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단 학교건립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30년 만에 한국을 찾은 원선오 신부(한국명, Vincenzo Donati·84)를 21일 광주시 북구 신안동 살레시오수도원에서 만났다. 여든이 넘은 나니에도 불구하고 최빈국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봉사를 멈추지 않는 푸른 눈의 신부는 인터뷰 내내 아프리카 교육사업에 열정을 내비쳤다. <편집자 주>
- 남수단에서 하시는 일에 말씀해주십시오. ▲원선오 신부 = 수단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나라입니다. 지금은 갈라져서 북쪽은 주로 아랍 사람들이고, 아프리카 사람들하고 혼혈입니다. 남쪽은 순수한 아프리카 종족입니다. 북쪽은 마호메트교이고. 남쪽은 가톨릭 혹은 부족 전통종교를 따라갑니다. 남수단은 독립했지만 매우 가난한 나라입니다. 시설들이 없고, 길도 없고, 학교도 없고, 정부는 이름뿐입니다. 수단에서 초등학교 교육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식은 발전의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지식이 없으면, 학교가 없으면, 빵을 준다 해도,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준다 해도 결코 충분하지 않습니다. 처음에 공업학교 교육을 했는데 기술은 잘 익히지만 글을 쓸 수가 없어 시험을 보지 못 했습니다. 남수단은 아주 많은 재원이 있습니다. 다이아몬드, 황금, 석유 있고, 농업 여건도 좋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그저 목축하는 일에 그치고 있습니다.
- 남수단 교육 상황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독립되고 나서 북쪽에서 약 200만명 갑자기 내려왔지만 내전으로 망가져 집, 학교, 병원 등은 물론 공동 시설이 없어 고생하고 있습니다. 70%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못 갑니다. 또 말을 못합니다. 이들은 북쪽에서는 아랍말을 썼습니다. 하지만 남쪽에서는 통할 수 있는 언어라고는 부족말 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공용어를 영어로 정했지만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주민은 드뭅니다. 생활수준은 격차가 심합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2000년전 인류의 모습 그대로이고 배워서 문화적 소양 을 갖춘 사람은 소수입니다. 이런 격차가 해소되지 않는 한 발전은 못합니다.
- 남수단에 청소년을 위한 학교 100개를 세우겠다고 하는데 현재 남수단에서의 학교 설립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요. ▲초등학교를 설립하지 않으면 발전할 희망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정부는 돈이 없고 학교문제에 신경 쓸 여력이 없습니다. 세계 125국에 지회를 둔 살레시오회도 돈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할 수 없는 것, 교회가 할 수 없는 것 우리가 도움을 주자!’고 주장했습니다. 지금까지 도움을 얻기 위해서 미국에 가 유명인들을 찾았지만 허탕이었습니다. 단 1달러도 못 얻었습니다. 그런데 LA에 사는 한국교포들에게서 10만 달러를 받았습니다.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지난 1981년 홀연히 아프리카로 떠나신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이탈리아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볼 때 늘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마음이 움직입니다. 1981년 이탈리아에 휴가차 갔다가 살레시오회가 아프리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는 것을 듣고 지원했습니다. 당시 한국은 어려움을 벗어나 많이 발전했기 때문에 별로 필요가 없다고 생각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아프리카로 가기로 했습니다. 지금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NGO들은 주민들에게 약(의료)과 음식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만 주고 그칠 일이 아니라 내일도 줘야 합니다.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면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게 되고, 자립할 수 있습니다. 지속적인 지원이 되는 셈입니다. 옛날 아프리카 사람들은 굶주리지는 않았습니다. 아주 가난한 생활이지만 먹을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71%의 아프리카인들이 충분히 먹울 수 없습니다.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가 도와줘야 합니다. 핸드폰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콩고에만 특별한 희토류가 나는데 서방세계에서 뺏어갑니다. 돈은 서방세계가 벌고 있습니다.
- 1962년 직후에 한국은 가난한 상황이었는데 남수단과 비교할 때 어떠한가요? ▲당시 광주살레시오고교에서는 점심시간 도시락을 가져오는 학생이 많지 않았습니다.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이 흔한 지금과는 너무 다릅니다. 그때 학교에서 학생들은 나무를 심으러 보내야 했습니다. 벼도 심고 모내기도 하도록 농번기에는 보내야 했습니다. 쥐잡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한국 사람들이 가난했다 해도 남수단의 가난한 생활과 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아프리카에는 700개의 부족 700개의 부족말이 있습니다. 남수단이 영어로 통일하자고 하지만 상당히 힘든 상황입니다.
