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왜곡에 작지만 큰 외침,
발해역사관
강원도 속초시 노학동 736-1 (속초시립박물관 內) / 033-639-2972~5
우리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당나라 짱깨들은 저희들의 땅인냥 포장하고 있지요.
동북공정에 이은 발해사까지도
저들의 역사인냥 왜곡하고 있습니다.
작은 규모이지만, 분명한 외침이 있는 곳,
발해역사관입니다.

1979년, 길림성의 용두산에서 어느 한 학생이 소에게 풀을 뜯게 하려 들판으로 나갑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벽돌로 쌓은 탑을 보고 연변박물관에 신고를 하였고 박물관에서는 바로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벽돌탑을 조사하던 조사팀은 탑의 아래에 무덤이 있는 것을 확인 하였으니 이는 불교를 상징하는 탑의 아래에 무덤을 조성하는 방식은 발해사람들의 풍습이었음을 짐작하였고 발국조사에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무덤은 오늘날 발해 문화의 상당한 면모를 알려주는 계기가 되는 무덤으로 발해3대 문왕의 넷째딸이자 대조영의 증손녀 정효공주의 묘였습니다.
무덤의 입구는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도록 설계 되었으며, 관을 두는 널길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널길의 양쪽 벽면에는 무사들의 벽화가 그려져 있었지요. 널길을 지나면 관을 놓아두는곳, 즉 널방이 나옵니다. 널방의 사방에도 벽화가 그려져 있으나 널길의 벽화와는 달리 악사와 시녀들이 그려져 있는 점이 다르지요.
발해역사의 귀중한 자료인 정효공주의 묘는 그렇게 세상과 만나게 됩니다.
TV드라마 '대조영'으로 더 많이 알려진 발해사,
다음백과에는 <698~926년의 220여 년 간 만주와 한반도 북부지역을 무대로 번영했던 나라.
발해라는 이름은 713년 당(唐)이 건국자인 대조영 (大祚榮)을 발해군왕(渤海郡王)으로 봉해 그 국가적 실체를 공인한 데서 비롯했다. 건국 초기에는 스스로 진국 (震國)이라 칭했으며 일본과의 사절교환시에는 고구려의 계승을 강조하며 '고려'(高麗)로 칭하기도 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백과에 나온 '진국'의 한자는 발해역사를 비하하는 중국식 표기로 '진국(振國)'으로 바뀌어야 함이 옳습니다.
속초시립박물관에는 이러한 발해사를 우리 역사의 한획임을 알수 있게 비록 작은 규모이지만 나름 전시해 두었습니다. '해동성국 발해실'이라는 이름으로 발해의 약사와 상경성의 모형을 재현해 놓았으며, 국내외에서 발굴된 발해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하전시실에는 정효공주의 묘를 재현하여 전시한 공간으로 당시 발해의 시대상과 의상등 발해인들의 생활상을 알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를, 그들의 문화상을 비롯하여 발해인의 외모와 생활상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발해역사관 1층전시실에는 해동성국 발해실과 영상실로 구분되어 지는데, 229년 발해역사 전반과 영역 그리고 유적지 사진과 영상, 발해유물로 전시되어 있으며 영상실에서는 드라마 대조영의 장면들을 만날수 있습니다.
지하 1층의 전시실에서는 3대 문왕의 네째딸 정효공주의 묘를 주제로 하여 고분벽화에 나타난 인물들과 의복과 악기들을 볼수 있으며 실재와 같은 규모로 재현 된 정효공주의 묘지도 관람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인 발해사,
그 귀중한 문화를 만날수 있는 귀한 공간입니다.





