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홍성 '작은 금강산, 용봉산(龍鳳山, 381m) 산행 #5
09:41 마애석불
홍성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높이 4m의 암석에 양각으로 된 홍성 신경리 마애석불(洪城新耕里磨崖石佛)은
홍북면 신경리 서편에 있는 용봉산 계곡에 위치한 용봉사에서 북쪽 능선을 따라서 약 50m 지점에 이르면 돌출된 암반에 조각되어 있다.
주변의 지면이 깎여나가서 기단이 없어졌고 주각(柱脚)만이 노출되어 있으며 주간(株間)에 간대(竿臺)가 있고
간대 중앙에는 간주(竿柱)를 받는 직경 약 32cm의 둥근 구멍이 있으며 지주는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로 제작되었다.
마애석불은 감탄사를 연발할 만큼 정교하며, 암면에 불상 윤곽을 따라 감형(龕形)을 이루면서
조각한 입상과 머리는 머리는 소발에 육계가 있고 보안(寶顔)은 풍만한 편으로 이마에는 백호(白毫)자리가 있다.
가는 눈과 미소 지은 입, 어깨까지 길게 내려온 귀가 온화하고 인자한 모습이다.
얼굴에 비하여 하체로 내려갈수록 신체와 선이 약화되어 있으며
수인(手印)은 오른손을 쭉 펴서 다리에 붙이고 왼손은 굽혀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있다.
불상의 배면에 조각한 광배는 전면을 유선형으로 움푹하게 파낸 다음 신광의 가에는 3줄의 음각선을 새겨 두 개의 돌기선을 나타내었고,
두광도 동일한 수법으로 2줄의 원형 돌기선을 조각하였다.
석불의 몸높이 210cm, 머리 높이 56cm, 얼굴 높이 40cm, 어깨 폭 67cm이다.
이 불상은 조각 양식으로 보아 백제 말에 건립된 마애불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하단에는 별석으로 된 연좌대가 있는데 대좌의 옆면은 복엽의 연판을 조각하였고 상면에는 두발을 돌출시켰다.
마애불의 정상부에는 별석의 지붕형 개석이 있는데 전면 저부에 3개의 연화문을 음각하였다.
조식(彫飾)된 연꽃은 끝이 약간 반전된 단판 8엽에 중방(中房)이 있다.
불상 밑의 지형은 한단 낮고 평탄한데 주위에서 고식의 와편들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건물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09:46 묘지
이곳 묘지는 용봉사와 약 30여미터 거리에 있는데 이곳이 예전에 용봉사가 있던 자리하고 한다.
이 묘지는 조선시대 병조참판을 지낸 조희순 이란 분의 묘지인데 평양조씨 후손들이
1906년도에 이 자리에 있던 용봉사를 밀어내고 묘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09:47 용봉사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修德寺)의 말사이다.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현존하는 유물로 볼 때 백제 말기에 창건된 사찰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용봉사에 1690년(숙종 16)에 조성한 괘불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무렵 사찰이 존속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사찰 서편의 조금 높은 곳에 있던 옛 절이 명당임을 안 평양조씨(平壤趙氏)가 절을 폐허화시키고
그 자리에 묘를 썼으며 현존하는 사찰은 1906년에 새로 세운 것이다.
18세기 후반 무렵 폐사되었으나 1980년 무렵에 중창되었고 1982년에는 대웅전을 새로 지었다.
1988년에는 축대를 완성하고, 그 뒤 극락전 · 산신각 등을 지어 오늘에 이른다.
관세음보살상
용봉사 지장전
<지장전 내부>
좌측에는 지장보살이 우측에는 석가모니부처가 영축산에서 설법을 하는 장면을 묘사한 영산회 괘불탱이 있다.
석가모니를 중앙에 배치하고 8대보살, 10대제자 등의 주위를 애워싸고 있다.
석가모니부처는 항마촉지인을 하고 수민단의 연꽃위에 가부좌의 자세로 앉아 있다.
이 그림은 1690년(숙종16)에 승려가 화가 해숙, 한일, 처련, 수탁 등 7명이 그렸다.
1725년(영조1)에 그림을 고쳐 그리면서 적어 놓은 글이 아랫부분에 있다.
목부분을 수리한 약사여래불
용봉사 대웅전
용봉사의 가람배치는 남동향으로 3단의 대지를 조성하고 있는데
최상단에는 60cm정도의 높이로 축대를 쌓고, 3칸의 맞배지붕, 주심포 양식의 대웅전을 마련하였다.
석가모니불이 중앙에 모셔져 있고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이 협시를 하고 있다.
용봉사 산신각
용봉사 영산회 괘불탱은 영산회상도로서 제작년도가 분명하고 기법도 뛰어나 199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09:57 부도
09:59 용봉사 마애불
용봉산 일대에 남아있는 마애불 중에서 가장 오래된 작품 '용봉사 마애불'이다.
불상의 왼쪽에는 명문 기록이 31자 남아있는데, 이를 통해 불상의 축조 연대가 신라 소성왕 1년(799)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일주문 위 큰 바위에 부처님을 새긴 마애불은 볼이 두툼하고 토속적인 상호인데 웃는 모습이 자비롭게 느껴진다.
중생들의 불안과 두려움을 없애 주는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하고 있다.
용봉산에는 마애불이 세 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