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나해 11월9일 금. [(백)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제1독서 에제키엘 예언서 47,1-2.8-9.12
복음 요한 2,13-22
◈ [서울]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2018년 나해 11월9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저는 두 곳에서 본당 신부로 지냈습니다. 두 곳 모두 성전이 신축된
후에 갔습니다. 전임 신부님들은 모두 성전 신축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다른 본당으로 모금을 가기도 했고, 물건을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교우들은 상가 건물에서 미사 참례를 했고, 좁은
공간이기에 텔레비전 화면으로 미사참례를 하였습니다. 성전 신축을
위해서 몸과 마음고생을 하였던 전임 신부님들에게 감사드렸습니다.
정성과 마음을 다해서 성전 신축을 하셨던 교우들에게도
감사드렸습니다. 저는 이제 마음의 성전을 아름답게 만들자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성지순례를 하면서 베들레헴의 예수님 탄생 성당에서 보았던 글이
생각났습니다. ‘만일 당신이 관광객으로 이곳에 오셨다면 순례자가
되어서 돌아가십시오. 만일 당신이 순례자로 이곳에 오셨다면 거룩한
사람이 되어서 돌아가십시오.
(If you enter here as a tourist,
you would exit as a pilgrim. If you enter here as a pilgrim,
you would exit as a holier one.)’
지금도 그 글이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오늘은 라테라노 대성전 축일입니다. 이탈리아 로마에는 4개의
대성전이 있습니다. ‘성 마리아 대성전, 바오로 대성전, 베드로
대성전, 오늘 축일을 지내는 라테라노 대성전’입니다. 저는 이탈리아
로마로 성지순례를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예술적인 가치와
교회사적인 의미가 있는 4곳의 대성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서울대교구의 4대 성당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명동 대성당, 중림동 성당, 혜화동 성당, 제기동 성당이라고
생각합니다. 명동 대성당은 한국 천주교회의 상징이 되었고, 민주화
운동의 성지이기도 했습니다. 중림동 성당은 오랜 역사와 아름다운
건축미입니다. 혜화동 성당은 근대 성당 건축물 중에서 예술적인
가치를 인정받는 곳입니다. 제기동 성당은 몇 남지 않은 고딕식 석조
건축물입니다.
성당은 예술적, 건축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당은 기본적으로
4가지의 기능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 성당은 복음을 전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우리들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살아 있어야 하고,
그 말씀을 이웃에게 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성당은 기도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조용히 기도하는 분들이
있는 성당은 그것만으로도 커다란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기도하는 곳, 기쁘고 행복한 사람들이
감사의 기도를 하는 곳이 바로 성당입니다.
셋째는 성당은 친교를 나누는 곳입니다. 미사는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이기도 하지만, 미사는 형제들이 함께 모여 빵을 나누는
축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단체들이 성당에 모여서 함께
기도하고, 친교를 나누는 것은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넷째 성당은 섬기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늘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섬겨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성당에 오는 사람들은 늘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친교를 나누는 사람, 서로 섬기는
사람은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성전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살아간다면 여러분의 마음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자아실현이 아닌
자아제사가 드려져야 할 성전
2018년 나해 11월9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자아실현이 아닌 자아제사가 드려져야 할 성전>
복음:요한 2,13-22
영화 ‘공작’(2018)은 대북공작원인 실제인물 ‘박채서’를 그린
영화입니다. 영화의 핵심 내용은 박채서 씨가 흑금성이라는 안기부
비밀공작원으로 활동할 당시 김대중 대통령 선거에 있을 뻔한 북풍을
막는다는 것입니다.
