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일손
추석 귀성 성묘 이후 보름이 지난다. 이제 본격적인 가을 일철로 접어들었다. 주중 한글날을 맞아 근교 산자락이나 강둑으로 나가 제철에 피어난 야생화를 완상하려 했는데 그보다 우선순위가 있었다. 고향을 지키고 계시는 큰형님으로부터 한 번 다녀가라는 연락이 왔다. 가을이면 벼 수확과 뒷그루로 마늘 심기가 기다린다. 대봉감 따기는 서리가 내릴 무렵이라 아직 철이 조금 일렀다.
벼는 콤바인으로 거두기에 건너뛴다. 큰형님은 벼를 거눈 논에 마늘을 제법 심는다. 고추를 심었던 밭에는 추석 직후 마늘을 심었다. 마늘을 심거나 거두는 일을 기계로 할 수 없어 사람 손으로 해야 한다. 벼보다 마늘농사 소득이 많은 듯했다. 예전 농사는 품앗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고령화된 농촌이라 일손이 달린다. 가족들 품을 모은 노동집약형 농사를 벗어나질 못하는 처지다.
전에는 내가 일철에 시골을 찾으면 도움이 되었으나 이제는 그리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나도 이제 나이가 있는지라 예전만큼 일을 돕지 못한다. 일철이면 생선이나 몇 마리 마련해 고향을 찾아 얼굴만 내미는 정도다. 작은조카와 동행하기 위해 녀석이 사는 마산 내서로 나갔다. 조카는 일철이면 휴일도 잊고 부모님 일손을 거들려고 본가로 달려간다. 진주에 사는 큰조카도 마찬가지다.
고향집에 닿으니 형수님은 아침밥을 차려 놓고 지원 인력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주 큰조카는 먼저 와 있었다. 토속적 정취가 나는 밥상을 물리고 서둘러 일터로 향했다. 쪽을 나눈 마늘종자는 소독을 마쳐 놓았다. 벼를 거둔 논은 큰조카가 하루 연가를 내어 트랙터로 바닥을 갈아 이랑을 지어 비닐을 덮어 놓았다. 일정한 간격 구멍이 뚫린 비닐 틈새로 종자마늘을 심는 일이었다.
지난여름 마늘을 수확해 수집상에게 보낼 때 종자용은 굵은 것만 골아 남겨 놓았다. 왕대밭에 왕대 난다는 얘기처럼 굵은 마늘을 심어야 굵은 마늘이 생산된다. 종자마늘을 까다보면 찌그러지거나 상한 마늘쪽은 가려내어야 한다. 경운기 적재함에 종자마늘과 무릎 보호를 위해 엉덩이에 차야 하는 ‘받침판’을 싣고 들판으로 나갔다 마늘을 심을 논은 집에서 가까운 마을 회관 앞이었다.
들판 상황을 살피니 작업 곤란도가 무척 어려운 여건이었다. 땅이 질어 난감했다. 엊그제 동남해안을 스쳐 지나 가을태풍으로 서부경남에 바람보다 비가 많이 내렸다고 했다. 마늘을 심으려고 이랑을 지어 비닐을 덮어둔 논바닥은 물이 넘쳐 물꼬를 터도 진흙이 되다시피 했다. 논바닥을 며칠 말려 심으면 되나 주말은 다음 일거리로 다른 들판 벼를 수확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품삯을 치르는 일손이라면 일을 시킬 수 없을 정도였다. 빈 아랑에 신발이 푹푹 빠지는 상황에서도 마늘을 한 쪽 한 쪽 심어나갔다. 이랑이 길어 여덟 줄로 된 한 골을 마치면 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엉덩이에 차는 받침판이 어색해 무릎이 저려 와도 그냥 쪼그려 했더니 신발과 옷에 흙이 더 많이 묻어도 마늘 심기에만 집중했다. 작업 속도는 예전만큼 내지 못하는 듯했다.
점심나절 큰형님은 지역복지센터에서 경로잔치를 겸한 읍민 체육대회가 열려 행사장에 잠시 얼굴을 내밀러 갔다. 남은 가족들은 집으로 와 흙이 옷에 묻어 실내로 들지 못하고 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점심을 들었다. 식후 오후에 쓸 마늘종자가 조금 모자랄 듯 해 시렁에 걸어둔 마늘을 내려 쪽을 까 보탰다. 나는 그 사이 집안 재실 뒤 밭에 심어둔 마늘과 대봉 감을 둘러보았다.
오후가 되니 논바닥 진흙 사정이 좀 나았다. 그래도 날이 저물도록 심어야 하는 이랑은 만만하지 않았다. 장유에 사는 조카딸도 나타나 일손을 거들었다. 큰형님 내외 둘이서 심는다면 며칠 걸릴 일을 하루에 끝마쳐 마음이 가벼웠다. 점차 짧아져가는 가을 해에 옷차림을 바꾸어 창원 복귀를 서둘렀다. 박스엔 대봉 홍시와 단감을 채웠다. 형수님은 침전시켜둔 도토리 전분을 챙겨주었다. 18.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