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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꺼졌지만 눈물은 그치지 않네.
강산은 그대로건만 고운 얼굴만 바랬구나.
푸아티에 가문의 여섯번째 이야기입니다.
(*중드 랑야방 OST 홍안구의 가사 일부)
(*오늘은 조각글이 4편이라 텍스트 스압이 좀 있습니다)
(*별 건 아니지만, 조각글 3편과 4편을 쓸 때는 양파 - 아디오 를 주로 들었습니다. 배경음은 따로 첨부하지 않지만 한 번 함께 들어보셔도 괜찮을 거 같….)
☆
“어제 올케가 찾아왔었어.”
날이 좋았다. 햇볕에 익은 바람조차 달콤하게 느껴질 만큼. 맑은 하늘 아래 무성한 연녹색 나뭇잎들이 투명한 바람을 맞아 일제히 잔잔한 박수를 치고, 푸른 물은 밑에 은화가 가득 잠긴 것 마냥 황홀히 반짝였다. 마침 이런 날에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어?” 라는 말을 듣고도 사지 멀쩡하면서 나가지 않는다면 그건 모 아무개처럼 일에 미친 인간이거나 아니면 나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바쁜 사람일 거다. 그런데.
“…어쩐지 누나가 내 옆에 앉는다 싶었지.”
타닥타닥. 조슬랭은 꺾어둔 긴 나뭇가지를 꾹 쥐고 불이 타오르는 마른 나뭇가지더미를 헤집었다. 주위에 불씨가 튀지 않도록 땅을 둥그렇게 파고 돌을 둘러 만든 간이 화덕, 솜씨 좋게 가죽을 벗겨 노릇노릇하게 굽는 살 오른 산토끼. 모든 것은 수 년 전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했다. 말을 처음 길들인 게 신기했던 소녀는 이제 웬만한 기사 수준으로 말을 모는 성숙한 여인이 되었고, 바깥나들이에 마음만 들떠 이것저것 서툴렀던 소년은 건장한 청년이 되어 나라를 책임지게 되었다. 자신들을 키우고 지키던 거목을 잃은 후에도 남매는 제각기 스스로 자라났다.
“이젠 그런 것도 눈치 채게 됐네.”
사람에게 말을 할 때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며 말한다. 그렇지 않고 나란히 같은 방향을 보면서 말한다는 건 얼굴을 볼 자신이 없다는 뜻을 은연중에 내포하는 동작이다. 파트리샤는 동생의 성장이 기특해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누나가 무슨 말을 할지도 이미 짐작하고 있어.”
불길이 조금 더 거세지자 조슬랭은 막대기를 놓고 앞을 보았다.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떨어진 곳에 위병들이 마찬가지로 자신들 앞에 꽂힌 통구이가 익기만을 기다리며 삼삼오오 둥그렇게 뭉쳐 앉아있었다. 무리를 인솔할 노련한 기사 둘을 빼면 다 신병들이다. 왕과 공주의 행차를 수행하는 인원으로는 조촐했지만 이것도 사실 이런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싶어서 그런 거니까. 거리를 가늠해본 조슬랭은 목소리를 조금 낮추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도 물어는 볼게. 그 사람이, 아니지. 어머니가 뭐라 하셨어?”
“……필리파가 재혼했어.”
후우. 파트리샤의 입에서 소리 없는 긴 한숨이 새어나왔다.
“모에시아에서 그 아이를 팔라이올로고스 가문이 다스리는 디라히온으로 보냈어. 열 살도 안 된 마르타가 엄마랑 떨어지겠다고 하진 않을 테니 뭔가 수작이 있었겠지. 상대는 디라히온 공작 니케포로스도 아니고 말제 에우스트라티오스야.”
“우리 아버지가 고른 사람은 그래도 모에시아와 크레타를 다스리는 대공이었는데. 몇 살이나 되었대?”
“열여섯, 열 살 쯤 어려.”
남편이 아니라 애를 키우겠군. 조슬랭은 타오르는 불길을 찌푸린 눈길로 노려보았다.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된 누이가 재혼을 했지만 너무나 뻔히 보이는 수작에 축하할 일이라는 인사치레조차 나오지 않는다. 마르타. 둥지에서 부모가 떠난 아기새에게 누가 비바람을 피할 그늘을 내어주고 먹이를 물어다줄까. 사람이 제 스스로 감당키 벅찬 높은 지위를 가졌을 때 손에 쥔 보검은 폭풍에 휩쓸려 제 살을 베게 된다. 조슬랭은 무심코 손닿는 데에 있는 작은 자갈을 던지려다 위병들을 공연히 놀라게 할까 싶어 손을 내렸다. 그나저나 서론은 이쯤하면 된 거 같은데.
“…올케가 마음에 안 들어?”
그럼 그렇지.
“……미안해.”
보지 않고도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아마 어머니와 누나가 함께 있을 때 왕비가 찾아왔겠지. 자형은 어제 내가 성벽 보수 진행을 살펴달라고 궁 밖으로 내보냈으니까.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지는 장면은 어느 쪽을 상상하든 그리 달갑지 않다. 조슬랭은 다시 막대기로 불을 헤집었다.
“왕비가 싫은 건 아니야.”
아홉 살 어린 나이부터 말 한 마디 나눠보지 못한 채로 정혼한 남편 하나만 보고서 먼 보헤미아에서 온 여자다. 프르셰미슬 왕가의 피가 흐르는 귀공녀이고 그 빛이 바래지 않을 만큼 풍부한 학식과 교양도 갖추고 있다. 당연히 싫을 리가 없다. 만인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올리고 교황을 모셔 함께 통치자의 관과 홀을 받았다. 허나 어린 신부에 대한 감정은 존중 이상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다행히 외부에서 보기에 문제가 보일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왕이 찾지 않는 왕비는 비웃음의 표적이 되기 쉬우니 수시로 시간을 내 같이 있었고 잘 때에도 같은 방에서 잤다. 하지만 점점 쓸쓸한 빛이 짙어지는 신부의 눈을 보고 싶지 않아 국사를 핑계로 도망쳐버렸다. 왕이 근면하다는 건 절대 허물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같은 곳에 살면서도 서로의 그 날 안부를 상대의 입보다 주위 사람의 입을 통해 듣는 경우가 더 많아지는 걸 결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더 아이를 가질 수 없을 거야.”
파트리샤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누나. 동생의 제지 섞인 부름에 누이는 손을 내저었다. 말하게 해줘.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아.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아. 그렇지만 우리가 영원히 사는 건 아니잖아. 난 네가 푸아티에의 성을 가진 마지막 왕이 되기를 바라지 않아. …난 이미 틀렸으니까.”
아우가 없는 왕이 후사 없이 승하하면 왕위는 누이들 중 맏이에게 넘어간다. 그러나 아들이 없으면 계승 서열은 아들을 낳은 동생에게 추월당한다. 누이들의 행복을 빌어주기는커녕 배가 불러오지나 않는지 초조한 눈길로 주시해야 하다니. 그리고 그게 내 탓이라니. 파트리샤의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하게 맺혔다.
“올케를 나처럼 살게 하지 마. 행복하게 해줘. 올케는 아직 아무것도 몰라. 자기가 잘못해서 네가 그러는 줄 알아. 예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누나.”
“……폐하. 제발 부탁드려요.”
국왕폐하. 파트리샤는 그 입에 선 호칭을 한 번 더 반복하고는 고개를 무릎에 묻었다. 알고 있다. 동생이 어떤 사람인지는. 그렇지만 알면서도 떠밀 수밖에 없다. 내가 우리 가문의 왕업을 끊어냈다는 오명은 쓰게 하지 말아줘. 우리 아버지가 피 흘려 얻은 왕좌를 다른 가문에게 넘기고 싶지 않아. 내 남편은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 당장이라도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부짖을 슬픔을 간신히 눌러 삼키며 파트리샤는 주먹을 꾹 쥐었다. 아무리 동기간이라지만 절대 말하고 싶지 않았다. 말할 수 없었다. 구깃구깃 처참하게 구겨진 자존심은 자갈과 먼지가 굴러다니는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고 그 텅 빈 자리에는 스산한 바람만 불었다.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은 젖어드는 목소리에 실려 왕의 가슴으로 전해졌다. 왕은 누이의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아 그저 앞을 보았다. 연기는 자욱하지 않았지만 눈은 벌써부터 따가웠다.
“…미안해. 누나.”
“미안해하지 마. 나도……, 네게 미안해하지 않을 테니까.”
차라리 왕가가 아니었다면 사이 서먹한 부부 사이를 걱정하며 타박하는 정도였을 텐데. 조금만 더 솔직하게 살 수 있었다면, 그래도 됐다면. 그런 꿈만 같은 삶이었다면. 그렇다면 우리 둘 다….
