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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명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설교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wVOc0TDknw
빌립보서 1장 27~30절에 “다만 복음에 합당하게 시민으로 삶을 살라 너희가 하나의 영(spirit) 안에 서 있고 그 복음의 믿음에 함께 경쟁하고. 아무것 안에도 반대하는 자들에 의해 놀라지 아니하기를 듣기 위해서라, 그들에게 멸망의 증명이나 너희의 구원의 그것이고, 하나님에서부터라. 너희에게 크리스트를 위하여 은혜를 베풂을 받았기 [때문이며, 다만 그 안으로 믿기만 아니나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을 받기 안으로라. 내 안에서 보고 듣는 것 같은 바로 그 싸움을 너희가 가지고 있노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1장 27절~2장 18절은 복음에 합당한 공동체 생활에 관한 것입니다.1)
성경의 장을 나눌 때 1장 27절부터 새로운 장으로 나눴어야 했습니다. 1장 27절부터 새로운 내용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부속 단락 셋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2)
1장 27절~2장 4절은 ‘크리스천의 시민권으로 인한 의무’입니다.3)
2장 5~11절은 ‘겸손의 모범인 크리스트의 행위에 관한 서술’입니다.4)
2장 12~18절은 ‘크리스천의 순종에 관한 결론적인 권면’입니다.5)
파울은 공동체 전체를 상대로 훈시하는 방향으로 전환합니다.6) 여기서 이 서신의 내용이 파울 자신과 자신의 상황에 대한 묘사로부터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에 대한 호소로 옮겨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두가 언제나 기묘하고도 놀라운 논리적인 순서를 따르고 있습니다.7)
1. 우리는 복음에 합당하게 시민으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1장 27~28절에 “다만 복음에 합당하게 시민으로 삶을 살라 너희가 하나의 영(spirit) 안에 서 있고 그 복음의 믿음에 함께 경쟁하고. 아무것 안에도 반대하는 자들에 의해 놀라지 아니하기를 듣기 위해서라, 그들에게 멸망의 증명이나 너희의 구원의 그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파울은 언제나 교리를 진술한 뒤에 실제적인 권면으로 이어집니다.8) 초대 신자들은 가는 곳마다 삶과 증언으로 복음을 전도하였습니다.9)
크리스트의 복음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권면은 전혀 소용없습니다.10) 그러므로 믿는 일이 필요하고, 그 후에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크리스트의 복음에 합당하게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11) 그의 목표는 다만 크리스트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입니다.12)
“시민으로 삶을 살다(conduct oneself)”라는 헬라어는 “행동하다”, “거동하다”, “처신하다”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 복음에 합당하게 행동하고 거동하고 처신하여야 합니다.13) 파울은 여기에 정치적, 군사적 용어 및 운동경기의 용어를 씁니다.14)
크리스천인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의 시민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15) 도시는 최고의 선에 이르게 할 목적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협동체였고, 시민은 협력 가운데 자신의 재능을 기르고 잠재력을 자각하였습니다.16)
크리스트의 복음에 합당하게 시민으로 삶을 살라고 그는 말합니다.17) 파울은 본문에서 영(spirit)과 영혼의 연합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18)
우리는 세상 왕국의 일들보다는 천국에 일들을 추구하여야 합니다.19) 우리가 서 있으려면 복음에 합당하게 행동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20) 우리는 이러한 믿음을 위해서 싸우고 그것을 확신하여야만 합니다.21)
루카복음 12장 4~5절에 “내가 너희에게 나의 친구들에게 말하나니, 몸을 죽이고 더 많은 것을 행할 수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나. 지옥에 던져 넣게 권위를 가지는 자를 두려워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크리스천이라는 이유로 이런 싸움을 직면하고 있는 자가 있다면, 그는 믿음의 선조들이 치렀었던 위대한 싸움의 계승자가 되었습니다.22)
전투적인 용어들 및 운동경기에 쓰이는 용어들이 나오고 있습니다.23) 혼자씩이 아니라 한 팀을 이루어 경쟁한다는 뜻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미식축구 선수들의 경기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실감 나게 이해됩니다.24) 함께 경쟁하는 것은 한마음으로 뭉친 운동선수의 모습을 뜻합니다.25)
아무것 안에 반대하는 자들에 의해 놀라지 아니하기를 듣기 위해서며, 그들에게 멸망의 증명이나 우리의 구원의 증명입니다(빌 1:28).
