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생성 원인: 약 10만 년 전에서 3만 년 전 사이, 거문오름에서 용암이 분출해 흘러내려 가던 중 내부에 있던 가스가 위쪽으로 빠져나가거나 용암 표면이 굳은 후 내부 용암이 밑으로 빠져나가면서 생긴 빈 공간(용암정)으로 추정됩니다.
특징: 과거 동네 주민들은 이 굴 아래에 얼음이 맺힌다고 해서 '얼음굴'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동굴 내부에는 독특한 동굴 생물들과 박쥐들이 서식하고 있어 생태학적으로도 보존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Gemini)
[역사 유적]
분화구 내부에서 확인되는 갱도진지는 모두 6곳으로 알오름 사면을 뚫고 만들어져 있다. 길이는 각각 15m 내외의 직선형 구조를 보여준다. 갱도진지 폭은 140cm, 높이는 200cm 내외로, 10여m 안팎의 거리를 두고 나란히 뚫려 있다.
갱도 바닥의 떨어진 돌 틈에서는 철제 꺾쇠 10여개가 확인됐다. 꺾쇠는 당시 갱도내부에서 갱목들을 고정시키거나 연결시키는 데 사용됐던 것들이다. 나무에 그대로 박혀있는 모습도 볼 수 있어 1945년 당시의 갱도진지 구축상황을 엿볼 수 있다. 갱도진지 앞에는 많은 석축이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분화구내 갱도는 일본군의 군수물자 등을 저장하기 위한 용도 등으로 추정된다. 오름 분화구에는 병참도로 흔적도 볼 수 있어 이를 뒷받침해준다. 일본군 대부분 병력의 주둔지는 오름 외부의 널따른 개활지다.
거문오름에서는 분화구 내부뿐 아니라 오름 능선에서도 갱도진지가 확인된다. 분화구 안쪽 사면 8부 능선지점에 있다. 길이가 각각 60여m에 이르는 갱도 2곳이 있다. 거문오름 갱도진지 가운데는 가장 긴 것이다. 폭과 높이는 각각 80cm, 1백70cm 정도 된다. 한 사람이 걸어다니기에도 공간이 좁다. 이곳의 갱도는 분화구 내부의 것과는 달리 스코리아(scoria)층을 뚫은 형태다. 갱도진지 2곳은 내부에 별다른 공간을 만들어놓지 않았다. 이는 상시 병력주둔용이 아님을 보여준다. 또한 정상부를 향해 뚫려 있으나 관통된 상태는 아니다. 하지만 갱도 내부에는 정상부와 관통하려고 시도한 흔적을 볼 수 있다. 정상부에는 수직굴 흔적이 남아있다. 이로 미뤄보면 정상부와 연계한 통로로 생각할 수 있다. 갱도진지 입구에서는 구좌 지역 오름군이 한눈에 보이고, 멀리 성산일출봉과 서우봉까지 조망할 수 있는 입지조건을 지닌 곳이다.
이곳에는 일본군 108여단이 주둔했었다고 한다. 제주주둔 일본군 최고지휘부는 제58군이다. 58군은 그 예하에 96사단, 111사단, 121사단과 108여단 등 3개 사단 1개 여단으로 편성됐다. 일제가 거문오름에 진지를 구축한 것은 1945년 4월이다. 패전을 코앞에 둔 전쟁 막바지로 일제는 제주도를 최후 방어선으로 삼고 만주 관동군까지 7만5000여 병력을 집결시켰다. 결7호작전에 따라 연합군의 제주 상륙작전에 대비한 것이었다.
'결7호작전' 당시를 보여주는 '제58군배비개견도 제주도'에는 거문오름 일대가 스이(翠)부대라 불린 108여단(주둔 병력 6000명) 사령부로 표시돼 있다. 당시 섬 동부를 담당한 108여단은 유격전에 대비한 부대였다. 여단장은 히라오카 츠토무(平岡 力) 소장으로 1945년 4월 16~17일 사이 제주에 들어왔다.
이러한 사실은 일본군의 또다른 군사지도인 '제주도병력기초배비요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지도에는 제주 동부지역의 유격진지대로 표시돼 있다. 제주 동부지역은 오름군이 가장 밀집된 곳이다. 또한 연합군의 유력한 상륙예상지점인 제주서남부와 대칭되는 지점이다. 후방에서 유격전을 벌이기에 좋은 입지조건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거문오름 일대와 분화구 내부는 외부의 관측이나 직사화기, 또는 공중폭격으로부터도 완벽히 엄폐, 은폐되는 천혜의 주변여건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정학적 여건이 결국은 일본군이 거문오름 일대를 주목하게 한 요인이 아닌가 여겨진다.
하지만 108여단이 제주 도착부터 동부지역에 배치된 것은 아니다. 이들은 도착 즉시 서귀포 남원 표선 성산 일대에 배치되었다. 이어 1945년 6월 중순이 되면 제주 동부지역으로 이동 배치된다. 조천읍 함덕을 경계로 구좌 성산 표선 남원일대가 해당된다. 108여단 일부 병력은 태평양전쟁이 일본군의 패전으로 치달을 무렵인 1045년 7월 말쯤에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 부근으로 이동, 서부지역에서의 결전에 대비했다.
분화구 안은 물론 밖에도 당시 판 갱도와 진지, 주둔지가 곳곳에 남아 있다. 일본군 대부분 병력의 주둔지는 오름 동쪽 외부의 넓은 개활지였다.(한라일보 080515)
오름 남동쪽의 병참도로는 병력주둔지인 오름 외부에서 내부의 갱도진지 등으로 군수물자를 운반하기 위해서 만든 길이다. 한 사람이 걸어갈 정도의 너비이다. 지금은 생태탐방로로 이용되고 있다.
[현황]
거문오름은 2005년1월6일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제444호로 지정되었고,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는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성산일출봉과 함께 2007년 국내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거문오름은 자연생태계가 잘 보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의 군사시설물과 숯가마터도 남아있는 등 다양한 역사 및 문화자원을 갖추고 있다. 제주 국제공항으로부터 자동차로 30분, 제주 도심으로부터는 20분 거리에 있어 관광객들의 접근성도 매우 유리하다.
2008년에는 세계자연유산 등재 1주년을 기념하여 ‘거문오름 국제트레킹 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세계자연유산 관리본부는 거문오름 트레킹 코스의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2008년 9월 1일부터 전면적인 사전예약제를 도입하고 있고 탐방시간도 출발시간 기준으로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만 가능하다. 그리고 매주 화요일은 자연휴식의 날로 정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다음백과사전)
《작성 141231, 보완 26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