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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들을 분별하라
요일 4:1-6
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2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5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요일 4:1-6 /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 진정으로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라고 하더라도 전적으로 믿지는 마십시오. 먼저 그것이 참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인가를 시험하여 보십시오. 많은 거짓 예언자들이 사방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그들의 가르침이 성령께서 일러주신 것인지를 알아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그들이 받아들이느냐 않느냐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이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그들의 가르침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해도 좋을 것입니다. 3) 그러나 그들이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가르침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 아니라 적그리스도와 같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에게서 온 것입니다. 이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리라는 것은 여러분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벌써 여기저기에 나타나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4) 사랑하는 젊은 형제들이여, 여러분은 하나님께 속해 있고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들과 싸워 이겼습니다. 이 세상을 좀먹고 있는 어떠한 악한 예언자보다도 더 강한 분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5) 이 악한 예언자들은 세상에 속한 자들이라서 세상 사람들의 비위에 맞는 말만 골라 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도 그들의 말에 솔깃해 하는 것입니다. 6)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과 대화를 하는 사람들은 우리 말에 귀를 기울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 한가지로도 그들이 하는 말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냐, 아니냐를 가려낼 수 있습니다.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시험하는 것과 관련하여 요한은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 자들을 시험해 보라고 합니다. 다음으로는 그들을 시험하는 데 사용하는 기준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참 신자와 거짓 신자를 구분하는 문제에 이 기준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영들을 분별하라(1) 교회는 물질과 육체는 악하고 천한 것으로 여기는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이단과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육체적 활동을 거부하고 명상이나 수행을 통해 신비한 영적 지식을 얻는 데에만 관심을 쏟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한은 그들을 거짓 선지자(1), 적그리스도(3), 미혹의 영(6)이라고 부릅니다. 영적인 진리를 혼란케 하는 영들을 다 믿지 말고 분별하라고 말합니다.
분별의 기준(2-3) 당시 적그리스도의 영에 속한 그룹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바르게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신앙을 가진 모임과 그렇지 않은 모임이 있습니다. 2절에 표현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음을 시인하는 자’가 바른 신앙을 가진 자입니다. 바른 영적 그룹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그 말씀에 기초합니다. 자신의 온 몸을 던져 사랑하신 예수의 명령과 본을 따라 참되게 사랑하는 이들만이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4-6) 하나님께 속한 자는 세상을 이깁니다. 그것은 그 안에 계신 하나님이 세상에 있는 이(마귀)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이러한 승리의 확신이 있습니다. 세상에 속한 자는 세상에 속한 말을 하고 그 말에 빠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자는 세상의 말을 듣지 않고 사도 요한이 증거하는 바른 진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세상이 귀 기울여 듣는 소리에 흔들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소리,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는 말씀입니다. 미혹의 영은 이 주님의 말씀에서 떠나 그들이 조작한 말씀에 귀 기울이도록 합니다.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구별해야 합니다. 지금은 그럴 때입니다.
적용: 당신은 지금 진리의 영을 따른다는 확신이 있습니까? 어떻게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어떻게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이 지금도 여전히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논과 밭에 풍성한 곡식을 자라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가을에 이것들을 거두는 자의 건강을 지켜주신 것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이 풍요 속에 안주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 분의 은혜는 우리의 간구를 들어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해결해 주신 하나님 그 이름을 높여 찬양합니다.
< 설 교 >
요한일서 4:1-6
[찬송가] 462장 ‘생명 진리 은혜 되신’ / (작성: 이대은)
요한 사도는 요한일서 내내 거짓 선지자와 적그리스도의 영향을 경계합니다. 교회가 생겨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인데도 이단 사조들이 득세한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예수님은 이미 이러한 상황을 예견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 34절입니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그리고 바울 사도 역시 거짓 선생들과 지속적으로 대결하며 참된 믿음을 지켜나갔습니다. 새번역 성경은 고린도전서 11장 18절 19절 말씀을 이렇게 옮기고 있습니다. “첫째로, 여러분이 교회에 모일 때에 여러분 가운데 분열이 있다는 말이 들리는데, 그것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하기야 여러분 가운데서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환히 드러나려면, 여러분 가운데 파당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단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과도 같이 느껴집니다.
이처럼 이단과 거짓 가르침은 예수님 당시부터 판치고 있었고, 교회는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도전 세력과 맞서 순수성을 지키고 신앙의 명료함과 정결함을 유지했습니다. 이단은 멸망하지만, 교회를 더 교회답게 만드는 역할도 감당했습니다. 우리 역시 기독교 역사가 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세력을 넓혀 가는 이단 세력들을 보며 의아해하며 경계합니다. 전도관, 통일교, 구원파, 다미선교회,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 등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단이 나타날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려워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 모든 이단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시고 친히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분명한 성경적 기준으로 그들을 판단하고 우리의 믿음이 무엇인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 사도는 이러한 이단을 구분하고 대처하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방법을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지금도 쉬지 않고 적그리스도의 공격을 당하는 우리는 이 말씀을 명심하고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1-3) 분별의 근거]
사도 요한은 앞서 사람이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이 사람 안에 거하는 상호 내주의 증거로 성령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증거가 외적으로는 형제를 사랑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모든 거짓 선생들과 거짓 선지자들 역시 자신이 하나님의 영으로 말한다고 강변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성령의 증거에 호소하며, 때로는 하나님이 행하신 것으로 보이는 현상들을 제시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처럼 서로 희생하며 사랑하는 열매를 맺지 못하겠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함께 상당 기간 생활해야만 파악할 수 있는 요소이기에, 그들의 가르침을 처음 접할 때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권위나 신적인 권위에 호소하면서 거짓 교훈을 가르치는, 자칭 그리스도인들이 제시하는 틀린 믿음과 신학을 어떻게 분변해야 하는가는 예나 지금이나 큰 문제입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과 이단들이 자신들은 하나님의 권위로 특별한 계시를 받아 말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칫하면 우리 역시 어떻게 하나님께 받은 권위를 감히 의문할 수 있는가 생각하며 속아 넘어갈 여지가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이리지만, 양의 옷을 입고 온유한 모습으로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요한 사도는 분명히 명령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영이라고 하는 단어는 프뉴마인데 오늘 본문에서는 다 영이라고 번역되었지만, 그 의미는 여러 가지로 문맥에 맞게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바람, 호흡, 천사, 귀신, 비육체적 존재, 사람의 비유형적 요소, 삼위일체의 세 번째 인격 등 다양하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그 의미를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인 성령과 하나님과 교제하는 인간의 영, 그리고 성도를 미혹하는 악한 영입니다. 요한 사도는 암약하는 이 악한 영을 정확히 분별하라고 명합니다. 분별하다는 말은 당시에 통용되던 금화의 진위 여부를 시험할 때 사용되는 단어였다고 합니다. 즉 우리는 영적인 세력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시험하고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당시는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고 지금처럼 성경이 정립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따라서 여러 면에서 혼란이 있을 여지가 많았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서 가말리엘이 하는 말을 보면(행 5:34-39) 사백 명을 이끌고 다닌 드다라는 인물도 있었고, 갈릴리에는 유다라는 사람이 일어나 사람을 꾀기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이 메시아 사상에 편승해 자신이 메시아라고 주장하기도 했고, 자신들의 선이해에 따라서 예수님을 자신들이 받아들이기 쉽도록 그럴듯한 존재로 만드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유다서는 거짓 선지자들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밝힙니다. 유다서 4절은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고 말하며 11절은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방탕하게 바꾸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또 가인처럼 교만하여 하나님께 반기를 들고, 발람처럼 물질의 유혹을 따라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거스르고, 고라처럼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다고 표현하는데, 교회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나와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세상에 거하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많은 이단이 처음에는 정통 교회에서 출발하였지만 결국은 그와 상관없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이처럼 교회를 떠나 세상에 나온 존재가 바로 이단입니다. 아무리 교회와 비슷해 보일지라도 그 근거는 세상에 있음을 잊지 말고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특히 이 분별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코로나 시대가 계속되면서 온라인을 통해 많은 영상과 글을 접하게 됩니다. 특히 믿음에 관한 내용은 절대로 다 믿지 마시고 하나님께 속한 것인지 말씀을 기초로 분별해 내야 합니다. 성경이나 믿음에 대한 주제를 검색하다 보면 이단에서 만든 자료가 많이 노출됩니다. 정확히 출처를 찾아보시고 확인하며 선별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할 것입니다.
[(2-3)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요한은 그들을 분별할 수 있는 명쾌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은 하나님께 속했고, 예수님을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주제를 깊이 다룹니다. 특히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말씀할 정도로 앎은 단순한 지식 이상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말하는 기독교 인식론의 핵심이 바로 성육신, 즉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입니다.
요한일서 1장 1절이 선포하듯이 말씀은 육신이 되어 사도들이 듣고, 보고, 만진 바 되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을 받아 사도의 전통을 잇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오신 것이라는 단어도 의미가 있습니다. ‘오다’라는 동사는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에 나타나셨다는 뜻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몸을 지니고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인간을 구속하는 사역을 행하셨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육신은 예수 그리스도가 단순히 인간에 불과했다는 이단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이 될 수 없는 신적인 존재였다는 이단 모두를 부인하며, 예수님이 참으로 인간이자 하나님이셨다는 표현으로서 기독론의 핵심입니다.
이에 비해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심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아니며, 적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입니다. 적그리스도란 ‘–에 대항하는’ 이라는 뜻의 접두어 안티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크리스토스의 합성어로서 어떤 특정한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라기보다는 본문 그대로 예수님을 시인하지 않는 모든 시대의 이단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의 맥락에서 보자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과 사명에 반기를 든 세력을 말합니다. 그들은 영지주의자뿐 아니라, 자신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하나님과 만남은 성령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 자들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역사적 사건을 무시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요한 사도는 계시는 무엇보다도 역사적 예수에 관한 사도적 증언에 기초를 둬야만 하고, 모든 주장은 예수님의 생애와 일치해야만 한다고 주장합니다.
오늘날도 많은 이단이 성경을 교묘하게 각색하고 이리저리 왜곡하여 전통적인 성경의 가르침에서 떨어져 나갑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하나님께 직접 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교주가 진정한 의미의 계시자이자 최후의 그리스도, 또는 성령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성경도 자신 안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도들의 교훈이 담긴 성경이 말씀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에 의거하여 이러한 이단 사설을 단호히 배격할 수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듯 성경의 가르침에서 떠난 이단이 힘을 발휘하는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두 가지 면에서 파악할 수 있을텐데, 첫째로 교회 안에서 조건 없는 형제 사랑이 퇴색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단은 처음에 사람을 포섭할 때 엄청난 칭찬과 사랑과 인정을 베푸는 소위 사랑 폭격을 가하면서 마음의 문을 엽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이리저리 치인 사람들이 기존 공동체나 교회에서 느끼지 못한 친밀함을 느끼고 그 공동체에 점차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과 친밀함으로 똘똘 뭉친 믿음의 공동체를 회복해야 합니다. 둘째로 교회가 기독교의 근본 진리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리를 딱딱하고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도로시세이어즈는 『기독교 교리를 다시 생각한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최근에 들어와 기독교가 상당히 나쁜 평판을 받고 있다. 교회가 텅 비게 된 게 설교자가 교리를 너무 강조해서 그렇다는 소리를 쉴 새 없이 듣곤 한다. 교리에다 지겨운 도그마라는 별명까지 붙이면서 말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 정반대다. 오히려 도그마를 무시하기 때문에 지겨움이 생기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이야말로 역사상 인간의 상상력을 가장 크게 뒤흔든 흥미진진한 드라마다. 그리고 그 도그마가 바로 그 드라마다. 그 드라마는 교회의 신조들 속에 아주 명확히 축약되어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지겹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 놀라운 문헌들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거나, 너무 자주 또 너무 기계적으로 암송해서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우리가 암송하는 사도신경은 그 자체가 집약된 교리 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참뜻을 항상 되새긴다면 그 놀라운 의미에 압도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이야기도,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셔서 사람이 되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사람도 영원히 살게 하신다는 이야기보다 신선하고 충격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교회로서 요한 사도의 말씀처럼 형제 사랑을 진정으로 실천하고, 사도들이 전한 예수님이 육체로 오셨다는 진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항상 새롭게 인식함으로써 이단의 공격에 자신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끊임없이 그분 안에 거함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고 답하는 과정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4-6) 하나님 vs. 세상]
[(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이제 사도 요한은 그러한 혼란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기 때문에 이미 그들을 이겼다고 말씀하며 안심시킵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가 누구인지 판별하는 기준은 어떠한 신령한 은사를 소유했느냐가 아닙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인식적인 측면에 더 중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을 함께 지키며 공동체에 머무는 자들은 하나님께 속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 역시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인식을 유지하고 한 성령을 섬기는 공동체에 끝까지 헌신함으로써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입증하여야 할 것입니다.
