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교통에서 버스는 매우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원래 광역교통같은 장거리 대량 수송은 급행전철로 하는 게 맞지만, 수도권 광역철도는 노선 수나 길이, 속도가 선진국에 비해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버스는 수송력이 적으며 정시성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경기도에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 하는 일은 매우 힘든 일이 되었다.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나의 해방일지> 드라마에서도 수도권 통근자들의 비애를 묘사했을 정도다.
이에 따라 서울시에서는 수도권 시민의 어려운 출근을 돕기 위해서 신개념의 버스 노선을 개통하기로 하였다. 이것이 바로 8월 21일 개통된 ‘서울동행버스’다.
서울동행버스는 총 2개 노선으로 화성시 동탄신도시에서 강남역으로 오는 광역버스가 서울01번, 김포시 풍무지구에서 김포공항역으로 오는 일반버스가 서울02번이다. 모두 평일 출근시간에만 운행된다. 요금은 기존 체계와 동일(광역 3000원, 일반 1500원)하며, 요즘 추세대로 교통카드만 받는 현금 없는 버스로 운영된다. ☞ [관련 기사] 동탄→강남, 김포→김포공항…'서울동행버스'로 출근하세요!
서울01번 동행버스 종합노선도 ©서울시
그런데 사실 경기도와 서울을 잇는 버스는 지금도 있다. 강남역과 사당역에 가보면, 수도 없이 많은 경기도행 버스를 볼 수 있다. 오죽하면 과거 지방선거 때 경기도지사 후보가 서울의 강남역에서 유세를 했을 정도였다.
물론 이들 버스들은 경기도 소속(경기도 번호판)이 많기는 하다. 하지만 서울시 소속 버스들도 경기도행이 없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9401번 광역버스(초기 번호 45-2번)는 1991년 성남의 분당 신도시 입주와 동시에 개통된 유서 깊은 노선이다. 또한 일반버스 중에 773번은 서울에서 고양시를 거쳐 파주시까지 가는 초장거리 노선이다. 즉 노선 수는 적어도 중량감 측면에서는 서울 소속 버스들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새로 생긴 경기도행 서울버스인 서울동행버스는 기존 버스들과 어떻게 다른 것일까? 이를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알아보자.
서울동행버스 서울01번 (화성 동탄~서울 강남) ©서울시
서울동행버스 서울02번 (김포 풍무~김포공항역) ©서울시
수도권 주민은 서울시민이라는 마음으로…'포용성'
첫째는 포용성이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이후 자기 지자체를 우선으로 하는 정책 방향이 자리 잡았다. 이는 꼭 나쁜 것은 아니고, 지방자치제도의 원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서울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수도권 주민은 서울시민’이라는 발전된 개념을 세웠다.
사실 현재 서울시의 인구는 꾸준히 감소중이고, 반대로 경기도와 인천의 인구는 계속 늘고 있다. 이는 서울의 높은 집값과 부족한 주택 때문에 서울 인구가 수도권으로 밀려나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즉 경기도나 인천 주민도 원래는 서울시민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한 수도권 주민이 서울에 와서 경제 활동을 하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3대 생산요소는 토지, 자본, 노동이다. 여기서 토지와 자본은 서울시 안에 있다고 해도, 노동이 수도권에서 서울로 출근한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면, 이들이 서울시 경제에 기여하는 바는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들 유동인구가 소비를 하면서 서울시내 자영업자의 매출을 올려주고 있다. 또한 수도권 주민이 서울에 위치한 기업에서 일하고, 그 기업은 서울시에 법인지방소득세를 납부한다.
