのだ。戦場となったどこかの街に自分はいるだろうと思っていたのに、予想に反して、大統領宮殿にいた。シリアの事実上の指導者となったアフメド・アル・シャラアと並んで、大統領宮殿の大理石の廊下を歩いていた。
内戦中は「アブ・モハメド・アル・ジョラニ」を名乗っていたシリアの新指導者は、本名のアル・シャラアを使い、そして軍服を脱いでいた。
アル・シャラアは、かつて掲げていたイスラム聖戦(ジハード)主義の信念を捨て、それよりも寛容な、宗教を基本にしたシリア特有のナショナリズムに切り替えたと主張しているが、その言い分を多くのシリア人は疑っている。
彼がイラクとシリアで長いことジハーディストとして活動した後、2016年にイスラム武装勢力「アルカイダ」と決別したのは事実だ。しかし、アサドの宮殿で私が会った、物静かな語り口で長身の、40代前半のアル・シャラアは、自分がどういうシリアを望んでいるのか、あまり具体的に話そうとはしなかった。
非常に知的で政治的に明敏だという印象を、私は受けた。そして多くの明敏な政治家のように、直球の質問に直球で答えないことが多い。
アル・シャラアは、シリアを「中東のアフガニスタン」にしたいとは思っていないと答えた。
彼によると、タリバンが支配するアフガニスタンは「氏族社会だが、シリアはまったく違う」という。そしてシリアの新しい支配者たちは、シリアの文化と歴史を尊重すると。
シリアの女性が当然視するようになった自由は、今後も認められるのかと質問すると、(HTSが地盤としてきた)イドリブ県の大学では学生の60%が女性だとアル・シャラアは答えた。
しかし、女性にヒジャブ(イスラム教の服装)の着用を義務付けるかどうか尋ねると、回答を避けた。
ダマスカスでは、ひげをたくわえたHTSの男たちがあちこちで、女性にスカーフで髪を覆うようにと命令しているのだと、うわさが飛び交っている。
アル・シャラアと写真を撮りたいと頼んだ女性が、撮影の際にフードを被ったことで、ソーシャルメディアでは一大論争になっていると、私は彼に指摘してみた。
保守派は、家族以外の女性との写真を撮影を許すなどとんでもないとアル・シャラアを批判した。リベラル派は彼女のフードを、シリアの未来にとって暗い前兆だと受け止めた。
この質問にもし辟易(へきえき)としていたとしても、アル・シャラアはその様子を表に出さなかった。
「(髪を覆うよう)彼女に強制したわけではない。しかし、これは私の個人的な自由だ。私の写真は、私に合った形で撮影してもらいたい。強制したわけではない。全国的に適用される法律があるのとは、わけが違う。ただし、この国には、法律が認識すべき文化というものがある」
アル・シャラアがここで言う文化とは、シリアでは多数派のスンニ派イスラム教徒に限らず、敬虔(けいけん)な国民が多いという事情を指す。
多くの女性がヒジャブを着けている。大事なのは選択の自由があることだと、世俗的なシリア人ならそう言うだろう。
半世紀続いたアサド親子の支配を通じて、シリア人は生き延びるための技をいくつも開発した。自分の感情を隠し、求められるとおりの行動をとるというのも、その一部だ。
特に信仰熱心というわけではない世俗的なシリア人は、ショックを受けて緊張した面持ちで、スマートフォンの動画を私に見せてくれた。そこには、15日の日曜に学生が大学に戻った際、大学の外で集団が祈る様子が映っていた。
これは本物の信心による行動なのか。それとも、若者たちが生まれた時からそうしてきたように、言われたことに従っているだけなのか。
すべては法律の専門家が集まる委員会が決定する、新憲法の問題だと、アル・シャラアは言った。
そのパネルの顔ぶれを決めるのは、現状ではアル・シャラアではないかと、批判的な人たちは言う。そしてアル・シャラアによると、その委員会が新憲法だけでなく新しい法律を策定することになる。
アル・シャラアは何より、アサド政権がいかに国民を弾圧したかについて、話そうとした。
「シリアが抱える問題は、あなたが質問するいろいろな事柄よりもはるかに大きい。人口の半分が、シリアから追い出されるか強制的に家から追い出されたのだ」
「シリア人は、たる爆弾や誘導装置のない不正確な爆弾で攻撃され、250回以上も化学攻撃の標的にされた。多くのシリア人がヨーロッパに逃れようとして、海で溺れ死んだ」
国際社会の制裁が解除されない限り、シリアが安定して再建し始めるなどあり得ないことだと、アル・シャラアは認識している。
制裁は本来、アサド政権を対象としたものだ。制裁を維持することは、弾圧した側と同じように被害者を扱うに等しいと彼は述べた。
