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톱’을 아시지요?
동양화라고 흔히 말하는 48장의 짝맞추기,
그런데 죽자 살자 무조건 ‘고!’만 계속 외치는 사람은 진짜 프로가 아니지요.
그렇다고 항상 ‘스톱!’만 외치는 사람도 그다지 전문가는 못되지요.
형편과 상황에 따라 판단을 해가며, 때로는 ‘고!’, 때로는 ‘스톱!’을
잘 사용하는 사람, 그래서 자기에게 유익을 늘 가져오는 사람이 진짜 선수지요.
예를 든 ‘고스톱’이 도박으로 가는 놀이라서 좀 그렇긴 하지만,
사람이 사는 것도, 더구나 신앙인으로 사는 것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죽어라고 상대나 상황을 고려하지도 않고 끝도 없이 자기 욕심에만 빠져서
마냥 ‘고!’라고 하다가 판을 망치고, 손해를 많이 보지요.
또 어떤 경우는 항상 두려움과 조바심으로 한걸음만 딛고도
안전제일로 ‘스톱!’ ‘스톱!’을 외치지요.
‘고스톱’자체가 놀이 게임인데 그건 놀이 자체를 망치는 찬물이지요.
살아가는 판도 때론 비슷한 상황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죽자 살자 자기 욕심만 채울 수 있다면 무리한 일도 밀어붙여
심각한 낭패를 봅니다. 다른 사람들을 곤경에 빠지게도 하고...
또 자기생각, 자기주장만이 완벽한 진리라면서 원칙주의, 법대로 주의자처럼
다른 사람들을 몰아세우고 단죄하는 사람도 그와 비슷한 사람들입니다.
자기우월감을 만족시키는 욕심만으로 끝없이 칼을 휘두르지요. ‘고!’ ‘고!’라고...
많은 합리적 사고와 이성 감정을 존중하는 인간적인 사람들이 다칩니다.
다른 경우는 너무도 모험이나 불안을 감수하기 싫다는 이유로
돌다리를 무너질 때까지 두드리는 사람들입니다.
마침내 무너지면 ‘그것봐!’라고 합니다.
그래서 안 무너질 다리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늘 어려워 보이고 가능성은 낮아보여도 꿈과 바람을 이루기 위해
애쓰고 최선을 다해보자는 사람들을 주저앉힙니다.
비관론과 안전제일주의로 책임을 운운하면서,
조금만 강한 권력이나 협박을 하는 세력에는 무조건 물러나고 타협하고,
때론 희생양을 바치면서 자신들의 안전과 자리만을 지키려고 합니다.
믿음과 순교를 자랑하는 종교지도자들에게서조차 어렵지 않게 봅니다.
창씨개명과 단발령, 신사참배 때의 기독교 지도자들에게서도 그런 모습을 봅니다.
개인의 행동일 경우보다 집단의 행동으로 그럴 때는 많은 상처를 남깁니다.
오늘은 멀리 일산 국립암센터로 정기검사와 약을 타러 다녀왔습니다.
병원 안에 긴 시간을 머무르는 동안 여러 표정의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마치 아래 안전장치도 없이 높이 외줄을 메고 생사를 걸고 한걸음씩 걷는 듯
심각한 사람도 있고, 그럼에도 웃고 열심히 걷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왜 두렵지 않을까요, 왜 힘들고 무겁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주위사람들에게 사는 게 이유 있고,
더 나가 행복하다고까지 좋은 기운을 주는 사람도 있고,
좋은 치료와 보험혜택, 가족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오지도 않은 죽음의 허무와
교대로 오는 통증이 마치 종일 계속되는 것처럼 말해서 기운을 빼기도 합니다.
아내는 오늘도 예상치 못한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2년이 넘도록 검사를 가면 점심을 먹던 병원 구내식당에서 거부를 당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식사를 할 수 없습니다. 나가주시겠어요!”
“예?? 왜요?”
“소변주머니를 찬 분은 이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지 못합니다.”
“2년이 넘도록 한 번도 그러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규정이라 할 수 없습니다. 감염이 될지 몰라 규정으로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
결국 바깥에 있는 식당으로 갔습니다.
한 번 주눅들은 마음에 졸아서 타월로 휠체어를 덮어 소변주머니를 감추고...
주문을 해놓고 기다리는 동안 내내 굳어진 얼굴로 있던 아내는 결국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속상해..., 너무 화가 나, 못견디겠어...”
그래도 규정은 다른 환자들을 위해서 감염을 막기 위해서라니 어쩌겠어,
그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 참 영양가없는 위로를 하고 있다고 스스로 민망했지요.
그게 뭔 위로가 된다고...
그런데 더 비싸고 더 맛있는 점심을 먹고 기분을 풀자! 그랬지요.
그게 제 돈으로 사면서 그러면 아내가 기분이 풀릴까요?
자기 때문에 한푼이 아까운데 돈 쓰게 했다고 또 자책하며
오후 내내 심드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같은 환자이면서 아내를 ‘언니’라고 부르며 늘 위로를 주는 분이
문자 하나를 보내왔습니다.
‘오늘 일산병원가지요? 기름값하고 남는거 언니 맛있는거 사주세요!’라고,
그게 12시, 불과 사고터지기 30분 전입니다.
온갖 예상에 없던 일들이 몰려오고, 외줄위에 올라가서 줄타기를 하면서도
가끔은 하늘을 바라보며 평안해지고 새 기운도 얻습니다.
‘참 저 분도...’ 씨익 웃으며!
밤 10시, 잠도 오지않고 은행 통장정리기로 갔다왔습니다.
큰 아이가 국가장학금 신청한 게 아직도 미결이라 등록금 때문에
또 학자금대출을 신청했다고 해서 좀 보탤 수 있을려나 알아보느라,
그런데 통장을 찍으면서 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유리공주(의사선생님이 정해준 그 고마운 분 별명)님이 예상보다 많은
20만원이나 보내왔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하던 피아노학원을 접고 지금은 좋지도 않은 시력으로
십자수를 놓으면서 말 그대로 ‘눈빠지게’ 버는 돈입니다.
우리도 그걸 알지요. 가끔 올려주는 십자수 사진을 보니까요.
그 20만원은 여유있는 분들의 200만원보다 값진 돈입니다.
(너무 고마워서 부득히 액수를 밝힙니다)
그것도 제때에 마치 하나님의 심부름을 온 천사처럼 말입니다.
그분도 2년가까이 전신마비로 누워지내다 좋아진 분인데
우리를 지금의 병원으로 강요하다시피 권해서
이렇게 치료효과를 보게한 고마운 분입니다.
이러니 가끔씩 하늘을 보면 ‘고!’ ‘스톱!’을 외칩니다.
잘못된 실수로 하는 ‘고’와 ‘스톱’이 아니고,
절망을 딛고 눈물을 닦으면서 하나님나라로 ‘고!’라고~~
불안과 원망, 다 그만두자 속에서 속삭이는 나쁜 기운에게 ‘스톱!’이라고~~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과 한 판의 고스톱 판을 벌리고 놉니다.
하나님! 계속 ‘고, 고!’ 하세요! 지금 잘하시고 있어요~ ㅎㅎ
저는 ‘스톱!’ 욕심안부릴래요. 이 정도면 소심한 제겐 충분해요~~^^*
첫댓글 산다는건 끊임없이 고, 스톱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고 결과인것 같습니다. 희망으로님의 글을 읽노라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비단풀을말려서음료수처럼장복하시면좋을것입니다행복은감사함을알때배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