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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도 은혜 될리 없겠지만, 최목사님의 새문안 교회 말씀 그대로 전합니다. 원문은 여기클릭 굵은파랑글씨(체) 추가. 많은 분들이 가진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거룩한 분노가 언젠가는 최목사님에게도 전달되고 이해될 날이 올 것입니다만, 기대 많이 하시지 말라는 차원에서 올립니다. 이전 하우사랑에 올렸던 글입니다. 죄송하지만 좀 긴 글입니다 *)
은퇴하기까지 목회를 하면서 이것만은 나의 후손들에게와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분명히 가르쳐야 되겠다고 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존중하라고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권위에 결코 도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질서를 위해서 성도들을 위해서 꼭 가르쳐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관한 것입니다.
롬13:1-2
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요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게 하사 믿는 자에게 어떤 죄도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습니까? 그런데 한 가지 당신의 권위에 도전은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당신의 아들 구원자를 무시하고 불신하는 죄는 용서 받을 길이 없습니다. 성경에 많은 곳에서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을 용납하시지 않는 사건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 맞는 말씀이시긴 한데, 언제 이 내용을 적용해야 할지 문제가 됩니다. 무엇보다 많은 분들은 예수님의 이름이 더럽혀지기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외람되지만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무시하고 불신하는 죄를 저지르는 분들이 하나님의 권위를 받았다고 하면서 자신의 뜻을 성취하려 하기에 일어 났다고 보입니다 *)
민12:1-2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미리암과 아론이 하나님께서 차별하는 것을 느낀 겁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않았느냐?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들도 하나님께서 다르게 대하는 것을 느낀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허물도 있는데 우리는 깨끗한데 하는 식이었습니다.
여기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와 어떤 관계입니까? 누나와 형입니다. 모세가 구스여자를 취했다는 것은 당시 문화와 정서로는 비난을 받을 일인지 몰라도 그 일이 모세와 그들의 위치에서 혼동을 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닌가! 봅니다. 그런데 미리암과 아론이 하는 말을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즉시 하나님의 반응을 4절에서 보시기를 바랍니다.
(* 이 성경구절은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질투했다고 보면 간단히 풀립니다. 모세는 논문표절, 교회돈 남용, 위선적인 삶, 남에게 의심받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이 이런 무지막지한 주장을 신봉하시고 전파하시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
민12:4 여호와께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에게 이르시되 너희 세 사람은 회막으로 나아오라 하시니 그 세 사람이 나아가매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름기둥으로부터 강림하사 모세를 옆에 세우시고 장막 문에 서셔서 아론과 미리암을 따로 부르시어 너희들과 모세와는 분명히 다른 위치임을 말씀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민12:8-10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9.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나병에 걸렸는지라 차별하는 이유를 분명히 하십니다. 모세와는 내가 대면하여 말하고 여호와의 형상을 본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론과 미리암을 향해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느냐? 고 호통을 치시고 떠나가십니다. 그 후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미리암이 문둥병이 걸립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입니다. 나중에 회복을 시킵니다. 만 하나님께서 세운 하나님의 종 에게 도전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게 됩니다. 왜 이런 사건이 성경에 기록되어 우리에게 읽혀질까?
(* 만약 목사님 해석이 맞다면, 사랑의 교회는 영안실과 응급실을 따로 운영해야 할지 모릅니다. 저를 포함해서 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문둥병에 걸려서 고통받다가 죽었을지 모르니까요. 그런데 사도 바울에 대적했던 가짜 교사들조차도 멀쩡했다고 신약 성경에 나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나 바울이 이런 무시무시한 말로 성도들을 위협했다는 구절을 찾을 수가 없고, 무엇보다 칼뱅과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절대 용납되지 말아야 할 사건이 됩니다. 목사님의 제자사역의 목적과 실체가 무엇인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
삼상2:30下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이 말씀을 여러분의 가슴에 잘 새기기를 바랍니다. 예수 믿고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존중하느냐고 물으면 다들 존중한다고 말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세운 종들 목사와 사역자들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존중한다고 말을 한다면 여기 성경에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제가요 어릴 때부터 부흥회를 통해서 많이들은 말씀은 주의 종 잘 섬기면 복을 받는 다는 말이었습니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닌데 그게 그렇게 은혜가 되지 않았습니다. 목사끼리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구나.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당연한데 꼭 주의 종 목사를 섬겨야 복을 받는다는 말이냐 기복신앙에 편승하는 것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나의 생각은 주께서 세우신 종과 일반 평신도들을 동일시 한 잘못이었습니다.