自分が率いるグループはテロ組織ではないと、アル・シャラアは主張した。しかし今のところ国連も、世界の主要国も、HTSをテロ組織に指定している。
それでもすでに諸外国から外交官が次々と、ダマスカスを訪れている。制裁の解除、テロリスト指定の解除が、どちらも可能性としてあり得ることがうかがえる。
制裁やテロリスト指定の解除にはまず、HTSが少数派の権利を尊重し包括的な政治プロセスを実行するという約束を守っていると、証拠を示すことが必要だ――。各国の外交官はすでにアル・シャラアにそう伝えている。しかし、私がそのことに触れても、本人はあまり取り合わなかった。
「私にとって大事なのは、シリア国民が私を信じるかどうかだ。我々は国民に、犯罪的な独裁政権から国民を解放すると約束し、その約束を果たした。私にはそれこそが何より大事なことだ」
「我々について、国外で何をどう言われるか、私はあまり気にしていない。シリアの人々のために、我々がいかに真剣にはたらくか、世界に証明する義務はないからだ」
私はこの2週間で、多くのシリア人が「自分たちが国の再建に取り組んでいる間、外国は干渉しないでもらいたい」と口々に言うのを耳にした。
しかし、それは夢物語に聞こえる。
内戦は国の大部分を破壊した。同時に、シリアの主権も消し去った。
バッシャール・アル・アサドは、イランとロシアの手先になった。そして、両国が支援を止めた途端、国から逃げ出した。
北東部にはアメリカがいる。そこで武装勢力「イスラム国(IS)」の残党を狩り、協力関係にあるクルド人を保護している。
北西部の大部分はトルコが支配する。そしてトルコは、アラブ勢力が率いる民兵組織を持っている。
トルコ政府はHTSと密接な関係にある。そして、トルコ国内のクルド分離主義者に近いシリア国内のクルド人に対して、新たな攻勢を準備している兆しがある。
今のイスラエルはしばらくなかったほど攻撃的だ。シリアで権力の真空が生じたと目にした途端、その機会をきわめて露骨に利用している。
イスラエルはシリアに残る軍事インフラを爆撃し続け、1967年以来占領しているゴラン高原に加えて、それ以上のシリア領土をも奪っている。
そしてイスラエルはいつものように、自分たちの行動はあくまでも自衛なのだと、正当性を主張する。
国連のゲイル・ペダーセン・シリア特使は、イスラエルの行動は「無責任」だと私に話した。イスラエルは「今の(シリアの)極めて、極めてもろい状態にある移行プロセスを不安定にするような行動を取るべきではない」と特使は述べた。
アメリカが支援するイスラエルの力には、対抗しようもない。アル・シャラアはそれを承知している。
「イスラエルが強いかどうかはともかく、シリアは戦争に疲れ切っている。シリアは今よりしっかり力を蓄え、発展しなくてはならない。我々にはイスラエル攻撃の予定などない。シリアは、イスラエルだろうが誰だろうが、誰に対しても脅威にはならない」
アル・シャラアが抱える課題はあまりに多い。
シリアは国として壊れている。その壊れた国を彼は修復し、再生させたいのだと言う。しかし、あまりに難問が山積しているので、修復や再生は無理なのかもしれない。
シリア国内にいる武装勢力は、HTSだけではない。そして、アル・シャラアが作ろうとしている新政権を早々に破壊したい勢力もいる。HTSに敵対するIS系組織が、不安定化を図って攻撃する可能性もある。
自国民を殺し続けた旧政権の人間に、そして前大統領自身に、復讐(ふくしゅう)したいという欲求がシリア国内にはある。国民の喉元を軍靴で踏みつけるようにして長くシリア人を抑圧してきた者たちには、法の裁きを受けさせるのだと、HTSが実際に行動で示さなければ、国民の復讐心が破壊的な怒りとして爆発することもあり得る。
シリアは中東の中心にある支点なのだと、アル・シャラアは正確に認識している。
「シリアは戦略的な位置にある重要な国だ。世界で非常に影響力がある。だからこそ、その片側にはアメリカがいる。反対側にはロシアがいる。トルコ、イラン、イスラエルなど、この地域の国々も、シリアの中にいる」
だからこそ、諸外国はシリアの回復を支援するべきなのだと、アル・シャラアは言う。
しかしだからこそ、強力な諸外国はシリアの回復を認めないかもしれないのだ。
(英語記事 Jeremy Bowen: Syria's new ruler is politically astute - but can he keep his promises? )
(c) BBC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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