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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조선,부여,발해 등 고대사토론방 요서 대릉하 지역 하가점 하층 시대의 석성 및 그들 정치집단-1
역사님 추천 0 조회 548 08.03.01 22:58 댓글 1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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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3.02 01:27

    첫댓글 논리적 취약점이 보입니다. 현재 이 때문에 쉽게 그 유적들을 단군조선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 하고 있지만. 성곽이나 한반도에도 보이는 묘제가 요서 지역에서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곧 단군조선의 것이다~라고 바로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그 지역에 어떠한 정치체(그것도 상당히 수준높고, 황하문명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가 있다는 것만을 증명할 뿐이죠. 그것이 곧 단군조선이다...라고 볼수는 없는 겁니다. 물론 중국의 하상주단대공정, 동북공정처럼 고고자료를 무조건 역사적 사실에 대입해 해석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불확실한 것이죠. 현시점에서는 그냥 요서지역에 독립적인 정치체가 있었다는 정도만~^^

  • 작성자 08.03.02 02:20

    위글은 고조선 초기 시기 전후의 요서 지역의 문명과 요동 한반도상의 문제로 풀어 본 것이지 바로 고조선 국가를 증명한다는 식은 아닙니다만. <고조선에 대한 건국 연대 문헌 기록이나 고조선이라는 국가의 기록이> 가치 없는 가짜 이거나 아니며 현재 요서 대릉하지역에서 발견되는 문명과 정치 집단의 영향력으로 보았을때 고조선 중기 이전에는 한반도와 요동은 요서에 비해 중심지적 지역으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와 기존의 중기 시기의 고고학적 한계로 고조선 전체를 보려는 식은 지양 되어야 한다는 점 그에 따른 요서 지역에 대한 확대 관심의 필요성입니다.

  • 08.03.02 01:30

    물론 그 정치체가 단군조선의 성립시 어떤 영향을 줬다든가, 그 정치체의 분파가 단군조선 성립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던가...이런 식의 해석도 가능하겠죠.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요서 지역에서 확인되는 유적들에서 우리가 오늘날 단군조선을 증빙하는 고고자료(비파형동검이라든가 미송리식토기라든가 등등)와의 연관성을 확인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묘제라는 것도 다양한 묘제가 있고, 한 나라에 하나의 묘제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요서부터 한반도까지 다양한 묘제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만큼 다양한 집단이 있었다는 얘기 이상은 아닐 것입니다. 즉, 요서 문명을 말할때 단군조선을 언급하는 것은 섣부른 해석이라 봅니다.

  • 작성자 08.03.02 02:21

    그리고 다음편에서 말하겠지만 위글은 기원전 대략 일천년정도의 고조선 중기 비파형이나 미송리식 토기관련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이후 말이 있겠지만 고조선 초기 이 석성 관련 강력한 정치 집단의 일부 남하와 다시 일부가 돌아 오면서 은유물 관련 출토등의 현상과 함께 대릉하 지역의 요서 <남산근 유적>은 요동 한반도상의 비파형 동검 시대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대릉하 지역은 요동 한반도에 상당한 시간동안 영향력을 구사하는 중요지역이며 정치집단입니다..

  • 08.03.02 17:28

    흠..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글은 잘봤습니다^^

  • 08.03.05 20:21

    문장 전체가 유기적으로 얽혀있지 않아 이해하는데 조금은 어려운 감이 있었습니다. 다만 위에 언급하신 '치'로 추정되는 유적, 요동반도의 거대 고인돌 유적 등을 직접 확인하셨는지 의문이 듭니다. 현지를 확인한 이들은 그 유적 자체의 규모는 물론 구조를 보고서 치로 단정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때문에 중국에서는 오히려 대규모 제사유적으로 판단하고 있기도 한 상황입니다. 한편에서는 산동-요서-요동-한반도를 잇는 지역의 교류가 신석기를 전후한 시기부터 활발했다고 이야기 하니 단순한 유물의 나열로 역사의 흐름을 전단하는 것은 아무래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 시도라 생각됩니다.

  • 08.03.05 20:26

    글 중에 너무나 편의적으로 '요서', '요동', '한반도' 하는 식의 용어를 사용하고 계시지만 이것 역시 현재적 관점에서 정치집단의 보금자리를 재단한 것입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또 한편의 민족주의 역사관을 벗어나 이 방면에 대한 '교류와 소통'적 관점의 역사관이 점차 싹트고 있다는 점 역시 지적되어야 할 것입니다.

  • 08.03.05 21:49

    교류와 소통의 관점이란 우실하 교수님께서도 주장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닌지요. 그런데 요하문명이 중원과 구별되며 한반도와 동일문화권으로 연결된다는 것 또한 우실하 교수님이 주장하신 사안이기도 하지요. 지금의 한국과 중국이 옛날에 없었다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만, 역사는 변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서 한국 문명의 원류를 찾으려는 시도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우 교수님의 주장을 보고 나름대로 생각해보았는데, 물론 역사상에서 여러 집단들이 이합집산을 한다는 점에서 유연성 있게 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특정 집단을 형성시킨 주된 시원 문명은 존재한다고 봅니다.

