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치미 막국수 / 허 단
막국수하면 웬지 그 이름부터가 다소 거칠고 품질 또한 좋지 않은 음식이라는 인상이 풍긴다고 말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하긴 보통 품질의 담배 따위에도 막자가 붙으면 벌써 값싼 저질이 되는 것이 일반상식이니까?
막옷은 허드레옷이며 실직 후 싸구려 노동판에 나가 하는 일은 막일 또는 막벌이고 말씨나 행동거지가 버릇없는 사람은 막된놈이다. 언젠가 남의 재산을 약탈하고 장난하듯 인명을 살해하는 일당이 스스로 지은 자신의 이름 또한 막가파였으니 막자의 팔자는 그만큼 기구한 셈인가.
메밀이 주원료이면서도 메밀국수가 아니고 막국수로 불리우면서도 향토의 별미며 축제의 주인공이 된 것이 춘천막국수다.
필시 그 거무튀튀한 외모 때문이 아닌가 싶다. 속살은 희면서도 검은 껍질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었던 옛 제분기술이 오늘의 막국수 이름을 낳은 것이 아닌가 보는 사람이 많다. 아무튼 막국수는 춘천의 향토음식으로 널리 알려졌고 맛 또한 아부나 잔꾀를 모르는 사람처럼 구수하다는 평이다. 막국수의 주원료가 되는 메밀의 주산지 역시 강원도 산비탈 화전지였음을 빼놓을 수 없다. 막 개간한 척박한 비탈밭이라도 메밀은 고맙게 잘 자랐다. 연약한 듯싶은 붉은 대궁은 혹 비바람에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강인한 생명력을 갖고 있다. 많은 비료를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불과 한 달 남짓이면 벌써 수확이 가능하다. 하나의 꽃은 볼품없으면서도 여러 대가 어울려 파도와 같은 하얀 꽃 물결을 이룬다. 아름다운 산골의 정취가 출렁인다. 가뭄이나 장마로 농사를 망친 산골 사람들에게 메밀농사는 유일한 희망이다. 뒤늦게 새로 파종할 수도 있고 이미 한번 수확한 곡식의 뒷그루로도 풍성한 수확을 안겨주니 얼마나 대견한가?
어린 시절 산골에서 성장한 경우라면 누구도 긴 겨울밤 가마니 짜기나 새끼 꼬기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큰 사랑방이 있는 집엔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어 화투나 윷놀이판을 벌이뎐 기억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자정이 넘어 배가 출출해지면 막국수틀이 있는 집에서 막국수를 뽑아다 먹었다. 내가 처음 막국수 맛을 본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우리집 사랑채에 아버지 친구들이 마실 와 웅성거리면 나는 그만 졸림을 참지 못하고 방 한 귀퉁이에 쓰러져 잡이 들곤 했었다. 그러나 얼마 후 어머니께서 나를 깨우면 푸드득 놀라 깨어났다. 사람들은 더욱 더 시장처럼 떠들썩했다. 윷놀이에서 진편이 막국수를 시킨 것이다. 나는 눈곱을 뜯어내면서도 어른들 틈새에 끼어 검은 막국수 한 그릇을 껴안았다. 잡은 어디로 도망가고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나는 동치미국물에 막국수를 말았다. 지금처럼 맛있는 고기국물 육수나 설탕, 겨자, 식초 따위 양념도 없었지만 막국수 맛은 꿀을 바른 듯 달고 시원했다.
초록 갓과 함께 살얼음 둥둥 떠다니는 큰 대접에서 몸 단단한 조선무, 동치미무를 끄집어내 와삭와삭 소리내며 씹던 그 시원한 맛은 잊을 수 없다. 동치미국물이 곧 나의 가슴과 배를 시작으로 온 몸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가면 나는 불현 듯 오싹하는 한기까지 참지 못했다. 나는 오줌부터 갈기러 마루쪽 방문을 열고 나선다. 언제부터 내리기 시작했을까. 어느새 흰눈이 장독 뚜껑 위에 수북이 쌓이고 있었다.
