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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아이를 돌보는 일과 내 것을 만드는 일 사이에서
시도하고 실패하고 성장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여성의 돌봄과 여성의 일은 어떤 관계일까? 둘은 정말 서로를 방해하기만 하나? 이 관계에 대해 우리는 조금 더 깊이, 조금 더 복잡하게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이 책에 실린 열한 편의 글과 그림은 각각의 필자들이 자신의 작업에 집중하는 것과 주변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것 사이에서 고유한 방식으로 적응해온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시나리오 작가 정서경, 소설가 서유미, 아티스트 전유진, 번역가 홍한별, 입양 지원 실천가 이설아, 과학기술학 연구자 임소연과 장하원, 미술사 연구자 박재연, 인터뷰어 엄지혜, 편집자 김희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이자 엄마라는 정체성을 또렷하게 의식하며 작업해온 이들이 참여했다.
여성이 일과 돌봄을 양립시키는 방법, 어려움, 보람,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감정과 생각뿐 아니라 일과 창조적인 작업, 돌봄이 서로 복잡하게 침범하고 상호작용하는 측면을 섬세하고 정교하게 기록했다. 구체적인 기록들이 돌봄을 통해 변화하고 성장하는 사람들의 상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만들어주리라 믿는다.
📜 목차
· 서수연 | illustration
· editor’s note | 돌보며 읽고 쓰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존중과 응원의 말
· 정서경 | 진짜가 아닌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다
· 서유미 | 손을 잡고 걸어가는 일
· 홍한별 | 아이를 버리고 도망쳤던 기억
· 임소연 |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존재들과 살아가기
· 장하원 | 지식에 대한 생각을 바꾼 양육
· 전유진 | 사라지는 마법으로 사라지지 않기
· 박재연 | 여러 세계를 연결하며 살아가기
· 엄지혜 | 돌봄 노동을 대하는 태도가 말해주는 것
· 이설아 |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 서로를 끌어안을 때
· 김희진 | 양육 간증: 나를 잃었다 찾은 이야기
📖 책 속으로
· 정서경 | 진짜가 아닌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다
- 정말로 아이에게 모든 것을 내주었다. 자고, 먹고, 씻고, 친구를 만나고, 영화를 보고, 거울을 보는 나 자신. 아이를 재우고 기진맥진해진 밤이면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가슴이 느껴졌다. 돌아보면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중요하지 않은 쓰고 싶지 않았다. 진짜 사랑이 아닌 것은 쓰고 싶지 않았다.
--- pp.42~43
· 서유미 | 손을 잡고 걸어가는 일
- 공원의 벤치에 앉아 하늘과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어떤 시기에도 아이는 자란다는 것과 어떤 일도 결국에는 지나가리라는 사실만이 희미한 위안이 되었다.
--- p.53
- 아이를 낳은 뒤 나는 줄곧 어떤 방향의 생각 쪽으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것은 대부분 후회와 관련된 것이었고 들여다보면 검게 출렁였다. 시간이 많았다면 소설을 더 잘 쓰지 않았을까, 돌아보는 게 대표적이었는데 그 생각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텼던 건 그게 진실이 아니라는 걸 내가 더 잘 알았기 때문이다.
--- p.55
· 홍한별 | 아이를 버리고 도망쳤던 기억
- 베이비시터가 놀이터에서 아이의 주의를 끄는 동안 나는 몰래 도망쳤다. 아이를 울리지 않으려고 속였다. 아이가 울면 다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면서 일을 하는 게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몰래 도망쳤다.
--- p.69
- 내가 우는 아기를 베이비시터에게 맡기고 도망친 적이 있으니까. 내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아이를 외할머니집으로 보내버린 적이 있으니까. 어린이집에서 아침에 울고불고하는 아이를 두고 사정없이 돌아 나온 적이 있으니까. 그렇게 내가 내 아이를 무수히 버렸으니까. 세상 모든 엄마는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아이들은 모두 가엾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자라서 된 모든 어른, 한때 아이였던 사람도 모두 가엾다. 세상의 모든 여리고 약한 자들, 아이, 노인, 소수자, 장애인, 빈민, 외국인, 난민은 가엾다.
--- pp.74~75
· 임소연 |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존재들과 살아가기
- 임신 중 매일매일의 성취감도 컸다. 나는 그저 매일 먹는 세 끼를 먹을 뿐인데 배 속의 아이가 쑥쑥 커갔다. 임신 중에 큰 어려움이 없었던 나에게는 임신 기간이 내 연구를 하면서 동시에 다른 일을 하는, 효율성 두 배의 시간이었다. 성취감, 한 생명을 잉태한다는 것은 나같이 성취감에 미친 여자한테는 최고의 일이었다. 와, 남자들은 이걸 모른단 말이지? 이 존재의 충만함을 모른다는 거지? 내 몸 안에서 다른 한 인간이 만들어지는 이 감각을 전혀 모른다는 거지? 내 안의 이 엄청난 생명력과 역동적인 힘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거지?