또 요한 사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였고, 우리 안에는 예수님이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예수님을 아는 우리가 영원하신 삼위일체의 연합 가운데 함께 거한다는 영광스러운 선포입니다.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신 부활로 이미 승리를 거두셨습니다. 그 삼위일체 하나님이 사탄보다 크신 분이고 이미 승리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적그리스도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평안합니다. 요한은 서신 내내 하나님과 세상을 극명하게 대조하며 우리의 소속이 두 가지 중 하나임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고,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자는 세상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하였다면 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두려워하지 마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 담대하게 이미 이긴 전쟁을 날마다 승리하시기를 소원합니다.
[(5-6)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않는 자는 세상에 속한 자로서 미혹의 영인 세상의 영에 끌려 세상의 말을 하고, 세상의 말을 듣습니다. 이에 비해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여 하나님을 아는 자는 진리의 영에 끌려 하나님의 말을 하고 듣습니다. 진리와 오류, 하나님과 세상, 하나님께 속한 자와 세상에 속한 자는 명확하게 구분이 이루어집니다. 회색지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같은 행위를 하고 있을지라도 그 함의는 전혀 다릅니다. 오늘 우리는 어디에 속하여 무슨 말을 하고 무슨 말을 듣고 있습니까? 자신을 자세히 살피고 사도의 가르침에 온전히 서 있는지 스스로를 살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바른 길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기를 소원합니다. 세상은 당연히 세상에 속한 자들의 말을 듣습니다. 따라서 세상이 우리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서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것 뿐입니다. 우리를 친구 삼으셔서 자신을 알 수 있도록 자신을 낮추시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도록 하신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적그리스도의 영을 이기는 비법입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 주님과 풍성한 사랑의 교제 가운데 세상에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단은 결국 멸망하지만, 교회를 옳게 만드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도구임을 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고 형제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 바르게 살아가고 이단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게 하시옵소서. 또 조국 교회에 이단이 활동함을 볼 때 마음 아파하고 긍휼함을 품게 하옵소서. 우리가 먼저 회개하며 저들을 바른 믿음으로 이끌도록 최선을 다하게 하시옵소서. 우리 주위에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봅니다. 주님의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영을 다 믿지 말고 분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사람들이 이단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책임은 무엇입니까?
3. 교리가 딱딱하고 흥미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딱딱하게 느껴지는 내용을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4. 우리가 적그리스도의 공격에 두려워하지 않고 안심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5. 주위에 이단에 빠진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대해야 할지 오늘 말씀을 근거로 생각해 보십시오.
살아계신 주, 살아있는 신앙
요일 4:1-6 / 유기성 목사
성탄절과 연말 연시 특별집회로 요한일서 강해설교가 몇 번 끊어져서 설교 전체의 맥을 놓진 분들이 많겠기에 요한일서 1장부터 3장까지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고 오늘 말씀을 이어가겠습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를 기록한 목적은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예수 믿는 성도에게는 충만한 기쁨이 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요일 1: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성도들에게 있는 충만한 기쁨은 살아계신 주 예수님입니다. 그 주님과 친밀히 교제하며 사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성육신만 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 안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마음에 임하신 사람은 반드시 죄짓지 않는 의로운 삶을 살게 되고 사랑만 하며 살게 됩니다. 주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면서 죄짓고 다투고 미워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인지 마귀의 자녀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겉으로 만으로는 모릅니다. 교회 안에서 적그리스도가 나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부인한 니체는 목사 아들이었고 신학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교훈이든지 겉만 보지 말고 그 영을 분별해야 합니다.
요일 4:1 사랑하는 여러분, 어느 영이든지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에게서 났는가를 시험하여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가 세상에 많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영을 분별하는 기준을 예수님의 성육신을 믿느냐 아니냐로 제시합니다.
2절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을 이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음을 시인하는 영은 다 하나님에게서 난 영입니다.
왠 교리인가 하시겠지만,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셨음을 믿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마귀가 가장 공격하는 복음이 하나님이 참 사람이 되셨다는 성육신 교리입니다. 이것을 믿지 못하면 속죄함과 거듭남의 복음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육체로 오셨음을 믿지 않는 이들이 요한 사도 때 있었습니다. 소위 영지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영과 육은 완전히 별개라 구원은 영혼이 받는 것이고 육은 죽으면 끝나는 영원히 타락한 존재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참 하나님이 참 사람이 되셨음을 안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영이 인간 예수 안에 임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인간 예수 안에 하나님이 영이 잠깐 머물렀다가 예수가 십자가에 달릴 때 그 몸에서 떠나 하늘에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인간 예수 안에 하나님의 영과 인간 예수가 함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으면 속죄함의 십자가 은혜는 없습니다. 부활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그리스도가 아닌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와 한 몸이 되시고 우리의 생명이 되셨다는 믿음도 부인됩니다. 죄짓지 않고 의롭게 살 수 있고 사랑만 하며 살 수 있다는 믿음도 무너집니다. 그러니 정말 무서운 미혹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초대교회 때 이야기이고 우리는 다 성육신을 믿으며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으니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 아닌가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도 이와 같은 미혹이 우리 안에 무섭게 퍼져 있습니다.
3절 그러나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영은 다 하나님에게서 나지 않은 영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적대자의 영입니다. 여러분은 그 영이 올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이 세상에 벌써 와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시인하는지 아닌지는 말을 보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분별의 기준이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 15:4-6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예수님이 정말 성육신하셨으며, 그리스도라면 우리도 예수님과 포도나무와 가지처럼 한 몸이 될 수 있으며,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은 우리 안에 거하는 완전한 하나됨이 예수님을 믿는 기준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믿어지고 실제로 누려집니까? 그렇지 않다면 성육신을 믿는다는 것은 머리로만 믿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는 육신대로 살고 교회 와서는 영으로 예배합니다. 예수님과 자신이 정말 하나가 되었음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의 삶을 그대로 사는 것입니다. 자신 안에 예수님도 계시지만 자신과 하나가 된 것은 아닙니다. 자기 안에 두 인격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성육신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자신이 하나가 되었다고 믿지 못하면 우리는 형식적이고 율법적인 신앙에 빠지게 됩니다. 한국 교회는 지금 형식적 신앙의 함정에 빠졌습니다.
“나는 이단에 속하지 않고 정통 교회에 속하였어!” 방심하면 안됩니다. 형식적 신앙이 위험한 것은 자기도 속고 남도 속이기 쉽기 때문입니다. 형식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 시인합니다. 그렇다는데, 자신이 그렇게 믿는다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고 신앙고백도 하고, 주기도문도 하지만 말로만 그렇지 행위로는 부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초대교회 때는 그나마 예수가 그리스도다 고백하느냐 아니냐로 영 분별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고백하는 것만으로 분별할 수도 없습니다. 더 심각한 미혹이 온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믿는다면 반드시 삶에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4절 ...여러분 안에 계신 분이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세상 보다 큰 분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이 어찌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 수 있겠습니까?
미국 어느 교회가 술집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사서 옮기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술집 주인이 기르던 앵무새 한 마리를 교회에 선물하고 갔습니다. 주일 아침이 되었는데, 목사님이 가운을 입고 강단에 올라가자“새 주인, 새 주인”하더랍니다.
성가대가 성가대석에 올라가자“새로운 팀, 새로운 팀”하더랍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예배당으로 들어오자“그 손님, 그 손님”하더랍니다. 그 중에 술집에서 늘 보던 그 사람들이 주일이면 교회에 온 것입니다.
삶으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부인하면서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속고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계 2:4-5 그러나 너(에베소교회)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 3:1 내가 네(사데교회)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에베소교회
계 3:15-17 내가 네(라오디게아교회)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어느 목사님이 어느 교회 장로님과 권사님들이 싸우시고 남의 말을 많이 하기에 제 설교를 들어보라고 하셨답니다. 얼마 후 만났더니 은혜를 받으시는 정도가 아니라 열렬한 팬이 되셨더랍니다. 그런데 여전히 서로 미워하고 싸우신답니다.“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자신은 전혀 보지 못하니 말입니다.”설교 듣고 은혜 받았다고 정말 깨달은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삶에 기쁨도, 감격도 없습니다.” 거짓말입니다. 정확히 말해야 합니다. 실제로는 예수님을 안 믿는 것입니다.
윌리엄 로우(William Law)는 [경건한 삶을 위한 부르심]에서“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성도는 가장 기도 많이 하거나 가장 금식 많이 하는 성도가 아니다. 가장 구제 많이 하는 성도도 아니다.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어떻게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 됩니까? 생명이 바뀐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4절 ...여러분은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며
6절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임하셨다, 정도가 아닙니다. 생명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주님이 우리 안에서 우리의 생명, 우리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분명히 전에는 세상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생명이 바뀌었음을 정확히 믿어야 합니다,
“나는 죽었다! 장례식을 이미 치렀다!” 그러면 이제부터 어떻게 살겠습니까? 가족은 어떻게 만나나? 예수님의 생명으로 예수님의 사랑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직장동료를 어떻게 만나나? 예수님의 생명으로 예수님의 사랑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길거리에서 지나치는 사람은 어떻게 만나나? 예수님의 생명으로 예수님의 사랑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교인들은 어떻게 만나나? 오직 예수님의 사랑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모든 염려, 두려움, 조급함, 미움, 갈등, 다 사라집니다, 없애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다 사라졌습니다, 죄에 대한 완전한 승리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나를 죽여주세요 라고 기도하지 말고 나는 죽었습니다.” 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10년, 20년 다니는데도 계속해서 시험이 오고 방황하고 무너집니다.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입니다.
‘열심히 새벽기도 안 해서 그런가 보다!' 근본 문제가 해결이 안되어 있는데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더 죽습니다.
‘나를 다스리는 다른 존재가 있다’ 깨달아야 합니다. ‘나를 잡고 있는 실제적인 지배자’가 세상인데, 무슨 수로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예수 안에 죽고 예수 생명으로 사는 자에게는 마귀는 역사할 수 없습니다. 새해 결심을 해도 대부분 1주일도 못가 예전으로 돌아갑니다.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어지간해서는 못 바꿉니다. 습관이 바뀌어지면 좋겠지만 안 바뀐다고 해서 치명적이지 않으면, 다시 옛 습관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폐암에 걸린 환자는 담배를 끊을 수 있고, 간암에 걸린 환자는 술을 끊게 됩니다. 심각한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언제 정말 거듭날까요? ‘예수님과 함께 죽었구나! 그렇지 않은 자는 구원받은 자가 아니구나!’ ‘한 해만 주어졌구나!’ 하는 사실을 진짜 믿을 때입니다.
복음학교에 참가했던 한 성도의 간증입니다. 이 분은 평소에 직장에서 성실했고 가정적이었으며 교회도 열심히 다니던 사람이었습니다. 남의 돈을 훔친 적도 없고, 남의 아내를 탐한 적도 없고, 아들에게도 삶으로 본을 보이며“내가 내 어머니를 섬기는 것처럼 너도 이 다음에 네 어머니를 섬기도록 하라.”고 당당히 말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와 아들이 복음학교에 다녀오더니,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인생의 목표가 바뀌었으니 선교사로 헌신하겠다고 허락해 달라더랍니다. 아들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유학을 준비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평소에 교회에 다니며 거룩한 척하고 살던 이 분은 순간 당황하여“그래 잘했다. 훌륭하다.”하지 못하고 버벅거리게 되더랍니다. 안 된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꼭... 그렇게 해야 하겠냐...‘지금 그렇게 해야만 하겠냐... 등 자꾸 혀가 꼬이면서 이상한 질문만 하였답니다.
아내가 당연히 반대하고 나설 줄 알았는데, 아내 마저 아들 편을 드는 것입니다. 정말 걱정이 되더랍니다.
그런데 더 난감한 것은 툭하면 아내와 아들이자기는 죽었다‘ 는 것입니다. 도대체 뭐가 죽었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어서 자기는나는 살아있다.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시체들 옆에서 지내는 것이 너무나 힘들더랍니다. 그래서 머리를 굴려가며 집안의 시체들을 다시 살려보려고 애쓰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맘대로 되지 않더랍니다.
그런데 갑자기‘아내와 아들이 정말 예수를 제대로 믿는 것이고 자기가 변화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고민하다가 아내가 이야기하는 복음학교라는 곳에 가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물었답니다.그곳에서 5박 6일을 지내려면 어떻게 하면 가장 잘 지낼 수 있어?라고 묻자 아내의 대답은밥 많이 먹으면서.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고 하더랍니다.