큰 손이 먼저 작은 손을 겹쳐 잡았다. 남매는 더 말하지 않았다. 말로 차마 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았다. 앉은 곳은 험지 하나 없는 너른 풀밭이었지만, 마치 천길 벼랑 위에 간신히 서서 또 다시 올라가야만 하는 깎아지른 절벽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아찔함이 핑 돌았다.
☆
"…결혼했으니 책임을 져야지. 그게 맞는 거니까…."
안녕, 여러분. 두 번째로 인사하네. 조슬랭이야. 오늘도 반가워.
난 잘 지내고 있어. 특별한 일도 없고.
결혼했으니 가정을 소중히 하겠다는 게 뭐 어디다 보고하고 할 만한 일은 아니잖아.
이걸 보는 여러분도 가족들과 화목하게 잘 지내길 바라.
마침 그 쪽 시간으로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줄이 있는 모양이니까.
"또 다시 경비가 많이 소비되었군. 돈 나갈 일이 하나 둘이 아니다보니…."
그리고 어쨌든 돈은 꼭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분명 돈이 많았는데 그냥 스쳐지나가버렸어.
우선 돈부터 모으자. 목표는 700원.
내가 우리 아버지에게 64원 물려받아서 재위 5년차에 접어들었는데 재산이 180원밖에 안 모인 건 너무하잖아?
이래서 사고 싶은 게 있으면 돈 있을 때 바로 사야 하는 건가봐.
다음 돈 생길 때를 기다리다보면 영영 못 사게 되거든.
다음에는 다음에를 부르게 되지. 다음에, 다음에. 나중에, 나중에.
"흐르는 물약 성인이라니 뭘 어쨌다는 건지 원."
덴마크의 선대왕 중 하나가 포션 성인이 되었나봐.
포션 좋지. 그래서 동방박사도 말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를 찾아갈 때 유황, 물약(포션), 황금을 들고 찾아갔잖아?
유황은 불을 당기면 되고, 물약은 회복. 황금은 돈.
앞으로 험난한 인생길이 펼쳐질 아기를 위해 준비한 RPG 초보자 세트….
아니, 어떻게 된 게 산모 산후조리할 거 하나 사들고 오는 놈이 없어?! 게다가 야외출산이잖아!
나쁜 놈들 같으니. 그러니 신약에서 이후 출연 없이 바로 잘렸지.
(*실제는 유향, 몰약, 황금)
"우리 집안이 푸아티에 가문인데, 뭐?! 푸아티에의 소유권을 날조하겠다고?"
저번에 투아르 백작이 달라졌다고 했지?
이런 정신이 달나라 간 놈을 봤나.
우선 위협적인 파벌이 하나 생겨났어. 저 녀석들 목표는 자문회 권한을 최대치로 강화하는 거야.
저 녀석들이 원하는 건 국왕이 허수아비가 되는 거지.
저들이 원하는 세상에서는 국왕이 죄인을 처형할 수도 없고, 추방할 수도 없고, 작위를 마음대로 하사할 수도 없고 물론 회수할 수도 없어. 명분이 있어도 전쟁을 선포할 수 없고.
모든 것은 자문회가 결정하게 돼. 왕이 자문회의 재가를 받는 거야.
그래서 그 수괴를 살펴보니, 내 소유인 푸아티에 공작위를 노리고 있어.
아키텐의 왕가가 푸아티에 가문인데, 내 신하들의 지지를 얻어 푸아티에 공작이 되겠다고?
생각을 해봐.
조선왕조의 본관이 전주인데, 왕실이 전주이씨인데 누가 왕에게서 전라도를 뺏으려 하면 왕이 가만히 있을까?
따질 것도 없이 당장 체포해야지.
그런데 그 때였어.
"제 놈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반역자 따위의 수족 노릇을 자처한단 말이냐!"
체포영장에 막 사인을 하려던 차였어.
아이메리 드 투아르가 보낸 최후통첩이 먼저 도착했지.
떠올리기도 싫은 그 거지발싸개 같은 종잇장에는 내 사촌동생인 플랑드르 공작 위그 2세 위그 드 푸아티에와, 죽은 부르고뉴 공작의 손자인 외드 3세 외드 드 부르고뉴의 이름이 함께 연명으로 적혀 있었어. 선대가 우리 아버지의 사촌이었으니 그 놈은 내게는 조카뻘이 되지.
그런데 그런 놈들이 날 허수아비로 만드는 협박에 가담해?
그것도 우리 가문에게서 우리 가문의 본관을 뺏으려는 놈에게, 종친이 가담을 해?
"이게 내 대답이다. 돌아가서 그놈들에게 네가 본 그대로 전하라."
난 연명문을 갈기갈기 찢어서 돌려줬어.
출정을 하기 전에 큰누나가 찾아왔어. 누나 보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중요하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지.
"네가 이길 거야. 다행히 저 쪽이 성급해서 저 편에 모인 건 고작 공작 둘과 백작 하나니까.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 거니?"
역시나. 많이 걱정스러웠던 거 같아.
"어쩌긴. 아이메리 드 투아르만 처벌하고 나머지 두 놈은 살려줘야지."
왕국 세우고 이제 10년을 조금 넘겼을 뿐인데 벌써부터 무자비하다고 찍히고 싶진 않아. 그 멍청한 놈들이 아직 어려서 속아넘어가 실수한 거일 테니까. 혼만 좀 내주고 말려고. 우리 아버지처럼 대공도 아닌데 벌써부터 밟아야 할 만큼 위협적인 것도 아니지. 다행히 누나가 듣고 싶었던 대답이었나봐. 누나가 날 말리지 않는 걸 보면.
"바로 이기고 돌아올게. 어머니와 아직 어린 왕비를 잘 부탁해."
"떠돌이 잡졸과 떠밀려나온 불쌍한 농부 몇이 몰린 것까지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지."
우선 간략하게 현재 상황을 설명할게.
우리 아키텐 왕국은 과거 프랑스 왕국이었던 지역의 남부를 주로 차지하고 있어. 크게 공작령으로 묶어 말하자면, 아키텐과 가스코뉴, 푸아티에, 툴루즈, 부르고뉴, 앙주, 부르봉, 플랑드르를 차지하고 있어. 피레네 산맥 이남으로 알바라신 백작령을 갖고 있고.
이 중 알바라신의 병력을 요구해봐야 고작 백 명 남짓하고 이들이 피레네 산맥을 넘어와야 하니 그냥 전력에서 제외했어.
그리고 남은 것 중, 가스코뉴에는 공작이 없어. 원래 아버지가 공작이셨는데, 왕이 된 후에 공작위를 없애버리셨거든.
왜냐면 가스코뉴에 소속된 땅 중 아버지가 직접 다스리는 땅이 하나도 없고, 백작들만 옹기종기 있어서.
아키텐과 푸아티에는 잘 알다시피 우리 왕가의 소유야.
하지만 지금의 내전 상황을 보다시피 아키텐과 푸아티에가 온전히 내 소유인 건 아니야. 당장 아이메리 드 투아르가 푸아티에의 권역에 있기도 하고.
나는 아키텐에선 수도인 보르도만을, 가문의 본관인 푸아티에에서는 푸아티에와 생통주만을 갖고 있어.
아버지는 원래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반역자에게서 페리고르를 몰수하셨지만 선 대장군 엔초에게 그걸 하사하셨거든.
그럼 이제 툴루즈, 부르고뉴, 앙주, 부르봉, 플랑드르가 남았지?
이 중에서 툴루즈와 부르봉과 앙주는 국왕군, 부르고뉴와 플랑드르는 반군인 거야.
내 재상 마리가 가져온 오트브르타뉴 명분을 쓰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랬다면 위치상으로도 반군을 타격하기 좀 더 좋았을 거야.
간단하게 보자면 공작이 없는 가스코뉴까지 합쳐 6:2. 하지만 이 숫자는 허수야. 안타깝게도 내 쪽이. 내 신하들이지만 그렇다고 날 위해 모든 병력을 보내주지는 않거든. 성의 표시만 하는 셈이지. 물론 날 좋아하는 봉신은 다른 봉신보다 좀 더 많이 보내주기는 하지만 저 쪽도 이래저래 고려할 사정이 있는 법이니까. 그러니 난 국왕직할령인 백작령 셋과 내 다른 봉신들이 수십명 쯤 추려주는 원정병을 모아 싸워야 해.
이것저것 종합하면 실질적인 수는 7:6 정도. 근소한 차이야.
이렇게 백중세가 예상되면 거의 용병을 부르는데, 난 그러지 않았어. 같은 아키텐 사람을 도살하라고 외국인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거든.
반군이 가장 먼저 타격한 곳은 역시나 수괴 아이메리 드 투아르가 그렇게도 갖고 싶어했던 푸아티에였어.
