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숨겨진 보물 이야기
예레 15,10-21; 마태 13,44-46 /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2024.7.31.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밭에 숨겨진 보물에 비유하셨습니다. 어느 농부가 밭을 갈다가 보물을 발견하게 되면 얼마 안 되는 재산을 다 처분해서라도 그 밭을 산다는 이야기입니다. 자기 농토를 가진 자작농이 많지 않던 그 시절에 소작농부가 횡재했다는 매우 드문 이야기를 하늘 나라에 빗대어 풀이하셨습니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로또 복권을 사서 1등에 당첨되어 100억 원의 상금을 타게 된 것과도 비슷한 행운이었고, 그 확률은 8백만분의 1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비유에서 소작농이 횡재했다는 이야기의 현실성보다는 가진 재산을 다 팔아서라도 보물을 사는 농부의 행동이 이야기의 핵심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보물의 가치가 크고 귀한다는 뜻이지요. 여기에 그가 그 밭의 소유주가 아니라 소작농으로서 얼마 되지 않는 수입으로 살아야 했던 비참한 현실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고, 또 뜻밖에 횡재한 그 보물을 과연 어떻게 사용했을 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우선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하늘 나라를 보물에 비유하실 만큼 당신이 어려서부터 나자렛 성가정에서 겪었던 하늘 나라의 체험이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길래 길러 주신 아버지 요셉이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홀몸이 되신 어머니를 외아들로서 마땅히 부양해 드려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른 나이에 출가하여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자 하셨던 불가피한 동기도 알 수 있게 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복음을 선포하시는 동안 치유과 구마의 기적을 숱하게 일으켜 주시면서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도와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적대자들에 의해 모함을 받고 미움을 사서 죽임으로 내몰리셨을 때, 극도의 공포와 번민 속에서 기도하시며 이 억울한 고통과 희생의 운명에 담긴 하느님의 크신 뜻을 깨달으시고 순명하시기로 한 마음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복음선포의 노력과 희생을 바쳐 하늘 나라의 보물을 사신 셈이었습니다. 세상이 보기에는 아깝고 억울하게 보일 수도 있겠으나, 예수님으로서는 하늘 나라의 값진 보물을 얻기 위해 기꺼이 치루신 귀한 봉헌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군중도 하늘 나라의 그 귀한 체험을 그들도 할 수 있도록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인간은 본질상 누구나 하느님께로부터 나왔으며 그래서 하느님께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야 한다는 깨달음을 그 자비와 사랑에 깔고 그리하셨습니다. 나중에 십자가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신 이유도 예수님으로서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죽음 후에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시게 되면, 성령으로서 믿는 이들 안에 현존하시면서 믿음을 고백하는 이들 모두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맞이하여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보낸 제2차 담화문에서, 늙음은 죄의 결과가 아니라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일깨웠는데 그 까닭은 하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선택과 그에 담긴 계시 진리를 늙은 나이에 가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 대한 이 깨달음에서 인간이 인생을 또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가 우러나오기 때문에 노인은 젊은이에 비해 지혜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히 인생 경험이 많은 것이 아니라 전해줄 지혜가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전 인생을 바쳐서 얻은 경험을 하느님의 말씀에 비추어 하늘 나라에 대한 지혜를 깨달은 노인들은 밭에서 보물을 발견한 후 전 재산을 다 팔아서 그 밭은 산 농부와도 같습니다. 또한 그들은 이 비유로 하늘 나라를 가르치시고자 하셨던 예수님의 마음과 뜻도 노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헤아리게 된 행운도 얻는 셈입니다.
인생은 하늘 나라로 가는 사다리요 징검다리이기 때문에 하늘 나라에 대한 갈망과 깨달음을 얻으면 인생에 대한 지혜가 생기는 일은 자연스럽습니다. 또한 하늘 나라에 대한 깨달음은 현세적 인생에 대한 지혜로만 그치지 않고 내세에 맞이할 영원한 생명에 대한 본격적인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2차 노인의 날 담화문(2022.7.24.)에서 노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기 위한 네 가지 준비를 하도록 당부하였습니다.
첫째는 하느님 말씀을 듣고 읽으며, 성사와 전례 생활에 열심히 참여하라고 하였습니다. 젊어서는 먹고 살기 바쁘고 가족을 부양하느라 소홀히 했던, 하느님과의 관계를 정상화시키라는 뜻이겠습니다.
둘째는 하느님 외에 다른 이들과의 관계도 발전시키라는 것이었는데,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 자녀, 손주 손녀뿐만 아니라 주변의 가난한 이들과 고통받는 이들에게 다가가라고 하였습니다.
셋째는 주변에 고착되기 쉬운 시선에 머물지 말고 시야를 더 넓혀서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안목으로 자기 자신이 다음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부드러운 혁명’을 시작하라고 하였습니다.
넷째는 기도의 시인이 되어서 공동체에 하느님의 축복을 청하라고 하였습니다. 가난한 이들과 고통받는 이들의 외침을 하느님께 대신 전달해 주고, 완고한 위정자들과 재산가들과 지식인들이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 대신 청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밭에 묻혀 있는 보물과도 같이 귀하디 귀한 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비유에 나오는 그 농부의 처지는 소작농이었기에 보물을 발견하기 전에는 농사 일이 도무지 기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레미야도 하느님께 대놓고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태어남을 원망할 정도로 그 불평의 도가 매우 심했습니다. 이에 대해 하느님께서는 그가 예언자 직분을 수행하면서도 백성에게 가서 예언을 하되 올곧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가끔은 ‘쓸모없는 말’(예레 15,19ㄷ)도 하는 바람에 하느님의 부르심에서 비켜나는 엇박자를 내기도 했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예레미야가 역경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조건은 간단했으니 하느님께 돌아오라는 것, 이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이치는 기쁨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도 적용됩니다. 비유의 농부는 그야말로 우연히 보물을 발견했지만, 제대로 말하자면 사실 하늘 나라는 로또 복권처럼 극소수의 사람에게 그것도 우연히 발견되는 보물이 아니라 우리가 의지로 하느님께 돌아서기만 하면 누구나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보물은 어떻게 처분했을까요? 하늘 나라의 보물은 그것이 귀한 줄을 아는 이들에 의해서 서로 나누고 서로 섬기며 세상과 인생에 고통이 줄어들도록 쓰여졌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귀한 하늘 나라를 살아가시며 가난한 이들과 고통받는 이들에게 그 기쁨을 기꺼이 나누어 주셨습니다. 하늘 나라의 보물은 그렇게 쓰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