그래도 자신이 없었답니다. 다시 이야기 하였답니다.나는 군대도 가본 일이 없고, 사람들하고 합숙을 하면서 먹고 자고 하는 일을 해 본.적이 없는데 그곳에서 5박 6일을 살다보면....나.죽을 지도 몰라.라고 했더니, 아내는 너무나 기다렸다는 듯이확실하게 죽으세요.라고 말하더랍니다. 얼마나 서운한지 몰랐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이 분은 하나님을 믿는다지만 세상 속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는 절대 살 수 없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답니다. 믿음 따로 삶 따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학교에서 관념적으로 알고 지내던 예수님의 피와 죽음이 이 분의 삶 속에 깊이 들어왔습니다. 드디어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사는 진리의 복음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는 .말씀이 너무나도 이해되고 믿어지고 기쁨이 되더랍니다.
죽은 척하는 자로서가 아니라 진짜 죽은 자로, 그리고 새 생명을 얻은 자로 살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렇게 십자가를 통과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들에게 말했습니다.아들아, 네가 선교사로 나가겠다고 할 때, 기쁘게 대답해 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했다.“하나님이 너를 도와 주시겠지만, 나도 너의 후원자가 되어줄게.라며, 꼭 껴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선교사님들을 돕는 자가 되든지, 아니면 제 아내와 더불어 선교사가 되어 주님이 보내시는 그 곳이 세상의 땅 끝에서 죽어... 하늘 복판에서 주님을 만나기를 기대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명이 바뀐 사람이 어떻게 되는 지 감이 잡히십니까?
주님은 지금 우리 안에 살아 계신 주님이십니다. 예수 믿는 것은 생명이 바뀌는 것입니다, 생명이 바뀌어야 진짜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성찬은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임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의 생명이심을 확인하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요 6: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58...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성찬 떡과 잔을 먹고 마시면서, 주님께서 이렇게 내 안에 거하시는구나 하고 주님의 임재를 확인하고, 믿음으로 예수님이 나의 생명이심을 고백하고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영을 어떻게 분별할까?
요일 4:1-6 / by 조정의
최근에 <목적이 이끄는 삶>의 저자 릭 워렌 목사가 새들백 교회에서 세 명의 여성 목사를 안수하여 세웠다. 새들백 교회가 소속된 남침례 교단 JD 그리어 총장은 이를 강하게 비판하며 “실망스럽고 동의할 수 없다”라고 말했는데, 교단이 동의한 성경적 교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같은 교단 소속 한 여성 목사는 남침례 신학교 총장 알 몰러 박사에게 공개서한을 통해,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너무 작아서 실망스럽다’고 비판했다. 반대로 ‘내가 믿는 하나님은 남성과 여성 모두를 목사로 세워 일하시는 더 큰 하나님’이란 말이다. 당신은 이 여성 목사에게 뭐라고 말하겠는가?
‘내가 믿는 하나님은 이렇다’, ‘하나님이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주장을 무슨 권리로 또 무엇을 근거로 판단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런 주장을 수없이 많이 듣는다. ‘성령께서 음성으로 들려주셨다’, ‘성경을 읽다가 성령께서 어떤 부분에 큰 감동과 함께 말씀을 주셨다’, ‘성령께서 꿈속에서 혹은 기도 중에 강한 느낌으로 보여주셨다’, ‘성령께서 당신과 결혼하라고 하신다.’
어떤 사람은 혹시라도 하나님의 영이 말씀하신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분별하는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한다. 하지만 사도 요한은 본문에서 적극적으로 “분별하라”라고 명령한다. 만일 하나님의 영이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면, 미혹의 영이 거짓을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결과 미혹의 영이 진리의 영을 따르는 우리를 바른길에서 떠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영을 분별할까? ‘성령의 말씀’을 받았다는 사람을 무슨 권리로 무엇을 근거로 판단할까?
1. 명령: 믿지말고 분별하라(1절)
본문 전체에서 명령어는 두 개로 모두 1절에 나온다. 믿지 말라 그리고 분별하라.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 그리고 사도로서 자신이 사랑하는 성도들을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간곡히 부른 뒤, 두 개의 분명한 명령을 성령의 감동에 따라 하달했다. 바로 여기서 우리가 누군가를 판단하고 분별할 권리가 생긴다. 성령 하나님께서 분별하라고 분명히 명령하셨다.
믿지 말고 분별할 대상은 바로 영들이다. 성경에서 영은(프뉴마) 바람, 호흡, 천사, 귀신, 성령 등 다양한 대상을 가리키는데, 여기선 진리의 영 성령과 미혹의 영 귀신이(타락한 천사) 그 대상이다. 사람은 자기 영의 판단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지만, 각각 하나님의 영이나 미혹의 영의 욕구에 따라 동기와 힘을 얻는다. 마귀는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고(요 13:2), 베드로는 오순절에 성령이 충만하여 복음을 선포했다(행 4:8).
① 첫 번째 명령인 믿지 말라는 다른 말로 속지 말라는 말이다. 현재형으로 언제든 우리가 미혹의 영에 속을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전제한다. 또한 영을 다 믿지 말라는 경고는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영이 단 하나뿐임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것저것을 다 믿으면 안 된다. 오직 하나의 출처에서 나온 한 영을 믿어야 한다. 왜 그런가? 이어지는 명령이 설명한다.
②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영들은 둘 중 하나로 분별할 수 있다. 하나님께 속하였든지 그렇지 않든지. 우리가 계속해서 주의하고 분별해야 할 사항이 이것이다. 과연 이런 말과 행동에 동기와 힘을 부여한 것은 하나님께 속한 영인가 아닌가. 이런 분별이 절실히 요구되는 건 다음과 같은 현실 때문이다.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하나님 자녀는 안팎에서 거짓과 싸우고 있다. 밖에선 거짓의 아비 마귀가 권세를 잡고 세상을 온갖 거짓 교훈과 풍조로 이끌고(엡 2:2; 4:14), 거짓의 아비 마귀의 욕심대로 행하는 거짓말쟁이 교사, 선지자가 교회 안에서 일어나 진리의 영을 따르는 하나님 자녀를 계속해서 미혹한다(계 20:10). 바울과 야고보는 실제로 초대교회 안에 미혹되어 믿음과 진리를 떠난 자가 있음을 알았다(딤전 4:1, “어떤 사람들이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약 5:19,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
이스라엘 역사만 봐도 하나님 백성 가운데 거짓 교사의 위험은 언제나 큰 문제였다. 모세는 고별 설교를 통해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라고 경고했다(신 13:1-3). 이스라엘 왕 아합과 유다 왕 여호사밧이 아람 왕을 함께 치러 갈 때,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봤는데, 사백 명쯤 모인 선지자들 모두가 거짓을 말하는 데 동참했고, 미가야 한 사람만 여호와의 참 선지자로 진리를 말했다(왕상 22장).
그러므로 항상 우리를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의 말에 속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 영을 분별하려면, 이적과 기사 같은 표적을 근거로 삼아선 안 된다. 적그리스도도 이적과 기사로 사람을 미혹한다(계 13:13-18). 절대다수가 한 입으로 말한다고 진리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무얼 근거로 분별할까?
2. 근거: 예수님을 시인한다(2-3절)
요한은 무엇으로 하나님의 영을 분별하는지 곧바로 설명했다.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2절). 2절 후반부에서 요한은 이렇게 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 말하고, 3절을 보면 이렇게 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라 적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말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모든 영들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영이거나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영 곧 적그리스도의 영, 둘 중 하나다. 그리고 그 둘을 가르는 기준, 근거는 이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가?(2절). 3절에선 간략하게 예수를 시인한다고 말했다. 왜 이것이 중요한지 당시 역사적 상황을 통해 먼저 생각해보자. 요한은 앞서 교회에서 나간 이들을 적그리스도라 비판하며 그들이 한 거짓말을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한 것이라 지적했다(요일 2:18-29).
당시 철학자 플라톤의 영향을 받아 영은 고귀하고 육은 무가치한 것으로 보는 사상이 영지주의라는 이름으로 교회 내부에 퍼졌는데, 아마도 교회 중요한 역할(교사, 인도자)을 하는 인물 중 몇 사람이 그 영향을 받아 예수님께서 한 인격 안에 두 성품(인성, 신성)을 지니신 것을 부정하고, 예수는 그리스도가 들어왔다 나간 인간에 불과했다고 가르치거나, 반대로 그리스도는 인간의 모습으로 보인 것뿐이지 실제 인간이 된 적은 없다고 가르쳤다.
그들은 이러한 사상이 영의 계시에 따른 특별한 지식에서 왔다고 사람들을 미혹했다. 요한은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걸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않는(어떤 형태로든 부정하는) 영은 절대로 하나님께 속한 영이 아니다. 적그리스도의 영이다.’
요한은 3절 끝에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라고 말했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예고한 종말의 적그리스도가 지금 온 것은 아니지만 그 적그리스도를 조종하고 움직여 그리스도를 대적하게 할 미혹의 영은 지금 벌써 요한이 이 편지를 쓰는 시점에 세상에 나와 그들을 미혹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정하는 거짓은 이 서신서가 기록되고 나서 몇백 년간 교회를 괴롭혔다(지금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
이번엔 역사적 상황에서 일반 원리를 도출해보자. 사도 요한은 특별히 예수님의 성육신에 초점을 맞춰 근거를 제시했지만, 여기서 우리는 더 확장하여 적용할 수 있는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은 일차적으로 그분의 성육신을 의미하지만 육체로 오셔서 그분이 하신 일, 곧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 부활까지 포함한다.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전체적인 지식(“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벧후 3:18)을 말한다.
예수님은 구약의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의 자기 계시였다.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만,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그분의 말씀과 사역을 통해 하나님을 보여주셨다(요 1:18). 그러므로 예수님을 바르게 아는 것이 곧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빌립에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요 14:9). 하나님께 속한 영, 성령은 무엇을 증언하시는가?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요 15:26). 우리는 기록된 성경을 통해 성령이 증언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참지식을 가지고 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 속한 영은 구약의 선지자를 통해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여 성경에 기록하셨고(요 5:39), 하나님의 영은 사도들을 통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여 성경에 기록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진리의 영이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것을 근거로 미혹의 영을 분별할 수 있다. 내가 믿는 예수, 내가 아는 복음, 내가 분별한 진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성경을 통해 증언한 예수님,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 진리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담대하게 하늘로부터 온 천사까지 저주했던 것이다.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
사도 요한 역시 같은 확신을 가지고 선포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6절).
사도들이 선포한 복음, 그들이 말한 예수님의 말씀과 복음의 역사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근거로 우리는 계속해서 진리와 거짓,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분별해야 한다.
세상에 거짓 교사는 셀 수 없이 많다. 오늘날 우리는 문명의 발달과 함께 거짓 가르침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기독교 아류작 이단이 얼마나 많은가? 교회 이름을 붙이고 목사라고 부르며 자신을 재림예수로 섬기게 만드는 이단에 미혹되어 가정을 버리고 재산을 탕진하고 삶 전체를 허비한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 모두 하나 같이 성경을 인용하고, 겉으로 보기에 크고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행한다고 주장하니, 수많은 미혹의 영을 우리가 어떻게 피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된다. 심심치 않게 교회 안에서도 한두 사람이 미혹되어 믿음과 진리를 떠나기도 한다. 요한의 편지를 받는 하나님 자녀들 역시 그런 일을 겪으면서 낙심하고 염려했을 것이다. 그런 성도들에게 요한은 위로와 소망이 되는 약속을 말한다.
3. 약속: 하나님이 승리한다(4-6절)
“자녀들아”는 친밀한 표현이면서 독자의 소속을 분명히 해준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그런데 요한은 그들이 하나님께 속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 이기었다고 말한다. 미혹의 영을 따라 공동체를 떠난 그들에게 속지 않고, 진리의 영을 따라 바른 것을 분별하여 참된 진리와 믿음 가운데 남았다는 말이다. 어떻게 그들이 승리할 수 있었는가?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4절). 그렇다.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은 세상에 있는 영들보다 크시다. ‘너희가 믿는 하나님은 작다’는 비난에 낙심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는 성경대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 하나님이 더 크시다. 가장 위대하시고 능력이 많으시며 지혜가 무궁하신 하나님이 그분에게 속한 자녀들을 반드시 승리하게 하신다(시 147:5).
하지만 그 승리가 세상의 뜨거운 환대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적그리스도의 영을 따라 말하는 이들은 세상의 칭송과 지지를 받을 것이다. 요한은 그 이유를 5절에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라고 설명했다. 자유주의나 인본주의에 근거를 둔 기독교인이 쓴 칼럼이나 강의, 설교 영상을 보라. 조회 수나 ‘좋아요’를 누른 수가 엄청나다. 그들 모두 성령이 성경을 통해 증언한 내용을 어떤 형태로든 부정하고 왜곡하여 세상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한다. 그러니 세상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들 말을 들으며 이것이 ‘참된 신앙이다’, ‘참된 기독교다’라고 추종한다.
