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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팸, 그들을말한다
우리, 두리.
"밥은 먹었어요?"
어느새 시간은 꽤 많이 흘렀습니다. 날씨는 전보다 더 쌀쌀해졌고 얼마 안남은 수능은 어딜가나 진열되어 있는
합격 기원의 물건들을 통해 알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와 그녀는 나란히 서서 버스를 기다립니다.
역시 수험생이라고 수능의 압박을 받는 셈인지 그의 얼굴이 전보다 좀 헬쓱해져 있네요.
"또 밥 안먹었죠? 뻔해."
"매점에서 사먹으면 돼. 그러는 너는 먹었어?"
"당연하죠. 아침 거르면 살찐다구요."
그녀의 말에 그가 그녀를 위아래로 훑습니다. 이제와서 느낀건데 그녀가 이렇게 작았었나 싶은 그는
바람에 날려 갈라진 그녀의 앞머리를 정리해줍니다.
"살 좀 쪄야겠다. 난 마른 여자 싫어."
"전요. 살찌면 자기 관리 못하는 것 같아서 싫어요."
"내가 싫다는데도?"
"어쩌라구요. 이거나 받아요."
전보다는 많이 부드러워지고 편해진 그들의 오가는 대화속에는 달달한 말은 없지만 서로가 많이 편해진것만은
확실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들이 많이 변했다는 것 또한 말이죠. 남들이 보면 영락없이 평범한 커플입니다.
두리에게 건내받은 초콜렛을 보며 잠시 망설이던 영일이는 이내 입안에 퍼지는 달달함에 살짝 숨이 멎어왔지만
이미 다 녹은 초콜렛의 맛은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젠 잘먹네요."
"나쁘진 않아."
굳은 표정으로 나쁘지 않다는 그의 모습은 그녀를 웃기기에 충분했습니다.
인사도 받아주지 않고 시선도 주지 않길래 매우 차갑고 쌀쌀맞은 사람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는 이런 남자였죠.
달달한 것은 제일로 싫어하면서 정작 본인은 달달한. 결국엔 나쁜 남자라는 것 입니다.
.
"안녕."
식판을 테이블에 놓으며 건내는 두리의 인사에 들려있던 이랑이의 숟가락이 놓여집니다.
이제는 먼저 다가와 인사도 건내는 두리를 보면 그녀가 많이 변했다는 것을 매번 느끼는 이랑이의 마음은 뭉클해지네요.
앞으로는 그녀에게 내가 아니여도 된다는 생각때문일까요. 좀 전까지만해도 싱거웠던 카레의 끝맛이 매콤하다는 걸
이제서야 느낀 이랑이는 친구가 아껴두었던 물을 다 마셔버립니다.
"헐 야!! 가서 물 퍼..!!"
물을 뺏긴 친구의 흥분을 단숨에 막아버리는 이랑이는 멋적게 웃어보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지금 생각해보니까 현재 이랑이의 친구들은 중학교때 어울렸던 그 멤버 그대로 입니다.
다만 이랑이의 정신적 지주였던 여원이만이 홀로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구요.
"근데 홍두리. 너 좀 예뻐진 거 같다?"
이랑이의 또 다른 친구가 두리를 향해 묻습니다. 요즘들어 전보다 많이 좋아진 그와 그녀의 사이에 그의 친구들도
이제는 눈치보지 않고 그녀에게 서스름없이 대하고 있거든요.
"그래? 나 원래 예뻤는데?"
더군다나 이런 말로 되받아 쳐주는 두리의 변화가 제일 큰 몫을 하고 있죠.
"아 맞다. 두리야. 오늘 공부 못할 것 같아. 미안."
이랑이의 친구들과 말장난을 하던 두리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를 올려다봅니다.
이내 두리의 시선은 아직 밥이 반이상 남아있는 그의 식판으로 옮겨지네요.
"다 먹은거야?"
"응. 매워서 못먹겠어."
"와 이새끼 웃긴다!! 방금 전만해도 싱겁..!!"
또 한번 그가 친구의 입을 막아버립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웃지 않네요.
"공부는 나야 별로 상관없지만.."
"그럼 다행이고. 내일 두배로 열심히 할게."
"알겠어. 너 편할대로 해."
대화하느라 여지껏 카레의 맛을 보지 못한 두리가 숟가락을 들면 친구의 입을 막고 있던 그의 손이
그녀의 머리위에 자리 잡습니다.
"지금 너, 보기 좋다."
남은 음식들을 모아 버리고 식당을 빠져나가는 그가 보이지 않을때까지 쫓던 그녀의 시선이 저만치 땅끝으로 떨어집니다.
.
"가려고? 많이 아프냐?"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가방을 챙기는 우리를 흘겨보던 영일이는 쓰고 있던 안경을 벗으며 기지개를 폅니다.
오늘 하루 종일 양호실에 있던 녀석이 결국엔 참지 못하겠는지 조퇴를 맞고서 병원에 가려는가 봅니다.
단순하면서 은근히 예민한 우리는 몇일 전부터 아파오는 위통에 오늘은 꼭 병원에 가겠다는 생각뿐이예요.
십구년을 살아오면서 이렇게 참지 못할 만큼 위가 아팠던 적은 아마도 없을 우리는 다 챙긴 가방을 메고 영일이를 봅니다.
"두리한테 전해줘. 나 아파서 조퇴했다고."