(* 이제 최목사님이 어떤 분인지가 이해되실 겁니다. 주님의 종과 일반 평신도-성경에 등장하지 않는 단어-와 다르다는 내용입니다. 성경에는 우리 모두가 "성도"라고 나옵니다. 예수님 자신이 평신도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셨고, 바울도 베드로 어느 사도도 이 용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최 목사님은 제자훈련 교과서를 다시 새롭게 쓰고 가르치셔야 합니다. 이미 오목사님은 그 작업을 시작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
히13:17
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하나님께서 세운 교회의 권위인 것입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순종에 복종까지 하라고 합니다. 이유에 대해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그래서 즐거움으로 사역하도록 하라 결코 근심으로 사역하게 하지 말라고 명령하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다는 말은 유익이 없으면 손해가 있다고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근거로 하여 과연 하나님께서 세운 종들을 존중하고 있는가? 아닌가를 스스로 진단 해 보시기 바랍니다.
목회를 하면서 목사는 교회에 세워진 리더들과 서로 창의적인 지혜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문제가 아니라면 최종 결정권은 주의 종에게 맡겨야 할 것입니다. 물론 주의 종은 평신도지도자들의 지혜를 무시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평신도가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면이 있음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경윤과 지식을 초월하는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지혜가 있습니다.
(* 히 13:17절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통한 구원, 예수님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무엇무엇을 하면 구원을 받고, 무엇 무엇을 하지 않으면 구원에 반대된다-가 히브리(유대인) 교회에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지도자들이 잘 가르치고 있으니, 그분들의 말을 따라 순종/복종하라고 권면합니다. 무조건 목회자에게 복종하라고 해석하면, 전체 문맥과 전혀 관계 없는 "목적이 이끄는 성경" 해석이 되고 맙니다. 목사님께서 잘 말씀해 주신대로, 여기 사랑넷/히우사랑의 많은 분들은 말씀에 근거해서, 예수님의 교회를 지키라는 진리문제가 위협받기에 수고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실 때, 두 종류의 다른 성령을 교회 계급장에 따라 따로 주신다는 성경 구절 없는 것 같습니다. 혹시 목사님이 가진 성경이 제 것과 같은 것인지요? *)
그런데 이런 말씀을 가지고 반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벧전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 모두는 왕같은 제사장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차별하여 존중해야 합니까? 이것은 교회의 영적질서입니다.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손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그러면 다 같은 가요? 성경은 명료하게 하나님께서 교회에 영적질서를 위해 세운 권위가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계1: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요한사도가 본 환상입니다. 네가 본 것은 들은 것이 아닙니다. 환상입니다. 하늘 스크린을 펼치신 주님께서 듣게 한 것 만아니라 보게 하셨습니다. 오른 손에 일곱별을 잡고 계심을 그 일곱별의 비밀 일곱 금 촛대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라고 일곱 금 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는 하나님께서 세운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권위를 부여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 신학교의 난립으로 도무지 어디서 안수 받았는지 알 수 없는 목사들이 적지 않고 미주에서는 무인가 신학교에 설립자가 사기군! 이었다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런 혼란가운데서도 우리가 정립해야 할 주님의 교회의 사자들에게 어떻게 대할 것인가
(* 최 목사님에게는 가슴 아픈 질문이지만, 논문표절로 박사 받고, 그 논문으로 박사를 또 받은 분에게 과연 하나님이 권위를 부여하셨을까요? 하나님이 세웠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말씀대로라면 그분의 행위에서, 성령의 열매에서 하나님의 권위를 알 수 있지 않을까요(마태 7:17)?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구절처럼, 우리가 알 수 있는 확실한 길이 있을까요? 불행하게도 이제껏 나타난 행위에서, 특히 예배시간에 남을 참소하면서 눈물 쇼를 5번씩이나 반복해 보여주셨던 오 목사님은 분명 아닌 것 같습니다*)
많은 교회에서 목회자를 고용인 취급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번에 미국에서 동부와 서부에서 두 차례 목양장로 컴프런스를 했습니다. 그 컴프런스에서 목사와 장로의 본질을 다루면서 한가지로 목사와 장로가 목양이 최우선이라는 데 공감하면서 하나님께서 세운 목사는 특별한 위치라고 하는 사실에 성경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은혜의 시간들이었습니다.
