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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되세요
참고말씀: 눅12:11,12; 요16:13-15; 롬10:17; 14:17; 고후13:5; 딤후2:3,4,15; 약1:7,8; 요일2:27; 4:7,8
읽을말씀: 딤전4:1-16
주제말씀: 딤전4:6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첫째,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1-5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4:5)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는 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에베소교회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미혹의 역사입니다. 즉 몇몇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른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1절)
왜 그들은 외식함으로 거짓을 늘어놓았습니까? 양심이 화인을 맞았기 때문입니다. 즉 (모든 이단에 빠진 사람들이 그렇듯이) 양심이 마비되어 무감각해졌기 때문에 뻔뻔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2절)
당시 에베소교회에 침투한 이단은 어떤 성향을 띠었습니까? 극단적인 금욕주의입니다. 무엇을 근거로 그리 말할 수 있습니까? 혼인과 특정 음식물을 금한 것입니다.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3절 상) 참고로, 당시 이단들은 영지주의 영향을 받아 영혼은 선하고 물질을 악하다고 주장했는데, 이들은 극단적인 금욕주의에 빠져서 혼인을 금하고 특정 음식물을 먹지 말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무엇이라고 반박했습니까? (모든 음식물을 포함해서)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다 선하므로,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3절 중) /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4절 상) 믿는 자들은 감사함으로 받아야 하고, 또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3절 하) /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4절 하)
그러면서 결국 우리가 거룩해지는 것은 특정 음식물을 먹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때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에 힘쓸 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5절) /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오직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삼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고 있습니까?
둘째,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6-16절).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딤전4:6)
만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5절)로 형제를 깨우치면, 무엇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입니다.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6절 상)
이는 누구를 가리킵니까?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요,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2:3,4)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고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는 ‘그리스도 예수의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입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2:15)
이 같은 일꾼이 되면 이와 동시에 그 자신도 무엇을 받게 됩니까? 양육입니다. 무엇으로써 그리합니까? 믿음의 말씀과 좋은 교훈입니다.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6절 하)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그리스도의 일꾼은 맡겨진 성도들만을 양육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이와 동시에 우리도 말씀으로 계속 양육을 받게 된다는 점입니다. 즉 우리는 양육하면서 동시에 양육을 받으며, 우리는 가르치면서 동시에 가르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은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신화와 같은 망령되고 허탄한 것들입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7절 상) 대신 무엇에 힘써야 합니까? 경건에 이르는 연단(훈련)입니다. 즉 신앙 훈련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7절 하)
신체 단련도 약간의 유익이 있긴 하지만,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8절 상) 신앙 훈련은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모든 일입니다.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8절 중) 현생뿐만 아니라 언제까지 상급이 보장되어 있습니까? 내세, 곧 사후(死後)입니다.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8절 하) 그러니 우리는 무엇에 힘써야 합니까? 경건에 이르도록 부지런히 우리 자신을 신앙 훈련하는 일입니다.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7절 하)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은 그 소망을 누구에게 두어야 합니까? 살아 계신 하나님, 곧 모든 믿는 자의 구주이십니다. 즉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서 수고하고 힘써야 할 것입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9,10절)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은 또 무엇을 위해 힘써야 합니까? 영적 성장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영적으로 성장할 때 영적인 권위가 부여되고, 영적인 권위가 있을 때 비로소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12절 상)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은 무엇이 힘써야 합니까? 모든 면에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는 일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본이 되어야 합니까? 말과 행실, 사랑, 믿음 정절 등입니다.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12절 하)
왜 말과 행실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합니까? 말과 행실은 그 사람의 인격을 비추는 거울로써, 이 두 가지가 일치되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신뢰를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 사랑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합니까?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7,8)
왜 믿음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합니까? 한 마디로, 믿음이 없으면 믿는 자에게 본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먼저 우리가 믿음 안에 있는지 시험한 후에 믿음의 회복과 성장을 위해서 힘써야 할 것입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후13:5)
왜 정절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합니까? 신앙의 정절이란 하나님께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데, 두 마음을 품으면, 즉 하나님께 정한 마음을 품지 않으면 무엇이든지 주께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1:7,8)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은 영적 성장을 위해서 무엇에 전념해야 합니까? 말씀 생활입니다. 즉 말씀을 읽는 것과 말씀으로 권하는 것,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13절)
어째서입니까?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에서 나는 것이므로,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말씀 생활에 집중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그렇다면 말씀 생활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①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물론 말씀을 읽는 것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글의 뜻을 새기면서 자세히 읽는 정독(精讀), 빨리 읽는 속독(速讀), 많이 읽는 다독(多讀), 소리를 내어 읽는 낭독(朗讀), 글을 소리 내지 않고 속으로 읽는 묵독(默讀), 묵묵히 마음으로 되새기면서 읽는 묵상(默想), 읽어가면서 익히는 습독(習讀), 두 사람 이상이 번갈아 가면서 읽는 교독(交讀), 두 사람 이상이 한 목소리로 읽는 합독(合讀), 예배 중에 말씀을 받들어 읽는 봉독(奉讀) 등 말입니다.
분명한 점은 말씀을 읽는 데서부터 말씀 생활이 시작될 수 있으므로, 어떤 방법으로 하든지 성경을 읽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13절 상)
② 말씀으로 권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다른 이를 권할 때 성령께서 그때마다 지혜의 말씀을 주시므로, 우리는 말씀을 권함으로써 보다 풍성한 말씀 생활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눅12:11,12)
③ 말씀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말씀을 다른 이들을 가르치고자 할 때 성령께서도 우리를 말씀으로 가르쳐 주십니다. 어째서입니까? 말씀으로 권하는 것이나 가르치는 일은 성령님의 대표 사역으로써 우리가 그분의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깐 우리는 말씀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성령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요16:13-15) /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2:27)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은 또 무엇을 의지합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영적 능력, 곧 성령의 은사입니다. 디모데는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통해서 이 같은 능력을 받았습니까? 장로의 회에서 안수받을 때 예언을 통해서입니다. 그러니 바울은 디모데에게 무엇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까? 이 같이 받은 은사입니다.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14절)
우리도 무엇을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 합니까? 또한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계속 의지해야 합니까? 직분 감당을 위해 부여받은 영적 은사나 능력입니다.
한편,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할 때 비로소 우리는 무엇을 나타낼 수 있습니까? 우리의 영적 성숙입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나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15절) 명심하십시오. 영적 성숙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심 전력할 때 비로소 되어진다는 점을 말입니다.
끝으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무엇을 계속 살피라고 했습니까? 디모데 자신과 그의 가르침입니다. 어째서입니까? 그러할 때 비로소 자신도 구하고 그에게서 듣는 자들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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