--- p.81
· 장하원 | 지식에 대한 생각을 바꾼 양육
- 아이의 개성을 지켜주는 것과 아이의 일탈을 교정하는 것 사이에서 보호자들은 종종 망설이지만 그때그때 결정을 내리고 그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동원되는 과학적 지식과 옆집 엄마의 노하우는 충돌하고, 소아정신의학에서 주양육자에게 요구하는 책임과 한국사회가 주문하는 이상적인 어머니상은 모순된다. 이런 분열 속에서 많은 엄마들은 꿋꿋하게 아이의 몸과 마음을 보조하고, 아이를 더 잘 돌보기 위해 갖가지 지식과 정보를 체화하고, 민감하면서도 정서적으로 안정된 엄마가 되기 위해 마음을 추스른다. 그렇게 돌보는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엄마가 된다.
--- pp.110~111
· 전유진 | 사라지는 마법으로 사라지지 않기
- 출산과 육아를 하는 것에 관해 당사자가 아니면 그 어떤 말도 보태지 말자, 마치 무소불위의 권력처럼 생각하자는 말이 아니다. 육아란 스스로조차 납득하기 어려운 변화의 과정이며, 때로는 그 선택을 후회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선택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과정이라는 사실에 대해 최소한의 사회적 공감을 원한다.
--- p.129
· 박재연 | 여러 세계를 연결하며 살아가기
- 걸핏하면 불쑥 고개를 들어 나를 좀먹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것이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법도 조금씩 배워간다. 밥을 지으면서도 글을 지을 수 있음을, 돌봄의 영역 바깥에서 나를 실현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사실과 어긋나는 것이 아님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 p.146
· 엄지혜 | 돌봄 노동을 대하는 태도가 말해주는 것
- 부모가 되기 전이었다면 스쳐 지나쳤을 말들이 마음속에 수시로 박혔다. 인터뷰이가 부모인 경우, 양육에 관한 질문을 빼놓지 않았다. 공감의 진폭은 저절로 커졌다. [……]부모가 된 후, 나의 시선은 생활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들에게 집중됐다. 타인에게 더 친절한 사람, 여유가 있는 사람, 젠체하지 않는 사람은 누군가를 돌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 pp.157~160
· 이설아 |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 서로를 끌어안을 때
- 생물학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낯선 타인들이 만나 가족이 되는 건 미디어에서 보는 것처럼 아름답기만 한 일도, 쉬운 일도 아니다. 한 아이를 품기까지 거치는 수많은 감정적 혼란, 인식의 변화, 끝도 없는 기다림의 시간은 상상 이상의 인내와 헌신을 요구한다.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쓰며 헌신하는 일은 자신을 먼저 건강히 돌보는 시간이 없다면 견뎌내기 힘든 과정이다. 아름답고 선한 일이라는 핑크빛 꿈만으로는 절대 완주할 수 없는 길, 평생 나와 우리 가족, 내 삶으로 들어온 아이와 아이 뒤에 연결된 모든 인연을 돌보는 여정이 입양이다. 그래서 나는 부지런히 이 생태계를 오간다. 홀로 가면 안 되는 이 길의 길목을 지키는 중이다.
--- p.172
· 김희진 | 양육 간증: 나를 잃었다 찾은 이야기
- 어느 날 주변을 둘러보니 이런 여자들이 보였다. 어떻게 해서든 사회에서 내 몫 이상을 해내려는 여자들. 마치 늘 쓸모를 증명해야 존재할 수 있다는 듯이 그렇게 계속해서 자기를 몰아붙이는 여자들. 예전엔 그냥 대체로 여자들이 더 근성 있고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어서 그런 건 줄 알았다. [……]그 여자들에게도 꼭 말해주고 싶다. 증명하지 않아도, 입증하지 않아도, 논리적으로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다. 당신들이 태어나 자라면서 가정과 사회에서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충분히 수용받았다면, 당신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권리감 있는 인간들이 되었을 거라고. 그렇게 해서 열심 끝에 마주하는 결말이 번아웃이 아니라 창조적인 삶이 되었을 거라고 말이다.
