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나라에 대항하여 군사를 일으킨 항우의 책사로서 칠순의 나이에도 지략과 비범함을 갖추고 있어 촉나라의 제갈량에 비유되기도 한다.
유방이 장차 항우를 위협하는 위험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를 죽이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하였다. 오히려 유방과 내통한다는 오해를 받고 쫓겨나 고향으로 돌아가 실의에 빠져 죽었다.
출생~사망 : BC277 ~ BC204
중국 안휘성[安徽省]출신이며 진나라 말기 국운이 기울기 시작하자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이 반란을 일으키고 그 외에도 각지에서 군웅이 할거하던 시기에 등장하였다.
초나라 패현에서도 항량(項梁)이 조카인 항우(項羽)와 함께 군수였던 은통(殷通)을 죽이고 진나라에 대항하여 봉기하자 그의 휘하에 들어가 책사가 되었다.
당시 범증은 칠순의 나이였지만 군사적인 비범함과 정치적 안목을 갖추고 있었다. 진승과 오광이 점차 세력을 키우고 함곡관을 공격하였지만 진나라 장수 장한의 역습을 받아 모두 죽고 말았다.
범증이 초나라 사람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초나라 회왕(懷王)의 후손을 찾아 그를 왕으로 옹립해야 민심이 따를 것이라고 진언함에 따라, 항량은 초 회왕의 손자인 웅심(熊心)을 초나라 왕으로 옹립하였고 그를 국군(國君)으로 내세워 민심을 얻었다.
하지만 훗날 웅심(사후 시호는 조부와 동일한 "회懷")이 유방을 함양으로 먼저 진격하는 장군으로 인정하겠다고 하면서, 항우는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반면 유방은 항우와의 대결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게 된다.
항량이 진나라와 전투에서 방심하다 패하여 죽자 범증은 항우를 보필하는 유일한 책사로서 역할을 하였다.
그는 항우의 높은 신망을 얻었고
아버지 다음으로 여기는 사람이라는 의미인 '아부(亜父)'라는 존칭을 받았다.
역사서에서는 촉나라 제갈량과 비교되는 인물로 평가받기도 하였다.
회왕은 항우가 싸움에서는 뛰어나지만 거칠었고 항복하는 적을 모두 죽여버릴 정도로 잔인했기 때문에 북쪽의 조나라로 보냈고 유순한 성격의 유방에게 관중으로 향하여 함양을 정복하도록 하였다.
이는 유방을 통해 진나라의 민심을 얻고자 함이었다.
하지만 유방의 야심을 알아챈 범증은 유방이 항우와 초나라를 위험하게 할 인물임을 예견하고 홍문(鴻門) 연회에서 유방을 죽이려고 했지만 항우의 삼촌인 항백(項伯)의 배신으로 실패하였다.
무엇보다 항우가 유방이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했고 오히려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유방을 제거하려던 계획이 실패하게 된 것이었다.
범증은 뛰어난 지략의 책사였지만 유방의 모사 진평이 만든 계략에 빠진 항우에 의해 쫓겨난다.
유방의 막사로 항우의 사자가 찾아오자 극진한 만찬을 준비하였다가, 범증이 온 줄 알고 이렇게 대접상을 차렸는데 사자가 온 것이라면 만찬을 준비할 이유가 없다며 만찬상을 치워버렸다. 초나라 막사로 돌아간 사자는 이런 사실을 항우에게 고했고 항우는 범증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범증은 항우의 의심을 받자 자리를 털고 일어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범증은 고향에서 실의 속에 죽었다. 한편, 항우는 유방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간계에 빠졌던 사실을 알게 되자 범증을 쫓아낸 것을 크게 후회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