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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조선,부여,발해 등 고대사토론방 Re:이종욱 교수 관련 이야기 빠진게 있는데..
소호금천씨 추천 0 조회 277 08.02.28 12:21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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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2.28 13:15

    첫댓글 마지막 말씀이 옳습니다. 이종욱 교수님이 직접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여부가 분명해야 비판도 가능한 것이죠. "발해를 한국사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학문적 자유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신라사를 드높이기 위한 발해사 까기(표현이 좀 그렇지만..) 여서는 곤란할 것입니다. 발해가 한국사이든 아니든, 발해 자체의 의미가 따로 있다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되겠지요.... 즉 다시 말해 이종욱 교수가 신라에 대해 애착을 갖고 연구한다면, 발해에 대해서도 냉정한 시각을 가져야 하고, 그럴 때 신라에 대해서도 보다 올바른 평가가 가능해진다는 것을 인식해야한다는 것입니다.

  • 작성자 08.02.28 13:28

    신농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저 또한 님의 견해와 동일 합니다

  • 08.04.04 14:16

    몇가지 더 있습니다. 신-구당서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는 모두 동이열전에 포함되지만, 발해,말갈의 경우는 동이가 아니라 북적열전에 들어가있습니다. 주목할 부분은 고구려는 동이이고, 발해와 말갈이 북적이라는 구분에 있는데, 이종욱씨는 이것을 근거로 당대인들의 인식에서는 발해와 고구려가 이질적이어서,그 둘이 별개로 취급되었다고 저술하셨죠.

  • 08.04.04 18:59

    일단 중국인들의 인식을 1차적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됩니다(그리고 당나라 사람들은 발해를 무조건 말갈로 보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당사자인 발해인들의 인식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러나 당나라의 기록도 분명 어떤 의미는 있을 것으로 봅니다. 예전에 어떤 분의 지적에 의하면, 구당서 이전의 사서들에서는 말갈이 동이전에 있었는데, 구당서에서 북적전으로 기록되며 생활 방식에서도 차이를 보인다고 하셨는데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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