반면 참 진리를 말하는 이들에겐 항상 원수가 있고 비난과 조롱 혹은 무관심과 무시가 뒤따른다. 하지만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말라. 요한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세상에 속했고, 그걸 듣는 이도 세상에 속했다고 평가했다.
하나님께 속한 자, 하나님을 진실로 아는 자는 미혹의 영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세상이 아무리 칭송하고 환호해도, 그들은 요한이 말한 “우리의 말” 곧 사도의 가르침과 다른 거짓을 따르지 않는다. 성경의 가르침을 떠나지 않고 믿음을 그곳에 두는 자가 진정 진리의 영을 따르는 자다. 하나님께 속한 자고 하나님을 아는 자다. 교회는 세워지고 무너지며 교인들은 오기도 하고 떠나기도 하지만, 오직 진리의 영을 따라 하나님을 아는 자는 언제든 사도적 가르침, 성경의 가르침이 전파되는 곳에 모여든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는 방식이다.
예수님께서 요한을 통해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 예수님은 이기는 자에게 영생을,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선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약속하셨다(계 2:5). 오늘날 아시아 일곱 교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이기는 자는 여전히 하나님께 속한 영이 성경대로 진리를 선포하는 곳에 모여 있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은 그런 교회에 촛대를 두고 그들과 항상 함께하시며 역사하고 계신다.
적용
오늘 말씀을 실제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어떻게 미혹되지 않고 진리를 분별하여 이기는 자로 살 수 있을까? 첫째, 다 믿지 말고 분별하라.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비판 없이 수용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편지하면서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라고 책망하며 탄식했다(고후 11:4). 경계하라. 보고 듣고 즐기는 것에 비성경적, 반성경적인 것이 있다면 반드시 멀리하라. 좋아하는 저자, 설교자, 방송인 등 유명인의 말도 성경으로 반드시 검증하라. 동시에 절대로 확실한 근거 없이 성령이 말씀하셨다고 주장하지 말라. 베드로를 사탄이라 책망하신 예수님의 경고를 기억하라. 아무리 순수한 의도라고 해도, 결과적으로 미혹의 영이 하는 일을 하게 될 수 있다. 그 일은 듣는 자를 걸려 넘어지게 한다(마 16:23).
둘째,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벧후 3:18). 위조지폐를 가리기 위해 진짜 지폐를 연구하는 것처럼, 진리의 말씀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미혹의 영의 숱한 속임수를 피할 수 있다. 성경을 바르게 알고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제대로 경험하는 것은 우리가 거짓에 지지 않고 이기는 자로 남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자녀를 미혹의 영에 내주지 않고 진리에 남게 하려면 마찬가지로 부지런히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해야 한다(엡 6:4).
셋째, 말씀의 권위에 굴복하라. 성령 하나님의 말씀만이 참 진리라는 분별은 마땅히 말씀하신 분의 권위에 절대 굴복하는 결과로 이어져야 한다. 듣기만 하고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 주님은 불법을 행하는 자라고 책망하셨다(마 7:23). 분별은 하는데 순종하지 않는 것은 진리를 거역하는 것과 마찬가지란 말이다. 이기는 자는 순종하는 자다. 이기는 자는 듣고 행하는 자다. 누구의 입에서 나오든 성경의 진리를 말한다면 반드시 순종하라.
영 분별
요한일서 4:1-6
신자에게 있어서 분별의 기준은 성경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누구든 성경을 인용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말한 것이 옳다고 하면서 자신의 말을 기준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듣는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는 도대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느냐는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독교 안에서의 말이라면 다 받아들이는 입장을 취하려고 합니다. 교리가 천국가게 하는 것이 아니니만큼 하나님을 말한다면 다 같은 기독교로 인정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의 세대에서 사랑과, 포용이라는 단어로서 기독교의 차원 높은 행위로서 인정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분별이란 성경을 이용해서타인의 옳고 그름을 가려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될 수 없습니다. 분별은 누군가를 판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그리스도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의지로 행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1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을 자칫 잘못 이해하면 타인을 판단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하지만 사도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누군가를 판단하라는 것이 아니라 거짓 선지자가 다른 예수를 말하는 것이 난무한 세상의 현실에서 언제나 그리스도에게서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하고 살피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신자는 어떤 경우에도 그리스도에게서 벗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전파되어지는 말에 대해 무작정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 말이 과연 나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고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도움을 주고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세상에는 복음을 위장한 인간의 말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수를 말하나 사람들의 관심을 예수님이 아니라 교회로 향하게 하고, 자기 자신에게 향하게 하는 말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은 항상 진리에 관심을 가지면서 말씀을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님께 관심을 가진 자를 모으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께 관심이 없고 교회나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둔 사람들은 밀쳐 내는 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이 마치 교회나 자신에 대한 관심도 용납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이것은 두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오는 것이며 또한 타협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하고 고집할 뿐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만 관심을 두지 아니한 자는 참된 복음에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다른 복음으로 뭉칠 뿐입니다.
그러면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2-3절을 보면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은 예수가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한편으로는 무척 난감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에 속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에서 이단이라고 하는 교회조차도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합니다. 만약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예 기독교를 가장한 사이비 종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을 분별하는 문제가 기독교와 기독교가 아닌 것을 가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러나 지금 사도는 그런 문제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는 교회 안에 발생한 문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라는 말도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나 그 말씀 자체가 왜곡되어 있고, 하나님이 전한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말을 나타내기에 거짓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것은 단지 말로서 인정하고 인정하지 않는 차원의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육체로 오신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은 예수님이 나의 모든 죄를 사하시기 위해 오셨음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시인하는 자는 예수님 앞에서 항상 죄인으로 서게 됩니다. 요즘 죄인임을 말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은데 분명한 것은 죄인이 없는 의인은 없습니다. 의인이란 죄의 자리에서 죄인에게 베풀어진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부각하는 것이지 의인되었으니 죄인됨을 잊어버리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인 됨을 시인하는 자는 그 삶에서도 죄인답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즉 참된 시인은 삶에서도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시인한다면 주님을 향한 사랑이 삶에서 나타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시인의 문제는 단지 말로 고백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가 육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자로 살아가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가 바로 하나님께 속한 영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고백하는 자로 사는 신자는 그 심령이 오직 주님으로 채워질 뿐 그 어떤 다른 의를 끌어 들이지 않습니다. 주님의 오심과 죄사하심이 감사함의 전부일 뿐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예수님의 의로우심만 전할 뿐, 인간의 의를 높이거나 인간의 행위를 의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자신의 행위를 의지하고 바라보게 하는 것일 뿐이며 사단의 행함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영 분별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을 높이고 예수님이 행하신 일만 의로운 것으로 가르치는 그가 곧 하나님께 속한 영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분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으로 채워진 사람이라면 섬김을 받고자 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목사를 섬겨야 복받는다’는 말이야 말로 복음을 위장한 거짓 선지자의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거짓된 말을 분별하며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삶을 살기에 힘쓰는 것이 여러분의 할 일이며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맞는 말을 한다고 해서 믿어서도 안됩니다. 내일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그리스도에게 모든 마음을 쏟으며 오직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기를 소망하고 열망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대해야 합니다. 그럴 때 바른 분별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사람을 판단하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그리스도께로부터 벗어나지 않게 위한 열망으로 살라는 의미입니다.
영을 분별하고 하나님에게 속하라
요한일서 4:1-6
믿음은 속도전이 아니라, 삶의 자세와 태도이다.
요한일서를 기록하게 된 동기는 거짓 선지자들이 세상에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주된 거짓 가르침인 <영지주의>(그노시스-이원론)가 교회 안에도 침투하였다. <영지주의>는 [영](靈)과 [물질](肉)을 엄격히 구분하였기 때문에 [영]은 선한 것이며, [물질]은 악하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예수님은 영이신 하나님이시지만 육체는 물질이므로, 영이 물질에 들어올 수 없다고 하여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성육신, 인성)을 부인하였다.
이것은 마치 오늘날 교회 안에서 만연하고 있는 신비주의, 성공주의, 성장주의와 같은 기복신앙의 교리와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기도가 하박국 선지가의 [비록 더딜지라도, 속히 이루어 주소서]인 것 같다. 그래서 신앙도 속성(급살, 속성 영어, 속셈 학원, 속달)을 좋아한다. 그리고 지금도 찬송가를 빨리 불러야 교회가 성장하며, 성경도 빨리 읽어야 영적인 교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믿음은 속도전이 아니라, 삶의 자세와 태도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마태복음13:24-30)에서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어느 것이 알곡이고 가라지인지 분간하기 힘드니까 영적인 잠을 자지 말고 정신차리고 생활하라고 경고하셨다. [사람들이 잠 잘 때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 뿌리고 갔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탄 마귀가 삼키려는 대상은 영적으로 잠자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영을 다 믿지 말고],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면 삼킬 자를 찾는다](벧전5:8)고 경고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생활에는 원칙이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요한1서4:1)
영적 생활 원칙1 - 영을 다 믿지 말라.
예수님께서는 [거짓 예언자를 조심하라. 그들은 양의 탈을 쓰고 다가오지만 속은 사나운 늑대이다](마7:20)고 경고하셨다. 그리고 엉뚱한 영을 쫓아서 열심으로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에게 대하여 엄중하게 경고하셨다.
[그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내게 말할 것이다. ‘주님, 주님,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그때 나는 그들에게 분명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무법을 행하는 사람들아, 썩 물러가라!](마7:22-23)
영적 생활 원칙2 - 하나님에게 속한 영들인가 시험해 보라. <말인가? 말씀인가?>
요한계시록 13장에서는 악령들은 [미혹의 영]이기 때문에 <거짓 선지자의 분장술>에 대하여 상세하게 밝혀준다. 그 악령들의 생김새는 새끼 양과 같으며, 하나님의 말씀도 있는 것 같고, 사랑의 모습도 보이며, 목자다운 면모도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용(사탄, 마귀, 짐승)의 말이더라]고 하였다.
사탄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든 것을 속일 수 있다. 그러나 절대로 속일 수 없는 결정적인 것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가 하는 말은 하나님께 속한 말씀이 아니라 그냥 말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영의 말씀과 말을 분별하여 믿고 들을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 안에서 현실적으로 조심해야 하는 것은 반말하는 목회자들을 조심해야 한다. 또한 반말하는 교인들도 조심해야 한다. 그것은 영적 권위가 아니라 영적 교만의 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참 그리스도인들이란 누구인가?
1. 예수께서 육체로 오심과 더불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시인하는 사람이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 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한1서4:2-3)
2.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진리의 사람이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6절)
적 그리스도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사람(3절), 세상에 속한 사람(5절), 미혹의 영의 능력과 매력에 빠진 사람(6절) 들이다. [미혹]이란, 그럴듯하게 속여서 가짜를 진짜처럼 속여 믿게 하는 것이다. 미혹의 영이 활동하는 목적은 에덴에서 하와를 미혹한 방법과 목적은 같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하고, 자기의 말을 따르게 하는 것이다.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어떻게 분별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11장에서는 [사탄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의의 일꾼으로 나오기 때문에] 구별이 어렵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반공교육을 많이 받아서 반공포스터 숙제로 그림을 그리기만 하면 북한 쪽을 빨갛게 그렸으며 사람들도 괴물처럼 그렸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 사람들도 우리들과 똑같이 생겼다는 것을 안다.
일본에서도 처음에는 누가 한국 사람인지, 누가 중국 사람인지, 누가 일본 사람인지를 분간하기 힘들다. 그러나 조금 살다 보면 거의 90% 이상은 모습만 보아도 알게 된다. 3국 사람들이 입을 벌려서 일본말을 하면 거의 99%는 발음과 억양과 분위기 만으로 알게 된다.
구약에서 참된 선지자들은 전부 다 핍박과 고난과 죽임을 당하였지만 거짓 선지자들은 왕과 백성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자기들에게 좋은 말을 해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다를 바가 없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올바른 교훈을 싫어한다. 자기들의 귀에 듣기 좋은 소리를 찾아 나선다.
디모데후서 4:3-4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목사님 믿고 따라 했다가 망했다], [집사님 믿고 돈 빌려 주었다가 망했다], [우리 자식들이 교회에 나가더니만 망했다]는 말들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말을 따랐기 때문이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말고 소문에 휩쓸리지 말고, 하나님의 세미한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다면 참된 영을 분별하는 표준이 무엇인가?
영을 분별하는 기본 표준은 말씀과 교리이다.
