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1:35에서 말하는 "더 좋은 부활"의 의미는
육신적 소생을 부활로 받았던 사건들을 바탕으로 하는 말로써
그 육신적 부활도 좋은 것이나
그 보다 더 좋은 영원하고 신령한 부활이 있다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것을 "첫째 부활"이라고 하였는데,
어떻게 이 "더 좋은 부활"이 "의인의 둘째 부활"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의인의 둘째 부활"이라는 사실 자체도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사 혹자들의 주장대로 "의인의 둘째 부활"이 있다고 한다면,
이 "둘째 부활"은 "첫째 부활"보다 못한 부활이라는 말이 되는데,
첫째 부활 보다 더 좋은 둘째 부활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라서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히11:35에서 말하는 <더 좋은 부활>이라고 하는 것은
육신적 소생도 죽음에서 생명을 얻어 일어나는 것이니 넓은 의미의 부활인 것이고,
이 부활도 좋은 것이지만
이것이 첫째 부활이라고 하는 신령한 부활보다 못하다는 뜻입니다.
성경에는 육신의 소생에 대한 여러 기록을 다음과 같이 제공하고 있습니다.
① 사르밧 과부의 아들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그 몸으로 돌아와서 살아난지라(왕상 17:22)."
② 수넴 여인의 아들
"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번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왕하4:35)."
③ 엘리사의 뼈에 닿아 살아난 사람들
"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적당을 보고 그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 섰더라(왕하13:21)."
④ 회당장 야이로의 딸
"무리를 내어 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마9:25)."
⑤ 나인 성 과부의 아들
"죽었던 자가 일어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미에게 주신대(눅7:15)."
⑥ 베다니 마리아 오빠 나사로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요11:44.)."
⑦ 다비다(도르가)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행9:40)."
⑧ 유두고
"사람들이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더라(행20:12)."
⑨ 예수님 죽으실 때 근처 무덤들이 열리며 살아난 자들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마27:52)."
위 사건들은 모두 육체적 죽음을 맞이 했다가 다시 생명을 회복한 사례들로
이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부활이라고 인정을 했고,
예수님의 부활과 같이 영원히 죽지않을 신령한 부활은
이 육신적 소생보다 비교할 수 없이 좋은 부활이라는 의미로
"더 좋은 부활"이라고 한 것입니다.
더 좋은 부활을 의인의 둘째 부활이라고 하는 것은
첫째 부활이 더 못하다는 논리적 모순이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어법에 맞지 않을 뿐더러
그렇게 말씀하실 하나님도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의인의 둘째 부활이라는 말은 억지로 만들어 낸 마귀 똥임이 증명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