안기부에서는 그동안 선거가 있을 때마다 여당의 승리를 위해
간첩침투와 비무장지대 폭격 등의 조건으로 북에 돈을
지불해왔습니다. 남북관계가 긴장관계 모드가 되어야 보수여당의
지지율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보수여당을 지지해 준
자신들도 안위가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박채서 씨가 야당의 김대중 씨가 빨갱이라고 하면서 그가
대통령이 되지 못하도록 북에 도움을 요청하는 안기부와 집권여당의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국가를 위해 충성을 바치던 박채서 씨는
‘북한이 무력도발 등으로 김대중 씨의 당선을 반대 한다면 오히려
김대중 씨가 우리나라 대통령이 되는 것이 적합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김정일을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는 특권을 이용해 김정일을
설득하여 폭격을 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합니다. 김정일은 그의 말을
듣고 폭격을 해 주려는 마음을 접습니다. 이에 김대중 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는 내용입니다. 어쩌면 고 김대중 씨가 대통령이
되는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한 셈입니다. 흑금성 박채서 씨는 그
덕분으로 이중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게 됩니다.
안기부라면 우리나라의 안보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안기부가
자신들의 개인적 안위를 위해 정권이 교체되는 것을 원치 않아 오히려
자신들이 맞서 싸워야하는 북쪽의 도움을 요청했다는 내용은, 물론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참으로 무엇이 조직을
오염시키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조직은 그 조직의 정신과
어긋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많다면 오염된 것입니다.
어느 단체건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 단체는
본래의 정신을 잃습니다. 가족이 개인의 이익만을 생각하여 서로를
이용한다면 그 가족이 오래 유지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오염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정화가 필요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는 이유가 이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성전은 자신을 제물로 봉헌하여 자신 안에서 하느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기도의 장소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전에서
오히려 자아실현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권력과 돈,
명예와 쾌락 등을 추구하는 장소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
실현되는 장소이지 내 뜻이 실현되는 장소여서는 안 됩니다.
성전이 이렇게 오염되어 버렸다면 성전의 주인은 어때야할까요?
당연히 그 성전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화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채찍을 만들어 장사하는 사람들과 환전꾼들의
책상을 뒤엎고 그들을 성전에서 몰아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각자도 작은 성전들입니다. 하느님께서 사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사시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의 안위를 위하는
마음이 정화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은 또 장사꾼들의
소굴에서 견디셔야합니다.
레위기에는 성전에서 어떤 제사가 봉헌되어야 하는지가 나옵니다.
제사는 총 다섯 가지, 번제-곡식제-친교제-속죄제-보상제로
이루어집니다. 이는 지금 우리 자신의 성전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제사입니다. 번제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살라 바치는 봉헌의
제사이고, 곡식제는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드리며 참 주인은
주님뿐이라는 신앙 고백이며, 그리고 친교제는 친교는 나눔을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재현하는 제사이고, 속죄제는 자신의
죄를 위해 죄를 지은 장본인인 자기 자신을 바치고 더 나아가 그
보상으로 보상제까지 거행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제사가 성막을 지은 다음 당신 성막 안에서 드려지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 자신은 우리 자신을 제사지내는 성전입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 안에서 자아실현의 형태로 살아나려
한다면 우리 자신이 성전이 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제사가
봉헌되지 않는 제단은 의미를 잃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제단이
있고 그 제단에 자기 자신이 봉헌되어야 주님께서 머무십니다. 봉헌이
곧 순종입니다. 돌로 된 성전만 봉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주님께 봉헌되는 참된 성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주님의 뜻이 아닌 내 뜻을 이루려는 마음을 성령의 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몰아내는 작업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수원 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 [수원]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조욱현 토마스 신부 강론
2018년 나해 11월9일 금. 라떼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복음: 요한 2,13-22: 예수님은 당신의 몸을 두고 성전이라 하셨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과월절이 되자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을 더럽히는 모든 행위를 금하시고 정화시키시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다. 성전의 본 의미는 그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께 참된 예배를 드리며 그분의 선물을 받는 곳이어야 했다.
그러나 이모든 것은 형식으로 변하고, 성전이 이익집단이 모여
이권전쟁을 하는 곳으로 변해버린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대로하신 것이다.