내게는 평지 전문가라는 특기가 생겼지.
푸아티에의 평원전을 마무리한 직후의 모습이야.
적도 투아르, 플랑드르, 부르고뉴 세 방향에서 오지만 우리도 각 지역에서 출발한 병력이 모이려면 시간이 걸려.
그래서 난 우선 앙주 공작의 지원병을 지휘하고 내 군대는 서서히 합류하도록 진군시켰어.
거리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적이 먼저 집결할 거 같아.
내전 중이라 치안이 나쁜지 도적이 나타났나봐.
그래도 그 도적이 국왕군이 아니라 부르봉을 공격하던 반군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건 다행이지.
아버지의 대관식 때 보르도에 왔던 시몬에게 공격적인 지휘관 특성이 생겼어.
그리고 내 장군들도 비록 병력 수가 2배 가까이 차이나지만 잘 싸우고 있지.
반군은 이 전투에 가용 병력의 70% 이상을 동원했어. 우리도 절반 가까운 수가 싸우고 있고. 분명 이 전투에서 진 쪽이 패배하게 될 거야.
전황에 진전이 없어보인다고?
그건 전투가 다 야외에서 다발적으로 벌어지기 때문이야. 반란을 일으킨 지역을 아직 점거하지 못했거든.
지금 공성에 들어가 우리가 발이 묶이면 반군은 기동 병력을 이끌고 근거리에 있는 비 우군지역을 공격하거나 수도를 직접 침공할 거야.
그래서 우선 저들의 병력을 줄일 필요가 있어.
정면으로 부딪치면 지휘관의 역량이 훨씬 더 우수한 우리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니까.
"주군에게 보상 한 푼 못 받고 싸우다니, 적이지만 불쌍한 놈이군. 우선 가둬라. 후일 처결하겠다."
내 장군들이 1:2라는 병력 차이를 극복하고 적장을 사로잡는 데에 성공했어!
이 전투 한 번으로 우리 군은 승기를 잡았지.
적장은 평민이고, 아이메리 드 투아르가 월급조차도 주지 않았는지 땡전 한 푼 없어서 몸값을 낼 수 없어.
하지만 인생이 불쌍해서 풀어주자니 어쨌든 적의 우익을 이끌었던 장군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지.
전쟁이 끝나면 풀어줄 생각이야.
반군은 대부분의 병력을 잃고 뿔뿔이 흩어졌어.
수도를 노리는 위협이 사라졌으니, 다음에 뭘 해야 할지는 당연하지 않겠어?
"그 동안 잘 싸웠다! 이제 우리는 반란수괴의 소굴 투아르를 함락시킨다! 전군, 공격하라!!"
왕국군의 총 병력은 5900 정도였지. 그 중 알바라신을 제외하고 사망자와 중상자를 제외한 전군 5084명이 투아르에 공성을 개시했어. 그 때였지.
"보르도에서 온 파발입니다. 국왕폐하, 재상께서 그만…."
"……알바라신에 국왕의 이름으로 조의를 보낸다. 모든 장의 절차는 유족과 상의하여 내 대신 왕비가 주관하며 파트리샤 공주에게 보조케 하라."
31세에 처음 아버지를 찾아온 이래 2대에 걸쳐 우리 부자를 많이 도와줬던 재상 마리가 세상을 떠났어.
비록 부왕의 갑작스러운 승하로 쓰지는 못했지만 선대에게는 바르셀로나 공작령 명분을, 내겐 오트브르타뉴 명분을 가져다줬지.
아버지 부탁도 있었으니 좀 더 보상해주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그러지 못하게 됐네.
대신 줄리아나와 결혼한 매제가 이어서 알바라신 백작이 되었으니 매제에게 잘해주면 되겠지.
그렇게 씁쓸해하던 차였어.
누가 또 화급히 뛰어오네.
"급보입니다! 폐하, 지금 반군이 부르봉을 재공격하고 있습니다! 수는 약 3천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분명 저번에…….
"…용병을 불렀군."
분명 플랑드르와 부르고뉴 공작의 수입은 아키텐 왕국 아니라 서유럽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
하지만 난 같은 아키텐 사람의 문제에 외국인의 무력을 개입시키는 게 싫어서 그것만은 하지 않았는데….
"해가 지는 대로 급히 제장들을 소집하라."
"형제들, 좀 더 힘을 내라! 수일 내로 투아르를 함락시켜야 한다!"
시간이 없었어.
적의 총대장을 눈앞에 두고 돌아갈 수는 없었지.
저 얼간이 놈을 어서 잡아야 이 바보같은 내전이 끝날 테니까.
그 때였어.
"폐하를 뵙게 해주시오, 지금 당장!! 국왕폐하, 툴루즈 공작의 급보입니다!!"
"무슨 소리냐…. 그 역병은 예수께서 동방의 이교도에게 내린 형벌이 아니었더냐? 어떻게 서쪽 땅 끌에 닿은 아키텐까지…!!"
동방을 잠식했던 역병이 프로방스까지 번졌다는 소식이었어.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도망쳤다고 해.
갑작스러운 난민에 툴루즈도 어쩔 방법을 모르고 있어.
명색이 우리 아키텐에서 가장 풍요로운 땅이지만 이런 일에는 누구든 도리가 없지.
- 폐하, 아무래도 사태가 심상치 않은 것 같습니다. 일단 수도로 회군하신 연후에….
- 지금 부르봉에 반군이 고용한 용병 3천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흩어지면 그들이 어디로 오겠습니까? 게다가 우리가 숨을 죽인 사이 저들이 병력을 일부라도 회복하면….
- 저들도 역병의 소식을 들었을 겁니다. 폐하, 투아르 백작에게 화평을 청하시는 건…….
- 허튼 소리 작작 해라! 자문회에 말석조차 얻지 못한 아이메리 드 투아르가 정말 자문회에 대한 폐하의 처우에 불만을 품고 이런 일을 벌였겠는가! 똑바로 봐라, 지금 플랑드르 공작이 이 자리에 있는지! 왕실에 남자라고는 국왕폐하와 플랑드르 공작 둘 뿐이지 않는가!
"……모두들 그만하라."
계속 들어주기엔 말이 너무 아팠어. 난 천천히 지도를 짚었지. 그 때였어. 또 다시 누가 숨차도록 달려온 게.
"보고 올립니다! 국왕폐하, 조금 전 본성의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수괴인 투아르 백작 아이메리 드 투아르는 본성 함락 직전 도주했다고 합니다!"
쥐새끼처럼 잘도 도망쳤군.
난 지도 위에 얹었던 손에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어. 그놈만 잡으면 이 전쟁이 바로 끝이 나는데.
"……모든 병사들을 충분히 휴식시켜라. 곧 부르봉을 구원하러 가야 한다."
전투 도중 적의 용병대장을 잡는 데에 성공했어.
같은 포로 신세끼리 말동무나 하고 있으라고 수감시켰지. 적적하진 않겠네.
그리고 꿋꿋하게 남아서 싸우는 저 놈들은 당연히 그 때 봤던 그 놈들이고.
조르당이 좌익에서 핀이 중군에서 방패벽 전술로 적을 압박하는 동안 난 우익에서 쫓기는 적을 계속 추격했어.
도망치는 끄트머리에서 얼핏 사촌동생 위그를 본 것도 같아. 잘못 봤을 수도 있지만.
"조금만 더 힘을 내라! 지금 우리가 저들을 잡지 못하면 우리의 고향이 짓밟힐 것이다!!"
머지 않았어.
이번 전투도 대승이야.
그러니까 조금만….
조금만 더…….
- ……폐하, 폐하! 정신을 차리십시오! 속히 군의를 데려와라, 어서!!
"…괜찮다. 그냥 좀 피로했을 뿐이야."
난 튼튼해서 감기조차 제대로 앓아본 적 없었거든. 그래서 몸이 땀으로 흠뻑 젖으니까 기분이 영 찜찜하더라.
장군들 얼굴이 죽상이었어.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위그랑 외드는?"
질문을 한 것 뿐인데 다들 면목 없어 죽으려고 하네.
"…놓쳤습니다."
역시나. 잘못 봤다 싶었는데 착각은 아니었구나.
"…반군의 위협은 올해가 가기까지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병에 이어 내전이라는 이중고를 모두에게 부담시킬 순 없다. 난 투아르에 배치한 수비병과 합류해 아이메리 드 투아르를 잡겠다. 여기 남고 싶은 자는 부대와 함께 남아도 좋다."
한 번 용병을 투입할 수 있다는 걸 안 이상 전쟁을 오래 끌 수는 없었어.
역병이 점점 더 퍼진다면 적도 적이지만 우리 군도 무너지겠지.
들불이 번질 위험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불씨를 남겨둬선 안 돼.
