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상
일본보다 우리나라가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함은 지진과 태풍에서 확연히 알 수 있다. 올해 일본은 열도를 따라 관통해 올라간 몇 차례 태풍이 진절머리 날 정도지 싶다. 여름은 홋카이도에서 강력한 지진마저 발생해 수습과 복구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뉴스를 접한 적 있다. 거기 비해 우리는 고작 일 년 두세 개 스치는 태풍만 큰 피해를 주지 않으면 재난에서 한숨 돌릴 수 있다.
우리 지역에 드문 시월 태풍이 다가온 첫째 주말이다. 주중부터 태풍이 내습한다는 예보였기에 주말 바깥 활동은 제약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인적 드믄 산자락으로 올라 이즈음 피어난 야생화를 완상하려는 마음은 접었다. 비바람이 세차기에 강둑으로 나가는 산책도 어려워져버렸다. 이럴 땐 집 근처 시립도서관에 들어박혀 종일 책장을 넘기면 좋다만 그런 세월도 보낼 만큼 보냈다.
태풍이면 비바람으로 도로는 빗물에 잠기고 운전도 어려움이 따라 오가는 차량이 한산하다. 대중교통 이용도 자제함이 좋겠다만 내 경험에 비추면 철로는 그런대로 안전한 편이다. 나는 간밤 베란다 창틀 틈새에 종이박스를 잘게 잘라 끼워두었다. 실시간으로 확인된 기상정보로는 부산경남은 비바람이 정오에 최고조 이를 듯한다 해도 열차를 타려고 길을 나서 창원중앙역으로 향했다.
태풍이 오면 공항이나 항만은 여의치 않을 수 있어도 열차는 웬만해선 정상 운행이다. 서울로 용무를 보러 올라가는 일이 아니라 이른 아침 순천을 출발 삼랑진 물금을 지나 해운대에서 동해남부선으로 바뀌어 울산과 경주를 거쳐 포항으로 가는 무궁화호를 탔다. 우리 인생에서 그 길이와 넓이가 각자 다르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잘 활용함도 건강하게 오래 살려는 노력만큼 중요하다.
차창 밖 세찬 바람에 빗방울이 연신 부딪혀도 열차는 탈 없이 철로를 잘 달려 역마다 정시 도착 정시 출발이었다. 예전 비둘기호나 통일호급인 무궁화호도 주말이면 이용객이 제법 되는데 태풍으로 빈자리가 더 많았다. 사람이 덜 붐비는 곳을 좋아하는 내 취향에 딱 맞았다. 내가 가려는 행선지는 구포역을 지난 부전역이다. 잠시 우산을 펼쳐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해 자갈치로 나갔다.
내가 부산에 알고 지내는 이가 통 없지는 않으나 날씨가 궂은 날 혼자 보내고 싶은 일정이 있다. 그런데 아뿔싸! 어쩐담. 그 즈음 자갈치시장은 통영에서 부산으로 스쳐 지나는 태풍이 최고조에 이른 순간이었다. 서항 포구 선창으로 가 조업에 발이 묶인 어선들을 둘러볼 겨를이 없이 바람에 날아다니는 간판이나 펄럭이는 포장마차 텐트가 감당이 불감당이었다. 겨우 제비집을 찾았다.
연근해 조업 전진 기지가 부산 서항이다. 그런데 곁에서 119구조정 순찰을 바라보던 현지인이 선창 어선은 태풍이 오면 제5부두로 모두 옮겨간다 했다. 그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질 못하고 들린 집이 노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우중에 자갈치로 찾은 까닭은 생선구이 골목을 들리려 했는데 허사가 되고 말았다. 나는 그 즈음 태풍으로 풍랑을 피한 어부들의 안식에 마음이 놓였다.
거친 파도와 싸워야 하는 어부들에겐 어쩌면 태풍이 고마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풍이 다가오면 멀든 가깝든 바다에서 조업하던 어선들은 국적이 달라도 인근 포구로 모두 철수해 비바람이 잦아지길 기다려야한다. 선주야 출항 때마다 만선으로 귀항하길 꿈꾸겠지만 지친 몸으로 살아가는 어부들은 하루라도 안식이 기다려질 것이다. 나에겐 낯설기만 한 선창 풍경이었다.
자갈치 명물은 횟집이지만 생선구이도 있다. 주말이면 발을 디딜 틈 없이 붐비는 뒷골목인데 태풍으로 철시가 되니 썰렁했다. 비바람 속에도 문을 연 식당을 한 곳 찾음만도 감사했다. 고등어구이 정식이 5천원이었다. 시원 소주 한 병이 3천원이었다. 주중에 별로 한 일도 없는데 주말에 할머니에게서 받은 거룩한 상이었다. 평소는 골목 좌판 선도가 좋은 생선이나 조개도 보였는데. 10.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