(* 그렇게 목사님들에게 함부로 하는 분들이 있어서 저희도 안타깝습니다. 아마 형제 자매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분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자신이 좋아하는 내용을 듣고 나누는그런 컨퍼런스에만 가시는 것 같습니다. 혹시 저 같이 목사가 아닌 사람을 사단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
오늘의 본문입니다.
요13: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마태에 이어 요한 사도에게도 같이 계시하신 말씀입니다. 이 역시 존중으로 바꾸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요13: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러노니 내가 보낸자를 (존중)하는 자는 나를 (존중)하는 것이요 나는 (존중)하는 자는 내가 보낸 자를 (존중)하는 것이니라.
여기서 내가 보낸 자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하는 말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 성경 조금만 세심하게 보시면 아니면 영어 성경 찾아 보시면, 목사님이 이 구절을 아주 엉뚱하게-죄송합니다!-해석하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기서 내가 보낸 자는 "그리스도의 형제" 즉 구원받은 이를 말합니다. 이제 세상을 떠날 예수님은 만약 나에 대한 사랑이 있다면, 형제를 나처럼 대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게 문장 문맥에서 유추할 수 있는 의미입니다. 최목사님처럼 예수님이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다가, 갑자기 주의 종은 특별한 계급이니 그대로 순종하고 존중하라고 했다고 해석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문맥에서 한참 어긋난 "목적이 이끄는 성경해석"이 아닐까요? 현재 사랑의 교회의 문제는 예수님이 보낸 성도들을 오 목사님이 존중하지 않았기에 생긴 것 아니겠습니까? *)
그렇다면 존중이 재정적인 면에 대해서 순회 전도자인 존 비비어는 미주와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살펴보고는 교역자들에게 교회가 성의를 다해 섬기는 교회 성도들은 한가지로 형통하고 복을 구체적으로 받고 있음을 확인했노라고 많은 실례를 들면서 기록 하고 있었습니다. 담임목사는 영적인 부모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에 순종하고 섬길 때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물론 비 진리를 가르치는 이단이야 용납할 수가 없지요 성경에 극단적인 예가 있습니다.