설령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이번에야말로 꼭 잡아주겠다. 그래서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프로방스에서 넘어온 역병은 어느새 아키텐 전역을 잠식했어.
오베르뉴 백작이 역병으로 사망했다는 비보가 도달했지.
투아르 근처에서는 브르타뉴가 무슨 일인지 몰라도 싸우고 있었어.
그런데 싸우는 건 병사들이 하고 있건만 군의가 계속 시끄러워.
"폐하, 제발 군대를 물리고 피신하십시오! 폐하께서는 선왕의 단 하나뿐인 아드님이시며 이 나라의 왕이십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선왕께서는 전쟁에 나가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상승장군이셨다. 그 아들인 내가 적의 수괴를 바로 앞에 두고 도망친다면 다들 날 뭐라고 평가할 것 같은가?"
"왜 이리 몸이 말을 듣지 않는가! 왜…!!"
군의에게 큰 소리를 쳤는데, 다음날이 되니 나는 제대로 검을 쥘 수 조차 없게 되었어.
피로해서 그렇다는 변명이 이제 통하지 않을 것 같아.
"매제가 죽었다고……. 알겠다…."
내 신하들이 하나하나 쓰러져갔어.
갓 태어난 어린 아이가 가문을 잇고, 새로운 가주가 열흘도 안 돼 선대 가주가 되는 일 등이 일어났지.
가는 순서는 없었어.
"결국 내게 벌을 내리셨구나. 내가…, 내가 너무나도……, 그릇된……."
내가 잘못했던 걸까.
그러면 어디서부터 잘못했던 걸까.
바로잡을 기회는 있었을까.
있었다면 어디에서 있었던 걸까.
하얗던 내 피부는 사람의 것이 아닌 것처럼 시커먼 반점이 퍼졌어.
☆
- 국왕폐하! 목숨을 걸고 말씀 올립니다. 이 역병은 말라리아 따위가 아닙니다! 즉시 군대를 해산하시고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셔야 합니다!
언제였더라. 그래, 부르봉에 적이 집결한다는 소식을 듣고 막 출정 준비를 마친 때였다. 탐욕스러운 투아르 백작 아이메리는 자신이 속하지도 않은 자문회의 권한 강화를 대외적 목표로 세워 부르고뉴와 플랑드르를 포섭했고 뒤에선 푸아티에 가문 대신 푸아티에 공작령을 손에 넣으려는 흉계를 꾸몄다. 체포영장에 사인을 하려는 순간 도착했던 연명 통첩. 반역자들은 왕을 허수아비로 만들지 못하자 창검을 겨눴다. 제1목표는 왕가의 본관인 푸아티에. 그 다음 목표는 물어볼 것도 없이 수도인 보르도가 될 터였다. 투아르, 플랑드르, 부르고뉴. 3방향의 병력이 온전히 집결하기 전에 푸아티에부터 구하고 총대장이 위치한 투아르를 제압한다. 구상과 실행에 실수는 없었다. 어려운 전쟁이 아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투아르가 함락되자 반군의 항전이 거세졌다. 수괴를 제외한 투항자는 죄를 묻지 않겠다는 왕의 약속은 등 뒤에서 겨누는 칼날을 막아주지 못했다. 비록 적의 수가 많지 않다 하나 한정된 병력으로 양 방향을 상대하는 건 분명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멍청한 놈들.’
플랑드르 공작 위그 2세 위그 드 푸아티에. 부르고뉴 공작 외드 3세 외드 드 부르고뉴, 누구보다 왕의 편이 되어야 할 놈들이 앞장서서 반역자의 손을 잡았다. 분노보다는 개탄이 더 앞섰다. 부왕의 오른팔이라 칭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숙부가 다스린 땅과 부왕의 사촌형이자 혈맹이었던 선대 부르고뉴 공작 외드 2세가 다스린 땅이, 아니 대를 거친 플랑드르의 주인과 부르고뉴의 주인은 가장 먼저 왕의 손을 놓았다. 세인들이 이 사태에 대해 현 왕인 자신을 어떻게 볼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되었다. 그러나 뭇 사람들의 비웃음보다는, 이런 와중에도 떠오르는 그들의 어릴 적 모습이 더욱 아팠다. 어린 단풍잎처럼 작고 통통한 손을 뻗어 내 손가락을 쥐던 모습이, 서투른 걸음마로 정원을 종횡무진하다 넘어져 울던 모습이, 부쩍 자란 몸집으로 활짝 웃으며 찾아와 새 옷을 자랑하던 모습이. 그 모든 것이 가슴을 후벼 판 것처럼 쓰라리게 아팠다.
그래, 이렇게 죽어가는 와중에서도.
피가 섞인 기침이 끊이지 않았다. 고작 하루 사이 급격히 부어오른 목은 물을 넘기는 간단한 것조차 버거웠다. 12월의 한기로도 식히지 못할 뜨거운 열과 함께 찾아온 통증은 마치 온몸에 화살을 맞은 것 같았다. 시야가 닫히기 전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건 그을린 장작처럼 시커먼 반점이 번진 팔다리였다.
부족한 왕이었다. 부족한 주군이었다. 부족한 형제였고 부족한 아들이었다. 그럼에도 가당찮게도 신께서 날 보우하신다고 믿었다. 신께서 날 왕의 독자로 점지했고 왕좌로 이끌었으며 베드로의 후계자를 보내 통치권을 만방에 선포했다. 내가 완전한 남자가 아니라는 것조차 그에겐 아무것도 아닐 만큼 날 사랑한다고 믿었다. 오만이었다. 왕으로 지낸 약 7년 가까운 시간 동안 국력은 증가하지 못했고 나라는 분열되었으며 가족은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었다. 왕국에는 신벌이 내려 셀 수도 없는 사람들이 늦가을 낙엽처럼 우수수 생명을 잃고 스러졌다. 어쩌면 신은 처음부터 나 따위는 사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교도보다도 나를 더 증오했을지도 모른다. 신의 섭리를 저버린 부정한 존재를…….
- 폐하! 눈을 뜨셔야 합니다! 아직 적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가시면 안 됩니다!
처음부터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모든 것이 분에 넘쳤다는 걸 더 빨리 알았어야 했다. 아버지. 난 아마 아버지와 같은 곳에 갈 수 없겠죠. 어머니와 누이들을 지켜주고 싶었는데. 지켜줘야 하는데.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을. 우리 가문을. 우리의 왕국을….
철없던 어린 시절 물속에 자맥질을 했던 때처럼 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감염도 두려워 않고 날 잡고 흔드는 충신들을 더는 격려해줄 수가 없다. 몸을 짓누르듯 옥죄던 모든 감각이 서서히 옅어졌다. 더는 뜨겁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아주 긴 숨을 쉰 것 같았다.
신의 섭리를 거스른 내 죄는 달게 받겠습니다.
내 자리가 천국에 마련된 주 옆의 보좌가 아니라 고통과 탄식만이 있는 지옥의 업화라도 기꺼이 가겠습니다.
그러니 나를 죽이고 내 사람들을 살려주십시오.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
"네가 만약 어떤 이유에서든 천국에 가지 못한다면……. 그렇다면 그 때는, 내가 너와 함께 영겁을 떠돌게."
1126년 12월 21일. 아키텐 2대 국왕 조슬랭 드 푸아티에 흑사병으로 승하하다. 향년 25세. (생일: 1101년 11월 20일)
+)분량 문제로 3대 주인공 파트리샤의 이야기를 함께 잇습니다.
☆
하늘이 하얀 날이었다. 하늘에 균열을 내듯 앙상하게 뻗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태양은 일부러 찾지 않으면 그 위치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빛이 약했다. 한바탕 눈바람이 쓸고 지나간 겨울의 색채는 단조롭다. 하얗고, 어둡고. 소리조차 공기 속에 녹아버린 어느 겨울날, 이름도 없는 평원에 아키텐 왕국을 상징하는 붉은 바탕의 황금사자기가 우뚝 솟아올랐다. 새로운 왕은 장기병과 위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마차에서 내려 서리 내린 대지를 천천히 걸었다. 아키텐의 3대 국왕 파트리샤 드 푸아티에.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신왕에 대해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신왕의 모습은 익히 알려진 것과는 같지 않았다.
퍽-!
노르게에서 온 장군 핀이 죄인을 걷어차 강제로 무릎을 꿇게 했다. 그게 신호가 되어 장병들은 저마다 제 앞의 포로를 걷어차고 때려 땅에 처박았다. 신왕은 미동도 없이 쇳소리와 구타소리, 비명소리가 섞인 아수라장을 묵묵히 보았다. 찬바람을 피하는 망토 아래 색이 옅은 긴 옷을 입고 흰 베일을 늘어뜨리며, 무슬림 여성처럼 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를 가린 그녀의 섬뜩한 모습은 마치 죽음을 선고하러 강림한 천사 같았다. 포로들의 머리 높이가 훌쩍 낮아졌을 때, 신왕은 손을 들어 장병들을 제지시키고 천천히 핀 앞으로 다가갔다. 용맹한 장군은 신왕이 거동하자 죄인을 억누르던 손을 놓았다. 그 때.