--- pp.187~188
🖋 출판사 서평
열한 명의 필자들이 열한 가지 색깔로 드러내는,
다양하고 복잡한 돌봄과 작업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서로 다른 분야에 종사하고 다양한 조건에서 양육을 하는 여성들이 참여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모두 ‘엄마됨’, ‘양육’, ‘모성’ 같은 오해받기 쉬운 주제에 대해 용기 있게 발언하거나 표현해온 매력적인 필자들이다. 물론 독특한 방식으로 자기 작업을 지속해오고 있는 필자들이기도 하다. 외동을 키우거나 아이 셋을 키우거나, 직접 낳았거나 입양을 했거나, 아이가 어리거나 크거나, 아이의 기질이 예민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베이비시터의 도움을 받거나 조부모의 도움을 받거나 아무 도움도 못 받거나, 파트너와의 관계가 협조적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풀타임 직장에 다니거나 프리랜서로 일을 하거나,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결혼과 출산에 익숙한 문화에서 자랐거나 그렇지 않거나, 아이 먹거리나 교육에 힘을 쓰거나 그렇지 않거나, 양육서를 읽거나 읽지 않거나. 열한 명의 필자들은 이 다양한 변수들을 통과해 나름의 선택을 하고 또 그 선택에 대해 나름의 책임을 지는 과정을 공유한다.
이 책은 돌보면서 작업을 할 때 어떤 방식이 효과적인지 혹은 올바른지 따지지 않는다. 열한 명의 필자들이 돌보면서 작업하는 방식은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많은 필자들이 고백하듯 한 사람의 선택 안에서도 일관성보다는 모순이 두드러질 때가 많다. 가령 우리는 엄마들에게 너무 쉽게 모순적이거나 과도한 요구를 하는 양육 지침 때문에 상처받고 자책하고 분노하지만, 또 누구보다 열심히 그런 지침들을 수집하고 시도해보기도 한다. 또 아이의 교육 문제라는 예민한 주제에서는 어디까지가 아이의 개성을 함양시킬 지원이며, 어디부터가 과도한 개입인지에 대해서도 저마다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른 방식으로 책임진다. 또 아이와 물리적으로 오랜 시간 붙어 있는 것과 아이와 잘 분리해 떨어져 지내는 것 사이에서도 양육과 작업을 지속시키기 위한 각자의 방침은 다양하고 복잡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 양육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언어들은 지나치게 명료하고 단호하고 해맑고 건전하고 평가적이다. 이런 언어들을 훨씬 더 복잡하고 구체적으로 만드는 것, 가치판단의 언어가 아니라 관찰과 숙고의 언어로 만드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여성에 대한, 여성의 출산과 양육에 대한 사회와 전통과 과학과 자연의 요구가 얼마나 모순으로 점철되어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모든 사소하고 하찮은 모성적, 양육적 선택에도 엄마들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마디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유사한 상황이 반복된다고 해서 항상 같은 선택을 할 수도 없다. 이렇게 정답이 너무 많고 늘 바뀌는 상태에서 현대의 양육자들은 오히려 끝없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내면의 소리를 듣고 가장 어두운 욕망까지도 직시할 수밖에 없다. 쉽게 많은 것들을 판단하고 가르치려고 드는 ‘엄마됨’에 관한 언어들 사이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데에는 큰 부담이 따른다. 하지만 열한 명의 필자들은 모두 정직하고 용감하게 가장 내밀한 이야기들을 공유해준다.
읽고 쓰고 만드는 여자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존중과 응원의 말들
돌봄과 작업이 서로 경쟁하거나 협력하기만 하는 잘 구획된 삶의 측면일 리는 없다. 돌봄과 작업은 서로 뒤섞인 채로 닥쳐온다. 이 책에서는 ‘돌봄’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양육과 여성에 대한 단순화된 언어들을 피하고자 한 것처럼, ‘작업’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직업, 일에 대한 통념을 피하고자 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을 읽다 보면 각각의 필자들이 지금 왜 그 일을 하고 있고 어떤 마음으로 하고 있는지가 은연중에 드러난다. 이런 이야기들이 쌓여서 직업, 몰입과 창조성과 성취에 대한 새로운 모델들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작업’이라고 함으로써 일의 창조적인 측면이 조금 더 강조되기를 바랐지만, 창조적인 일을 순수한 예술의 영역에 가두지는 않았다. 연구든 예술이든, 다른 종류의 글쓰기든, 번역이든 인터뷰든 상담이든, 혹은 아직 이름이 없는 어떤 일이든 모두 창조적인 과업의 범주에 속한다고 믿는다. 작업이란 외부의 잣대나 규정과 무관하게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하는 일이다. (조금 겹칠 수도 있지만) 취미와도 다르고 직업과도 다르다.