사르밧 과부(왕상 17:8-16)
엘리야 시대에 큰 기근이 들어 많은 과부들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한 과부는 준중의 원리 덕분에 살아남았습니다. 그녀와 그 아들이게는 마지막 한 끼 먹을 밀가루와 기름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는 먼저 자기가 먹을 빵부터 만들라고 합니다. 요즘 같으면 소살네트워크인 인트넷 매체 트윗드, 페이스 북 카카오톡 등에서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곧 굶어죽게 된 가난한 과부가 가진 것을 빼앗을 수 있는가? 당신이 그 과부에게 줘야지 그가 선지자 맞아? 그러나 어떻게 되었나요? 그녀가 하나님의 종을 존중했더니 하나님께서 그녀를 존중해서 기근이 끝날 때까지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을 우린 성경에서 확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볼 때 언제나 관점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는 빈궁한 중에도 하나님의 종을 존중한 것에 관점을 두어야하는 것입니다
왜? 이런 사건이 성경에 기록되어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까? 스스로 질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 다행히 이 사건은 누가복음 4:25에 예수님의 말씀으로 나옵니다. 예수님은 이 구약사건을 어떻게 이해하셨을까요? 예수님은 구약의 엘리야와 엘리사의 예를 들면서, 하나님을 영접했던 사람이 엉뚱하게 이방인이었고 지적하셨습니다. 당시에 잘 나가던 종교지도자, 혹은 선민의식으로 꽉차 남보다 계급이 높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벼랑으로 몰고 갔다고 성경에 나옵니다. 전혀 하나님의 종을 잘 대접해라는 의미로 해석하지 않으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최 목사님의 해석을 보충해 주는 사도들의 가르침이 신약 성경에 전혀 없습니다! 사도들은 구약을 이해하고 예수님과 같이 생활했던 분들이 아닙니까?
그 사도들은 하나님의 종은 "노예"처럼 살아야 하고, "노예"가 세상의 주인에게 복종하듯이 살아야 한다고 신약에서 말하지 않았나요? 종은 당시 자기의 권리를 내세우지 못하는 계급이었는데, 예수님이 그렇게 사셨다는 것 아닙니까? 오 목사님 포함 여러 목사님들에게서 그런 종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요? 목사님! 목적이 이끄는 성경 해석은 정말 위험하기만 합니다. *)
흠이 없고 존경스러운 종에게야 누가 존중을 못하겠습니까? 그런데 불의한 종에게도 존중해야 합니까? 우린 다윗이 사울 왕을 존중한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왕이기 때문이라는 것 알고 있습니다. 무슨 관계냐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면 하나님께서 존중히 여기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잘 못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기 원합니다. 사울의 불의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시험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신다고 하시면서도 다윗 을 사울 밑에 두셨던 것입니다. 그것도 14년 동안이나 사울을 피해 굴 광야 심지어 적국에 까지 가서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유랑도 모든 위협도 끝낼 기회가 온 것 이였습니다. 엔게디 동굴에서 사울을 죽일 기회가 온 것입니다. 다윗을 추격하던 사울의 군대는 엔게디 동굴입구에서 무장을 풀었고 사울은 뒤를 보려고 동굴에 들어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과 군대들이 완전무장한 채로 굴 안쪽에 숨어 있는 것을 그들은 몰랐습니다. 부하들은 다윗에게 사울을 죽이라고 강청합니다.
삼상24:4 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날이니 이다 하니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왕이 나가고 뒤 따라 다윗이 나가서 왕을 향해 외칩니다. 왕이여 이 옷자락이 누구의 옷자락입니까? 왕의 옷자락입니다. 내가 왕을 해한다고 하는 말을 믿지 마소서 왕을 해치라는 주위 사람들의 강청이 있었으나 하나님의 기름 부은 종을 내가 해할 수 없노라고 거절 했나이다 나의 마음을 받으소서. 라고 합니다. 그때 사울은 순간 참회하는 것 같은 태도를 취합니다.
삼상24:17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그러나 그때뿐이었습니다. 사울은 3000명의 병사를 이끌고 또 다시 다윗을 해치려고 추격하기 시작합니다.