"뭐?"
"간다. 열공해라. 뭐 넌 나없어도 잘하겠지만."
제 할말만 잔뜩 늘어놓고서 교실을 나가는 우리를 쫓는 영일이의 두 눈에는 황당함이 자리잡기 시작합니다.
난데없이 두리에게 전해주라는 것은 무엇이며, 본인이 없어도 잘할거라는 말은 또 뭔지.
우리가 남기고 간 말들을 곰곰히 생각하던 영일이는 이내 웃음을 터트리고 마네요.
하여간 홍우리. 소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녀석은 아무래도 두리와 영일이가 사귄다는 것에 아직까지
마음이 쓰이는지 토라진 모양입니다.
게다가 요 근래, 두리와 영일이가 어울리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거든요.
정작 본인은 여지껏 란과 했었던 것들이 생각나지 않는걸까요. 질투하는 모습이란 참.
할 말이 없는 영일이는 그저 고개를 설레설레 젔습니다.
"....."
창너머 교문으로 향하는 우리를 보던 영일이는 문득 그것도 아니다 싶은 생각에 책을 덮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토라졌다는 표현보다 화났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느낀 영일이는 핸드폰을 꺼내 메세지함으로
들어갑니다.
최근에 외운 번호를 받는이 칸에 다 입력하면 자동으로 이름이 바뀌어야 하는데 오늘도 바뀌지 않는 걸 보면
번호가 또 틀린 모양이네요.
결국에는 전화부에 들어가 찾아온 번호는 곧 아주 간단한 이름으로 바뀝니다.
.
"정말이야? 하루만 입원하면 괜찮데?"
어느새 병원복으로 갈아입은 우리는 침대에 누워 걱정으로 가득한 란이를 물끄럼히 바라봅니다.
사실 진단은 아주 간단한 신경성 위경련인데 죽어도 단 하루라도 입원하겠다는 우리를 결국에는 마지못해
받아준 병원측은 그에게 링겔 하나를 꽂아 주고서는 얼굴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말도 안되는 우리의 억지에 챙피해진 엄마는 입원수속만 하고서 모습을 감춰버렸구요.
그냥 집에서 맘편히 약먹고 쉬면 낫고도 충분할 병명인데 저렇게 굳이 입원하겠다며 소란을 피웠으니 어느 누가
예뻐하겠어요.
걱정하는 건 오직 그의 하나뿐인 반쪽, 란이 뿐입니다.
"어디 불편한데 없어? 선생님 불러올까?"
"누나."
"응? 말 아끼고 그냥 푹 자."
역시 사랑하면 닮는다더니 우리보다 더 호들갑을 떠는 란이를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거예요.
결국엔 란이의 눈에서 닭똥같은 눈물을 떨어지면 두 눈을 감아버리는 우리의 목소리가 많이 낮아 있습니다.
"영일이랑 두리, 사귀는거 알고 있지."
"응? 당연하지~. 근데 지금 그건 왜?"
"걔네 사귀는거 난 말한적 없는 거 같아서. 누가 알려줬어?"
응? 란이 되묻습니다. 그러다가 곰곰히 다시 생각하죠.
그러고보니 우리와 이렇게 그들의 만남에 대해 얘기를 하는 것은 아무래도 지금이 처음인 듯 싶은 란이는
의아해하며 말을 잇습니다.
"저번에 영일이가 학교에 찾아왔었거든. 그때 같이 밥먹었는데 말하더라구."
"...."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그게 두리라고."
다시 떠진 우리의 두 눈이 깊게 들어가 있고 그 안에는 계속해서 말을 하는 란이로 가득해집니다.
"그때는 두리랑 영일이가 사귀기 전이였고."
"...."
"둘이 사귄다는 건 얼마전에 알았어. 영일이가 문자로 말해줘서."
"...."
"그나저나 우리 너, 나한테 그런 것도 말안해주고 나 조금 서운했어!"
요즘들어 하루하루 일들을 말해주지 않는 우리에게 섭섭했던 란이는 결국엔 입술이 퉁 튀어나와 버렸습니다.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온 영일이의 모습에 안심할 틈도 없이 이번에는 우리가 변했으니 또 하루하루를
얼마나 많은 걱정으로 지냈겠어요. 게다가 란에게 우리는 그저 동생이 아닌 남자잖습니까.
다가오는 수능에 힘들어 예민해졌다고 매일을 달래왔지만 그 초조함은 정말이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야. 너 지금 아픈것도 무슨 걱정있어서 그런거지. 응?"
역시 함께해온 시간이 있는만큼 단번에 알아봐주는 란이를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우리는
다시 눈을 감아 가득했던 란이를 쫓아냅니다.
"누나."
"응. 자고싶어? 그럼 나 조용히 있을게. 좀 자."
"나 정말 내가 싫다. 짜증나 죽겠어."
우리가 힘들어하는 이유를 알리가 없는 란이는 속상함에 꾹 닫힌 입술을 살짝 깨뭅니다.
"짜증나 미쳐버리겠어."
이내 뒤돌아 눕는 우리의 등 위로 란의 시선이 자리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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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늦게자면 배가 고파요..
첫댓글 빵맛있어 빵????????????????????? 조만간완결이라넌조케다..
이랑이를 얼마나 애태우실셈이죠????
두리얒.......이랑이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