서로 일치단결하여 투쟁하는 크리스천들의 전체적인 협력을 통해서만 복음이 반대자들에 의해 왜곡되는 것을 면하고 보전할 수 있습니다.26)
그러나 우리는 아무것도 그 반대자들에 의해 놀라지 아니하여야 하며, 반대하는 자들이 있어도 우리는 그들에 의해 놀라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28절 가운데 “이것”(which)은 27절 끝의 “그 믿음”을 가리킵니다.27) 그 믿음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명이나 우리에게는 구원의 증명이고, 이것이 하나님에서부터입니다(from God).
2. 우리는 그를 믿으며 그를 위하여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1장 29절에 “너희에게 그것이 은혜를 베풂을 받은 까닭이며, 그 안으로 믿기만 아니나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을 받기 안으로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들은 크리스트께 대항하는 적대 세력들과 충돌하게 되었습니다.28) 예수 크리스트를 위해 고난받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입니다.29) 우리의 고난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를 베푸시는 표현입니다.30)
빌립보서 1장 30절에 “너희가 바라보았고 지금 듣는 것과 같은 싸움을 너희가 가지고 있노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들이 파울에게 용기를 준 것처럼 파울은 그들을 격려하였습니다.31) 그는 빌립보 사람들의 경험과 자신의 투쟁에 일치를 주목시킵니다.32)
3. 우리는 같은 사랑을 가지며 하나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빌립보서 2장 1~4절에 “그러므로 크리스트 안에 어떤 간곡한 권유가, 사랑의 어떤 위로가, 영(Spirit)의 어떤 친교가, 어떤 애정과 동정이면. 나의 기쁨을 채우라 똑같은 것을 생각하기 위하여서니 그 똑같은 사랑을 가지며, 같은 정신이며, 하나를 생각하며. 아무것도 이기주의를 따라서도 허영(虛榮)을 따라서도 않으나, 그 겸손에 너희 서로를 너희 자신들의 능가하는 너희를 여기며. 각자가 너희 자신들의 일들을 돌보지 않으나 다른 자들의 일들을”이라고 하였습니다.
1절에 “무슨”이라는 말이 3번 번역되는데 파울은 4번 기록하였습니다. “긍휼”이라고 번역되는 말 앞에 “무슨”을 한 번 더 번역하여야만 합니다. “성령”은 “친교”만을 수식하였고 “긍휼”과 “동정”은 수식하지 아니하는데 “긍휼” 앞에 “무슨”이라는 말을 번역하여 오해의 소지를 없애야 합니다.
“권면”으로 번역된 말(파라클레시스)은 “권유”를 뜻하며, 영어로 “격려”, “위로”, “간곡한 권유”(exhortation)로 번역되었습니다.
파울은 먼저 “크리스트 안에 어떤 간곡한 권유”가 있다고 말하였으며, 파울은 둘째로 “사랑의 어떤(any) 위로”가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위로”는 친절한 태도로 말을 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군가의 곁에 가까이 다가가 친절하게 말하는 것이 “위로”입니다.33) “사랑의 위로”는 사랑에 의해 나온 “위로”며, “사랑”이 위로합니다.34)
“사랑”이 고난 가운데 처하여 있는 사람에게 “위로”를 줄 수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위로”를 줄 방법은 “사랑”입니다.
