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섬의 늦가을 풍경들
춘천 근교에 있는 남이섬을 둘러봅니다
이곳에 온 지도 몇 년 되었네요
가을이 깊어서인지 오늘따라 조금은 썰렁한 기분이 듭니다
예전엔 동남아 등 아시아지역에서 그렇게 많이 찾아오던 곳인데...
내년 봄에나 기대하여야겠죠
남이섬은 고 민병도 선생이 1965년 한국은행 총재직을 그만두면서 퇴직금 전액을 투자하여
남이섬을 사들인 후 40년 동안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어 왔습니다.
경춘가도를 달리다가 반달 모양의 섬에 눈을 빼앗겨 섬을 사들인 후
전나무, 자작나무, 능수버들, 메타스퀘어 등 꾸준히 가꾸어 온 결과
지금은 커다란 나무로 자라서 보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합니다.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민병도 선생은 돌아가시기 10일 전 이곳 남이섬에 오셨습니다.
한류열풍으로 손님이 북적대는 남이섬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한 가지 있었는지 남이섬 사장에게 더듬더듬 한마디를 남겼다고 합니다.
섬 숲에 새가 많았으면 좋겠다. “ 더 이 상 개발하지 말고 꽃과 나무를 잘 가꾸라고”
그리고 세상을 뜨셨는데 돌아가신 후 화장하여 유골 반은 청주 선영에 모시고
나머지 반은 손때가 묻은 이곳 남이섬 숲에 봉분 없이 안치하였다고 합니다
“겨울연가” 촬영지로 유명해진 남이섬은" 나미나라 공화국"이라고도 하는데
전 세계 관광인들 에게 동화의 노래를 선물하는 이 세상의 유일무이한 상상 공화국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봄, 여름, 가을, 겨울 관광객이 끊이지 않습니다.
오늘의 젊은 세대들에게 좋은 휴식처를 남기고 떠나신 민병도 선생의 훌륭한
모습을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듯합니다
생각보다 관광객들이 많지않네요.
배편은 10~15분간격으로 운행되면 남이섬까지는 10분정도 걸립니다
민병도 선생동상
한국은행 총재를 하셨죠
산수유 열매가 아직도 있네요
남이장군묘
남이장군은 세종 23년 계유, 서기 1441년 출생하여
17세의 나이로 무과에 장원급제,
1467년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여 25세에 공조판서와 병조판서를 역임하다가
유자광의 모함으로 1468(예종 1년) 11월 2일 겨우 26세의 나이에
억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1818년 (순조 18년) 관직이 복구되었으며 시호는 忠武입니다
유명한 시가있죠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두만강물은 말을먹여 다없애니
사나이 20대에 나라를 평정치 않으면 누가 대장부라 하리오
추운데 모타보트를 타는 분도 있네요
요즘 공작새들은 겁도 없습니다
먹이를 주면 우르르 몰려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엄마와 아기 모습
대지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성장한 "위칭청" 선생은 흙(대지) 이라는 재료로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음
겨울연가 촬영지(첫키스를 한장소라고)
메타스콰이어도 이제 잎들이 바랬네요
마지막 단풍잎을 볼수있네요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은행나무잎도 다 떨어지고
매년 송파에서 은행나무잎을 가져와 뿌렸는데 이젠 그잎마져도...
호수가를 한바퀴 돌아봅니다
늦가을 남이섬은 쓸쓸 하네요
이제 11월도 1주일 남았네요
여기저기 떨어져 딩구는 낙엽을 보노라면 화려했던 가을은 이제 안녕을 고하려나 봅니다
"가을은 제 영혼의 색체를 드러내는 계절" 이라고 하지요
낙엽의 숨겨진 화려함이 드러내듯...
우리들의 삶의 시간들도 단풍처럼.... 노을처럼..
그렇게 아름다울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첫댓글 수십년 전 추억이 아른아른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