파스카 축제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성대한 축제이다. 이 축제를 지내기
위해서 온 세상에 흩어져있는 유다인들은 이때에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하며 파스카 축제를 지냈다. 그때에 예루살렘에 모인 순례객들이
200만 명이 되었고, 제물로 바치는 양의 숫자도 30만 마리가 되었다고
한다. 이때에 성전에서 제물로 바치는 가축들을 성전에서 준비한 것만
바치게 하였고 성전세도 성전에서 만든 돈으로만 바치게 하여 이런
횡포가 있었던 것이다. 거룩하신 하느님의 현존보다는 자신의
이익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그 모습을 보시고 노하셔서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16절)고 꾸짖으신다.
예수님의 이 행위는 유다인들에게 반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한
행위였다. 그래서 그들은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줄 수 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18-19절). 이 말씀은 당신의 몸을 두고 성전이라고 하셨던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두 가지 성전을 볼 수 있다. 하나는 46년에 걸쳐
지어진 예루살렘 성전이며,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몸을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깊은 신학적 의미가
있다. 성전이 하느님을 만나는 장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길을 통하여 아버지께로 갈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언제나 체험할 수 있기 때문에 그분이 성전이시며,
아버지와 성령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 몸은 거룩한
성전이시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1코린 6,19) 이제 어떤 의미에서
아들이신 그리스도 안에 자녀들인 우리 자신이 성령을 모시는
궁전이다. 성령을 모시는 또 다른 성전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몸을,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뜻에 맞는 성전으로 항상 가꾸고 보존하여야 할
것이다. 하느님을 모시고 있는 이 성전이 거룩한 것처럼, 그 안에서
하느님께 기도하는 우리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나 자신을 통하여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장, 성전이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 자신이 성전임을 알았다면, 오늘 복음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복음일 것이다. 우리가 바로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이라고 하는 이
성전이 거룩할 때에 우리 교회 공동체가 모두 하느님을 모시는
성전으로 변화될 것이다. 우리는 이 성전에 생명을 심을 수도 있고,
멸망을 심을 수도 있다. 주님을 모시는 거룩한 성전이 될 수 있도록 잘
가꾸고 보존하도록 하자.
- 수원 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 [수도회] 주님 보시기에 사랑스럽고 소중한 성전
2018년 나해 11월9일 라떼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주님 보시기에 사랑스럽고 소중한 성전
한국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장상협의회에 참석했다가, 존경하는
글라렛 선교 수도회 관구장 김병진 가브리엘 신부님께서 최근 겪고
계시는 고초를 전해듣고, 마음이 참 ‘거시기’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현재 속초에서 춘천교구 산하 영북지구 무료급식소인
‘작은 형제의 집’ 운영을 총괄하고 계십니다. 이 집은 수많은 사제,
수도자, 평신도, 봉사자들의 힘을 모아 23년째 운영해오고 있는
집이기도 합니다.
신부님께서는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비가오나 눈이 오나 작은
형제의 집으로 출근하십니다. 수많은 노숙인 형제들과 독거노인들,
장애우 형제들에게 정성 가득한 밥 한상 차려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소탈하고 서민적인 신부님께서는 사랑이 가득 담긴 한끼 식사를
차려내는데 필요한 굳은 일들을 묵묵히,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해오셨습니다.
그런데 최근 신부님께서 참으로 이해할수 없는, 청천벽력 같은 일방적
통지에 크게 가슴 아파하고 계십니다. 지난 10월 속초시는 갑작스레,
잘 운영되고 있던 작은 형제의 집에 대한 철거 요청 공문을 내려보낸
것입니다.
이에 춘천교구 영북지구 사제 모임과 작은 형제의 집 운영위원회는,
일방적이고 부당한 시의 조치에 대응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였고,
적극 대응하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작은 형제의 집은 원래 속초시의 동의를 받고 시작한 사업입니다.
또한 속초시의 지적사항과는 달리 지극히 청결한 위생상태를
유지해왔으며, 웬만한 식당보다 나은 위생상태 속에 운영해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간 작은 형제의 집은 국가나 지자체의 도움없이,
시민들의 십시일반으로 운영되어 왔고, 최근 어려워진 서민 경제
분위기 속에,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웃들을 위해 사심없는 봉사를
계속해왔습니다.
