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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 켠 -제 11화 에피소드2. 도희의 이야기
Fam.탑팸
구원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왔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안나의 의미심장한 전화가 온 바로 다음이었다. 그제서야 깨달은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그러니까, 바로 전의 통화에서 슬픈 목소리를 한 안나는,
[켠이가, 켠이가 연락이 안 돼.]
하고 말했다. 그래.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빨리 잊을 수 있냐고 따진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아주 순간적으로 그를 정말로 잊어버렸었다. 친구의 남자친구를,
그것도 가장 친한 친구가 무려 6년 동안이나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 한 남자친구를 잠시 잊어버렸었다.
나쁜 년이라고 욕해도 상관없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가 기억하지 못한 걸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아주 조금이라도 그가 기억나 말 실수라도 했다면, 아찔한 순간일 뻔 했다.
안나와의 통화가 끝나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 다시 진동이 울렸다. 발신자는 김 구원.
"여보세요?"
[모른다고 해.]
"무슨 말이야, 다짜고짜?"
오늘따라 다들 전화해서 이상한 말만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미적지근한 말들은 질색이다.
하여간에, 김 구원. 좀 더 확실하게 말하는 걸 좋아한다, 나는.
[기억 안 난다고 하라고. 안나한테 전화 올거야.]
"어? 이미 왔는데?"
[벌써? 아, 젠장. 너 뭐라고 했어.]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치는 영상들. 켠을 찾는 안나의 전화. 그 목소리. 지난 2주.
구원에게 갑자기 전화가 온 이유. 순간, 전기에 감전 된 듯 온 몸이 찌릿해져 왔다.
"그냥, 그게 누구냐고."
[다행이다. 너도 눈치 챈 거야?]
차마 잊어버렸다고는 말 못했다. 다혈질인 이 자식이 또 발끈할 거 같아서.
그냥 으응, 얼버무렸다. 망각이라는 건 참 허무하다. 어떻게 그걸 잊을 수 있지.
[기억 없는 거 같지. 이거 어떻게해야 돼, 그냥 계속 모른척 해야해?]
"모르겠다, 나도. 이게 옳은건 지."
진짜 모르겠다. 진실이 옳은 걸까, 아님 친구의 상처를 덮어주는 게 맞는 걸까.
머리가 복잡해졌다. 일단은 이대로 상태를 좀 더 지켜보기로하고 안나의 집으로 향했다.
안나의 부모님은 지방에서 일을 하시는 데다, 외동딸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이 넓은 집에 아무도 없다.
내가 이 집을 내 집 드나들 듯 하는 이유가 바로 그거다. 현관문 앞에서 익숙하게 비밀 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대체 어딜 헤매고 다니는 건지, 재미도 없는 쇼 프로를 시작부터 끝까지 지루하게 보고 있는데도 안나는 올 생각을 안 한다.
드라마 재방송이 시작되려고 하는 찰나에, 번호키가 열리는 소리가 들려서 황급히 현관쪽으로 나가서 기대 섰다.
좀 전의 통화에 대해 따졌더니, 또 웃고 넘어가려고 한다. 이게 미치겠는거다.
나는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주는 걸 좋아하는 데, 안나고 켠이고 이 녀석들은 그냥 흘러가는 대로 그러려니 내버려 둔다.
그러니까 자꾸 깨지는 거 아냐. 의사 표현은 확실한 게 좋아.
켠과 헤어지고 나서 울면서 내게 전화할 때마다 나는 안나에게 이렇게 충고해 주곤 했다.
하긴, 그것도 다 옛 일이다. 이제는 그저 티격 태격하던 둘의 모습이 막연히 그리울 뿐이다.
"자. 설명해."
일단 어떻게 된 일인지 부터 파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녀석이 기억하고 있는 건 어디까지인지, 어떤 부분이 기억에서 지워진 건지.
"하룻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었는데……."
정확히 그녀의 기억은 그 날이 아닌, 좀 더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거기에 켠을 만났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나도 모르게 리액션을 보일 뻔 했다.
그럴리가. 그냥 길거리를 지나던 닮은 남자를 붙잡고 하소연 했음에 틀림 없다.
하지만 안나는 그가 기억상실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돌아도 단단히 돌았다.
너 꿈 꾼거라고. 그렇게 말했다. 그냥 그렇게 믿었으면 좋으련만,
켠이라고 부르는 걸 보니 그 남자에게 온 전화인지 할 말이 있다며 내일 약속을 잡는다.
그 남자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 켠이 아니란 걸 깨달았을 때
그냥 모든게 꿈이었다 믿고 어서 안나가 제 자리를 찾기를 바랄 뿐이다.
마치 켠이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
...
그 날 이후, 안나는 빠르게 제 페이스를 회복해 나갔다.
더는 켠을 찾으러 다니는 행동 따위는 하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해서 딱히 이렇다 할 이상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유야 어찌됐던 잘 된 일이었다. 모두 잊고 시작한다면, 그래, 그 걸로 된거다.
덕분에 나도 신경쓰지 않고 내 생활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 정말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가 내 눈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금요일이었다. 아무리 잘 지내는 것 같다지만, 직접 보지 않고서는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화장실에 가는 척 술 자리를 몰래 빠져나왔다. 막 현관 문을 열고 들어서는 데, 마침 안나에게서 전화가 온 거다.
"나 니네 집이야. 할 말 있으니까, 빨랑 기어 들어와."
[저…….]
"어? 누구세요?"
수화기 너머로 들린 건 왠 남자의 목소리였다.
놀라 누구냐고 되물으니, 돌아오는 대답이 가관이었다.
[저는…켠입니다.]
"예?"
[그냥 그렇게 알아주세요. 안나가 술이 많이 취했는데, 주소 좀 알려주시겠어요?]
주소를 대강 불러주고 전화를 끊었다.
왠지 전에 안나가 말했던 그 남자일 것 같다는 느낌이 팍 든다.
안나가 아직까지 켠과 닮았다는 이 남자를 만나고 있을 줄이야.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지 궁금해졌다.
약 30분 후에, 초인종이 울렸다. 그들일 거란 생각에 조금의 의심도 없이 문을 연 나는,
그만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진짜 켠이었다. 닮은 게 아니라, 그냥 켠이었다.
"켠?"
"네. 어디다 내려놓으면 되죠?"
켠이냐는 물음에 아무렇지도 않게 네 라고 대답하고, 나를 향해 존댓말을 쓰는, 켠과 똑같은 모습을 한.
잠시 멍해져 있었는데 아무 대답 없는 나를 안나를 등에 업은 채로 계속 바라보던 그는
여긴가? 중얼거리면서 안나의 방으로 들어가 침대 위에 그녀를 사뿐히 내려놓는다.
안나를 한 번 내려다 보고 나가려는 그의 팔을 황급히 붙잡았다. 아주 이상한 일이 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내 눈 앞에 있었다. 하지만 안나와는 달리, 그가 켠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당신은… 누구죠?"
"무슨 말씀이신지."
"대체 누구신데, 켠의 모습을 하고 있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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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읽느라고 수고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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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제 알겠어요 백이가 꼴뵈기싫은 이유를 뉴뉴..이유는 담편에..
김구원그좌식..............악백아 너이러다가뒷통수맞을거같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