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9일(목)
* 시작 기도
주님...
주께서 지으신 피조물이 피조물의 낮은 자리에 있는 것이 거룩이오나 하나님의 자리로 높아지려는 휘브리스 곧 교만의 자리를 넘보나이다.
내 안에 끓어오르는 탐욕을 비롯한 옛 사람의 증상들을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이 종을 불쌍히 여기서 긍휼을 베풀어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서 주님과 한 몸으로 연합하게 하시고 주님 한 분만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주의 것 되게 하소서.
이 하루도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살기 원합니다.
그로 인하여 거룩한 불구자로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삼상 20:24-34
제목 : 세상 나라에 속한 사울과 하나님 나라에 속한 다윗, 그리고 나는...
24 다윗이 들에 숨으니라. 초하루가 되매 왕이 앉아 음식을 먹을 때에
25 왕은 평시와 같이 벽 곁 자기 자리에 앉아 있고 요나단은 서 있고 아브넬은 사울 곁에 앉아 있고 다윗의 자리는 비었더라.
26 그러나 그 날에는 사울이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생각하기를 그에게 무슨 사고가 있어서 부정한가보다 정녕히 부정한가보다 하였음이더니
27 이튿날 곧 그 달의 둘째 날에도 다윗의 자리가 여전히 비었으므로 사울이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 묻되 이새의 아들이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 식사에 나오지 아니하느냐 하니
28 요나단이 사울에게 대답하되 다윗이 내게 베들레헴으로 가기를 간청하여
29 이르되 원하건대 나에게 가게 하라. 우리 가족이 그 성읍에서 제사할 일이 있으므로 나의 형이 내게 오기를 명령하였으니 내가 네게 사랑을 받거든 내가 가서 내 형들을 보게 하라 하였으므로 그가 왕의 식사 자리에 오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
30 사울이 요나단에게 화를 내며 그에게 이르되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 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
31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사람을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 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이니라 한지라.
32 요나단이 그의 아버지 사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그가 죽을 일이 무엇이니이까?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33 사울이 요나단에게 단창을 던져 죽이려 한지라. 요나단이 그의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한 줄 알고
34 심히 노하여 식탁에서 떠나고 그 달의 둘째 날에는 먹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아버지가 다윗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다윗을 위하여 슬퍼함이었더라.
* 나의 묵상
다윗과 요나단은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의 의도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초하루가 되면 왕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관례이다.
그 초하루가 되었을 때 다윗은 들에 숨고 왕은 벽 곁에 있는 자기의 자리에 앉고 요나단은 서 있고 아브넬은 사울 곁에 앉았으나 다윗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하지만 사울은 그 날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는 다윗에게 무슨 부정한 일이 있기 때문에 나오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부정한 일이란 레위기 15:16-18절의 정결규례에 따르면 성적인 관계나 몽정을 한 사람은 하루 동안 불결한 상태에 있다.
그런 사람은 물로 몸을 씻고 옷을 빨며 그 날 저녁까지 공동체와 그 생활에서 제외된다.
따라서 어떤 이스라엘 사람이 어느 날 하루 종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튿날에도 다윗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사울이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
요나단은 다윗과 약속한 대로 사울에게 말한다.
곧 자신의 허락 하에 다윗이 베들레헴의 가족이 드리는 매년제에 참석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울은 요나단에게 버럭 화를 내면서 이렇게 소리 지른다.
“이 창녀의 자식아, 네 놈이 이새의 아들과 한 패라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 그 일은 후에 너와 너를 낳은 네 어미의 음부를 수치스럽게 할 것이다.”
그는 이어서 말하기를 다윗이 살아 있는 한, 요나단도 그의 나라도 존속하지 못할 것이라면서 흥분한다.
여기서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는 이유를 밝힌다.
성공에 성공을 거두는 다윗은 사울이 자기 왕국을 요나단에게 물려주는 데 있어서 걸림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사람을 보내서 다윗을 데려오게 한다.
그리고 그는 죽어야 할 자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에게 이에 대하여 항변한다.
도대체 다윗이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가 죽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 때 사울은 요나단을 향해 단창을 던졌다.
이것을 본 요나단은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한 것을 확신한다.
그래서 요나단도 화를 내며 일어섰고 그 날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이는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려 하며 모욕한 것에 대하여 심히 슬퍼하였기 때문이다.