이토록 의미있고 아름다운 사업에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돕지는 못할망정, 당장 철거를 요구하고 있으니,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처사가 아닐수 없습니다.
바티칸 근처에서 기거하는 노숙인 형제들을 그 누구보다도 끔찍히
생각하고 챙기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소식을 들으셨다면, 분명
크게 개탄하시고 진노하실 일이 분명합니다.
하늘 높이 치솟은 종탑아래,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대성전도
아름다운 성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극단적 소비주의와 개발주의
깃발 아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쓸쓸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소박하고 따뜻한 둥지인 작은 형제의 집 역시, 하느님 보시기에
너무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성전이 분명합니다.
작고 소박한 작은 형제의 집 지척에는, 1년여에 걸쳐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막 끝낸 속초시 문화회관이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속초시는 발송하는 공문에 ‘시민 한 사람이라도 더 행복해 하는
속초’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습니다.
인생의 막장까지 내몰린 시민도 엄연한 시민입니다. 사방이 가로막힌
높은 벽 앞에 선 시민도 당연히 시민입니다. 병들고 소외되었지만
때로 부끄러움에, 때로 방법을 몰라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시민도 엄연한 시민입니다.
문화회관 리모델링도 좋지만, 가난하고 소외된 속초 시민들이 하루
단 한끼라도 마음 편히 식사를 할 수 있는, 작은 무료 급식 공간
하나! 마련해주시면 안될까요?
라떼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을 맞이합니다. 주님 보시기에 너무나
사랑스럽고 소중한 성전, 작은 형제의 집이 훼손되지 않도록,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건설되도록 함께 기도하고,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노심초사하고 계시는 신부님을 위해 많은 지지와
격려를 보내드려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SDB)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수도회]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요한 2, 20) 한상우 바오로 신부 강론
2018년 나해 11월9일 금.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요한 2, 20)
거두어들여야 할 때를 아는 자연이 단풍을 이제 거두어들입니다.
성전의 역할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할 수 없습니다.
참된 신앙심을 고취하는 곳이 참된 성전입니다.
좌절과 성숙이 반복하듯 우리의 삶과 함께하는 곳이 바로 성전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이 만나게됩니다.
성전의 중심점에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근본정신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느님께 자리를 내어드려야 할 우리의 시간입니다.
봉헌은 진심으로 회개하는 우리의 삶입니다.
성전은 우리가 소유할 수 없는 하느님의 거룩한 몸입니다.
하느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을 성전다운 모습으로
가꾸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성전의 힘은 우리의
진실된 실천에 있음을 기억합시다.
우리의 삶과 거룩한 성전이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길 기도드립니다.
성전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우리의 실천이 진정한
성전의 길임을 잊지맙시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기타] 11월 09일 (금) - 복음을 위하여 택정 받은 자
오늘은 “복음을 위하여 택정 받은 자”에 대해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로마서 1장 1절 말씀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위하여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 택함 받은 것에 대하여
저는 참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니 내가 우리 아버지
어머니에게서 났지 어떻게 복음을 위하여 태어났는가?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택했다고 하는데 그 하나님이 우리의 눈에
보이기는 하는가? 갖가지 의문과 믿지 못할 것에 대해서 오랜
시간동안 고민을 했습니다.
하지만 믿음이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음을 알아갈 때 그 뜻을, 그 의미를 한 번에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시간을 두고 알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믿음은 한두 번 믿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일생을 통하여 믿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택함을 받았다는 사실,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으로부터 사택에 가서 무엇을 하나
가져오라고 했을 때 저는 심부름에 택함 받은 것에 대해서 얼마나
기뻤는지 두 팔을 흔들면서 그 심부름을 했는데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일생을 택함 받았고 저 천국의 영원한 보장까지
받는 다는 것 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권태일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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