"공주는 우리 대흥보력효감금륜성법대왕의 네째딸이다.
조상과 부왕께서는 왕도를 일으켰으며,
그들이 쌓아놓은 위대한 업적과 무공은 그 누구도 비할 수 없다.
그 광명은 해와 달처럼 천하를 비추었으며,
그 어진 정치는 천하를 포용 하였다.
공주는 총명과 재질이 뛰어났으며 고결한 품성이다.
대흥 56년 여름 6월 9일에 사망하니 당시 나이 36세이다.
이에 시호를 정효공주라 한다.
황상(皇上)은 몹시도 비통해 하며
애석하도다. 공주와 이별을 하자니,
이를 영원히 함께 하고자 비석을 세우고 비명을 새겨두노라"
출처:발해사, 속초시립박물관
위의 내용은 정효공주의 묘비에 새겨진 내용중 일부입니다.
위에서 보듯 공주는 그의 아버지를 황상(皇上)이라 불렀으니 이는 중국이 발해가 당나라의 지방정권일뿐이라며 중국의 역사라는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중국의 역사날조는 계속 되고 있습니다.
2011년 11월12일부터 중국관영TV인 CCTV에서 6부작 다큐, 장백산(백두산)을 방송하였습니다. 이 프로에서 대조영이 당나라 사신에게 무릎을 꿇고 책봉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고 합니다. 결국 발해는 당나라의 지방정부라 주장하는 것이지요. 또한 발해의 교통로는 당나라에 조공을 받치던 조공로라 표현하였다고 하는군요. 이는 발해는 당나라의 외곽군정기구라 비하하며 발해의 건국은 중국소수민족(말갈족)으로 당의 책봉으로 중국에 귀속되었기에 당나라의 영토라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동북공정을 통하여 고구려사를 자기들 것인냥 왜곡해온 중국이 이번에는 발해사 왜곡에 나선것입니다. 이 프로그램 제작에는 고구려사 왜곡을 주도한 중국사회과학원의 전문가들이 다시 참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요.
우리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발해는 고구려 장군 출신의 대조영이 고구려인과 말갈족을 규합하여 건국한 국가로 원래의 이름은 진국(振國)으로 진국의 세력 확대에 더 이상 대항할 수 없었던 당은 713년에 대조영을 발해군왕으로 봉하면서 발해국이 되었다는 것으로 고구려를 계승한 우리의 역사라고 말입니다. 동북아시아 역사를 연구하는 동북아역사재단의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발해는 당의 판도안에 속한적이 없으며, 황제와 황후라는 표현으로 독자적인 황제국가"였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거기에 더하여 고구려 유적과 마찬가지로 발해의 유적을 유네스코에 등재를 계획하고 있다 하는군요.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 아닐수 없습니다.
고구려 역사에 더하여 이제는 발해의 역사까지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습니다. 섬나라 왜놈들은 툭하면 독도망언이나 퍼부어 대고, 짱깨들은 동북공정을 위시하여 역사 왜곡 날조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러는 우리는, 우리의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각 연구기관과 학회에서 수 많은 회의를 거쳐 정부에 말을 해도 들어 쳐먹지도 않는 현실이지요. 지금은 당장 제 주린 백때기를 채우는 것이 우선인 이유입니다.
하기사 역사? 문화? 유적?.. 이러한 것에 조금의 관심만 있다 하여도 작금의 대한민국은 아닐것이네요. 변두리 아마추어 블로그에서 백날 떠들어 봐야 그들의 귀에 들릴리가 만무하겠지만, 그래도 무언가 씹어대고 싶은 마음입니다.
답답한 마음에 사진도 몇장 찍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일찌감치 퇴근하여 소주나 한잔해야 겠습니다.



by 박수동

www.gilson.asia
첫댓글 길손여객님
우리가 몰랐던 정보에
고마움을 표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하지만 꼬리글고 안남기고
가는 회원님들 때문에 약간은
섭하시죠?
울나라 사람들이 칭찬엔 약간
거시기 하자너요.걍 이해하셔요.
역사 공부 잘하고 갑니다.
우리의 지난날 역살르 다시금 볼수 있는 박물관이 있군요 좋은박물관 기회가 되면 가보려구요 감사합니다
속초시에서 운영하는 시립박물관이군요 ...
공부하고 갑니다..
좋은 역사 공부입니다~~ 나라에서는 이러한 일들을 널리 알리고 역사관이 있어야 하는데~!!~!
속초영랑초등학교(12회 졸업) 6학년 담임인 고 최상근선생님은 매일 120여문제를 시험치르게 하시고 가르쳐 주셨는데
나중에 커서 보니 역사에 대한 많은 지식이 있음을 알게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동기들 중에 우리 반 선생님을 모두 존경들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