이런 주제로 단순히 유명인들의 직업적 성취를 자랑하는 홍보물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읽힐 만한 출간물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 책을 기다리는 독자들이 있으리라는 확신 덕분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은 대체로 자신의 일을 양육만큼이나 소중한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구를 지니게 된다. 양육을 기점으로 하던 일을 그만두거나 다른 업으로 바꾸는 경우도 많다.(물론 양육이 시간과 체력 등의 자원을 엄청나게 잡아먹는 활동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양육에는 그런 힘이 있다. 하염없이 아이가 집중하는 모습을 관찰하며 기다리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러는 사이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포기하게 만들고 또 나에게 더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숙고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렇게 온전히 나의 욕망(욕심), 나의 자원, 나의 곤란에 집중하다 보면 이전보다는 더 명료하게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책은 그런 과정에 있는 이들을 응원하기 위한 책이다.
이렇게나 다르지만 이렇게나 공감이 가는,
웃기다가 슬프다가 아름답다가 서늘한 이야기들
이 책에 실린 다양한 이야기들은 앞서 말한 대로 모두 다르고 때로 모순되는 것처럼 읽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할 정도로 모두 내 이야기처럼 읽힌다. “그 어떤 경우에도 아이들이 있어서 행복”했지만 “사람은 너무 비싼 걸 사면 대체로 만족스럽다는 후기를 남긴다던데 어쩌면 난 아이들을 키우는 데 너무 많은 걸 투자했는지도 모른다.”고 쓴 정서경의 사실과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 자조적 고백도, “열 살 된 아이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그 속에 좀 더 어린 아이, 그보다 더 어린 아이가 들어 있을 것 같다.”는 서유미의 정확한 비유도 양육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다.
“동네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놀이터에 데리고 나온 아기들이나 책가방 메고 초등학교에 가는 아이들을 마주치면 예전처럼 '귀엽다'는 감정이 아니라 '가엾다'는 감정이 먼저 든다.”며 아이에게서 도망친 기억을 들려준 홍한별의 이야기는 돌봄의 마음이 어떻게 더 넓은 연대로 확장될 수 있는지 의외의 방향에서 드러낸다. “한 인간을 잉태해서 키워내는 수많은 여자들의 말씀이 포함되지 않은 철학은 아무리 고상해도, 아니 고상할수록 더더욱 ‘다 무효다!’라고 외치고 싶다.”는 임소연의 씩씩한 선언은 이 책의 출판 가치를 웅변해주는 듯하다. “인류의 수많은 여자들이 이 일을 해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양육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끊임없이 이야기되어야 한다.”
한편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여 성공에 이르는 영웅담은 육아에 어울리지 않는다. 육아의 서사는 그리 단순하지 않으며 단순해서도 안 된다. 그런 맥락에서 일과 육아에 모두 성공했다는 알파 우먼에 대한 기사를 그만 보고 싶다. 아무리 사연을 미화해도 그 삶에 있었을 온갖 고통이 다 읽혀 괴롭다.”는 전유진의 속 시원한 일갈도 이 책이 예민하게 살피려고 했던 대목을 콕 짚어준다. 여기에 실린 이야기들은 슈퍼맘, 알파우먼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힘들다는 응석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가 이렇게 잘 해냈다는 자랑도 아니다. 돌봄과 작업을 각자의 방식으로 배치하는 와중에 어떤 다양한 어려움과 곤란들이 있고 어떤 다양한 선택이 가능한지, 또 그 와중에 어떤 다양한 느낌과 생각들이 오가는지 구체적으로 기록한 책이다. 대표성을 띈다기보다는 영감을 주는 쪽이다.
“완벽한 부모야말로 최고의 재앙”이라는 말에 안도로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엄지혜처럼 우리는 완벽과는 거리가 한참 멀지만("걸핏하면 불쑥 고개를 들어 나를 좀먹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것이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법도 조금씩 배워간다."라는 박재연의 말이나 “타협만이 살 길이다!”라는 주문에 가까운 임소연의 말도 같은 맥락이다.)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는 상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상실을 받아들이느라 아파하는 아이 곁을 지키려니 20년 가까이 잠재워두었던, 충분한 애도를 끝내지 못한 상실이 꿈틀대기 시작”했고 “아이들과 몇 년에 걸쳐 함께 울고, 조금 가벼워진 마음을 나누고, 삶을 긍정하게 되는 과정을 함께하면서 이전보다 더 강건한 어른이 되었다.”는 이설아의 말처럼 돌봄의 과정에서 우리가 부쩍 성장해 어른이 되어왔다는 것은 확고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