1.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사도행전 17:11절 이하에는 뵈레아 사람들의 영적 분별력이 소개되고 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설교를 하면 그것이 정말 그러한가 하여 금방 성경을 찾았다. 그렇게 하다 보니 믿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2. 말씀을 올바로 알고 믿게 하는 교리(신앙고백)도 중요하다.
교리도 교단에 따라서, 목사에 따라서 다르다. 그러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역사적, 사도적 신앙고백>이다. 어지러운 시대에 이단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이 실력 있는 교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저는 목사님 믿다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고 불평 불만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학생은 선생님만 믿고 공부하였다고 입시에 합격하지 않는다. 부족한 것은 자기가 알아서 참고서로도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믿음의 선친들의 신앙고백을 배워라. 그들이 왜 이런 신조와 신경들을 고백해야만 하였는가를 배워야 한다. 대부분의 교리와 신앙고백은 이단들과 싸워서 정통을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 진 것이기 때문이다.
[목사님! 이제 속이 시원합니다]-홈리스 집사님의 고백
우리 교회에는 4년 전부터 홈리스 생활을 하는 일본 사람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여 3년 전에 세례를 받고, 세례 후위 교육을 받고, 올해부터는 서리집사가 되었다. 그 분은 바로 카가야 히데미(加賀谷秀美、1950年生) 집사님이다.
올해부터 우리 교회는 세상에서의 봉사를 홈리스 전도 예배와 급식 봉사로 정하고 우에노(上野、土13:30-)와 아라카와(荒川、水10:30-)에 참가하는 교인들이 많아 졌다. 지난 수요일에 급식 장소에서 배급 받은 빵을 들고 자전거를 타고 카가야 집사님 집에 가서 빵을 전해주고 잠시 기도하는 심방을 하였다.
그런데 어제 토요일에 교회에 청소 봉사를 하러 와서 <목사님! 긴히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고 말했다. 무슨 큰 일이 생겼나 하고 내심 불안하였다. 하지만 그는 [목사님, 지난 밤(금요일)에 자꾸 <목사님에게 가서 말하라>고 하는 마음의 음성이 들려서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라면서 자초지종을 고백하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너무나 황당하였다. 그가 홈리스가 된 이유를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상한 종교에 빠져서 자기 집은 물론이거니와 처가 집까지 공경에 빠뜨려 결국에는 집에서 쫓겨나서 나올 수 밖에 었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홈리스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아키타현(秋田県) 출신으로 아내와 20대의 아들과 딸이 있었다. 그런데 6년 전에 <法の華三法行-발바닥 점으로 인생을 알 수 있다고 하여 선전하다가 몇 년 전에 교주가 사기죄로 체포되었다고 크게 보도된 바 있다>라는 이상한 종교에 들어가게 되어, 시즈오까현(静岡県)으로 4박 5일간 연수회를 갔는데, 참가비는 80만 엔이었다고 한다.
목공이었던 관계로 가난하게 살았지만 어렵게 돈을 구하여 연수회에 참가하였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교단에서는 계속해서 여러 방법으로 헌금을 강요당하였는데, 정신 없이 물건을 사면서 헌금하였는데,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부모님에게 600만엔, 처가에서 300만 엔을 빚을 진 것이었다. 그런 그가 애절하게 했던 호소가 생각난다. 간단하게 질의 응답을 정리하면 이렇다.
[저는 저도 잘 되고, 아내와 자식들이 잘 되게 하려고 그렇게 종교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빚더미였습니다. 그래서 목공 일을 그만 두고, 동경으로 돈을 벌러 와서 매달 15만 엔씩 송금하였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도산한 후에는 다른 일자리를 찾았지만 취직이 되지 않아 굶었습니다. 배가 고파서 얼마나 많이 물을 마셨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이 교회에서 도시락을 나누어 준다는 소문을 듣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은 일요일에 예배가 끝나고 먹는 점심이 유일한 밥입니다].
목사에게는 비밀 엄수의 의무가 있다. 그러나 본인은 이제 자기의 이야기를 해도 좋다고 하였다. 그는 교인들에게 자기처럼 이상한 종교나 말에 속아 홈리스가 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이러한 고백을 다 마친 집사님의 모습이 너무 시원하게 보였다.
[우와, 이제 속이 시원합니다. 이제 앞만 보고 달려 가겠습니다. 제가 죽으면 무연고자 무덤에라도 묻어 주세요].
나만 보기에 너무 아까운 자유의 모습이었다. 그가 우리 교회에 와서 자신의 과거를 말한 것은 4년 만의 일이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왔을까?]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그는 그 고백으로 인하여 진정한 자유를 얻었다고 믿는다. 마침, 다음 날 주일 설교가 [영을 잘 분별하라]였기에 하나님이 주신 음성과 신앙고백처럼 들렸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요한1서4:1)
<영을 다 믿지 마라>
<하나님에게 속한 일인가?>
<현 시대에 나타난 이단과 그 대처방법> 탁지원 소장
요한1서 4:1-6, 마태복음 24:5, 36
Ⅰ. 이단의 성서적 규정
1. 다른 예수, 다른 영(악령), 다른 복음을 전함(고후 11:4)
2. 양심의 화인을 맞아 상습적인 거짓말을 함(딤전 4:1)
3. 믿음에서 떠나 미혹의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름(딤전 4:1)
4.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교주 자신의 사욕을 좇음(딤후 4:3∼4)
5. 교주 자신을 메시야, 재림주, 그리스도라고 주장함 (마 24:5, 마 24:23∼24)
6. 교주가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함(살후 2:4)
7. 예수의 그리스도(신성)되심을 부인하거나 인성을 거부함
(벧후 2:1, 요1서 4:2∼3, 요1서 2:22∼23)
8. 거짓 예언, 거짓 계시, 복술, 허탄한 속임수로 속임(렘 14:14∼16. 겔 13:1∼7)
9. 섹스의 교리화(유 1:4)
10. 그리스도의 교훈을 반대함(요2서 1:10, 갈 1:7∼8)
11. 타 교인을 유혹함(요 10:10, 마 7:15∼16)
12. 성령은 없고 미혹의 영을 받게 함(유다 1:19, 요1서 4:4∼6)
13. 때로는 이적기사를 행하여 택한 백성도 미혹함(마 24:24)
14. 지나친 금욕주의로 자기를 학대함(딤전 4:3)
15. 절박한 시한부 심판설로 위기의식을 조장하여 공포심을 조장함 (마 24:36)
16. 가만히 들어옴(갈 2:4∼5)
Ⅱ. 이단의 공통점
1. 교주 자신과 신도들에게 맞고 인기있는 교리를 형성함.
2. 성경의 일부분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여 강조함.
3. 교회 공동체에서 분리시킴
4. 진리를 100% 완벽하게 통달하고자 하는 교만을 가짐
5. 사도들의 신앙고백을 거부함
6. 교주를 신격화시키고 숭배의 대상으로 삼음.
7. 시한부 심판설을 주장함
8. 경제 문제만 관심이 있고 신도들로부터 갖은 방법으로 금전을 수탈함.
9. 그릇된 신비주의 분위기를 형성함.
10. 주관적인 신비체험을 신도들로 하여금 객관적으로 이해시키고자 세뇌를 함.
11. 비윤리 반도덕적 속성을 지님.
12. 지상천국의 현실화를 주장함.
13. 교리의 혼합설을 주장(유불선합일주의 등)
Ⅲ. 이단을 분별하는 방법
1. 사도신경을 신앙고백으로 믿는가?
2.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도리를 믿는가?
3. 신구약성서를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가?
4. 하나님의 택한 백성만을 미혹하지 않는가?
5. 인간 교주를 신격화 우상화하지 않는가?(자칭 재림주, 메시야 50여명, 자칭 하나님 20여명 이상)
6. 불건전한 신비주의
7. 성경 해석의 오류성
Ⅳ. 성령과 악령을 분별하는 기준(마 7:15∼27, 고전 12:13, 약 3:14∼18)
1. 열매를 통한 영분별(마 7:15∼20) ☞ 성령의 열매(갈 5:22) ☞ 악령의 열매(갈 5:19∼21)
2. 기독관(그리스도론)을 통한 영분별 ☞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 십자가 대속의 죽음 ☞ 부활 승천 ☞ 재림
3. 사랑의 유무를 통한 영분별(요일 4:7∼11, 요 13장)
4. 언행을 통한 영분별 ☞ 그리스도의 십자가 증거(행 10:45∼46) ☞ 더러운 말(엡 4:29)
5. 올바른 신앙생활의 원리(벧전 4:7-11) ☞ 하나님 중심의 신앙생활 ☞ 성경말씀 중심의 신앙생활
☞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 ☞ 목자 중심의 신앙생활
하나님의 영, 적그리스도의 영
요한일서 4:1-6
이 세상에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이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비그리스도인이 있는 것처럼, 세상에는 하나님으로 부터 온 영과 그렇지 않은 영이 존재함을 말씀해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으로 부터 온 영과 그렇지 않은 영을 구별하라고 합니다. (요일 4:1~3)우리가 무엇을 보고 들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꿈으로 봐서 그것을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의 어떤 음성으로 그것이 옳고 그런 것을 판단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점검해보고 분별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오지 않은 세상의 영은 세상의 배경과 환경과 지식, 논리를 토대로 우리에게 다가오며 우리를 설득합니다. (요일 4:5) 게다가 미혹의 영이 우리 안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어 우리를 때로 현혹시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 안에서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구분하게 하기 위하여 이 말씀을 1600년 동안 기록하여 남겨 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의 기준이 되어야 하고 삶의 중심이 되어 항상 말씀으로 분별하고 말씀으로 기준 삼아서, 무언가 보고 듣고 꿈꿔서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말이나 어떠한 일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말씀 안에서 중심을 잡는 견고한 믿음이 우리 안에 서야 할 것입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 아닌,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귀한 역사가 우리 안에 있어야 할 것을 말씀해주고 계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얼마가 되었든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에 붙들려 우리의 모든 것을 주관하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그 성령에 이끌려 살아가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구별할 방법은 바로 이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요일 4:2)
우리에게 기억나게 하시고 믿음 위에 서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 진리의 영을 시인하고 그 영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고 증거하고 그 분을 믿는 믿음으로 이끄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영이며 그 영이 우리 안에 증언하고 참된 길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와 반대로 적그리스도의 영은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요일4:3)
우리가 무엇인가를 보았을 때,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촛점이 맞춰질 때, 우리가 어떤 것을 듣고 경험할 때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케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믿음을 더욱 견고케 할 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으로 부터 온 것으로 확신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반하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무엇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그것이,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한다면, 그것이 누구든 간에 그 것을 대적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우리의 모든 삶을 구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라면, 그들의 말에 귀기울일 필요가 없고 그들에게 끌려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영적으로 물리쳐야할 존재이며 휘둘려 다닐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계 대상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 예수를 고백하지 못하게 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인도하게 하지 못하는 자입니다.
우리의 모든 생활 가운데 만일 하나님의 영광을 고백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찬양을 드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세상으로 부터 온 것, 세상으로 부터 온 영이기 때문에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고 우리의 마음이 더이상 미혹당하지 않고 세상의 것에 유혹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귀한 믿음의 토대 위에 서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이루어 나가는 삶을 살아나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가며 하나님의 영을 따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세상의 영들이 있어 하나님의 길로 향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이 향하지 못하도록 갖은 수를 씁니다. 무수한 방법으로 무수히 많은 믿음의 백성을 유혹하고 미혹하여 웨방을 놓고 어둠 가운데로 끌어가는 지 모릅니다.