또 다시 사울을 처단할 기회가 온 것입니다. 사울의 군대가 추격을 계속하다가 피곤해서 깊이 잠이 든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다윗은 충성스러운 부하 아비새를 데리고 사울의 진 안으로 들어갑니다. 사울이 깊이 잠든 것을 본 부하 아비새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삼상26:8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하니
그러나 다윗은 생각을 합니다. 나의 불행 뿐 아니라 나의 부하들의 불행 또 이 민족의 불행을 끝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는 내 아내까지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준 비열한 사람이 아닌가 내가 그렇게 무죄를 입증해서 자기의 생명을 해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옷자락만 벤 일이 얼마나 되었다고 또 날 추격하는 이자를 진짜 끝낼까 하는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충성스러운 부하의 간청에 잠시 귀를 기울이는 듯 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또 부하의 간청이 있습니다. 왕이여 왜 하나님께서 이 군대를 몽땅 깊이 잠들게 하셨다고 보십니까? 우리들이 이악한 왕한테서 나라를 구하라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부하의 말은 한마디도 틀린 말이 없었습니다. 논리 정연했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아비새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삼상26:11-12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하고 다윗이 사울의 머리 곁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떠나가되 아무도 보거나 눈치 채지 못하고 깨어 있는 사람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다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더라.
하나님은 왜 사울의 군대를 깊이 잠들게 하셨을까요? 존 비비어라는 사람은 다윗의 마음을 시험하기 위해 서라고 해석을 했습니다. 매우 공감이 가는 해석이라고 봅니다. 다윗은 사울을 존중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그가 세운 하나님의 종을 존중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세의 아들 다윗을 보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극찬을 했음을 우린 알고 있습니다.
이 사건이 있고 얼마 되지 않아 하나님은 사울을 심판하셨습니다. 블레셋 족속과의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사울 뿐아니라 그의 아들 다윗에 절친한 친구 조나단과 함께 전사합니다. 하나님이 직접 심판하시기를 기다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인정한 다윗의 결정이었던 것입니다.
(* 사무엘 상에 나오는 이 사건은 주의 종에게 무조건 순종하라는-한국에만, 한국교회에만 일반화된- 가르침으로 연결 됩니다. 과연 그럴까요? 다윗이 제사장 계급이나 예언자가 아닌데 다윗이 우연히 한 번 말한 내용을 그대로 받아 들여야만 한다면,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들도 다윗이 여자를 여럿 거느린 것처럼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이 그렇게 살았으니까,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게 다 지켜져야 할까요? 목사님께서는 좀 현실적으로 성경을 읽으실 필요가 있습니다. 왜 다윗이 그런 말을 했을까요?
다윗은 사울의 사위였습니다. 미갈을 사랑했습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의 생명을 구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죽이지 못할 이유를 부하들에게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주의 종 사울에게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했기에 언젠가는 왕이 되는 것을 믿었기에, 사울을 죽이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아마 다윗이 오정현 목사처럼 "하나님이 다 하셨다"면서 자신의 뜻대로 사는 인생을 기가 막히게 합리화시키는 사람이었다면, 기회도 좋으니까 사울을 죽이고, 원하는 성경구절 찾아냈을지 모르지만 다윗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
하나님의 영역(롬 12:19-21) 롬12:19-21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 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역과 우리의 영역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너희들은 사랑하는 역할을 하고 난 심판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 이 구절은 당시 정치적 상황과 연관된 것처럼 보입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그러나 아무런 대항을 할 수 없을 때 였을 것 같습니다. 바울은 봉기해서 일어나는 대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인이 세상에서 세상권력 때문에 고통 당하지만 참고 기다리라는 부탁으로 성경에는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오정현 목사 님의 말대로, 아니 성경말씀대로, 세상 권력이 통하지 않아야 하고 세상 질서가 지배해서는 안되는 곳입니다.
우리는 심판하지 않지만 무엇이 바른 것에 대한 분별은 교회 내에서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래서 고린도 전서 5:1-5에서 어떤 그리스도인들을 판단하였고 사탄에게 내어주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런 분별력 있는 목사님이 요즘 거의 없다는 것이 사랑의 교회 사태에서 그대로 보여져서 안타깝기만 합니다 *)
성경에 요셉이란 사람의 고난과 역경 우리가 잘 알지 않습니까? 이복 형제들에게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어 죽음의 구등이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에 갖히고 국무총리가 되고 형들이 찾아오고 그들을 선대하고 그는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잘 알고 처신했음을 보게 됩니다.