  • 08.03.06 02:12

    시원 문명이라고 하셨는데 그 관점은 문명에 대한 '연속'적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라 사료됩니다. 그러나 역사에는 연속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절'도 존재하는 것인만큼 시원 문명, 주류문명이란 관점은 조금 목적론적이지 않을지요? 그리고 환경적인 한계는 요하문명이라 지칭된 집단들이 한반도쪽 보다는 중원지역으로 갈 개연성이 많습니다. 요하 이동은 중원보다는 산악, 구릉지가 많으니까요. 천산산맥이란 환경적 벽을 쉬이 뚫고 갈 수 있다고 생각치는 않습니다. 물론 그들이 한반도나 만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요서에 존재한 문명이라고 해서 후속 문명에 대한 '연속성'이 보장되는 건 아니라 생각됩니다.

  • 08.03.06 02:15

    사실 시원 문명, 주류 문명이란 관점도 지금 생각해보면 다분히 인위적 경계를 허용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즉, 국가의 지배 당위 이데올로기를 '정통'이란 이름으로 지지하는 기제가 되는 것이죠. 때문에 시원 문명, 주류 문명이란 관점은 섣불리 받아들이기 보다 비판적으로 수용해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 08.03.05 21:58

    예컨대 우리 문화의 원류를 중원(상고대) 문화는 물론, 양자강 유역의 남방 문화에서 찾을 수도 있고, 반대로 중원 지역에 세워진 은나라의 원류를 요하문명에서 찾을 수도 있지만, "중원 문명과 요하 문명이 문화권 상에서 분명하게 구분되며, 각각 다른 천하가 형성되어갔다(이것이 앞으로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는 점에서 민족적 관점이 편협하다고만 볼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 08.03.05 22:22

    2편 언제나오나요?

  • 08.03.07 00:56

    일단 일반론부터 언급하자면 문명은 크게 2가지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 하나는 인류가 살면서 이룩한 과학 기술 등 양식의 총체이며(이 관점에서는 인류의 전체적 진보에 초점을 둠), 다른 하나는 특정한 권역 등을 가진 주체로서 탄생-성장-쇠퇴-소멸하는 존재라고 하지요. 역사에서 말하는 문명은 일반적으로 두번째이므로 이를 전제로 씁니다. 문명의 단절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분명 어떠한 계기가 있어야 합니다. 이 부분에서 저와 한단인님의 견해에 차이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요하 문명이 어떠한 연유로 단절되는 것이 아닌 이상은 이것이 고조선으로 연결된다고 봅니다. 복기대 박사님의 강의문에서도 보았는데, 문제

  • 08.03.07 01:03

    는 홍산 문화가 고조선과 연관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홍산 문화부터를 고조선으로 볼 수 있는가 아니면 이보다 후대의 릉하 문화를 고조선으로 보는가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분명 고조선 문명도 어느 시점부터는 쇠퇴한 것 같고, 결정적으로 한나라와의 전쟁으로 멸망하였습니다만, 그 문명이 발생한 문화권은 유지되었다는 것도 고려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옛 문명이 있었던 문화권 속에서 고구려가 성장했다는 김선생님의 말씀은 아주 탁월하다고 봅니다. 환경적 문제 지적 말씀은 저에게 좋은 과제가 될 것 같습니다만, 제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아마 큰 문제가 아니었던듯 합니다. 강원도 신석기 문화와 동일한 문화를 보

  • 08.03.07 01:09

    이는 것, 그리고 요서의 어떤 유물(기억이 나지 않네요..;;) 원료의 기원지가 요동의 수암현이라는 것 등에서 보면 그들 요하문명이 중원과 교류하는 것 만큼이나 요동 한반도 사람들과의 교류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정통을 지지하는 목적론적이고 인위적인 기제라는 말씀에 대해서는 저도 깊게 생각해본 바가 없어서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제 짧은 생각으로는 아무래도 민족이라는 것이 국가에 의해서 지지되기에 앞서 동질성이 먼저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거대 정치체가 탄생되지 않았던 시점인 신석기 때 이미 요서-한반도라는 비교적 먼 거리에 동일한 문화를 향유하고 있었다는 것은, 정치체의 탄생에 앞서 동방 사회, 즉 문화권의

  • 08.03.07 01:10

    형성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봅니다.

  • 08.03.07 11:27

    고대의 요동은 지금시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지역과 많이 차이가 난다는 문구를 보았는데 우리나라 충청도에 부여라는 지명이 있는게 그근거가 될수있을까요? 그럼 지금의 요하라고 부르는 지역은 고대에는 무엇이라 불렸을까여 여러가지 학설이 있을텐데 여기에 지식이 있으신분 답변좀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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