오늘 이 세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 입니다. 좇아가지 말아야 할 것, 미혹의 영, 거짓의 영에 마음을 빼앗겨서 우리가 소망을 잃고 기쁨을 잃는다면 우리 안에 더이상 살아가는 참된 이유가 사라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안에 세워진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미혹의 영에 휘둘리는 많은 이들을 이끌고 하나님의 구원으로 안내하는 거룩한 중보자의 소명을 다하며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모든 성도님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된 삶을 살아가는 저와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영과 미혹하는 적그리스도의 영
요한일서 4:1-6 / 김홍덕 목사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은 오직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알도록 하는 영 그것 하나뿐이라고 했다. 이 영은 사람의 존재 목적과 의미를 알게 하는 온전한 사랑이며, 하나님께서 이것을 사람에게 알게 하셨기에 하나님이 사랑이신 것이라고 했다.반면에 적그리스도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영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육신을 가지고 오셔서 하나님의 아들이 무엇인지,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보여주신 예수님의 사역을 부인하는 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영이며, 특히 이는 오리라 했고 또 이미 세상에 있다고 했다.사람의 분류는 대게 '이것이냐? 저것이냐?'라는 방식의 이분법이다. 그러나 좀 더 정확하게 하면 '이것이냐? 이것이 아니냐? 저적이냐? 저것이 아니냐?'로 구분할 수 있다. 이는 신앙에 있어 중요한 것이다.(이 분류는 신앙의 정체성에 관한 일원론, 이원론과는 다른 의미이다.)생명을 기준으로 본다면 생명과 물질로 나눌 수 있지만, 생명에 관한 정확한 분류가 있다면, 그것은 생명과 생명이 아닌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살아 있다고 여기는 생명이 있다면, 그것이 아닌 것은 다 죽은 것이라는 것이다. 흉내나 노릇은 생명이 아니라는 것을 성경이 얼마나 자주 말씀하시는지 모른다.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시인하게 하는 성령이 계시고 그 나머지는 그 모양이 어떠하고 성령과 나타나는 바가 아무리 유사해도 다 거짓 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계할 것은 예수님을 믿는 신앙에 어떤 것을 첨가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신앙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려 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그런 것에 대한 표현은 대부분 이렇게 나타난다. "그래도 예수 믿는다고 하면 이 정도는 해야지!"와 같이.그것이 미혹이다. 신앙은 부인하는 것보다 타협하는 것이 더 위험하고 하나님 앞에 큰 죄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것 보다, 십자가에서 잠깐 기절하셨다는 것이나, 예수님의 겉모양은 사람이지만 실제 정체는 아니라는 식의 타협이 더 위험한 것이다.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잠깐 기절하셨다고 하는 말과 같은 것은 쉽게 구분이 가지만, "예수 믿는 사람이 그래도 예의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아니면 "교회 다니면 그래도 세상에서 좀 그럴듯하게 살아야 사람들이 교회 다니고 싶어 하지?"와 같은 말이 그와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이는 예의나 세상에서 열심히 사는 것이 신앙과 무관하다는 밀이다. 그것은 방향성이 중요하다. 그렇게 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신앙과 무관한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삶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하여 살다 보면 사람이 그것을 보고 자신도 하나님을 믿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게 한다.그것은 사람이 사람을 보고 하나님을 알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데 예의나 세상의 성공이나 열심히 사는 모습은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진심을 느끼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 안에 정말로 하나님의 영이 있어 그 영에 순종하며 살면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보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절대적인 간절함이 그 속에 다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그렇듯 사람의 심령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어 그 생명의 DNA인 하나님의 성품이 금할 수 없게 표현되어지는 삶이 아니라 사람이 율법이나 교리를 잘 준수해야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고 하거나, 하나님의 아들은 영적인 문제이지 육신의 문제는 아니라며 육신의 문제를 무시하는 것들은 아주 교묘한 말로 미혹하게 하는 영들의 세계라는 것을 사도들이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에 그 어떤 아름다운 것을 더한다고 해도 다 미혹하는 영이요 적그리스도의 영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하라고 하신 것이다.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마 5:37)미혹하는 영, 곧 적그리스도의 영은 아주 엉뚱하거나 성경을 완전히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요한 사도가 있었던 초대 교회 시절의 영지주의도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었고, 유대인들도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오히려 그들은 지금의 이단과도 다르게 사람이 하나님이나 근거 없이 자신을 그리스도라 하는 것을 엄히 경계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과 사도들에게 끊임없는 경고와 질책을 받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생각을 교묘하게 조금 더하거나 빼거나 하는 것 때문이었다. 그 자신의 생각은 선악 간에 판단하는 기준 곧 선악과를 먹은 심령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신앙에 있어 정말로 위험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믿지 않는 것 보다, 믿는 내용을 가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는 이유는 자신이 가진 선과 악에 대한 기준 때문이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은 어떠해야 한다는 기준을 사람이 스스로 세운 것 때문인 것이다.유대인들이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기준은 <하나님의 의>라는 내용보다 율법이라는 형식이 잘 지켜져야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생각했고,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육신 가진 삶이라는 형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는 것임을 부인하고 내용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혹하는 영의 생각들이라는 책망을 받는 것이다.그리고 지금 이 시대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기준에 <세상에서 성공>이나 <도덕이냐 예의가 있는 사람>이라는 조건이 첨가되었다. 성공이나, 예의나 도덕이나 고상함이나 부와 명예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것이 있어야 하나님의 아들이, 더 훌륭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신다고 생각하고 가르치는 것이 바로 미혹하는 영이라는 것이다.성공이나 예의나 수고나 봉사와 헌신과 같은 것은 그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거나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사람의 정체성인 하나님의 의를 사람에게 깨닫게 하는 사랑을 표현하기 위하여 육신으로 수고하는 수단과 방법과 과정으로 사용될 때 가치가 있는 것이지 그것이 구원이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조건이 아니다.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은 오직 육신으로 오셔서 인생의 모습을 보여주신 예수님과 같이 사람이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습 그대로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목적 아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며, 그 영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위하여 육신의 모든 것을 수단으로 삼아 그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유대인의 관점이나 영지주의의 과점이나 오늘 타협해가는 신앙의 모든 것은 다 세상에 속한 말(요일 4:5)이라고 요한 사도가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런 말을 듣거나 여기에 솔깃하거나 심지어 가르치는 모든 사람들은 다 세상에 속하였기 때문이라고 요한 사도는 말씀하고 있다. 소리굽쇠가 공명을 일으키듯 말이다.하지만 이 세상의 말과 하나님께 속한 말은 구분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그것은 이 모든 세계가 다 생명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생명은 아수라나 키메라 같은 것이 없다. 오직 이것이면 이것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생명 아닌 것뿐이다.생명의 구분은 절대로 어렵지 않다. 개와 고양이를 구분하는 것이 어려운가? 말과 당나귀 사이에 태어나는 노새는 노새이지 나귀나 말이 아니다. 그렇듯 생명은 오직 그 자체일 뿐이다. 하나님의 생명도 오직 그것일 뿐이다. 그것에 세상의 지식이나 종교적 규례나 기적을 더한다고 그 생명이 더 온전해지거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미혹하는 영이요 하나님께서 엄히 경계하시는 것이다. 변화산에도 바로 그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만 있으면 되는 것이지 그것에 모세의 율법이나 엘리야의 기적을 함께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 예수님의 말을 들으라고 하늘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설명하시듯 변화산 아래에서는 불(기적, 엘리야의 상징)에도 넘어지고 물(모세-물에서 건져 냄, 율법의 상징)에도 넘어지는 아이를 오직 기도만이 고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기도는 바로 예수님을 구하는 것이다.(이것에 관해서는 주기도문 포스트 등을 참조 바람)그러므로 미혹은 다른 것이 아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절에 가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혹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사람에게 설명하고자 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정체성을 유대인과 같이 종교적인 규례로 변질시키거나 영지주의와 같이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변질시키거나 지금 이 시대처럼 세상에서 온 과학이나 도덕이나 예의와 같은 것을 더하거나 혹은 하나님 말씀을 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미혹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영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속한 영인지 분별하십시오
요일 4:1-6 / 찬송 187장
여러분 세상에 약이 먼저 생겼을까요? 질병이 먼저 생겼을까요? 질병이지요. 약이란 질병이 생기고 난 뒤에 그 병을 고치거나 예방하기 위해서 훨씬 뒤에 만들어 진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와 신앙도 이렇게 병과 약의 관계 같은 모습이 있습니다. 바로 거짓복음 또는 잘못된 가르침과 교리와의 상관관계입니다. 교회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위에서 바르고 튼튼한 신앙의 가르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탄생한 뒤로 교회의 발전과 역사 속에서 바른 신앙의 틀인 교리가 정립되어왔습니다. 그런데 질병과 약 중에 무엇이 먼저 있었는가 하는 질문의 답처럼, 기독교 교리는 처음부터 체계화되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신앙을 흔들고 병들게 하는 이단들과 거짓 가르침으로부터 교회와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나중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단들과 거짓 교사들이 하나님을 성경과 다르게 잘못 설명하는 것을 반박하고 바로잡기 위해 오랜 시간 교회가 정립해 온 것이 바로 ‘하나님은 누구신가’(신론)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기독론), ‘구원이 무엇이고 어떻게 받는가’(구원론), ‘성령님은 어떤 분이시며 어떻게 활동하시는가’(성령론) 등 그 외에도 수많은 교리들이 이단과 거짓 교사들과의 싸움에서 정립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교리란 이단으로부터 성도와 교회를 바른 진리의 신앙으로 지키기 위한 결과물입니다. 교회는 이런 과정 속에서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지혜로 온갖 이단들의 거짓과 잘못된 가르침으로부터 바른 신앙을 사수하고 오늘까지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교회와 성도들을 미혹하는 이 배후에는 누가 있을까요? 에덴동산에서 첫 사람 아담과 하와를 범죄 하게 한 사단이 미혹과 거짓의 영으로, 그때나 지금이나 계속해서 하나님의 자녀들과 교회를 넘어뜨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와 성도는 악한 영에게 넘어지지 않도록 늘 바른 신앙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에서 성도들에게 “영을 다 믿지 말고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고 강력하게 권면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가르쳐주시는 하나님께 속한 영을 분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영을 분별하는 것은 우선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의 지혜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단도 얼마든지 광명한 천사로 가장할 수 있고, 신비한 영적 경험들을 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수천 년 교회의 역사 속에서 그동안 거짓 영과의 싸움으로 정립된 교회의 교리를 통해 거짓 영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 기준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이 세상에 오심, 즉 성육신의 교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왜 성육신 교리가 영을 분별하는 지침이 될까요? 만약 누구든지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정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육신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신으로서의 자리를 버리고 인성을 입고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강림하신 놀라운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인간의 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내려오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죄 가운데 있는 우리가 절대로 스스로 그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죄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한 채 있는 그런 우리를 그냥두면 모두다 멸망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과 긍휼의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눈높이로 자신을 낮추시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의 낮고 천한 자리로 내려오신 성육신 교리입니다.
참된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자라면, 하나님의 모든 가르침을 인정하고 전파해야 하지만, 성육신의 사건을 인정하고 분명하고 정확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영원한 사랑을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전달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어떤 옳은 말 좋은 말을 한다고 해도,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값없는 사랑과 은혜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성육신 교리를 부인하는 것은 거짓인 것입니다. 이 성육신의 교리를 부정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 사역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고도 자신이 성령을 받은 선지자인 것처럼 말하는 거짓선지자들과 이단들이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주변에 얼마나 많습니까? 심지어 자신을 재림 예수라고 신격화하는 이단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단뿐만이 아니라 우리들 안에도 성육신의 교리를 부정하는 모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의 죄를 위해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바르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구원과 삶을 위해 오직 예수님만을 의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나도 낮아져서 남을 섬기며 겸손한 삶을 사는 것이 예수님의 성육신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만약 누구라도 말씀 사역자가 교회로 하여금, 죄를 정결케 하는 데 있어서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도록 성육신교리를 전파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교회로 하여금 이생의 것에 집착하게 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영원한 영적인 것들에 소망을 가지고 힘쓰도록 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사역자들은 실천적인 면에서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정하는 자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면 그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거짓 선지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반면에 예수님만 의지하여 죄의 정결함을 받고자 하고, 예수님이 주신 영원한 것들에 소망을 가지도록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참으로 인정하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서 보여주신 사랑을 실천하는 자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셨음을 시인한다는 것은 입으로만 시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입술로 전하고 말한 대로 자신의 삶을 통해 예수님처럼 낮아짐의 실천을 행하는 것이 예수님의 성육신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누가 참된 그리스도의 종이고, 무엇이 하나님께 속한 바른 사역인지 분별해야합니다.