내가 춘천 시내 중학교 진학 후 나는 봉의산 허리를 가로지르는 작고개를 넘어 통학했다. 이 작고개 너머에 검은 양철지붕 막국수집이 있었다. 시내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이 동네까지 올라온 지게꾼이나, 산골에서 높다란 검불더미 지게를 지고 도시로 팔러 나온 배고픈 나무꾼들이 모처럼 이 집에서 막국수를 시켜 먹곤 했다. 막국수 때깔은 여전히 거무칙칙했고 번번이 점심도 거르곤 했던 나 역시 이 집 마루에 걸터앉아 쉬면서 부엌 쪽에서 흘러나오는 구수한 막국수 국물냄새를 맡는 것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곤 했다.
이 빈민 막국수가 춘천의 손꼽는 향토음식으로 대중화될 것을 그땐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젠 춘천의 골목골목에 그리고 멀고 가까운 유원지에 막국수집을 알리는 간판이 수없이 나붙어 있다. 저마다 원조임을 내세운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도 춘천막국수의 원조임을 주장하는 간판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은 이 막국수를 혹 맛국수의 변형이 아닌가 오해하는 사람도 있고 국수틀에서 지금 막 뽑아낸 막국수로 해석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막국수는 역시 배고팠던 산간마을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주면서도 뒤탈이 없었던 검은 국수다. 그래서 지금도 막국수집 간판엔 굳이 산골막국수를 강조하고 촌막국수 시골막국수 간판이 시선을 끌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아직 동치미막국수를 본 적은 없다.
동치미나 막국수 원료가 되는 메밀은 실제 구황음식으로 뿐 아니라 민간 약으로도 널리 쓰여졌었다.
매를 맞아 멍든 곳이나 손가락이 부었을 때 또는 종기에도 메밀가루를 술로 반죽해 물로 개서 붙이면 독이 수그러들고 부기가 가라앉곤 했다. 동치미 역시 겨울 질화로에 오랫동안 쪼여 머리가 어지럽고 아픈 불머리에 제일 먼저 마시는 명약이었다.
호수로 둘러싸인 도시, 춘천의 여름날 막국수 축제가 열린다. 뜨겁지 않은 자연건강식이기 때문에 외지인들까지 많이 찾아와 이 향연에 동참한다. 그러나 갖은 양념과 육수로 혀끝의 현란한 미각만 자극한다면 향토 고유음식으로서의 맛까지 잃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실제 전통의 동치미국물과 무를 곁들여 먹을 수 있는 곳을 발견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무 요리야말로 메밀로 만든 막국수를 먹을 때 꼭 곁들여 먹던 것이 우리의 전례 식단이었다. 제독효과와 소화력을 촉진시켜 주기 때문이다.
메밀전병을 부칠 때 그 속에 꼭 양념한 삶은 무 속을 넣고 돌돌 말아 전병을 만들어 먹던 것도 따지고 보면 이같은 이유에서이다. 무더위 속에 땀흘리며 먹는 별미음식에 결코 뒤탈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더위가 한물 가시고 밀의 풍성한 수확이 끝난 후라면 음식조리도 한결 위생적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70년대 초 지방신문 기자가 된 나는 춘천에서만 20년 가까이 막국수집을 경영해온 노부부를 찾은 적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배고파 찾던 산골막국수를 많은 유명 인사들까지 찾아오게 만든 그 비법을 소개하고 싶어서였다.
그때 노인부부는 머뭇머뭇 말을 아끼더니,
“비법이 따로 있나요? 정성을 다하면 음식 맛은 저절로 우러나는 건데…….”
나는 지금도 그 건강한 노부부의 말을 잊지 않고 있다. 정성을 다할 때 성공하는 것은 어디 막국수 맛뿐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