파울이 셋째로 있다고 말한 것은 “성령(the Spirit)의 어떤 친교”인데, “친교(親交)”라는 한자는 “친(親)한 교제(交際)”를 줄여서 나온 말입니다. 영어로는 “fellowship”인데, “우정”이나 “친교”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성령의 친교”는 성령님께서 친밀하게 교제하게 하심을 뜻합니다.35) 크리스천들의 교제는 세상 사람들이 하는 교제와 그 성격이 다릅니다. 크리스천들의 교제는 성령에 의해 생긴 성령 공동체 속에서 교제입니다. “성령의 교제”는 같은 성령님을 마음속에 모신 사람들 간의 교제입니다. 성령님의 진리 안에 교제하는 것입니다.
파울이 넷째로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어떤 애정들과 동정들”인데, “긍휼”로 번역된 “애정”(스플랑크논)은 “심장”을 의미합니다. 우리처럼 고대인들도 “심장”을 “애정”의 자리로 믿은 까닭에, “심장”이라는 말을 가지고 “애정”, “감정”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감정”은 한 가지가 아니니 “애정들”이라는 복수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동정”은 “불쌍히 여기다”라는 동사에서 나왔고, “불쌍히 여김”이라는 “compassion”이나 “연민”으로 번역됩니다. “동정”은 불쌍한 처지에 있는 자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다른 지체들에 관심과 사랑을 가지게 하시는 것입니다.36) 구원된 사람은 새로운 마음과 감성을 가지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37)
“애정”과 “동정”은 하나님의 속성이며 우리의 성품이어야만 합니다.38) “애정”은 감정적 가까움, 정으로 느끼는 친밀함을 뜻하는 것입니다.39) 초코파이에 “정(情)” 자가 있잖습니까? 애정과 동정의 그 정(情)입니다.
파울은 2절에 “나의 기쁨을 채우라(make complete)”라고 명령하는데 한글 번역은 4절에다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우리는 원어의 어순에 따라 4절에 나오는 이 명령을 먼저 살피겠습니다.
여기에서 “채우다(fulfill)”라고 번역하는 헬라어(플레로오)는 “채우다”, “가득하게 하다”, “넘치게 하다”, “충만하다”를 의미하며 비유적으로 “완성하다”, “이행하다”, “성취하다”를 의미합니다.
영어 단어 “fill”은 “채우다”를 뜻하며, “refill”은 “다시 채우다”입니다. “가득한”이라는 “full”과 “채우다”라는 “fill”을 연결하여 “fulfill”이 되면, “가득 채우다”라는 뜻을 내포하는 “충만하다”, “충족시키다”를 뜻합니다.
“충만하다”라고 번역된 헬라어(플레로오)가 바로 이것입니다. “가득 채우다”는 “완전히 채우다”와 동의어로 “완전하다”를 뜻할 수 있고 영어 성경에 “완전하게 만들다”(make complete)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파울은 자신의 기쁨을 완전하게 만들 것을 독자들에게 명령한 것입니다. 파울은 자신의 기쁨을 충족시킬 것을 독자들에게 명령하였습니다.
그들이 가져온 기쁨을 강조하여 파울은 자신의 권면을 강화합니다.40) 무엇으로서 빌립보서의 독자들이 파울의 기쁨을 충족시킬 수 있습니까?
마음을 같이하는 것, 즉 “같은 것을 생각하는 것에 의해서”입니다. 파울은 “같은 사랑을 가지는” 것에 대해서도 언급하였고 또한 그는 “같은 정신”과 “하나를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2절은 “같은 것을 생각하는 것”과 “하나를 생각하는 것”이 수미상응하며, 이것은 분열 없이 “같은 것”, “한 가지”에 마음 둘 것을 명령한 것입니다. ‘정신적인 일치’가 필요합니다.
3절에 “다툼”이라는 말(에리떼이아)은 “이기주의”를 뜻하는데 “이기적임”(selfishness)과 “이기적인 야망”으로 번역됩니다. 이기주의는 “당파”를 만들므로 이기주의에 따라서 아니하여야만 합니다.