창50:15-17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형들이 목숨을 구걸하는 말을 할 때에 요셉이 울었다고 성경은 증언하면서 왜 울었을까요?
창50: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요셉은 하나님의 역할과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알았던 것입니다.
창50:20-21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인 것입니다. 불의를 보고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함부로 비판하고 성토 해서도 안 됩니다.
(* 목사님 말씀대로라면, 오정현 목사님이 요셉처럼 의인이어야 합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고 바로 왕 앞에서 물질적으로 깨끗하게 살았고, 아브라함에게 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그런 겸손한, 그래서 자기 형들에게 복수하지 않았던 요셉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정현 목사님은 정 반대의 길을 계속 가면서, 남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고, 남을 예배시간에 5번 참소하면서 복수했습니다. 죄송하지만 그 정도면 확신범 아니면 자기 주관이 너무나 뚜렷한 분이라고 간주할 수 밖에 없습니다. 혹시 최 목사님은 현재까지의 오 목사님의 삶(표절포함해서)이 오 목사님의 고조 할아버지에게 하나님이 직접 주신 예언의 성취였기에 오 목사님에게 순종해야한다고 해석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목사님, 그런식으로 억지 말 만들어 무조건 순종하라고하면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오고 싶어질까요?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너는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게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하시면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여 복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라고 하시면서 약속하신 말씀이 3절에 나옵니다.
창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을 살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얼마나 축복인지 모릅니다. 우리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을 존중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뿐 아니라. 해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며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 생애에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불행한 일을 당하지 않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좀 고약한 주장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목사님 말씀을 들으면 꼭 공산당 주장이 생각납니다. 당이 여러분보다 더 높은 권위를 하나님에게서 특별히 받았으니까, 그래서 당이 항상 옳으니까 당회는 항상 올바르니까 평신도는 눈과 귀를 가리고 입을 막고 주의 종 앞에서 순종해 달라는 말씀 같이 제 귀에는 들리는데요, 요즘이 어떤 시대입니까?
왜 젊은이들이 교회 나오지 않고, 왜 교회를 다니는 사람까지 교회 떠나는 일이 생기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못하신다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성경 말씀 앞에 얼마나 우리가 객관적으로 서서 살펴 보시면 답이 나오는데요.
어쩌면 제가 아는 하나님과 목사님이 아는 하나님이 다른 분일 것 같아서, 어쩌면 제가 아는 성경과 목사님 즐겨 보고 묵상하시는 성경이 다른 것 같아서 언젠가 한 번 뵙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 전에 적어 보았습니다 *)
첫댓글 옥목사님 주위에 있던 분들은 왜 한결같이 사랑의 교회사태에 침묵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 제자들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뿔뿔이 흩어졌으니 침묵하는 그들에게 더 이상 기대할 수가 없을 것 입니다.
일단 그 사람에게 어떤 약점을 잡히거나, 돈에 매수되었거나, 아니면 현 단계에서는 나설 때가 아니라서
조용히 있는 것이 아닐까요? 현재도 오 브러더즈의 파워는 대단하지 않나요?
