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놓은 자식'으로 산다는 것 --
의사협회 및 대전협의 주도로 2020년 공공의대 반대 집단 휴진 사태가 발생했을 때 나는 페이스북에 글을 게재하여, 현재 전라도의 서남대 의대 유휴지에 공공의대를 설립하겠다는 법제안은 이미 국민의 힘당쪽에서 과거 발의되었던 법이며, 공공의대 설립에 관한 법을 의사들이 집단 반대한다는 건 아무런 명분이 없다고 썼었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수의 의사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의료 혜택을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의료 취약지구, 지방 소도시들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이렇게 의료 공급의 양극화가 심각하여 지방에서 근무할 의료 인력을 양성하겠다는 법 제안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당연히 발의될 만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의협 최대집 집행부는 이를 반문재인정부 투쟁으로 타겟화하여 집단 휴진을 몰고 갔다.
이에 반대한다며 내가 페이스북에 게재한 글이 조선-중앙일보 등에 마구 퍼날라지는 걸 보며 나는 어리둥절했다. 솔직히 나는 공직자도 아니었고, 무슨 대학병원장이나 학과장의 신분도 아닌 그냥 12만명이나 되는 한국의 의사 중 한 명에 불과했을 뿐이다. 그런 평범한 '일반 시민'이 그냥 페이스북에 (돈 드는 것도 아니고) 생각한 대로 쓴 거 갖고 왜 이렇게 난리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 개돼지 중 한 명인데)
이후 의사들이 많이 모이는 인터넷 사이트 내부 게시판 등에서 나는 한참동안 원색적인 욕을 먹었었다. 성형외과 전문의들의 포털 사이트에는 아예 개 ㅅㄲ, ㅆ ㅅㄲ 소리까지 올라와 있어서 아연실색했다. 내가 이에 해명하는 글을 올려, "의사들이 살 수 있는 길은, 국민을 위해 더 자정하고 자성하는 모습을 보여 국민으로부터 명예와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집단 이기주의적인 의사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는 이런 파업 사태를 어째서 찬성하시느냐라고 하였지만 반응은 아주 좋지 않았다.
시끄럽다. "문빠 의사, 대깨문 의사" 이런 말들만 난무했다. (사실은 나 대깨문 아닌데....) 즉, 파업이라는 그런 사건에서 최대집 집행부를 비판하면 의사 사회에선 앞뒤 안 가리고 '빨갱이 의사'로 낙인 찍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한림대 이재갑 교수가 김어준의 "뉴스 공장"에 자주 출연했다는 이유로 의사들 사회가 "좌파 의사"라고 비난했던 것도 비슷한 것이다.
부모님이 이 일로 걱정을 많이 하셨었다. 친척들이나 부모님의 친구들 (아부지가 의사시니 친구분들도 거의 의사들이다) 로부터 "주혁이 걔 뭐하고 다니는 거냐"는 식으로 전화도 받는다고 하셨다. 어떻게 하다 좌파들하고 어울렸느냐,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좌-우를 떠나서, 자신의 조직 사회에서 눈밖에 나는 것은 어찌 보면 개인의 성향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이 다들 어떤 쪽으로 생각을 모으고 있을 때 거기에 동조 주파수를 잘 맞추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맞추지 못하는 쪽이었던 것같다. 나같은 사람을 일컬어, '사회생활 잘 못하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이러면 높이 올라가지 못한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조직, 집단의 이익에 개인들이 전부 동조하는 사회는 건강할 수가 없는 것같다. 내가 속한 대학병원 부원장님 아들이 신체검사에 제출할 병무 진단서가 필요하다 하는데, 군대 빼기 적합한 병명을 써서 드리라는 전화를 받았다면,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아마 척추 추간판 탈출증을 척추 협착증이라고 진단명란에 대문짝만하게 적어주신 그 정형외과 선생님은 좋은 보직으로 계속 영전하시지 않았을까 싶다. '사회생활'을 그만큼 잘 하신 것이다. 물론 이런 의사들은 우리 사회 공동체를 해치고 "공정과 상식"을 파괴한다.
한씨 청문회가 아직도 안 끝났다. 임은정 검사가 증인으로 나와서 대답하고 있는 걸 듣고 있자니 가슴이 짠하다. 이를 갈고 있는 맹수들 사이에 둘러쌓인, 그의 안위가 정말로 걱정스럽다.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는, 왜 검수완박을 찬성하지 않냐며 임은정을 비난하는, 분노한 검사들의 글로 아주 난리바가지라고 한다. 청문회에서 답변을 하며 임 검사는 "검찰에서 미움을 받고 있는 처지.."라는 언급을 하였다. "자기 편"이면 건설업자한테 향응과 접대를 받는 사진을 봐도 풀어주는, 이런 조직 이기주의의 끝판왕 한국 검찰이니 임 검사를 보는 '눈'은 어떻겠는가?
청문회장에서, 한동훈과 임은정이 한 공간 내에서 질의 응답을 하는 그런 장면은 없었다. 그 점은 아쉽지만, 나는 이 두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대비점을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라고 생각한다. 우리 젊은이들은 과연 이 둘 중 어느 쪽을 자신의 멘토로 삼을 것인가. 나는 궁금하다.
조직의 이익과 정서에 충실히 동조할 것인가, 그렇지 않고 '어, 그건 틀린데요?라고 말할 것인가?
'이건 옳지 않아'라는 생각이 들 때, Yes를 외치며 앞장설 것인가, No를 외칠 것인가?
우리 한 명 한 명의 개인들이 내리는 선택에서 우리 사회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학교든, 가정이든, 회사든, 지역사회들이든 그 어떤 공동체도, 조직 이기주의가 아닌 공정함과 상식에 의거해 돌아갈 수 있어야만 우리 사회가 도약할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조직 이익 우선의 문화는 우리 사회의 발목을 붙잡는 가장 악질적인 병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