교회 밖의 다른 이단은 말할 것도 없고, 신앙 안에서 교회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른 가르침을 받고 따르는 삶을 살고 있는지 분별해야 합니다. 사실 이단은 바른 교리의 토대 위에서 믿음생활을 하면 그 정체를 비교적 쉽게 구별하여 경계하고 조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의 신앙생활 가운데 성령이 주시는 생각과 사단의 영이 주는 생각을 분별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잘못된 신앙생활을 통해 넘어지고, 다른 성도에게 상처를 주거나, 시험에 들게 하거나, 교회를 병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본인이 그런지도 잘 모른 채 말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속에서 어떤 것을 행하려 할 때 이것이 과연 하나님이 내게 하기를 원하시는 것인지, 이것을 함으로 나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성도 간에 교회 안에 사랑의 열매가 더욱 커지고 풍성히 맺힐 것인지 분별하는 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다른 사람이 이단인가 아닌가 분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나와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일을 감당하고 있는지를 깨닫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6)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거룩한 성령과 악한 미혹의 영을 분별하고 바로 보는 은사와 지혜를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
요일 4:1-6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1. “영을 다 믿지 말고”
a. 모든 영이 다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았음
b. 영적인 것이고 “사역자”와 교회의 가르침이라고 다 믿지 말라는 부탁
2.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a. 분별하라(dokima,zete): to prove, approve, test, examine
1)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
b. 고린도전서 12:4-11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2
1)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diakri ,seij)
the acting of passing judgment, distinguishing, ability to discriminate
2) 판단하고 구별하는 것
c. 에베소서 4:13-14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3.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a. (적은 하나님의) 선지자 vs. 많은 거짓 선지자
b. 하나님의 말씀 vs. 나에게 듣기 좋은 말씀
c. 신명기 13:1-3 “1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2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3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d. 신명기 18:20
“만일 어떤 선지자가 1)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2)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e. 예레미야 23:16-17
“1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1)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2)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17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f. 베드로후서 2:1-3 “1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2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3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3
g. 요한계시록 16:13-14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h. 요한일서 2:18-19
“18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19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i. Carton Pearson, Rob Bell
j. 마태복음 7:15-20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4. 거짓의 영 거짓을 증거
5. 자신과 다른 신을 증거 안상홍, 문선명, 이만희, 정명석
6. 하나님의 영 하나님을 증거
7. 성령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8. 고린도후서 4:1-6 “1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4
(4:2-3)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1. 하나님의 영
a.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
b. 예수님의 인성(사람)과 신성(하나님) the humanity and deity of Jesus
2. 예수님을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 적그리스도의 영
a. 예수님의 정체성 나의 구원과 연관
b. 성육신(Incarnation)
c. 십자가의 사건 구원과 신앙의 영향
d. 거짓 = 예수와 그리스도를 구분
하나님을 사랑한 한 인간 위에 그리스도의 영이 임해서 구세주가 되었다.
(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1. 영적인 아버지가 영적인 자녀들에게 주는 말씀
2. 이들의 소속이 사도 요한이 아니라 하나님임을 확인
3. 정체성과 소속감이 주는 세상을 이기는 믿음과 승리
4. 누가 더 큰 자인가? (성령님 vs. 적그리스도)
(4:5-6)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1. 소속이 언어와 이해를 결정한다.
a. 세상에 속한 사람은 세상의 말을 하고 듣는다.
1) 요한복음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b. 하나님을 아는 자는 하나님께 속한다.
1) 하나님을 알면 믿게 된다.
5
2) 하나님을 믿게 되면 변한다.
2.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
a. 요한복음 10:3-4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b. 요한복음 3:16-21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c. 진리의 영 vs. 미혹의 영
1) 영이 사람속의 관심을 이끈다.
2) 나의 영과 소속이 어떤 영을 따를지를 결정한다.
영들을 시험하라
요일 4:1-6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130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이단들이 생겨났습니다. 지금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왜 기독교에 이처럼 가짜와 사이비가 많이 생길까요? 파스칼은 “진짜가 있기 때문에 가짜가 생긴다”고 했습니다. 명품이기 때문에 짝퉁이 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기독교 진리가 사람을 변화시키고, 구원하는 참 진리이기 때문에 이단 사이비가 많이 생겹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수신자들에게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했는지 분별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영이 하나님께 속한 영인지 분별하는 시금석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 영의 특징이 무엇이며, 어떻게 미혹의 영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가르쳐 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영을 분별하는 지혜와 은사를 덧입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하나님께 속한 영(1, 2)
1절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어느 영이든지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에게서 났는지 분별하라고 했습니다. 분별하라(도키마조)는 말은 시험하여 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화폐가 진짜인지 위조화폐인지 가려내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영 분별하는 것을 하나님의 은사라고 했습니다(고전 12:10). 그러나 사도 요한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영을 분별하는 능력을 가져야 함을 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명령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이미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와 활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스스로 특별한 영감을 받았다고 하며 사도들의 가르침을 부인하고 교묘한 이론으로 성도들을 미혹했습니다. 수신자들 공동체는 이미 영지주의 이단이 들어와 교회를 어지럽히고 떠났습니다. 그래서 성도들 간에 많은 상처를 받고, 불신과 두려움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영을 분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무엇입니까? 2절을 보십시오.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느냐 부인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여기에서 오셨다는 말은 완료형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셔서 영원히 인간이 되신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한번 인간이 되심으로 영원히 인간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영입니다. 성육신의 진리를 시인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속한 영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영을 받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왜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것이 영을 분별하는 시금석이라 할 수 있습니까?
첫째, 예수님은 육체로 오심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또 성경은 말합니다.“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1:1-3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우리는 이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그 보내신 자 그리스도를 알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요 17:3). 그러므로 성육신의 진리를 부인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 수 없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육체로 오심으로 우리의 죄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로 오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오셨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짐승이나 천사로 와서 인간의 죄를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대신 율법의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를 모든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습니다(갈 3:16). 그러므로 성육신의 진리가 복음진리의 핵심입니다. 영지주의자들과 같이 성육신의 진리를 부정하면 기독교의 근본을 왜곡시키게 됩니다.
셋째, 예수님은 육체로 오심으로 우리를 마귀의 손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2장 14,15절을 보십시오.“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똑같이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신 것은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멸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마귀를 멸하시고 죽기를 무서워하여 한평생 매여 종 노릇하는 모든 사람들을 마귀의 손에서 자유케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사망 권세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귀의 모든 참소로부터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마귀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계시록 12장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다고 했습니다. 마귀는 예수 믿는 자들을 밤낮으로 참소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이 참소자가 쫓겨나서 더 이상 예수 믿는 자들을 참소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변호사가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와 사망의 권세와 마귀의 손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넷째, 예수님은 육체로 부활하여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체로 오셔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는 사람으로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사람이 죽은 후에는 부활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가르치신 후에 승천하셨습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 만왕의 왕으로 세상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장차 심판장으로 세상을 심판하러 오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 세상을 심판하는 권세를 맡기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요 5:26,27) 사람의 아들이 되심으로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셨기 때문에 예수님께 세상을 심판하는 권세를 맡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우시고 육체로 오시고, 자기 목숨을 내어주시기까지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세상을 심판하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심판의 주로서 다시 오셔서 자기를 믿는 모든 신자들을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한 영을 받는 자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합니까?” 확신합니까?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심으로 여러분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된 것을 믿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로 여러분의 죄가 사해 진 것을 믿습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부활할 것을 믿습니까?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셨으며 심판장으로 다시 오실 것을 믿습니까?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확신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영은 어떤 영입니까?
II.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영(3)
3절을 보십시오.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영은 다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영을 받지 않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이미 세상에 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세상에 오심을 부인하거나, 그리스도께서 선재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부인하는 자들은 사단에게 거짓 영을 받은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사역을 부인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영지주의 이단이었습니다. 헬라의 이원론에 바탕을 둔 이론이었습니다. 물질은 악하고 영은 선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선한 영이 어떻게 악한 육체를 가질 수 있는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육체로 오신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예수라는 청년이 세례를 받을 때 그 속에 들어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기 직전에 예수를 떠났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부인했습니다. 이들은 복음을 헬라의 사상체계 속에서 부분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은 받아들이고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은 왜곡시켰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냄새를 풍기지만 사실은 기독교적이 아니었습니다.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부정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도 서구의 합리주의와 인본주의 사상 체계 속에 기독교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합니다. 예수를 천사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어떻게 지옥이 있겠느냐고 지옥을 부정합니다. 합리주의와 인본주의 사싱 체계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는 부분은 왜곡시켰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냄새를 풍기지만 사실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정하기 때문에 이단입니다. 그들의 철학과 사상에 기독교의 가르침을 입혀놓았을 뿐입니다.
이와 같은 이단이 우리나라의 통일교입니다. 기독교를 동양의 음양오행 사상체계 속에 받아들였습니다.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은 받아들이고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은 왜곡시켰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실패한 사역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참 아버지 문선명 교주가 그 일을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는 항상 기독교라는 이름을 내세우지만 사실상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들의 철학과 사상에 기독교의 가르침을 약간 덧입혀놓았을 뿐입니다.
이미 역사가 오래된 이단들은 많은 자료들이 나와 있기 때문에 쉽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초기 발생 단계에 있는 이단 종파라든지 아니면 사이비 교회들에 대해서는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미혹됩니다.
요즘 그리스도인들은 “은혜 받을 수 있는 곳이다.”,‘말씀 해석을 너무 명확하게 한다’또 ‘성령 충만한 사람이다’, ‘병을 낮게 해준다’‘영빨이 센 사람이다’라는 말을 들으면 너무 쉽게 미혹됩니다. ‘어느 기도원에 가면 원장님이 우리 속을 다 꿰뚫어보고 예언을 하시고 병을 낮게 해 준다’는 말을 들으면 귀가 솔깃해집니다.
이단들은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 그룹은 교주가 자기가 믿는 신앙 체계에 관해서 정말 그렇다고 믿고 확신을 가지고 주장을 합니다. 이들은 개인적인 체험을 통한 신비주의를 굉장히 강조를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자기를 재림 예수라든지 메시야라고 합니다. 자기를 신적인 자리에까지 올려놓습니다. 통일교 문선명씨가 그랬고, 전도관의 박태선씨가 그랬고, 새마을 전도협회 구인회씨가 그랬고, JMS 정명석씨가 그랬고,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 무리가 그렇고, 신천지의 이만희가 그렇습니다. 요즘은 신천지 이단이 가장 도발적으로 포교하고 많은 성도들을 미혹합니다. 특히 그들이 미혹하는 대상은 불신자들이 아니라 믿는 신자들입니다. 그래서 그 폐해가 치명적입니다. 이단 종파를 연구하는 전문가에 의하면 지금 한국에는“내가 예수다. 내가 재림 예수다.” 주장하는 사람이 37명이 있다고 합니다.
둘째 그룹은 그런 거짓 확신도 없으면서 기독교를 빙자하여 사기꾼 노릇을 하는 집단입니다. 어떤 기도원 원장은 기도 받으러 가면 “당신의 목에는 조상 귀신이 올가미를 걸렸어.”라고 상습적으로 교인들에게 올가미를 씌운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돈을 뜯어냅니다. 그 올가미를 벗으려면 송아지 한 마리 값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얼마나 겁이 납니까? 지난주 정신병자들을 창살 속에 가두어놓은 기도원이 PD수첩에 방영되었습니다. 그런 방법으로 돈을 뜯어내고 기도원을 키웠습니다.
셋째 그룹은 혼합주의 기독교 연합 운동입니다. NCC(세계기독교협의회) 총회가 2013부산에서 개최될 예정입니다. 이에 대해서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많은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1990년 쿠아라룸프 총회에서 “성령께서 교회와 인류사회, 나아가서는 모든 생명체들과 우주 만물에 내재해 계신다”고 선언했으며, 성령을 '창조되지 않은 에너지'로 규정했다. 또 1991년 호주 캔버라총회에서는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의 대표자들을 초청하여 종교다원화를 통한 사회구원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한국 NCCK‘생명의 강 살리기 종교여성 공동기도문’에는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 하느님, 부처님! ..... 종교는 달라도 진리의 뿌리는 하나, 만물이 한 배(胚)에서 나와 한 사랑을 먹고 사는 식구요 생구인 것을 믿습니다. 받들어 비옵나니,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나무아미타불, 아멘.” 우리는 앞으로 이런 다원주의 이단을 경계해야 합니다.