짝-!
날카로운 비협 소리가 허공을 찢었다. 이어 한 번 더. 죄인의 찢어진 입술에서 맺힌 붉은 피가 정돈되지 못한 짧은 수염을 적셨다. 신왕을 호위하던 이들은 그 때, 고요하던 그녀가 사실은 누구보다도 들끓는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을 뿐이었다는 걸 알았다. 신왕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왜 그랬어?”
내전의 이유는 자문회 권한 강화였다. 거창한 이유 따위 없었을 것이다. 그저 아키텐에서 자신의 영향력이 좀 더 커지기를 바랐을 터이다. 알고 있다. 하지만.
“왜 그랬어, 왜! 네가 어떻게 우리에게 이럴 수가 있어! 너 때문에…, 너 때문에 조슬랭은…!”
파트리샤의 눈에서 눈물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베일로 가린 입은 말을 더 잇지 못하고 흉하게 꺽꺽 소리가 났다. 퍽. 뒤이은 타격음은 살과 살이 부딪쳐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파트리샤는 성난 짐승처럼 위그에게 달려들어 두 손을 휘둘렀다.
“살려내! 내 동생을 살려내! 아키텐의 왕을 살려내! 당장 살려내!!”
한 사람 뿐이던 울음소리가 파문처럼 주위로 번졌다. 아득한 하늘까지 뒤덮을 산 자의 울부짖음이 바위라도 눈물을 흘릴 만큼 애통히 울려 퍼졌다. 보병은 방패를 내던지고 울었으며 창병의 손에서는 힘없이 창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선왕 조슬랭의 시신을 운구한 이들은 자신들의 옆에서 말없이 잠든 선왕을 부르며 울었다. 갑주를 내려치는 파트리샤의 두 손은 보기에도 딱할 만큼 새빨갛게 물들어 부풀었다. 젊은 장수 조르당이 반역자에게서 가까스로 신왕을 떼어냈을 때 그녀의 손에는 이미 피멍이 잡혀있었다.
텅-.
노련한 노장은 북해를 누비며 하던 것처럼 방패를 돌바닥에 부딪쳤다. 장병들은 이미 곳곳에서 죽일 듯이 포로를 구타하고 있었다. 핀은 말없이 눈짓으로 신왕에게 신호를 보냈다. 진정시켜야 합니다. 소리를 들은 숙장들은 똑같이 방패를 바닥에 부딪쳤고 이에 신왕은 붉은 손을 들어 장병들을 제지시켰다. 왕으로서 선고할 시간이었다. 파트리샤는 최대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나 아키텐 국왕 파트리샤는…….”
어쩌면 왕좌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맏이로서 당당히 부모와 조상을 잇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내 아우가 허망하게 죽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차라리 없는 게 더 나았다. 파트리샤는 질끈 입술을 깨물어 차오르는 눈물을 다시 억눌렀다. 여기 오기까지 수 없이 되새겼던 말이다. 잠깐이면 된다. 곧 끝난다. 잠깐이면.
“나 아키텐 국왕 파트리샤는 자비로우신 선왕폐하의 유고를 받들어 투항한 모든 장병을 방면하니, 그대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생업에 종사하라. 그러나 수괴인 아이메리 드 투아르와 그에 가담한 외드 드 부르고뉴, 위그 드 푸아티에는 용서치 못할 대죄를 저지른 바 봄이 되어 법관이 형을 확정할 때까지 보르도 지하 감옥에 수감한다. 아울러 그릇된 주군으로 말미암아 참담한 일에 휘말린 투아르를 투아르 가문에게서 거두고, 위대하신 선선대왕께서 그 아우에게 하사하셨던 플랑드르 공작의 지위와 겐트를 모두 거둔다.”
신왕은 엄정한 눈으로 죄인들을 노려보았다. 흙먼지가 묻고 체모가 헝클어진 지저분한 반역자에게선 더는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물론 예전의 감정도 남아있을 턱이 없다. 신왕은 만년설이 쌓인 빙하보다 차가운 목소리로 호령했다.
“반역자를 끌고 가라!”
그 순간 죄인들의 눈빛이 다급히 변했다. 우악스런 손들이 포승을 잡아채 끌고 가다시피 일으키자 서릿발이 선 얼어붙은 땅은 죄인들의 발버둥으로 어지러이 패였다. 파트리샤-! 파티, 제발! 차라리 추방해 주십시오, 노르게든 아프리카든 기꺼이 가겠습니다! 발소리와 철갑이 부딪치는 소리가 뒤섞인 끔찍한 소음을 신왕은 단 한 번 눈길조차 주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죄인의 호송을 맡은 핀을 제외한 조르당, 시몬, 산초 등의 장군들이 신왕을 호위했고 그 뒤를 대주교 데비가 따랐다. 3천이 조금 넘는 인원이 좌우로 갈라져 신왕에게 길을 냈다. 신왕은 그 끝에서 시신과 장작으로 가득 메운 구덩이와 그 바로 앞 수레 위의 관을 감싼, 푸아티에 가문을 상징하는 하얀 바탕의 붉은 사자기를 보았다.
“…내가 왔어.”
파트리샤는 차갑게 얼은 관 위에 손을 얹었다.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하늘도 비통한지 바람소리가 통곡처럼 울렸다. 파트리샤는 저도 모르게 관을 감싼 깃발을 잡아당겼다. 폐하! 대주교 데비는 다급하게 파트리샤를 부르며 뒤에서 그녀를 잡았다. 파트리샤의 눈에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혔다.
“물러서라, 내 아우다! 내 아우를 봐야겠다!”
두 팔이 잡혀 몸부림치는 그녀를 조르당이 가로막았다. 산초는 선왕 조슬랭의 관을 실은 수레를 조금 옮겼다. 멈췄던 울음소리가 다시 평원에 흘렀다. 장병들은 대주교 데비가 소리 내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국왕폐하, 선왕께서는 이미 너무도 변하셨습니다! 선왕께서도 지금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 않으실 겁니다!”
부디 그 분의 건재하셨던 모습만 기억해주십시오. 보시면 안 됩니다. 제발. 무쇠보다도 더 단단한 제지와 만류에 파트리샤는 힘없이 스르르 손을 내렸다.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은 차마 그녀를 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굵은 눈물만 떨궜다. 파트리샤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휘청거리는 몸을 간신히 세우고 관 너머 시신 구덩이를 보았다. 연소를 위해 사이사이에 채워 넣은 나무 사이로 보인 건 물기를 잃은 검은 나뭇가지와 분간을 할 수 없을 만큼 까맣게 괴사한 사람의 피부. 그리고 거무죽죽하게 변한 자상과 절차상이 끔찍한 모습을 드러냈다. 피가 달라붙어 갈변해 썩은 천조각도 함께. 죽음이 풍기는 오싹한 악취는 오감을 마비시키는 겨울의 추위에 밀리지 않았다. 파트리샤는 눈물이 맺힌 눈으로 보이지 않는 사신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병사들을 가려 뽑아 횃불을 들려라. 준비가 되는대로 화장하겠다.”
“네, 폐하.”
“……그리고 따로 장작을 쌓아라. 선왕도 함께 화장하겠다.”
그건 불가합니다! 대주교는 주름살이 깊게 패인 눈을 휘둥그레 뜨고 신왕을 만류했다. 장군들도 마찬가지였다. 신왕을 중심으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바람을 만난 파도처럼 술렁이며 퍼졌다. 감염을 막기 위해선 사망자의 시신을 태워야 한다지만 일개 소졸의 시신과 군주의 시신이 같을 순 없다. 하물며 교황에게 기름부음을 받은 통치자임에야. 폐하, 제발 통촉하십시오. 저 분은 우리가 모신 주군이며 왕이셨습니다. 수염이 덥수룩한 장군들이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로 신왕에게 애원했다. 신왕은 흔들림 없는 눈으로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무엇이 불가하단 말인가.”
신왕은 몸을 돌려 평원에 모인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그 목소리는 주위의 소음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평온했다.
“여기 잠든 이들은 모두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전사들이다. 응당 극상의 대우를 받아야 할 터. 허나 아키텐이 지금 미증유의 사태를 맞이하였으니 불가피하게 합동 장례를 하는 것이다. 선왕께서는 숨을 거두시던 그 순간까지 모두를 한 형제로 여기셨다. 이제 와서 존비를 이유로 선왕만을 따로 모신다면 선왕께서 기꺼우시겠는가? 그대들이 영광을 받는 것이 아니다! 그대들 같은 훌륭한 이들의 충성을 받은 우리 푸아티에 가문과 선왕이 넘치는 영광을 받는 것이다!”
