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징 시볜먼 뒤쪽에 위치한 도교 사당인 백운관 재신전의 관우 소상 앞에서 한 중국 방문객이 절을 하면서 복을 빌고 있다. 베이징/하성봉 특파원
베이징 서쪽 서베이징역 시볜먼 뒤쪽 도교 사당인 백운관내 재신전에는 삼국지의 주인공인 관우 신이 모셔져 있다. 사람들은 재신관에 들어서면 왼쪽에 모셔진 긴 수염의 관우 신 앞으로 다가가 향을 피우고 절을 올리면서 복을 빈다. 서울시 한복판인 종로구 숭인동 동묘에도 관우 신이 있다. 아담한 공간에 동네 할아버지들이 한가롭게 낮잠도 즐기고 환담도 나누는 곳이다. 관우 신이 베이징과 서울이란 공간을 뛰어넘어 아직껏 공존하는 것은 약 400년 전 명나라와 조선의 `항일 연합작전'에서 비롯됐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명군이 참전하면서 양국간 교류는 급물살을 탄다. 명군은 1598년 관왕묘(관우 사당) 건립을 요구해 당시 남대문 밖 도동에 남관왕묘가 세워졌고, 명군의 강요로 왕이 직접 분향·제배 의식을 했다. 선조는 1602년 동대문 부근에 동관왕묘를 세워 관우를 조선군의 보호신으로 모셨다. 그것이 동묘의 유래다.

△ 중국인들이 일상적으로 집안에 붙여 놓고 복을 비는 관우 화상. 왼쪽이 유비, 오른쪽이 장비 모습이다.
선조는 명군들이 관우 신을 영험이 있는 군신으로 숭배하는 것을 보고 전란으로 황폐해진 군기를 바로잡기 위해 동묘를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광해군 이후 조선에 온 명의 사신이나 관리들이 관왕묘를 방문하는 것은 일종의 관례가 됐다. 또 영조는 1739년 친히 관왕묘에 들러 재배하고 신상에 용포를 새로 만들어 입혔다.
관우 신은 중국에서 도교와 민간신앙의 신선이 돼 있는데, 처음엔 군신으로 숭배되다 재물신이 됐다. 진수의 <삼국지>에 등장하는 관우는 동한 말에 태어나 유비·장비와 함께 병사를 일으켜 `충과 의'로 유비의 촉국 건설을 도운 명장이다. 관우의 명성은 송나라 때 관우의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는 민간인들이 많아져 황제가 관우를 `현열왕' `의용무안왕'에 봉하면서 높아지기 시작해 원나라 말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가 나오면서 하늘을 찔렀다.
명나라 때 관우는 `협천호국충의제' `삼계복마대제' 등에 봉해지며, 청 황제가 `충의신무령우인용위현호국보민정성완정익찬선덕관성대제'라는 26자에 달하는 긴 관명을 내리면서 황제와 동등한 `관제'로 지위가 격상한다. 중국 사람들은 관제가 천하무적의 무신으로 적토마를 타고 이승저승을 넘나들며 영험과 재물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믿고 있다. 조조가 관우의 꿈에 시달리며 죽고, 관우를 공격했던 오 장군 여몽도 이후 병사했다는 소설 내용은 민간인들의 기복 신앙심을 더욱 자극했다.
중국에서는 춘절(설날)을 포함해 일상적으로 관우 화상을 벽에 붙여 놓고 예를 올리는데, 이때 `청해서 모셔온다'고 말할 정도로 숭배하고 있다. 예전에 관제묘는 마을마다 세워져 셀 수도 없었으나, 문화혁명 때 대부분 파괴됐다. 베이징 북해공원 맞은편 시다먼제에 있는 백마 관제묘도 황색 기와를 덮은 지붕만이 남아 있다. 베이징에는 융허궁 등 10여군데에 관제묘가 남아 있으나 대부분이 청대에 재건축된 것으로 명대에 세워진 관제묘는 볼 수 없다.
조선 사신들은 중국방문 뒤 관제묘와 관련된 많은 기록을 남겼는데, 이는 중국의 관제묘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됐다. 조선학자 김창업(1658~1721)은 `노가재연행일기'에서 “집집마다 관제화상을 받들어 모시고,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향을 피우네”라고 적었다. 박지원은 `열하일기'에 “천하 어디를 가나 관제묘가 있네, 궁핍한 변방과 몇가구뿐인 작은 마을에도 아름다운 관제묘가 세워져 있다네”라고 기록했다. 박지원은 천단공원 부근의 관제묘를 방문했는데, 그곳은 지금 중학교로 변했으며 교정안에 약옥묘 만이 보존돼 있다.
한국에는 종로구 동묘 이외에 남원, 안동, 성주와 충북 영동 당곡리 등에도 관제묘가 존재했으나 지금은 본래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 <끝>
베이징/하성봉 특파원sbha@hani.co.kr
“원형보존된 중 문화재…관광상품 활용해야”
한반도와 중국의 오랜 교류 속에서 양국은 서로 문화와 영향력을 주고받았다. 한반도의 많은 역사적 흔적들이 중국대륙에 역사의 회한을 안은 채 여기저기 남아 있으며, 우리 땅에도 중국의 역사적 자취들이 많이 남겨져 있다. 어떤 것은 자랑스러운 역사로, 또 어떤 것은 부끄러운 역사의 흔적으로 남았다.
중국에 흩어져 있는 우리 유적들은 한국인들이 중국을 찾게 만드는 매우 매력적인 요소다. 중국 정부는 한국 관련 유적지들을 열심히 개발해 한국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관제 숭배는 중국의 전통문화중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역사상 중국 대륙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각종각양의 관제묘가 세워졌으며, 해외에 화교들이 살고있는 곳에도 빠짐없이 관제묘들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현재 중국에 많은 관제묘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역사의 변천속에서 중국정부의 문화재에 대한 무관심과 관리소홀로 많은 유적들이 보존되지 못하고 훼손됐다.
400년 전에 세워진 서울의 동묘처럼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관제묘는 찾기가 쉽지 않다. 베이징을 보더라도 현재 관제묘의 유적이 십여곳에 이르지만 명대에 세워진 것들은 원래의 모양새를 이미 잃어버렸으며, 모두 청대 이후에 재건축된 것들이다. 베이징의 관제묘들을 서울의 동묘와 비교해 본다면, 동묘는 가장 오래됐을 뿐 아니라 완전한 원형으로 보존된 관제묘라고 할 수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크다. 즉 중국 관우 숭배의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국의 동묘를 방문해야 한다고 봐도 된다. 귀중한 중국의 `유산'이 한국에 보존돼 있는 셈이다.
2002년은 한중수교 10주년을 맞는 해다. 92년 8월 양국이 정식 외교관계를 맺은뒤 정치·경제·문화 등 각 방면에서 밀접한 관련을 맺고 급속하게 교류가 증가하고 있다. 중국인의 해외관광이 자유화되면서 많은 중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을 방문한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서울시 한복판에 위치한 동묘 관우묘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다. 중국 관광객들에게 동묘는 필히 참관하고 싶은 유적지가 될 것이며, 세계 각처에 흩어져 있는 화교들에게도 매우 흥미로운 역사탐방이 될 것이다. 동묘를 비롯한 전국에 있는 관제묘를 관광상품으로 개발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김성남 중앙민족대 소수민족연구중심 초빙교수cheng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