사울은 다윗만 아니라 자신의 왕위를 이어야 할 아들인 요나단에게까지 단창을 던지는 광기를 부린다.
그것은 자기의 왕국을 아들이 이어받아서 지속시켜야 하는데 그 자식은 왕의 자리에 대한 욕심은 없고 오히려 정적인 다윗의 친구가 되어 그를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의 광기는 오직 하나님이 택하신 다윗을 죽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그런 현상적인 것을 넘어서 실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패역 그 자체이다.
사울이 요나단을 향하여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이라고 하였지만 정작 패역한 자는 사울인 것이다.
다윗이 이룰 왕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워질 하나님 나라를 예표한다.
하나님 나라의 약속은 창세전에 이미 주어졌지만 세상 나라와 늘 갈등하며 대치한다.
특히 아담이 죄를 지어 불순종함으로써 모든 사람은 사탄의 권세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죄의 세력에 사로잡힌바 되어 종노릇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성취하신다.
구약의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약속을 존속해 오시고 마침내 아들을 보내셨다.
하지만 그 하나님의 아들은 세상 나라에 속하지 않으신다.
그 이유 때문에 세상에 속한 자들로 인하여 늘 죽음의 위협을 받는다.
(요 8: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요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나는 주님이 속한 나라와 달리 이 세상에 속하여 살아온 자이다.
내 안에는 아담 안에 있는 본성으로 가득하다.
그 죄의 본성이 나를 이 세상에 속한 죄인으로 살게 하였다.
그런 나는 다윗을 죽이고자 하는 사울에게 있는 그 악함과 부정이 넘쳐난다.
이것이 나의 실상이다.
사람들이 볼 때는 제법 괜찮은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나 내가 알고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
그런 나는 마땅히 지옥의 아랫목에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할 자임을 고백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속한 사울을 버리고 다윗을 택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표상으로 세우신다.
그 나라가 바로 우리가 세워야 할 나라인 것을 잘 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나라 역시 모형과 그림자일 뿐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그 나라도 여전히 세상 나라이다.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지구상에 있는 이스라엘 곧 유대인들은 다윗이 세웠던 그 나라를 세워줄 메시야를 기다리는 것이다.
예수님은 세상 나라에 속한 자들의 손에 넘겨지고 그들에 의해 십자가에 죽으셨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그를 믿는 자에게 죄사함과 영생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다.
그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으며 하나님과 교제와 사귐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누린다.
하지만 이들은 다윗과 같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세상에서 끊임없는 고난을 당한다.
그것이 이 세상의 역사를 살아가는 믿는 자 곧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삶의 현실이다.
우리는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지만 꿈과 같은 인생이다.
꿈을 꾸면 그 꿈이 지속되지 않고 금세 깨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 역시 영원히 지속되지 않고 잠시 후면 그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 세상에서의 인생을 꿈과 같고 안개와 같다고 표현한다.
나는 오늘도 주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살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나의 육적인 소욕은 나로 하여금 인생을 즐기라고 재촉한다.
짧은 인생 즐기면서 살라고 말이다.
내 안에 있는 소욕과 정욕도 인생이 짧은 것은 아는가 보다.
하지만 나는 나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
나를 미혹하는 그 유혹의 손짓을 과감히 뿌리치고 나의 생명 되신 주님께 나를 내어 드린다.
그리고 나는 할 수 없으니 주님께서 나를 책임져 달라고 의탁한다.
내 안에 꿈틀거리는 사울의 탐욕, 아담 안에 있는 죄의 본성을 내려놓으면서...
* 묵상 후 기도
주님...
내 안에 나도 어찌할 수 없는 이런 육신의 소욕을 어찌합니까?
나를 불쌍히 여기사 죄의 소욕들을 끊어 주옵소서.
나는 죽기에 합당한 자임을 압니다.
하오니 나를 주의 공의로 심판하여 그 무덤의 자리로 이끄소서.
나의 영이 살 수 있는 곳은 우리 주님이 함께 하시는 그 생명의 자리입니다.
나를 구하여 건져 주소서.
세상의 욕심만 탐하는 내 안에 사울과 아담을 못 박사오니 나를 생명의 자리로 이끄소서.
날 구원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