이를 종합해볼 때 단순히 주소지로 서울시민이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것보다는, ‘서울 경제권’에 포함된 모든 시민을 광의의 서울시민으로 보고 교통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훨씬 포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서울동행버스 경유지 안내도 ©서울시
기존 버스의 한계를 벗어난 '유연성'
둘째는 유연성이다. 지하철과 달리 버스는 이미 존재하는 도로에서 차량만 운행하는 것이므로, 선로부터 새로 깔아야 하는 지하철에 비해 훨씬 유연하게 노선을 설정하고 쉽게 바꿀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버스노선을 바꾸는 것은 의외로 쉽지 않았다.
이는 버스운수업의 노동집약적 특성에 기인한 것이다. 그동안 기술이 발달하면서 안내양이 처리하던 요금징수, 출입문취급, 안내방송 등은 상당 부분 기계화되었으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운전만큼은 자동화가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버스차량은 지하철에 비해 차량당 수송인원이 턱없이 낮은 관계로 대용량 수송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승무원이 필요하다.
이같이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는 산업인 데다가 우리나라 특유의 경직된 노동시장 구조가 겹치면서, 수요에 따라 빠르게 버스노선을 조절하면서 기민하게 대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서울시가 내놓은 동행버스는 과거의 경직된 부분을 상당 부분 개선하여 유연성 있는 노선으로 운영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구체적으로는▴ 노선의 기계적 배분이 아니라 광역버스를 원하는 주민들이 많은 곳에 집중하는 유연한 노선 설계, ▴ 노선을 한번 만들면 없애지 못하는 경직된 모습이 아니라 버스가 필요한 곳은 어디든 찾아가면서 운행하는 유연한 공간 선정,▴ 버스가 꼭 필요한 때인 평일 출근시간에만 집중적으로 운행하는 유연한 시간 선정 등이 서울동행버스의 특징이다. 이 같은 서울동행버스의 유연한 운영은, 빠르게 변화하는 지역사정에 맞게 순발력 있게 노선 조정을 하고 최적의 수송력을 공급하는 새로운 버스정책에 대한 좋은 본보기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02번의 김포시내 구간 노선도 ©서울시
기존 버스와는 다른 운행 시도 '파격성'
마지막으로 서울동행버스의 특징은 파격성이다. 기존의 버스노선들은 과거부터 그렇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민원이 두렵거나 번거롭다는 이유로 예전의 방식을 답습하는 경우가 많았다. 안 그래도 지자체의 대중교통 분야는 민원의 양과 강도(强度)가 극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때문에 담당 공무원이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존에 무슨 불편이 있다고 하더라도 민원이 두려워서 새로운 시도를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버스 정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에 시작된 서울동행버스는 기존에 없던 신개념의 노선인 만큼, 서울에서 파격적인 여러 시도를 한 것이 눈에 띈다.
일단 정차 정류장을 최소화시켜 급행으로 운행하는 것이 가장 주목된다. 실제로 서울01번은 화성시에서 3곳, 서울02번은 김포시에서 4곳에만 정차한다.
현재 신도시 지역으로 가는 버스들은 서울과 신도시를 잇는 간선도로에서는 무정차로 운행하지만, 정작 신도시 내부에서 수많은 정류장에 모두 정차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면 총 운행시간이 길어지면서 버스의 회전율이 떨어지게 되며, 짧은 배차시간을 유지하려면 더 많은 버스차량과 승무원을 투입해야 하므로 운행원가가 높아진다. 그렇다고 무작정 차량을 늘리자니 수요가 줄어드는 낮에 낭비가 되기 때문에 늘릴 수가 없고, 결국 출퇴근 시간대에 높은 혼잡이 유발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버스 자체를 급행화시켜서 운행시간을 줄이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실제로 기존 버스들은 민원에 대한 걱정과 ‘정류장이 많아야 승객도 많아진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비효율적인 신도시 내 완행운행을 고집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동행버스는 신도시 내에서 과감히 급행으로 운행하면서 회전율 증가, 원가 절감, 차내 혼잡도 감소를 꾀하고 있으며, 이렇게 향상된 버스의 경쟁력으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선순환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파격성은 기존 버스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도전으로 매우 높이 평가할 수 있다.
