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가족이 가끔 TV를 볼 때 아주 즐겨보는 '생활의 달인'은 언제나 재미있다. 미국에 있는 딸아이도 가끔 한국 생각이 나면 '달인'이 보고 싶다고 남편의 sbs 아이디를 가르쳐 달라고 해서 사위와 함께 즐기고 싶어한다. 그만큼 한 분야에서 달인이 되기까지의 길고 험난한 시간들을 짐작하게 하며 부단한 노력은 어떤 분야에서든 우리를 달인의 경지까지 이르게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지난 여름 모처럼 귀국한 딸아이는 남대문 시장의 '달인호떡'이 먹고 싶다고 해서 물어 물어 비지땀을 흘려가며 찾아갔다. 딸은 그 호떡이 맛있다고 탄성을 질렀지만 나는 솔직히 그냥 그랬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대치가 너무 높았었나 보다 싶은 마음이었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우리집과 가까운 곳에 짬뽕달인이 있음을 알아 낸 후 가족들과 그곳을 찾았었는데 가는 길이 너무 복잡하고 힘겨웠다. 짧은 거리를 시골길 같은 길로 차를 몰아갔지만 길은 온통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고 달인의 중국집은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겨우 예약을 하려니 한시간도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매스컴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달인의 집이라는 현수막도 걸려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잔치집을 찾은 듯 기대에 빛나는 눈빛으로 짜장면과 짬뽕을 기다리는 듯 했다. 그 와중에 주차문제로 시비가 붙어 마당이 떠나가도록 고함을 지르며 싸우는 두 아저씨를 보며 우리는 차를 돌려 나왔다. 후일을 기약하며....
그래서 오늘 저녁 큰 맘 먹고 그곳을 다시 찾았다. 비교적 한가해서 오늘은 제대로 된 음식맛을 음미하리라는 기대를 안고..... 유림기와 국물이 맑은 짬뽕, 그리고 붉은 짬뽕을 시켰다.

샐러드는 많지 않게 적당량이 나왔는데 야채를 좋아하는 내게 그건 기분좋은 맛이었다. 생수처럼 보이는 소스가 기름지지도 않고 시지도 않아서 상큼한 야채맛을 잘 살려준 샐러드는 좋았다. 소스에 뭐가 들었을까 잠시 생각해 봤지만 눈치 채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유림기가 나왔다. 적당하게 배가 고프던 차에 나온 그것은 먹기가 괜찮았다.


따끈한 음식을 기대했었는데 별 온기가 없어서 왠지 허전하고 약간 추운 기분도 들었지만 그것 빼고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리고 기대하고 고대하던 짬뽕이 나왔다.

커다란 그릇에 전복이 통째로 나오고 또 대하는 아니지만 중하 정도 되는 새우도 두마리가 있었다. 사실, 나는 전복을 크게 좋아하진 않는다.
예전에 전복이 귀하던 시절에는 산삼에 비유되기도 했지만
요즘은 양식 전복이 대부분인 듯 해서 예전에 비해 귀한 대접을 덜 받는 것 같다. 언젠가 정서진 바닷가에서 먹었던 그 전복맛은 신화적인 맛이었지만
왠만해서는 비릿한 냄새가 나는듯 해서 대체로 썩 당겨하진 않는다. 전복죽은 정말 좋아하지만... 근데, 그 통전복은 먹기가 힘이 들었다. 껍질에서 잘 벗겨지지도 않았으며 손으로 잡고 먹기에도 왠지 국물이 튀길것 같아 조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겨우 분리해서 먹어보니 겉부분만 익힌 듯한데 속에서는 비릿한 냄새가 올라왔다. 이런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던데 나는 힘겨웠다. 대충 삼키듯 먹고 관자랑 야채를 건져 먹었다. 오징어는 알맞게 잘 익어서 맛나게 먹었지만 그릇 아래 부분의 면은 이미 많이 불어있었다.
결국 반 정도만 먹고 남겼다.
식구들 그릇도 반 정도가 남아있다.
별미를 찾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 동네 짬뽕이 더 나을뻔 했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남편이랑 아들의 눈치를 보니 별 말이 없다.

우리 아들 녀석은 자기 입맛에 맞으면 '맛있다'는 말을 참 잘 하는 편인데.... 어영부영 식사를 마치기도 전에 마탕이 나오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옥수구 빠스이다. 튀긴지가 오래 된 듯 눅눅하고 입안에 오래 머금고 있기가 부담스럽다. 하나씩 먹을 수 있게 3개가 나왔는데 아들녀석과 남편도 한 입 베어물다 그대로 두고 있었다.
왠지 내가 민망하다.

검색을 했을 때는 매생이스프도 나온다고 했지만 구경도 못했다. 왠지 대단히 성의없는 음식상을 받고 돌아서는 기분이다. 딸아이가 명동에 있는 달인의 도삭면을 먹고 와서는 감동하던데 나는 실패했다.
한가지 좋았던 것은 하얀 티팟에 담긴 중국차였다. 따끈하고 찻잔도 큼직해서 참 좋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도 실컷 마시고 올걸...

돌아서니 속이 약간 허전하다. 차 안에서 식구들에게 물어본다. 솔직히 맛이 어땠느냐고? 아들도 남편도 다 좋았는데 왠지 맛 있다는 느낌이 별로 없다고 한다. 모든 재료가 각각의 맛만 난 것 같고, 한데 어우러져 진국으로 깊어진 맛을 못 보았다고.... 결론은 아마도 우리집 식구들의 입맛이 수준미달인가 보다 하고 웃었다.
먹는 음식에 대해 대단히 솔깃한 나는 식당에서 돌아설 때 정말 잘 먹었다는 느낌이 들면 항상 현금으로 식사비용을 지불한다. 만족스럽지 못할 때는 크레딧 카드를 사용하며 정말 잘 먹고 행복한 기분이 들 때는 어이없지만 기꺼이 팁도 낸다. 우리동네 아구찜집이나 또 우리동네 막걸리 파전집에서는 예외없이 팁을 낸다. 그리고 고맙다는 인사도 꼭 하고 나온다.
그럴때는 항상 돌아서는 순간 '참 잘 먹었다. 행복하다'는 느낌이 온다.

식사를 마치고 민망한 마음에 아들과 남편에게 모르는 척 시치미 떼고 물었다.
담에 또 오고 싶은 사람은 크게 손을 들고 하늘을 보라고 하니
둘 다 고개를 떨어뜨리고 땅만 바라보는 시늉을 한다.
아쉽다.
오늘은 우리들의 수준 낮은 입맛 탓으로 즐거운 시간이 못 되어 약간 아쉽다. 다들 칭찬 일색인 글만 올라오는 달인의 짬뽕이 혹여 내 솔직한 글로 인해 서운해 할까 걱정도 된다. 그러나 식성이 때로는 나같은 사람도 있으니 조금 더 따뜻하고 배려가 깃든 느낌이 나는 음식으로 그곳까지 찾아 간 분들에게 한 번만 더 마음 써 주었으면 싶다.
11시가 넘으니 약간 허전하다. 요구르트 하나 마시면서 허기진 배를 달래야겠다. |
첫댓글 그림만 보면 맛있어 보이는데..... ^^*
ㅋㅋㅋ 박사님과 아드님의 모습이 솔직하십니다.
액면은 참 굿이고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