1장 17절에 그들은 이기적인 야망에서 크리스트를 선포하였습니다.41) 이기주의에 근거한 분파주의에 따라 행동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42)
“허영”(케노독시아)은 “망상”, “착각”, “자만”을 의미하는데 “공허한 자부심”(empty conceit), “헛된 자부심”으로 번역됩니다. “공허한”(케노스)과 “영광”(독사)이 연결되어 나온 말이며, “공허한 영광”의 줄임말인 “허영”이라고도 번역되었습니다. “영광”(독사)은 “의견”을 뜻하기도 하니 “공허한 의견”일 수 있는데 이러한 공허한 의견에 따라 아니하여야 합니다.
세상의 왕국들의 영광은 마치 꽃이 시들듯이 조만간 시들어 버립니다. 세상에서 스타들의 영광은 반드시 땅으로 떨어지는 날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대망상이나 헛된 생각에 따라서 행동하지 말아야 합니다.43) 자신의 공허한 견해를 주장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겸손에 우리는 서로 자기 자신을 능가하는 자로 여겨야 합니다. 서로를 자기 자신보다 능가하고 보다 나는 사람으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4절에는 “각자가 자기 일들을 돌보지 아니하도록 하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은 3절의 “이기주의에 따라 아니하라”라는 명령과 연관되게 보이며, “각자가 다른 자들의 일들이나 이익(interest)도” 돌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고아들을 돌볼 수 있도록 조지 뮬러에게 채워 주셨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을 돌볼 때, 그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채워 주십니다. 얼마나 다른 자들의 일들이나 이익도 돌보며 살았습니까?
잠언 16장 19절에 “겸손한 자와 함께 낮은 영(spirit)이 되기가 거만한 자들과 함께 약탈품을 분배하는 것보다 더 좋다”고 하였습니다.
거만한 자들은 다른 자들을 약탈한 것으로서 부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거만한 자들은 자주 세상 법에 합법적으로 약탈하는 것이죠!
정치가들이 그렇잖습니까? 법을 만들어서 법으로 국민을 약탈합니다. 법 만들어 세금으로 약탈하는 것이죠! 합법적이나 약탈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거만한 자들과 함께 약탈품을 나눌 때 나도 부자가 될 수 있겠죠! 그러나 겸손한 자들과 함께 낮은 영(spirit)을 갖고 사는 것이 좋습니다.
권력에 빌붙어서 살면 부자가 되고, 아부한다면 부자가 될 수 있겠죠! 그러나 진실한 사람은 어떻습니까? ‘그것은 잘못입니다’ 외치는 것이죠!
옛날에 왕조 시대에 그렇게 말한다면 사형당하거나 유배 가는 것이죠! 바른말, 직언을 고했다가는 유배당하거나 사형당하는 것이죠!
그런 폭군 곁에 누구만 남냐? 아부하는 자들만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왕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간신배들과 소인배들만 남는 것입니다.
현대에 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할 때 이재명 옆에 붙어 있을까? 빌붙어서 거기서 떨어지는 콩고물 주워 먹으려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죠! 그러나 정의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잠언 29장 23절에 “인류의 오만이 그를 낮아지게 만들 것이고, 영(spirit)의 낮은 자는 영광을 붙잡을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겸손한 자와 함께 영(spirit)이 낮은 자가 되는 것이 좋으니(잠 16:19), 영(spirit)이 낮은 자는 영광(honor)을 붙잡을 것입니다(잠 29:23).
이사야 57장 15절에 “회개하고 낮은 영(spirit)과 내가 머무를 것이니 낮은 자들의 영(spirit)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높은 마음을 가진 거만한 자들을 낮게 하시는 분이시며, 하나님께서는 낮은 마음을 가진 겸손한 자들을 높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은 자신이 높아지려고 거만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만한 자들을 낮추셔서, 그들은 결국 낮아진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높아질수록 지옥에서는 더욱 낮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겸손한 자와 함께 낮은 영(spirit)이 되면 하나님께서 높이시니 우리는 거만한 자가 되지 않고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허영심을 버리고 성령님의 친교로 같은 것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됩시다!