기존 광역버스 노선(파란점선)과 달리 서울01번은 혼잡구간을 피해 양재IC에서 반시계방향(적색점선)으로 운행한다. ©서울시
이런 파격적인 모습은 서울 시내에서도 볼 수 있다. 현재 서울의 강남역은 경기도 남부 광역버스의 최대 집결지인데, 이는 바로 옆에 경부고속도로가 있고, 반포IC, 양재IC등의 진출입로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존 광역버스들은 대부분 반포IC까지 올라왔다가 신논현역-강남역-양재역 순서로 내려간 후 양재IC에서 다시 고속도로로 들어가는 시계방향 순환을 하고 있다. 이는 사람들이 강남역을 선호하기 때문에 바쁜 출근시간에 강남역에 먼저 내려주기 위한 노선 구성이기는 하다. 또한 우측통행을 하는 우리나라 교통에서는 우회전보다 좌회전이 어렵기 때문에, 좌회전을 줄이기 위함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버스들이 이렇게 똑같이 생각하다 보니, 강남대로 중앙버스전용차로의 남쪽 방향은 언제나 극심한 혼잡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버스 차량들이 길게 연결되어 마치 지하철처럼 보인다는 의미로 ‘버스철(Bus鐵)’이라고 불릴 정도다. 모든 교통시설은 그 용량이 있는데 강남대로 중앙버스전용차로 남쪽 방향은 용량을 초과한지 오래다. 이러면 ‘소화불량’이 걸릴 수밖에 없고 교통시설이 제 역할을 못하게 된다. 도로의 경우 속도가 떨어지고 이에 따라 수송력도 낮아지게 된다.
그래서 이번 서울동행버스는 시내구간에서도 또 한 번의 파격성을 발휘하여, 양재IC에서 먼저 나와, 강남대로 중앙버스전용차로를 북쪽으로 타고 올라간 후, 반포IC를 통해 고속도로로 되돌아가는 반시계방향 회전을 하기로 하였다. 이를 통해 기존 혼잡구간을 피할 수 있으며, 중앙버스전용차로의 용량을 좀 더 균형적으로 쓰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버스철(Bus鐵)’이라 불릴 만큼 수도권남부 버스가 길게 집결해 있는 강남역 ©강남구청
이번에 서울동행버스가 새로 운행된다고 하자,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첫째는 왜 서울시민의 세금을 경기도에 쓰느냐는 반응이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대로 경기도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경제 효과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모든 일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하는 것이므로, 편리한 교통을 통해 우수한 인적 자원을 서울 안으로 끌어오는 것이야말로 서울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또한 서울과 경기도를 잇는 편리한 버스가 운행된다면 일부일지라도 서울로 들어오는 자가용의 숫자를 줄일 수 있어서, 서울시내 교통혼잡과 대기오염 완화에 도움이 된다. 이 모두를 돈으로 환산해본다면 동행버스 운행이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닐 수 있다.
또 다른 목소리는 지금 서울 안에도 버스가 없거나 부족한 곳이 많은데, 다른 지역에 노선을 새로 만들어주는 건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일리가 있긴 하지만, 둘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이지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다. 약자를 포용하고 함께 동행하고자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서울동행버스를 통해 ‘약자와 동행하는 상생도시’라는 서울시의 비전을 모든 시민들이 함께 나누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수도권 교통망과 도시구조 지도 ©국토지리정보원
과거 수도권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먼저 내세우며 다양한 분야에서 지자체들이 서로 다투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자기 지자체를 위해서라지만 막상 지켜보는 시민의 마음도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상대방 지역 주민도 크게 보면 내 지역 주민이라는 포용의 자세를 기반으로, 기존 정책의 한계를 극복하는 유연성과 파격성을 갖춘 ‘서울동행버스’라는 정책이 등장하는 것을 보니, 앞으로 우리의 지방자치와 광역교통이 더욱 발전하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