III. 사도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라(4-6)
4절을 보십시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여기에서 '이기었나니'(네니케카테)는 말은 완료 시상입니다. 이것은 승리가 과거에 결정적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나타낼 뿐 아니라 그 효과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우리가 어떻게 거짓 예언자들을 이길 수 있습니까? 이는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고백함으로 하나님에게 속하게 되며, 그 결과로 거짓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세상에 있는 악한 자는 근본적으로 세상에 속해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속한 말을 합니다. 세상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들을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잘 듣습니다.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사욕을 좇는 스승들을 많이 둔다고 했습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 4:3,4) 요즘은 별의 별 스승들을 많이 둡니다. 서울의 어떤 젊은이는 연애하는 법을 교습하는 학원을 열었다고 합니다. 데이트를 할 때는 어떤 옷을 입어야 하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고,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하고, 어떻게 상대를 자기에게로 끌어들여야 하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현장실습도 시킨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달에 몇 십만 원씩 수업료를 받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바른 교훈은 받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은 귀를 쫑긋 세우고 듣다가 진리를 말하면 하품을 합니다. 바른 교훈은 싫어하고 특별한 것을 찾아다닙니다. 그러다 보니 신비로운 일에 솔깃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은 누구의 말을 듣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육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요,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누구의 말을 듣습니까? “우리의 말을 듣는다”고 했습니다. 우리 말이 누구의 말입니까? 사도 요한과 사도들의 말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은 사도들의 말을 듣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리의 영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리의 말씀을 듣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모아놓은 책이 바로 신구약 66권 성경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은 성경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러나 미혹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은 사도들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미혹의 영에 사로잡히면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소용없습니다. 2008년 목회와 신학 통계에 의하면 이단에 빠진 자 중에 남자가 34.8%, 여자가 65.2 % 연령별로 보면 20세 이하 10.8% , 20세-30세 43.4 % , 30-40세 23.6 %, 40-50세 16.6, 50세 이상 4.4% 로 나타났습니다. 학력분포로 보면, 중졸이하 3.7%, 고졸이하 42.8%, 대졸 이상 50.5%였습니다. 학력이 높을수록 이단에게 더 잘 빠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학식이 풍부하면 헛된 교리에 넘어가지 않을 것 같은데 더 많이 넘어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영적인 것은 지적인 것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미혹의 영에 걸리면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져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만큼 미혹의 영은 우리 인간의 눈을 가려 버립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 4:3,4) 우리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하나님의 복음 진리가 우리 마음을 비취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이단에 넘어간 자들의 신앙연수를 보면, 1년 이하 1.8%, 1-2년 14.6%, 3-5년 17.3%, 5-10년 22.5%, 11년 이상 42.2%입니다. 이는 무엇을 말해 줍니까? 초신자들보다 교회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이 더 많이 이단에 빠집니다. 복음진리를 어설프게 알고 있다가 이단에게 미혹되는 것입니다. 또 오랫동안 교회 다녔지만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갖지 못하고 종교생활만 하다가 이단에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단에게 미혹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성경 말씀을 사랑하고, 성경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이단들은 대개 성경을 아전인수 격으로 인용합니다. 성경의 문맥을 무시하고 구절을 이용하여 자기들의 교리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합니다. 성경을 바로 알고 바른 지식을 가져야 이단에게 미혹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래 전에 미국 시카고에서 국제 기독교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그 회의에 주제는 "성경에 오류가 없다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변증하느냐?"이었습니다. 거기에 러시아 교회에서 3명의 대표들이 참석하였습니다. 사흘 동안 토의를 했는데 러시아에서 온 분들은 한 마디로 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에 그들에게 소감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사흘 동안 이 회의를 여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말씀대로 살다보면 오류가 없다는 것을 저절로 알 텐데 그런 것을 가지고 뭘 회의를 하고 있습니까?"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말씀의 권위와 영광과 능력을 알게 됩니다. R.A. 토레이 목사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성경에 많은 번역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성경 번역이 있다면 그것은 내 삶으로 성경을 번역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주님이 살아 계신 주님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말씀과 삶이 일치할 때 우리는 이단에게 미혹되지 않습니다.
둘째, 지나친 영적 호기심을 버려야 합니다. 특히 신비로운 체험에 대한 호기심을 갖다보면 이적을 행하는 이단에게 미혹되기 쉽습니다. 신비주의의 맛을 보게 되면, 점점 더 강한 체험을 요구하게 되고, 결국 영빨이 쎄다고 하는 사람을 추종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이단의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최근 한국에 와서 ‘전쟁’을 예언한 데이비드 오워라는 사람이 있다. 예수님이 어느 날 자신을 찾아와서 하늘을 보라고 했다. 하늘을 봤더니 셀 수 없는 미사일이 군함을 격추시키는 환상이 보였다. 북한군의 군용트럭도 보였는데 그곳에 장착한 미사일이 남한의 전기 시설물에 떨어져 폭파되는 모습도 보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구하기 위해 도망쳤고,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전쟁이다. 전쟁이 일어났다. 이 백성들에게 가서 회개하라고 전하라.” 그래서 한국에 와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한다고 했습니다. 8월말에 다시 온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성경 말씀에 관심이 별로 없고 이런 말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지나친 영적 호기심을 버리지 아니하면 이단에 미혹되기 쉽습니다.
셋째, 교회의 소속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축구를 잘해도 구단에 소속되지 않으면 선수생활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교인들은 교회에 소속되어야 합니다. 소속감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한 지체로서 자기의 역할을 귀히 여기며 충성해야 합니다. 모든 짐승은 무리를 이탈할 때 맹수들의 공격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부서에서든지 소속되어 열심히 봉사해야 합니다. 자신이 혼자 이탈해 있으면 안됩니다.
넷째, 교회나 목회자에게 지나친 기대를 갖지 말아야 합니다. 지나친 기대를 가지면 불만이 생기고 불평이 생깁니다. 목회자도 사람이니까 부족한 점이 있고 허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고치려 하기보다 약점을 감당해 주고, 하나님께서 쓰시는 점을 인정하고 돕는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시험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섯째, 이단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멀리 해야 합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딛 3:10).고 했습니다. 멀리한다고 해도 죄가 아닙니다. 상종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한이서 1:10-11절에 보면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요이 1:10,11) 로마서16장17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로 영들을 분별하여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알아내야 합니다. 영적인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절대적인 기준은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셔서 완성하신 십자가의 복음 진리를 시인하는지 보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구속 역사는 100%완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플러스 알파를 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십자가를 멸시하는 죄입니다. 그런 이단들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리고 미혹의 영을 물리치기 위하여 우리는 사도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지나친 영적 호기심을 버리고 성경 공부를 겸손한 마음으로 감당하여 확고한 믿음의 체계를 세워야 합니다.
분별된 사랑과 확신
요일 4:1-6 / 양은익 목사
1.
오늘은 ‘분별된 사랑과 확신’이라는 제목으로 요한사도의 말씀, 묵상하겠습니다. 지난 두 주간 말씀 제목과 한 단어가 다릅니다. 사랑의 용기, 확신의 용기에서 ‘용기’ 가 빠지고 ‘분별’이 들어갔습니다. 사랑과 확신에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분별’도 있어야 합니다. 분별이 있어야 건강한 사랑 할 수 있구요, 바른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분별되지 않으면 사랑도, 확신도 잘못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일에 분별이 필요합니다. 분별의 말 뜻 처럼 ‘분간하고 구별’을 잘하면 실수할 일도 적고, 후회할 일도 적게 됩니다. 분별 잘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분별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2. 분별의 이유
(1) 가짜가 있다.(1절)
분별은 가짜가 있기 때문에 해야 됩니다. 가짜는 속입니다. 분별하지 않으면 아차하는 순간에 넘어갑니다. 본문 1절에서 사도 요한이 ‘분별’을 말하고 있는 것도 ‘가짜’ 때문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분별하지 못해서 망가진 교회를 보면서 하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가짜에 속지 말고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요즘말로 ‘짝퉁’에 넘어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짝퉁을 ‘이단’이라고 하는데 이단은 말 그대로 끝만 살짝 다르기 때문에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앙이든, 명품이든 가짜들은 전부 진짜같기 때문에 속기 쉽습니다. 분별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2)대가가 크다.
분별이 필요한 이유 두번째는 분별의 대가가 작지 않기 때문입니다. 분별 잘못하면 큰 대가를 치루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 보십시오. 분별에 실패 한 후에 대가가 큽니다. 에덴에서 쫓겨납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을 안해도 분별의 결과는 가볍지 않습니다.
좋은 분별은 평안과 보람과 긍지를 주지만, 잘못된 분별은 갈등과 상처, 후회를 남깁니다.분별은 자기를 보호하고, 사랑하는 이들을 보호하는 울타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의 말씀 처럼, 이 세대를 본받는 대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마음에 품고 분별할 때(롬12:2) 단단하게 설 수 있습니다. 분별,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요? 세 가지를 묵상했는데 같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3. 분별의 요소
(1) 간파하라(1절)
분별을 묵상하면서 제 마음에 떠오른 단어는 ‘간파’(看破)입니다.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다. 가짜가 있다, 간파하라’ 분별은 다른 말로 하면 ‘간파하는 것’입니다. 간파는 ‘깨서 보는 것’입니다. 깨서 보면 보이지 않던 속이 보이고, 숨겨논게 보입니다. 가짜는 대부분 숨기고, 감춥니다. 감언이설로, 포장으로, 이미지로 숨깁니다. 깨고 봐야 분별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누가 잘할까요? 간파하는 사람이 잘합니다. 무엇이 아픈지, 무엇을 바라는지 말을 안해도 깊게 간파하는 사람이 사랑을 잘합니다. 정치는 누가 잘합니까? ‘국민’들의 마음을 ‘간파’하는 사람이 잘합니다. 신앙의 삶도 하나님의 마음을 간파하는 사람이 잘합니다. 하나님께 귀 기울이고, 하나님의 임재에 주목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깨어 있는 사람’, ‘영혼이 깨끗한 사람’이 잘합니다.
사심과 욕심이 가득하면 ‘간파’할 수 없습니다. 간파하지 못하면 분별도 못합니다. 속지 말자 화장빨, 다시 보자 조명빨. 간파의 중요한 자세입니다. 깊게 보고, 자세히 보고, 속을 보면 선명한 분별 할 수 있습니다.
(2) 기준을 정비하라(2-3절)
두 번째 분별을 위해 필요한 것은 ‘기준’입니다. 분별은 기준이 분명해야 합니다. 분별의 기준이 흔들리고, 모호하면 분별도 왔다갔다 흔들리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분별하고 선택하십니까? 분명한 기준이 있으십니까? 오늘 본문에서 요한 사도의 공동체가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은 것은 기준이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한 사도 요한이 사람들에게 제시한 기준은 육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인데, 일부 사람들이 육체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말을 믿고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이 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수 있는가? 예수님은 육체로 오신 것이 아니라 청년 예수의 몸에 잠시동안, 가짜로 오신 것 뿐이다. 신성의 예수님이 고통을 받으면 안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말에 사람들이 끌린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의 부활이 실제로 일어난 부활이 아니라 부활한 것으로 믿은 것뿐이라는 생각과 비슷한 것입니다. 신앙을 합리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한 것인데,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 우리가 신앙의 기준으로 삼는 그리스도는 역사 가운데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실제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과 신앙의 기준입니다.
2,3절입니다.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고백)하는 영(사람)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사람)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 그리스도의 영(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사람)이니라’
이 선포는 기준에 관한 선포입니다. 육체로 오사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기준이고, 우리는 예수님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분별하고 결정하고 선택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기준이고, 예수님의 사랑이 기준이고, 예수님의 믿음이 기준이고, 예수님의 용서가 기준이고, 예수님의 전도가 기준이고, 예수님의 공의가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찰스 쉘던) 입니다. 이 질문이 매 순간 살아있으면 분별력은 상승합니다. 여러분들의 분별과 결정과 선택에 기준되신 주님이 더 깊게 자리잡기를 바라겠습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5-6절)
세 번째 분별의 중요한 조건은 5,6절에 나옵니다. 5,6절에서 제시하고 있는 분별의 조건은 ‘듵음’입니다.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5,6절)
사람은 자기편 말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세상에 속한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렇게 듣는 소리가 나를 만듭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속한다고 하면서 세상의 소리를 들으면 문제가 됩니다. 앞에서 봤던 아담과 하와가 분별에 실패한 이유는 ‘들음의 실패’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데 사탄의 말을 듣고 따라하다가 실패한 것입니다. 신자들의 분별이 실패하지 않고 제 길을 가려면 하나님을 믿는자답게 말씀을 듣고 따라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고질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하나님의 뜻이나 마음에 대해서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순간에만 묻습니다. 안 묻는 것 보다 나을 수 있겠지만 물어도 길이 잘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신자들의 분별력과 판단력은 하루 아침에 갑자기 생기지 않습니다. 매일의 삶에서 성실하게 시간을 들여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묵상할 때 지혜가 생기고, 옳고 그름, 정의와 불의,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별하는 힘이 생깁니다. 매일의 묵상이 세상의 소리를 작게 만듭니다. 매일의 묵상이 없으면 세상의 소리가 커져서 하나님께 속했으면서도 세상의 말을 듣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4. 분별은 평생의 과업입니다.
오늘의 문제는 어제의 분별로 풀 수 없습니다. 오늘의 문제와 오늘의 선택은 오늘의 묵상과 오늘의 분별로 풀어야 합니다.
4절에 보면 사도 요한이 선포하는 그리스도인의 위상이 나옵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크신 하나님께 속해있기에 세상에 있는 자들에게 지지 않고 이겼다는 것입니다. ‘이겼다’는 것은 세상의 논리와 방법과 방식을 따라가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분별과 판단과 선택과 결정은 나와 상관 없는 먼 나라 얘기가 아닙니다. 매일 부딪치는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의 판단과 분별과 선택에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묻어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을 품고 간파하시고, 주님을 앞세우십시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 것 같은 형통함으로, 좋은 분별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시편 119:125의 기도가 오늘 아침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주님의 종이니, 주님의 증거를 알 수 있도록 나를 깨우쳐주십시오’(새번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