소리는 가라앉고 침묵이 찾아왔다. 잠시 소리를 높였던 신왕은 다시 잔잔한, 그렇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다시 명했다.
“우리는 오늘 이곳에서 함께 형제를 보낸다. 움직일 수 있는 자는 모두 도와라. 나도 함께 불을 놓겠다.”
신왕은 더 들을 말이 없다는 듯 발걸음을 옮겨 마차 쪽으로 스르르 걸어갔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위병들이 허겁지겁 그 뒤를 따랐다. 정식으로 서임을 받은 기사만이 아니라 이름 모를 농부의 자식까지 선왕과 한 날 한 시 한 곳에서 장사지낸다는 신왕의 결정은 평원에 모인 모든 사람들을 어안이 벙벙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상황을 빨리 이해한 건 조금 전까지 신왕을 말리던 장군들이었다. 왕명이라서 그렇든, 왕이 목숨을 잃은 내전의 수습을 위해서 그렇든, 모두 다 선왕과 함께 잠들 자격이 있는 평등한 전우로 대하겠다는 결정은 절대 불명예가 될 수 없다. 어서 준비합시다. 장군들 중 누군가가 짧게 말을 던지며 먼저 자리를 뜨자 대주교가 지팡이를 들고 병사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왕명을 따르라!
‘미안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미안해.’
파트리샤는 마차 안에서 소리를 삼키며 다시 울었다. 미안해. 누나가 정말 미안해. 널 사지로 보내서 미안해. 나 혼자만 널 데리러 와서 미안해. 널 온전하게 다시 데려갈 수 없어서 미안해. 네 원수를 당장 죽일 수 없어서 미안해. 사실은 아직도 믿기지 않아. 지금이라도 집에 돌아가면 네가 있을 거 같은데. 나쁜 꿈을 꾸고 와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웃으며 놀릴 거 같은데. 흡사 마르지 않는 샘처럼 그칠 줄 모르는 눈물이 베일에 가려진 얼굴을 흠뻑 적셨다. 퉁퉁 부은 눈은 소금기에 짓물렀는지 눈가가 따가웠고 통곡을 억누른 목은 뻣뻣하게 아파왔다. 파트리샤는 젖은 베일을 풀고 시간이 지난 뒤 다른 베일로 얼굴을 감쌌다. 이 마차에서 나갈 때는 왕의 모습이어야 했다. 더 이상 아키텐에 그녀가 울 곳은 없었다.
마차 문 앞에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장의 준비를 마치고 왕을 모시러 온 대주교는 왕이 잠들었다고 여겼는지 섣불리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신왕은 완벽히 정돈된 차림으로 마차 문을 열고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태양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거동 가능한 장병들이 모두 거들어 만든 화장대는 마치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거대한 영묘 같았다. 평원의 사람들이 화장대를 둘러싸고 모두 제 자리에 서자 제전용 십자가를 든 대주교 데비가 장중한 목소리로 기도문을 읊었다. 미리 피워둔 화톳불에선 불씨가 봄날 꽃잎처럼 어지러이 흩날렸다. 오늘 우리는 사랑하는 형제들을 주의 품으로 돌려보내오니 부디 이들을 맞으시어 지친 몸과 마음을 평안히 쉬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에 흐르던 하얀 빛에 어느새 동편으로부터 푸른 보랏빛이 서서히 섞이기 시작했다. 신왕과 그 충성스러운 장병들은 손에 횃불을 들고 불띠를 만들었다. 신왕이 가장 먼저 선왕의 화장대와 전사자들의 화장대에 각각 불을 붙였다. 멎었던 눈물이 군중 속에서 다시 흘렀다. 타오르는 불길은 그날의 노을빛을 대신하듯 지독히도 붉었다.
“……부탁을 하고 싶다.”
누구를 불렀을까. 신왕의 목소리는 한숨처럼 가느다랬으나 그녀를 위시한 주위 사람을 부르기에는 충분했다. 데비 대주교와 장군 시몬을 비롯해 대여섯 명 가량 되는 인원이 신왕을 초승달처럼 감쌌다. 신왕은 불꽃이 되어 하늘로 오르는 붉은 사자를 바라보는 채로 입을 열었다.
“내가 만일 이 재앙으로 말미암아 죽게 된다면 날 이곳에서 태워다오.”
“폐하! 그 무슨…!”
“부탁한다.”
그 무슨 불길한 말씀이십니까. 폐하, 폐하께서는, 폐하. 폐하…. 파트리샤는 이제는 자신을 부르는 말이 되어버린 그 말을 속으로 나직이 읊어보았다. 난 어째서 이 말을 네게 무거운 짐을 얹을 때에만 썼을까. 이렇게나 공허하고 쓸쓸한 말을.
널 사랑했다.
나 자신보다도 더.
네가 만약 어떤 이유에서든 천국에 가지 못한다면, 만일 그렇다면 내가 너와 함께 영겁을 떠돌게.
언제나 옆에 있어줄 거야.
널 사랑하니까.
☆
"모든 관문을 폐쇄한다. 그리고 너희는 다음 왕위 계승자를 보호하라. 지금 즉시 공주를 왕과 함께 이어시킨다."
인사를 하는 건 처음이죠. 파트리샤입니다. 경황이 없으니 소개는 생략하지요.
그 사이 바깥은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만큼 인적이 끊겼지만, 다들 관문에 못질을 했습니다.
귀중한 시간을 다 허비했습니다.
좀 더 일찍 방비할 수도 있었는데.
내전만 아니었다면….
"파트리샤!"
제게서 멀리 떨어뜨려 놓으라고 했는데, 길패트릭이 오라드를 데리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나타났네요.
이어시키라고 명한 시종들이 어쩔 줄 몰라하며 허둥지둥 오는 걸 보면 분명 길패트릭이 으름장이라도 놓았겠지요.
이제 제 남편은 아키텐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남자가 되었으니까….
"파티, 안 됩니다. 내가 당신의 남편인데 당신을 두고 갈 수 없어요. 함께 갑시다."
남편이 오랜만에 부탁을 합니다. 제가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을요.
가족이라서 더욱 왕이라서 더더욱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을 합니다.
어린 딸이 엄마를 부르면서 울며 안깁니다. 겨우 제 허리 높이에 머리가 닿는 작은 아이입니다.
제 하나뿐인 아이가 함께 가자고 하는데 전 이 아이를 놓아야 합니다.
"오라드. 내 아가야."
몸을 낮추고 아이와 눈을 맞췄습니다. 잘 익은 복숭아처럼 뽀얗고 귀여운 얼굴이 어느새 눈물로 흠뻑 젖었습니다.
전 장갑 낀 손으로 아이의 눈물을 닦았습니다. 아이의 보드라운 살결을 만질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가. 엄마를 잊지 마. 네게 이름을 준 삼촌을 잊지 마."
제발 이게 마지막이 아니게 해주세요.
"아키텐 국왕 파트리샤와 길패트릭의 외동딸. 아키텐의 위대한 초대 국왕 기욤 1세와 그 왕비인 프랑스의 공주 콩스탕스 드 카페의 장손. 푸아티에 왕가와 카페 왕가의 자손. 옛 서프랑크 강역의 주인이 될 자. 하늘이 허락한 내 하나뿐인 아이야."
너를 더 사랑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네게 이런 무거운 짐을 넘겨서 미안해.
"…부디 네가 누구인지를 잊지 말렴."
엄마는 정말 가고 싶지 않아.
"……어서 왕과 공주를 모셔라."
조슬랭이 지켰던 푸아티에가 이번에는 난민과 역병으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왕을 잃은 국왕군은 폐허 속에서도 여전히 왕의 깃발을 들고 공성을 가했습니다.
전쟁은 끝을 보이지만, 더욱 거대한 전쟁의 끝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반군 1900명이 최후의 발악을 마쳤습니다.
"…마차를 준비하라. 내가 직접 가겠다."
1년하고도 4개월이 걸렸던 전쟁은 결국 국왕군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국왕군 5900명, 용병까지 포함해 반군 약 8200명이 왕권의 제한을 놓고 처절하게 싸운 이 전쟁에서 선왕 조슬랭은 아까운 생을 마감했고 방비 시기를 놓친 국토는 흑사병이라 불리는 신종 역병이 창궐하고 있습니다.
7천 남짓했던 아키텐의 병력은 이제 채 5천명이 되지 않습니다.
거리에는 식사를 짓는 연기 대신 시체를 태우는 연기가 즐비합니다.
"반역자를 풀어주지 마라. 만일 이들이 이 재앙에서 살아남더라도 절대 풀어줘서는 안 된다. ……신왕께서도 모르게 해야 한다."
