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두 그때 고등학생이었고, 저희 학교도 농구 좀 한다하는 명지고등학교였기에(김유택,한기범,..최근엔...연대 김동우가 여길 나왔죠) 농구대회 결승전이면 가끔 붙었답니다..그래서 가서 경기를 몇번 보곤 했죠..
우승은 거의 휘문이 했지만. 저희학교도 탄탄한 조직력으로 매우 위력적인 경기를 했구...막판 역전패도 당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고등학교때 서장훈은 큰키에 웨이트도 좀 되었고, 한기범과 같은 신장에도 보다 다양한 모션이 가능했기 때문에 '기대주'였지만, 현주엽은 보다 각광받는 선수였다고 봅니다..중학교때부터 시합에서 덩크슛을 선보이던 선수였고, 고교때의 플레이를 보아도 서장훈은 큰키에 유연함으로 골밑에서 활약을 했지만, 솔직히 예나 지금이나. 발은 빠르지 않고(고등학교 땐 더 느렸음) 중거리슛도 그 거리가 지금과는 비교도 안되게 짧아서 , 한정된 플레이를 했던 반면,,
현주엽은 그 키에 그 몸무게에도 다이내믹한 운동능력으로 코트를 누비는 플레이를 보여주었고, 고등학교시절 모습은 진짜 바클리 같았습니다..
제가 그 둘이 함께 뛰는 걸 본 마지막 기억이 91년도인가 92년도에 '학산배 우수고교 초청 농구대회'에서 우리모교와 휘문고가 붙은 결승전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현주엽땜에 후반 역전패당했습니다. 키는 그리 커보이지 않았는데,(서장훈과 같이 뛰어서 인지..) 또 점프도 높아보이진 않았던 통통한 선수가 체공력은 왜이리 긴지 엔트리 패스를 받으면 피벗과 동시에 붕 떠서 각도도 없는 베이스라인 옆에서 스핀을 주어 백보드를 맞혀서 넣는 슛을 서너번 연속을 넣으니..기냥 역전되더군요..
서장훈이 휘문고를 졸업하고나서 현주엽은 유래없이 고등학생 농구선수로서 대중의 시선을 모으는 스타가 되었습니다. 대회 득점왕을 거의 싹슬이 하는데 어느 대회에선 평균득점이 50점 이상일때도 있었습니다.(정확하진 않아도 결승전 오르기까지 서너 경기동안은 평균이 50점 이상은 확실합니다.) 단, 그 대회에선 결승전에서 세명의 수비를 붙이면서 현주엽의 휘문고를 저지한 조직력의 대경상고에게 집니다.
현주엽이 고3때 최고의 모습을 보이면서(제가 보아온 바...그 당시가 최고로 활약하던 시기였죠..시합에서 3점슛, 중거리슛, 속공에 이은 덩크까지..보여줄 거 다보여주었습니다...탭덩크하는 것도 두번인가 봤습니다. 속공할때 같은 편 선수 뒤에서 팔로우하면서 들어가다가, 앞선 선수의 레이업이 링을 한바퀴돌고 떨어지는 걸 고대로 달려들며 한손으로 다시 메다 꽂았음) 승승장구 하고 있을때..
서장훈은 연대에 들어가서 고된 신입생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저는 둘의 대결에서 서장훈이 다소나마 우위를 점하게 되는 이유 중 , 대학시절 그들을 키운 감독의 역량차이를 크게 꼽습니다.
제가 최희암감독이나, 박한 감독을 개인적으로 아는 것은 아닙니다만..서장훈은 연대에서 최희암감독의 엄한 교육을 받았다고 되어있습니다..한국농구계의 최고의 센터로 기대받던 그가 "농구코트에서 농구공을 만져보구 싶었다"란 말을 할 정도로 정신자세를 고치기 위해 거의 막일과 청소를 죽도록 시켰다고 합니다..그리고 체력훈련 같은 걸 많이 시켰다고 당시 일간지에서 읽었습니다....그런 시기가 지난 후에야 농구를 할 수 있었다고 하지요...
그 이후 대학 무대에 나타난 서장훈은 제가 알던 휘문고의 서장훈이 아니더군요...슈터 문경은 , 패서 이상민, 등등의 호화멤버 사이에서 센터로서의 능력과 자질을 발전시켜서 점점 위력을 보이던데...
고대로 간 현주엽은 그 색깔을 찾지 못한 모습이어서 안타까웠습니다..박한 감독이 정말 그렇게 엽기 감독인지...정말 작전지시는 하지않는 감독인지는 단언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현주엽이라는 선수의 능력을, 색깔을 무디게 했다는 점은 제 갠적으로 매우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대학선배이자 또한 특출한 선수인 전희철이라면, 현주엽과 힘을 합하여 포스트에서의 우위를 충분히 점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오히려 연대와의 경기에서는 포스트의 우위를 점했던 적이 별로 없었던 거 같습니다.
물론 고대는 강팀이었습니다...오히려 연대보다 더욱 훌륭한 선수들이 많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경기를 가지면 선수들의 색깔과 재능이 조화를 이루면서 맞어떨어져가는 연대경기는 본적이 많아도.. 고대에서 그런 경기를 보여준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 정도의 멤버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의 시너지효과를 보여주지 못했던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그저 멤버가 좋아서 그럭저럭 이기는 정도였고, 특히나 아쉬운 것이 현주엽의 활약이 그 기량에 비해 너무 미비했고, 대학에 들어와서 그 능력이 크게 향상된 서장훈에 비해- 현주엽은 '야...오히려 고등학교때의 플레이가 더 좋았는데..'하는 아쉬움이 너무 많이 들게 했습니다.
현주엽은 야투나 골밑플레이나..모두에 능했더랬습니다..지금 성균관대의 정훈선수도 그 용도가 다양하지만, 그보다 더욱 안정감있고, 자신있는 플레이를 보여주던 선수였는데,,,대학에 가서는 센터이면서 겉도는? 전희절 선수 때문에 골밑을 지키라고 지시했는지 양희승같은 외곽슛터가 있어서인지..자신의 다양한 기술을 보여주지 못하고 어정쩡한 골밑 몸싸움에서 힘을 소모하고, 포스트 주위에서 어색한 모습만 많이 보였습니다... 점차 학년이 높아지면서 조금씩 자신감을 찾기 시작했지만, "야..드디어 현주엽이 피기시작하는 구나"란 생각이 들게 된 것은 졸업이후 프로에 가서 입니다....거기서도 기대에 비해선 아니었구...
정말이지 대학에서 현주엽이 무얼 배워서 나왔는지 생각하면,,,계속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듭니다..서장훈은 연대에서 센터로서 크게 성장했고, 양경민이라든지, 김영만은 고등학교때까지 센터로 많이 뛰다가 중앙대로 와서 전천후포워드로 양성되어서 득점이나 리바운드. 포스트 공격에도 능할 뿐더러 수비에도 일가견 있는 효용도 높은 선수로 탈바꿈되었는데 현주엽에겐 그런 기회가 주어지기는 커녕, 본래 보여주던 효용도 높은 파워포워드를 어정쩡한 센터대용 선수로 써먹다가 그 색깔마저 바래버리게 한 시절이 되지 않았나 싶어서 맘이 씁쓸합니다.. 차라리 고려대는 박재헌을 센터로, 전희철과 현주엽을 활용도 높은 포워드로 키웠으면 세 선수의 장점을 골고루 이용하고, 발전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싶네요...기억이 가물가물한데...긴 글 쓰느라 저두 힘드네요..
새벽의 뜬금없는 잔소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