- 같은 살레시오회 소속인 이태석 신부와는 어떤 인연입니까? ▲몇 번 만나지 못했지만 같은 수도회 사제로 각별한 사이입니다. 우리들은 이태석 신부의 일을 계속합니다. 이태석 신부도 학교에 관심 많았습니다. 제가 있던 북쪽 수단의 카르툼에서 남수단 톤즈까지 거리는 2500㎞가 넘습니다. 이 신부가 살아 있을 당시에는 전쟁 기간이었습니다. 때문에 직접 왕래할 수 없었습니다. 이태석 신부가 있었던 병원에는 의사 1명, 케냐 수녀 3명, 한국인 자원봉사자들도 와 있어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우리 수도회의 가장 큰 문제는 언어입니다. (주민들과 함께할) 말이 없습니다. 이 신부가 있었던 곳은 링카 부족말을 썼습니다. 불과 100㎞ 인근에 다른 두 부족이 있는데 말이 달라 대화가 안됩니다. 수도회가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직접 대화할 수 없습니다. 남과 북은 20년 동안 같은 나라였기에 아랍말은 조금 합니다. 그러나 북수단은 지금 아랍말을 하려하지 않습니다.
- 수단으로 가게 된 계기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주시지요. ▲케냐에 있던 당시 1989년으로 기억합니다. 공업학교에서 뉴스를 들었습니다. 4만명의 아이들이 전쟁을 피해 수단에서 나와 사막으로 도망쳤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움직였습니다. 까꾸마에 기술학교를 지어 이들을 수용했습니다. 또 1년 반 뒤에 수단 수도로 가서 공 야고보 수사님과 공업학교를 지었습니다. 인근 교도소 수감생들까지 받아 들여 교육했습니다.
- 남수단에 학교를 100개나 새로 설립한다는 얘긴가요? ?원 신부 = 남수단에서는 이미 운영 중인 학교들도 건물이 없는 학교가 많습니다. 그래서 선생님하고 학생들을 위해 건물을 짓는 것입니다. 살레시오 학교만이 아닙니다. 건물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들어오면 저희가 지어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학교 규모는 학생 200명 정도를 수용하는 학교입니다. 우리들이 계획한 학교는 벽도 없고, 교실 4개로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는 학교를 지어주고 그 건물을 정부에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가르치는 내용은 초등학교는 8년 과정으로 영어를 비롯해 수학, 역사, 지리 등 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톨릭 학교를 세우지 않으면 북쪽 이슬람 정부가 남수단에 이슬람 선교를 위해 지을 자세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남쪽에는 자유가 있어 이슬람 학교 설립도 가능합니다. 이슬람 학교 건립은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만 얘기하시는데 지난 업적들에 대해서도 좀 더 소상히 말씀해 주시지요. ▲저는 아무 것도 안했습니다.
- 당시 한국에서 학생들 기억하는 특별한 능력을 보여 줬는데 비결이 있습니까? ▲저는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탈리아에서 돈보스코 학교 다닐 때 학생 특징을 알아 기억하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수단에서 가가르치던 아이 중 하나가 트럼펫을 아주 잘 불었습니다. 제대로 배우려면 8년 정도 걸립니다. 재능 있는 이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 이탈리아에 입국시키려 했지만 이탈리아 정부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 학생을 기억합니다. 주로 이렇게 각각의 사례별로 아이들을 각별하게 기억하게 됩니다.
- 이번 한국 방문에서 표어로 내건 러브 인 액션(Love in action) 어떤 의미입니까? ▲사랑은 행동으로 이뤄져야 한다. 번지레한 말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실천으로 행해야 사랑이라는 얘깁니다.
-하숙생이 애창곡이라는데 ▲가사는 잘 모르고 지금은 대부분 기억하지 못합니다. 멜로디가 좋았습니다. 한국 사람들 만날 때는 ‘사랑해 당신을’ 이라는 노래를 즐겨 부릅니다.
- 제자들에게 한 말씀 주십시오. ▲이번에 많은 사랑을 보여줘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모범적인 사람이 되도록 ‘러브 인 액션’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