1) 송병현, 『엑스포지멘터리 빌립보서』 (서울: 도서출판 이엠, 2024), 411.
2) Moises Silva, 『BECNT 빌립보서』, BECNT 성경주석, 최갑종 옮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20), 115.
3) Silva, 『BECNT 빌립보서』, 115.
4) Silva, 『BECNT 빌립보서』, 115.
5) Silva, 『BECNT 빌립보서』, 115.
6) Gerald F. Hawthorne, 『빌립보서』, WBC 성경주석 43, 채천석 옮김 (서울: 솔로몬, 1999), 148.
7) D. M. Lloyd-Jones, 『항상 기뻐하라』, 김진우 옮김 (서울: 생명의말씀사, 1992), 149.
8) Lloyd-Jones, 『항상 기뻐하라』, 150.
9) Lloyd-Jones, 『항상 기뻐하라』, 152.
10) Lloyd-Jones, 『항상 기뻐하라』, 154.
11) 김도현, 『빌립보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서울: 성서유니온, 2016), 74.
12) Alec Motyer, 『빌립보서 강해』, BST 시리즈, 정옥배 옮김 (서울: Ivp, 2008), 120.
13) Lloyd-Jones, 『항상 기뻐하라』, 158.
14) 김세윤, 『빌립보서 강해』 (서울: 두란노, 2004), 67.
15) Lloyd-Jones, 『항상 기뻐하라』, 158.
16) Hawthorne, 『빌립보서』, WBC 성경주석, 149.
17) Motyer, 『빌립보서 강해』, BST 시리즈, 120.
18) Motyer, 『빌립보서 강해』, BST 시리즈, 124.
19) Lloyd-Jones, 『항상 기뻐하라』, 165.
20) Lloyd-Jones, 『항상 기뻐하라』, 177.
21) Lloyd-Jones, 『항상 기뻐하라』, 179.
22) Lloyd-Jones, 『항상 기뻐하라』, 182.
23) Hawthorne, 『빌립보서』, WBC 성경주석, 148.
24) 김세윤, 『빌립보서 강해』, 69.
25) Hawthorne, 『빌립보서』, WBC 성경주석, 152.
26) Hawthorne, 『빌립보서』, WBC 성경주석, 153.
27) Hawthorne, 『빌립보서』, WBC 성경주석, 154.
28) Hawthorne, 『빌립보서』, WBC 성경주석, 157.
29) 김세윤, 『빌립보서 강해』, 71.
30) Silva, 『BECNT 빌립보서』, 121.
31) Donald K. Campbell 외 3인, 『갈라디아서·에베소서·빌립보서·골로새서』, BKC 강해 주석, 정민영 외 옮김 (서울: 두란노, 2016), 225.
32) Silva, 『BECNT 빌립보서』, 123.
33) Hawthorne, 『빌립보서』, WBC 성경주석, 164.
34) Hawthorne, 『빌립보서』, WBC 성경주석, 165.
35) Hawthorne, 『빌립보서』, WBC 성경주석, 166.
36) Campbell 외 3인, 『갈라디아서·에베소서·빌립보서·골로새서』, BKC 강해 주석, 227.
37) Motyer, 『빌립보서 강해』, BST 시리즈, 135.
38) 송병현, 『엑스포지멘터리 빌립보서』, 418.
39) 김도현, 『빌립보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94.
40) Silva, 『BECNT 빌립보서』, 124.
41) 김도현, 『빌립보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96.
42) 김세윤, 『빌립보서 강해』, 75.
43) 김세윤, 『빌립보서 강해』, 76.

첫댓글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잠 25:28).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