반란수괴 아이메리 드 투아르는 일개 백작이라 쳐도, 외드 드 부르고뉴와 위그 드 푸아티에는 국왕을 제외하고 나라에 넷 뿐인 공작 중 엄연한 두 축입니다. (*툴루즈 공작, 앙주 공작, 부르고뉴 공작, 플랑드르 공작)
그러니 고작 투아르 백작이 국왕을 상대로 무력을 행사하겠다는 대담무쌍한 마음을 먹었을 테지요.
이들이 풀려나면 제 딸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됩니다. 비록 제 남편이라 하나 아이 아버지는 여기 아키텐에 의지할 이 하나 없는 스코틀랜드 이방인이고, 비록 반역자 신세로 전락했지만 위그는 아직 종친이며 왕위 계승 서열 5위입니다.
"반역을 저지른 아이메리 드 투아르에게서 투아르를 거둔다. 아울러 종친이면서도 반역에 가담한 위그 드 푸아티에의 작위를 모두 삭탈한다."
작은 어머니가 마음에 걸리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부르고뉴는 대왕대비셨던 할머니의 친정이기도 하니 가주를 교체하는 것으로 그쳤습니다.
외드 드 부르고뉴가 죽으면 새 부르고뉴 공작이 탄생하겠지요.
그런데….
"저, 국왕폐하……. 이번 역병으로 많은 가문들이 절손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전 플랑드르 공작은……."
왕실의 유일한 남자이니 풀어주라?
"반역자를 방면해야만 유지될 왕실이라면 이대로 망하는 게 신의 뜻이겠지."
흑사병에 대한 대책도 찾지 못한 채 속절없이 시간만 흘렀습니다.
"아버지는 만나셨어요…? 할아버지는요…? 그래도…, 그래도 저를 위해서…. 제 딸을 위해서……. 안 돼요…. 이렇게 가시면 안 돼요……!"
1월 21일. 어머니께서 결국 흑사병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
연둣빛 비단을 널리 편 것처럼 아름다운 풀밭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린 풀잎들이 산들바람에 한가롭게 살랑이고 그 사이사이로 보이는 작은 풀꽃은 별빛을 흩뿌려놓은 것처럼 다채롭게 반짝였다. 밟기조차 아깝고 미안할 만큼 예뻐 한참을 보고 있자니 꽃그늘 아래에서 무언가 부스럭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푸슬푸슬. 푸슬푸슬. 가느다란 꽃가지와 풀더미를 헤치고 우아한 귀부인처럼 곱게 차린 통통한 암탉과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샛노란 병아리들이 하나 둘 빼꼼 머리를 내민다. 꼭꼭. 삐삐삐. 신호에 맞춰 병정들처럼 움직이는 건 언제 배웠는지 종종종 잘도 간다. 그 귀여운 행렬 끝에 멋들어진 건장한 수탉이 마저 따라 나와 근엄한 걸음을 내디뎠다. 가족이 함께 꽃나들이라도 나왔으려나. 한참을 보다가 문득 위화감이 들어 뺨을 쓰다듬었다. 나, 언제부터 웃고 있던 걸까. 아니, 얼마 만에 웃고 있는 걸까.
“누나! 누나~!”
부름과 섞여 들리는 말발굽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소리가 난 방향에서 갈색 더벅머리 소년이 태양처럼 환히 웃으며 색이 짙은 밤색 말을 타고 달려왔다. 위험하게도 한 손으로만 고삐를 잡고 한 손은 좌우로 붕붕 흔들면서. 조슬랭! 경악에 찬 소리를 지르며 치맛자락을 말아 쥐고 나도 모르게 몇 발짝 뛰었을 때였다. 소년은, 아니 조슬랭은 풀쩍 뛰어내려 옷을 툭툭 털었다.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누나가 위험한 짓 하지 말랬잖아…!”
어째서일까. 눈시울이 뜨거웠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소리 내서 울고 싶었다. 저절로 다리 힘이 풀려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손등으로 눈을 누르며 입을 벌리고 한참을 울었다. 작고 보드라운 손이 손목을 잡고 힘을 줘 손을 눈에서 떼어낼 때까지. 너무나 잘 아는 해맑은 얼굴이 눈물로 흐릿한 눈 바로 앞에서 당황해하며 보고 있었다.
“아. 안 돼. 안 돼. 미안. 잘못했습니다. 제발 그만. 누나가 나 때문에 울었다고 하면 나 이번에야말로 집에서 쫓겨날 거야.”
“…너를 쫓아내긴 누가 쫓아낸다고 그래?”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어. 넌 세상에서 가장 귀한 아이인데. 어이없는 만류에 저절로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진다. 마저 떨어지지 못한 눈물은 다시 한 번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내 동생. 손을 뻗으니 그 작은 아이가 헤헤 웃으며 품에 들어왔다. 말랑하고 따뜻한 몸에선 따사롭고 포근한 햇살 내음이 느껴졌다. 한참이나 그 아이를 안은 채 동그란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난 대체 왜 이 아이를 보자마자 눈물이 났을까.
푸르르.
동생이 타고 온 밤색 말이 풀을 뜯다 말고 소리를 냈다. 그 말을 보자 나도 모르게 ‘앗!’ 소리를 냈다. 세상에 있는 밤색 말을 앞에 다 모아놓고 그 사이에 섞어놓는다 해도 절대 못 찾을 리 없는 말이다. 포르투나. 내 소중한 친구. 네가 어째서….
“조슬랭. 누나가 뭐 어떻게 하라고 그랬더라?”
“넵. 위험한 짓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얘기가 아니잖아. 기가 막혀서 동생을 보니 이 녀석이 난 이번에야말로 아무것도 안 했다는 양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눈동자만 빤히 뜨고 있다. …그래. 혼을 내려면 아까 처음에 같이 했어야지.
“누나 거는 함부로 손대지 말란 말도 함께 기억해주면 좋겠는데.”
작게 푸념조로 흘린 말이었다. 그런데.
“쟤는 누나 거 아닌데? 아버지 거잖아?”
이게 진짜.
“포르투나는 내 거야. 아버지가 내게 주셨어. 그리고 내 친구야.”
모든 게 다 네 거인 너는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뒷말을 삼키고 나는 치마에 묻은 풀을 손으로 탁탁 턴 뒤 포르투나에게 다가갔다. 포르투나는 눈이 마주치자 자연스럽게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예뻐하라는 뜻이다. 쓰다듬고 칭찬하라고. 난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포르투나의 눈 밑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옆에서 긴 얼굴을 쓰다듬었다. 말도 애교를 부릴 줄 안다. 비록 털은 까슬까슬했지만 커다랗고 아름다운 생명체가 얼굴을 부비는 건 아주 뿌듯해진다. 그런데 가만히 보고 있던 동생이 손가락을 튕기면서 주의를 끌더니, 이내 손짓 몇 번으로 포르투나를 바닥에 엎드리게 했다. 헤헹. 아이는 콧소리 섞인 웃음까지 흘리며 으쓱해하더니 말의 등 위에 올라 고삐를 잡았다.
“뭐해. 어서 타.”
“…설마 아까도 이러고서 타고 온 거야?”
그러고 보면 열 살 남짓한 어린 소년이 타기에는 말 등 위치가 꽤 높긴 하다. 그렇지만 저 잔머리는 누구를 닮은 건지. 나는 짧게 한숨을 쉬고 동생이 한 것처럼 손짓으로 포르투나를 일으켰다. 말은 튼튼한 동물이지만 체중과 비례했을 때 인간처럼 허리힘이 강하지는 않다. 아무리 아이와 체구 작은 여자라지만 둘을 합치면 건장한 어른 남자 한 명을 지고 일어서는 것과 같은 부담이 될 테니까. 나는 포르투나가 일어서서 자세를 가다듬는 걸 확인하고 단숨에 그 위로 올랐다. 안장은 어쩐 일인지 우리 둘이 함께 써도 될 만큼 길었다.
“누나, 날 꽉 잡아. 바람보다 더 빠르게 달릴 거니까.”
아주 자신만만한 꼬마 기수였다. 하지만 손을 흔들겠답시고 고삐를 한 손으로 잡고 둘이나 탔는데 속력까지 내겠다는 어린애를 무슨 수로 믿으라고. 나는 동생을 뒤에서 껴안는 것처럼 두 팔을 뻗어 넓게 고삐를 잡았다.
“내가 할게. 포르투나는 내 말이니까. 넌 얌전히 타 있기만 해. 그런데 어떻게 가야 하는지 제대로 기억하고 있어?”
히히힝.
순간 포르투나가 입을 크게 벌리고 기뻐 들뜬 목소리로 길게 울었다. 마치 조슬랭 대신 화답하듯이. 내가 포르투나에게 네가 길을 기억하는 거냐고 물어보려는 찰나. 아름다운 밤색 말은 검은 갈기를 휘날리며 경쾌하게 초원을 달려 나갔다.
