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차 / 노혜숙
새벽 첫차를 탔다. 생애 처음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다. 좌석은 안락했고 기차 안은 차분한 수런거림으로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다. 레일 위를 힘차게 달려가는 바퀴 소리를 들으며 나는 두고 온 것들을 잠시 잊기로 했다. 기차는 순식간에 떠나온 자리를 지우고 푸른 새벽빛 속을 질주했다.
군데군데 기차가 설 때마다 몇 사람이 타고 내렸지만,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옆 좌석은 빈자리로 남아 있었다. 아무도 의식할 필요 없는 자유로움 속에서 나는 혼자 떠난 여행의 달곰쌉쌀한 맛을 곱씹어가며 즐겼다. 차창에 비친 제 얼굴에 빙긋 미소를 던져주며 미지의 세계로 첫발을 내디딘 자신을 격려했다.
살면서 나는 한 번도 내 틀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사는 일에 급급하기도 했지만, 틀을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다. 누구도 그 틀을 강요한 적은 없었다. 그것이 합리적인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운명처럼 주어진 여자의 역할에 순응함으로써 갑옷처럼 그 틀을 두르고 살았다.
그 틀이 갑갑해지기 시작했다. 그 느낌은 여성 주체성에 대한 자각과 더불어 강렬하게 나를 충동질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회의가 왔다. 이따금 일탈을 꿈꿨다. 목적지가 어디든 중요하지 않았다. 내 자유의지대로 한 번 떠나보는 것, 그것이면 족했다. 그 하루만큼은 온전히 나를 위해 바치고 싶었다. 누구의 그 무엇도 아닌 오롯이 나로서 존재하고 싶었다. 마흔두 살 초가을, 바람난 여인처럼 나는 살그머니 집을 나와 경주로 가는 새벽 첫차를 탔다.
불국사로 가는 버스 안에서 듣는 경상도 사투리는 활기에 넘쳤다. 건조하고 까칠한 도시 억양에 비해 사람 냄새가 났다. 길을 묻는 낯선 여인의 질문에도 버스 기사의 대답은 자상하고 친절했다. 막차로 돌아가야 한다는 내 말에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하루 안에 방문할 만한 곳들을 차근차근 일러주었다.
나는 역사 유적에 깊은 관심이 없었다. 그 가치와 의미에 어렴풋하게나마 눈을 뜨게 된 건 유홍준의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덕분이었다. 하찮아 보이는 돌탑도 유심히 들여다보고 무심해 보이는 바위의 깊이를 헤아리는 버릇이 생긴 것도 그 무렵이었다. 유적이 많은 경주를 선택하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닐 터였다. 나는 불국사 대석단 앞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다. 깎거나 다듬지 않은 제각각의 돌들이 서로 받쳐주고 기대면서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굳이 끼워 맞춘다고 깎이고 일그러지지 않아도 저리 편안하고 아름다운 것을…. 울컥 목이 메었다.
딱히 관광이 목적은 아니었기 때문에 걷고 싶으면 걷고 쉬고 싶으면 쉬었다. 내가 먹고 싶은 대로 먹고 내가 가고 싶은 대로 갔다. 석굴암을 내려오다 그늘 좋은 나무 아래 여래처럼 앉아 눈을 감고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기도 했다. 언제나 '우리' 중심이었고 '나'를 챙길 겨를이 없는 삶이었다. 보통 사람들의 삶이 대부분 그렇긴 했다. 그것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풍토에서 나만을 위해 몰래 떠난 여행은 떳떳지 않았다. 막상 저질러보니 내겐 높은 장벽인 일탈이 어떤 이에겐 일상에 지나지 않음도 알았다. 그러나 내겐 단순한 하루 여행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자기 의지를 좇아 떠난 첫 항해였던 것이다.
시장기처럼 외로움이 밀려왔다. 나도 모르게 번데기를 파는 아주머니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싱겁게 묻지도 않는 날씨 이야기와 가족 이야기를 꺼냈다. 아주머니는 여자 혼자 경주까지 온 이유를 궁금해했다. 실연이라도 했느냐며 흘끔 표정을 살폈다. 곧이곧대로 자유의지 행사를 위해 무작정 떠난 여행이라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대뜸 세상 물정 모르는 여자의 푸념이라고 훈수를 둘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나를 위해 유일하게 시도해 본 존재의 몸짓이었대도 세상은 그리 고운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 것 같았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기 위해 인도로 떠난 어느 작가의 자전적 소설을 떠올렸다. 그에게 그보다 절실한 문제는 없었다. 십 년 넘게 어둠 속을 헤매다 구원처럼 그가 발견한 가치는 엉뚱하게도 고통이었다.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삶의 기쁨은 고통 위에서 피어난다.'는 결론이었다. 고통이란 자양분 없이 그 어느 것도 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 확인은 서늘했다. 어쩌면 나의 하루 일탈 역시 그 고통을 삶의 실체로 받아들이기 위한 반항일지 몰랐다. 터득한 게 있다면 틀의 구속과 안정이라는 양면성에 대한 균형이었다.
그날따라 늦게 귀가한 남편은 나의 일탈을 눈치채지 못했고, 머리 굵은 아이들은 엄마의 늦은 귀가에 관심이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나 역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의 틀에 다시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끼워 넣었다. 마흔두 살 그 가을 이후, 틀의 한 귀퉁이를 허물었다. 그리고 아주 이따금 그 틀을 벗어나 당당하게 새벽 첫차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