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와 60년대를 풍미한 이탈리아 테니스 스타 레아 페리콜리가 4일(현지시간) 89세를 일기로 저하늘로 떠났다고 영국 BBC가 다음날 전했다. 고인은 프랑스 오픈 16강에 두 차례(1960년과 64년) 올랐고, 윔블던 선수권대회 4라운드에 세 차례(1965년과 67년, 70년) 오를 정도로 이탈리아가 낳은 최고의 테니스 선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
사망 원인이나 장소 및 경위, 유족 등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1935년 3월 22일 밀라노에서 기업인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에티오피아 아디스 아바바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테니스를 처음 접한 것은 열 살 때였다. 케냐 나이로비의 기숙학교에서 스포츠에 대한 사랑이 폭발했다고 그녀는 돌아봤다. 열일곱 살에 이탈리아로 돌아왔는데 테니스 선수로 살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
이탈리아 테니스 연맹에 따르면 1959년과 1976년 사이 14년에 걸쳐 국내 랭킹 1위였다. 27차례나 국내 챔피언이었다. 현재 남자 세계 랭킹 1위 야닉 신너(이탈리아)와 전 남자 세계 1위 라파엘 나달(스페인)이 인스타그램에 추모의 글을 올렸다.
1973년 방광암을 이겨낸 뒤 터부로 여기는 것들을 타파하는 데 겁이 없었던 그녀는 이탈리아 암 투병 환우 협회의 간판이 됐다. 이탈리아 여성 최초로 텔레비전에 나와 테니스 경기를 해설했으며 뒤에 진행자와 기자로 변신했다. 깃털과 모피로 장식한 옷까지 무난히 소화하는 테니스 코트 위의 패션 아이콘으로 각광받았다. 1950년대와 60년대 흰색 옷들만 고집하던 윔블던 코트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녀는 테니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며 “져도 미소를 짓고 늘 다시 시작한다. 피프틴(15)을 따고 또 피프틴을 따고. 더 바랄 게 없었다”고 말했다. 그녀가 코트에서 입었던 것 가운데 가장 사랑한 것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입었던 다이아몬드 달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테니스와 파델 재단의 안젤로 비나기 총재는 "고인은 우리 모두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고 현지 매체에 말했다고 방송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