말 위에서도 달콤한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앙상하니 바짝 말랐던 초목에는 싱싱한 물기가 오르고 맑은 초록빛 잎사귀는 우단보다 더 부드러워 보였다. 겨우내 흐르는 물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실개천에는 다시 물고기가 파닥이며 수면 위로 튀어 올랐다. 그 물줄기를 따라 큰 강으로 나가니 예쁜 때때옷을 입은 물새 부모가 아기들에게 첫 헤엄을 가르치고 있었다. 화사한 봄꽃이 보이면 동생은 방울 굴러가는 소리처럼 낭랑히 웃으며 탄성을 질렀다. 그 때마다 그 아이의 갈색 머리카락은 햇빛을 받아 그 위에 살며시 금가루를 뿌린 것처럼 반짝였다. 어느새 내 머리카락을 감싸던 베일이 사라졌다. 나는 어머니를 닮은 검고 긴 머리카락을 바람에 아무렇게나 흩날리며 말을 달리고 있었다. 승마를 하기 전에는 머리를 꼭 땋으라고 어머니가 그러셨는데. 하지만 이렇게 개운하고 즐거운 건 처음인 거 같다.
나는 웃고 있었다. 내 시선의 끝에는 나만큼이나 환히 웃으며 우리 남매를 기다리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계셨다.
- ……폐하! ……국왕폐하!
이상하게도 정신이 또렷했다. 깨어있던 시간보다 정신을 잃고 까무러친 시간이 훨씬 길었던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래서 자연히 알게 되었다. 지금이 내게 이 세상에서 허락된 마지막 시간이라는 걸. 내일 해가 떠오를 때 이 아키텐에는 더 이상 내가 없을 거라는 걸. 내 딸과 남편, 두 동생들, 그리고 내게 맡겨진 모든 것을 두고서 먼 길을 떠나야 한다는 걸. 긴 꿈에서 깨어남과 동시에 전신을 괴롭히는 통증에 섞여 눈물 한 방울이 눈시울에 맺혔다. 그래. 데리러 왔구나. 와줬구나. 네가. 나를 위해서.
“국왕폐하, 데비입니다. 폐하의 종이 왔습니다. 절 알아보시겠습니까?”
대주교는 이미 울고 있었다. 나는 눈을 느릿하게 닫았다 뜨며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대주교는 장갑을 낀 손으로 내 손목을 들어 내 위에 올려둔 성서에 손을 얹게 했다. 손목 근처가 쓰라렸다. 종아리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이 또 나쁜 피를 뽑았던 걸까. 나는 피부가 축축해지자 내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성서를 적시고 있으리라 짐작했다. 폐하…! 누군가가 나를 부르며 성미 급한 울음을 터트리고 그 자리에 무너졌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 이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창 너머에서 방 안까지 길게 뻗은, 시리도록 차가운 겨울 햇살만이 내가 뚜렷하게 분간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폐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부디 마지막 고해를…….”
마지막이라.
…오라드. 내 아가야.
대주교의 울음 섞인 목소리에 나는 힘겹게 입술을 달싹였다. 이미 죽음이 찾아오기 시작한 몸은 혀를 굴리는 것조차 녹이 슨 철문을 움직이는 것만큼이나 버거웠고 목에서는 음성 대신 공기가 든 입김 소리만 새어나왔다. 알아볼 수 없는 누군가가 내 입에 숟가락으로 물을 흘려 넣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못한 물은 그대로 뺨을 적셨다. 나는 결국 몸을 떨며 재채기를 했다. 목이 갈가리 찢어진 양 홧홧하고 쓰라렸지만 그건 내가 마지막 말을 남기는 대가일 뿐이었다. 게다가 내 부탁을 들어줄 사람은 신이 아니었다.
“……길….”
길패트릭. 당신은 나를 따라 오지 말아요. 우리가 그렇게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잖아. 나 대신 아주 오래오래 살아줘요. 나중에 다시 만나도 내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그 때 다시 만나면 우리 딸이 얼마나 잘 컸는지,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또 어떤 치세를 만들었는지 내게 들려줘요. 분명 내가 만들고 싶었던 세상보다 더 훌륭한 세상일 테니까요.
“오라드를……, 당신과……, 내……. 소중한……, 보물을…….”
사랑하는 내 아가. 엄마를 잊지 마. 네게 이름을 준 삼촌을 잊지 마. 아키텐 국왕 파트리샤와 길패트릭의 외동딸. 아키텐의 위대한 초대 국왕 기욤 1세와 그 왕비인 프랑스의 공주 콩스탕스 드 카페의 장손. 푸아티에 왕가와 카페 왕가의 자손. 옛 서프랑크 강역의 주인이 될 자. 하늘이 허락한 내 단 하나뿐인 아이야. 부디 네가 누구인지를 잊지 말렴.
“부디……. 그 아이를…. 지켜…….”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통증이 사라졌다. 마치 전신에 갖춰 입은 두꺼운 철갑이 서서히 녹아내리듯 몸이 점점 홀가분해졌다. 그 때 멀리서 커다란 날개가 펄럭이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찾아보기도 전에 이제껏 본 적 없던 밝은 빛이 호수에 일던 파문처럼 서서히 번지며 온 몸을 감쌌다. 더는 춥지 않았다. 뜨겁지 않았다. 아프지도 않았다. 처음 날개소리가 들렸던 거리만큼 먼 거리에서 아련하게 통곡 소리가 울렸다.
나는 검은 반점과 상처가 사라진 하얀 발을 내디뎠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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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보고 싶어요……. 왜 한 번도 절 만나러 오지 않으셨어요…? 왜……?"
1127년 1월 27일. 아키텐 3대 국왕 파트리샤 흑사병으로 승하하다. 향년 30세. (생일: 1096년 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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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 크리스마스…를 말하고 싶었는데. 시간 초과니까. 미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D
++) 여전히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는 연대기지만, 이 이야기가 역사였다면 사람들은 조슬랭이 성소수자였단 걸 정적들이 퍼트린 루머로 인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왕비와 실질적인 결혼 기간은 2년 남짓하고 정무 파업한 왕도 아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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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솔직히…… 오라드의 치세를 쓸 자신이 없습니다………… _(.ㅁ. _ )_ (널브러짐)
+)여기까지가 '연대기 쓸 생각 없이 캡쳐했던 부분'입니다.
++) 앗 맞다. 게임에서는 파트리샤가 림프절 페스트에 감염된 채로 즉위했는데… 아시다시피 림프절 페스트는 발병 후 사망에 걸리는 시간이 매우 짧으므로…… 제 연대기는 조각글과 함께 올리기 때문에 두루뭉술하게 처리했습니다. 마침 파트리샤가 아팠다가 페스트가 겹쳐서 사망했다거나…
아이 입장에서의 이야기 묘사가 힘들겠지만, 이야기가 그래도 엄청 재미있을거 같아요!
허나, 별 이변이 없다면 성인시점에서 다음 화가 시작해도 괜찮을거 같네요.
항상 재미있게 잘 보고 있습니다.
갑분 흑사병이라니; 흑사병이 너무 빨리 온거 같은데 몇년도죠..?
쓰는 거야 아가든 노인이든 상관은 없는데… 저 남매 죽는 걸 쓰면서 세상 마상…… ㅇ<-< 인데 오라드는 진짜 처절했거든요. 과연 오라드 이야기를 쓰면서 내 멘탈은 무사할까…… 연대기 쓰기 전에는 '오 진행 진짜 드라마틱하다 연대기 써도 좋겠다' 싶었는데 막상 쓰니까……. 그래도 써보고 싶긴 합니다. 소재는 좋아요. 안타까워서 그렇지……
게임은 1093년에 시작해서 페스트 터진 시점이 1125년이었을 거예요. (05편에서 몽골 초원지대에서 페스트 터짐) 제가 노트북으로 게임을 돌리다보니 자체적 최적화를 하려고 별 생각 없이 "지연된 역동적"으로 설정해뒀는데 그 탓에 2대만에 부계가 절단나버렸습니다…… ㅇ<-<
+)아, 참. 오라드가 만 6세라 소통에는 별 문제가 없겠지만 다음 화자를 4대 주인공으로 해야 할지 26세인 아빠로 해야할지는 아직 안 정했긴 합니다.
+정리하자면…… 1대 기욤은 바르셀로나 공작령 명분을 써보지 못하고 사망했고, 2대 조슬랭은 오트브르타뉴 명분을 써보기 전에 사망. 3대 파트리샤 38일만에 사망.
7편부터 이 연대기를 쓴 계기이자 제 크킹 최애 주인공 4대 오라드의 치세가 시작됩니다. 멘탈이 버틸까 자신은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