총신대 동창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교회헌금을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데 많이 사용했을테니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런 식으로 배신하지는 않았지 않나요? 그들은 예수님과 헤어지는 것이 너무 슬퍼서
예수님이 너무 억울한 죽음을 당해서 큰 충격을 받아서 뿔뿔이 흩어졌다고 저는 추측해 봅니다
혹시 우리가 아는 그분들이 나중에 그럴지 몰라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첫 부활절에 무덤에 간 제자는 아무도 없었기에.... 기다립니다
그렇네요. 첫 부활절에 무덤에 간 제자들은 아무도 없었네요. 많은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는 이전쟁은 긴 호흡으로 힘을 잃지 않고 가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하며 지치지 않으려 기도합니다. 우리가 기대하고 기도하는 이 모든 방법들을 사용 하시기를 기도할뿐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놀라운 방법으로 응답하실 주님을 기대합니다^^
네, 절망 속에 있었을 때마다, 그때 한 없이 절망해서 예수님의 예언을 믿지 못했던 제자들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활하셔서, 그들을 먼저 찾아 오셨던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하정완 목사님이 설교중에 교회에서 대개 가장 문제있는 사람은 목사와 장로라며 눈을부릅뜨고 감시하고 잘못하거든 가차없이 얘기해주라고 하시더군요..;; 믿음이 깊어질수록 낮아지는 자리가 될텐데요...;;
제자훈련을 일반 성도분들에게 시키는 것보다 목사들이 제대로된 확실한 제자훈련을 먼저 강도높게 받아야 될 것입니다.자신도 깨우치지도 못하고 분별력도 없고 성경에 대한 올바른 해석도 못하는 교만과 편견에 사로잡혀있는 목사들이 훈련을 시킬 때 앞으로 개신교 앞날에 짙은 먹구름이 끼일겁니다.차라리 좋은 성경주석이나 기독교서적을 통해서 독학하는게 오히려 잘못된 가르침에 빠지지않고 오류에 물들지 않을겁니다.
옥한흠 목사님이 모 장로님 때문에 고생하셨다는 말씀을 아마도 많이 들으신 분 중 한 분이 최홍준 목사님이시라 여겨집니다. 그러다 보니 성도들이 함부로 목사님의 말씀에 대응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 맞기는 하지만, 그와 반대로 목사님이 저희들에게 진리를 전해 주실 책임이 있으심을 오목사님에게 얼마나 말씀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진리를 전하는 이를 반대하는 자는 목사이든 장로이든 용서 안 하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 아니신가요. 진리를 전하는 목사에게 대드는 장로(우리 중 있으면 안됩니다)나 진리를 바탕으로 주장하는 성도들을 탄압하는 목사(아마도 오목?)나... 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것입니다...
목사님들이 저희들에게 진리를 전해주실 책임이 분명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중보하기를 원합니다. 새생명축제가 현 사랑의 교회에 진리되시는 예수그리스도가 바르게 선포 되어지길 기도해주십시요. 우리 모두가 복음 들어야 할 대상입니다
성경은 진리의 말씀을 가감없이 전하기 위해 애쓰고 수고하는 목사님을 배나 존경하라고 했으나, 주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거짓말하며 논문표절하고 거짓 맹세하는 목사까지 존중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목사는 쫓아내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ㅅㄱㄲ 목사와 어울리는 목사는 같은 부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쫓아내야 할 사람이 ㅅㄱㄲ 과 같이 어울리고 있으니까요.
논문표절을 하면서까지 두 개의 박사 학위를 취득하려 했던 행위는 탐심을 가진 우상숭배이며 이런 자가 목사라니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또 이런 ㅅㄱㄲ 목사와 어울리는 사람들은 뭔가요?
정말 알 수 없습니다. 오래 전에는 옥목사님의 오른팔이셨는데, 이젠 O목의 오른팔이 되셨으니까요
최목사님때문에 오목사가 쫓겨나지 않은 것입니다. 그때 ... 최목사님...인타깝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처음 그얘기를 들었을때의 안타까움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었습니다.그러나 그또한 하나님의 계획하심 가운데 이뤄진 일이지요. 사울이 폐하여지고도 다윗이 준비 될때까지 사울은 계속 왕이었고 하나님의 관심은 다윗이 훈련 받으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으로 서는 것이었을거예요.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가 될때까지 오정현목사를 사용하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때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로 내가 서는 날이라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제게 그날이 속히 오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