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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 |
발랄하고 청신한 감수성과 능란한 화법 |
약력 : |
1945년 서울 출생 1963년 서울고등학교 3학년 때, 단편 "벽구멍으로"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1967년 단편 "2 1/2"로 <사상계> 신인문학상 수상 1972년 연세대 영문학과 졸업 1973년 "타인의 방" "처세술 개론"으로 현대문학상 신인상 수상 1982년 "깊고 푸른 밤"으로 제 6회 이상문학상 수상 1997년~2000년 <한국일보>에 소설 <상도> 연재 1997년~현재 가톨릭대학교 인문학부 국어국문학 전공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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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최인호가 경아에게 보내는 편지]
경아에게.
난 요즘도 가끔씩 원고지에 당신 이름을 크게 써본다. 지금 살아있으면 환갑에 가까운 나이이건만 당신은 내게 여전히 스물 여섯이다. 만약 요즘 젊은 사람이 당신을 부른다고 해도, 당신은 누님이 아니라 그냥 경아다. 일찍 죽었기 때문에 제임스 딘처럼 영원한, 내 젊은 날의 분신과도 같은 경아….
30여년 전 당신 이야기를 쓰려 했을 때 난 목표가 있었다. ‘죄와 벌’의 쏘냐, ‘부활’의 카추샤, 토마스 하디 소설의 테스처럼 주인공 이름이 기억 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누구나의 가슴 속에 한번쯤 깃들였다 스러지는 요정 같은 여인을 그리고 싶었다. 살아있는 여인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러면서 내가 살아가는 서울을 그리고 싶었다.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정치적으로 암울한 유신 독재시대에, 밤 11시30분이면 통행금지를 피하려 광화문에서 신촌으로 택시합승을 해야 하는 풍속을 그리고 싶었다. 도시 산업화가 막 시작된 때에 청바지를 입은 통기타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술 취한 아가씨가 이리저리 비틀대던 무교동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경아. 당신은 아주 작은 여자였다. 팔등신도 아닌, 책갈피에 꽂힌 덕수궁의 가을 낙엽처럼 영원히 보존된 여자였다. 당신은 한국의 한글세대 1기생이자 전업 작가인 내가 창조한 여인이 아니었다. 누구나 한번쯤 주머니의 손수건처럼 가지고 싶은 여인, 광화문 사거리에서 나눠준 전단지처럼 한번 알았다가 인사도 없이 헤어지는, 성인동화 속 아련한 여인이 바로 당신, 경아였다.
그런데 누가 당신을 호스티스라 부르고, ‘별들의 고향’을 호스티스 문학이라 부르는가. 비(非)체제주의자였던 당신과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퇴폐와 상업주의로 몰아붙이는 건가. 왜 당신이 호스티스인가. 그 시절 빨간 제복을 입고 술을 나르는 맥주집 아가씨일 뿐, 술은 따르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왜 예쁜 당신이, 26세 꽃 다운 나이에 죽은 당신이 호스티스여야 하는가. 오히려 당시 반(反)체제주의를 외치며 당신을 호스티스라 매도한 사람들이 요즘 더 퇴폐적으로 변한 현실에 나는 분노한다.
경아. 이런 상상을 해본다. 당신이 지금 살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도시와 산업이 죽인, 여성을 성(性) 상품화한 남자의 이기심이 죽인, 당신이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있었을까. 아니다. 당신은 살았어도 또 자살했을 것이다.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기에. 그래서 더 서글픈 내 젊은 날의 분신,
경아. 잘 가시오
우리시대 주인공] "별들의 고향" 오경아, 1974년
여리고 꿈많던 그녀의 육체는 욕망과 배신에 스러지고 차디찬 도시의 불빛은 오늘도 취기에 젖어있구나
돈과 향수와 정액 냄새 풀풀 나는 이 시대에, 안녕하십니까.
저는 김문오라는 사람입니다. 1940년생이니까 올해 벌써 예순 넷이네요. 미대 교수로 재직하다 몇 해 전 정년 퇴직 한, 반백의 노인입니다. 불쑥 얘기를 꺼내기는 뭣 하지만 제가 알던 한 여인에 대해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31년 전 스물 여섯 꽃 다운 나이에 죽은, 한때는 미친 듯이 보고 싶었으나 결국은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여인, 경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경아와 동거한 것은 1969년 가을부터 70년 봄까지였습니다. 제대를 하고 막 서울로 올라온 그때는 조간신문 한부에 10원, 목도장 하나에 30원, 그리고 하루 여관비가 500원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맥주집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맥주집은 낮에는 커피를 팔고, 밤에는 약간의 아가씨들을 모아 술을 파는 그런 곳이었죠. 혼자 술 마시기가 멋적어서 술을 날라주는 ‘당번 아가씨’(그때는 그렇게 불렀습니다)를 불러달라고 해서 만난 아가씨가 바로 경아였습니다.
지금도 그녀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스물 한 살 나이에 키는 155㎝, 몸무게는 44㎏ 정도 될까요. 어깨 뒤에는 남보다 큰 점이 하나 있었고, 팔뚝에는 조그마한 청색 잉크로 그려진 하트 문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휘파람을 아주 잘 불었죠. 시간만 나면 맥주병 주둥이에 입김을 세게 내뿜어 ‘부_웅’ 하는 소리를 내곤 했습니다. 휘파람이기보다는 먼 항구의 뱃고동 소리였습니다.
그런 그녀가 73년 겨울 죽은 겁니다.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서울 미아리 언덕길 눈 쌓인 골목에서 숨진 채 발견됐죠. 어렸을 적 줄곧 모범생이었고, 대학에 다니며 밝고 건강한 삶을 꿈 꾸던 그녀가 말입니다. “제가 결혼하면 가계부도 쓰고, 레이스 달린 행주치마도 입고, 총채(먼지털이)로 구석구석 방의 먼지도 털면서, 여성잡지 부록에 실린 수백 가지 요리를 하며 살고 싶다”던 그녀였습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photo.hankooki.com%2Fgisaphoto%2F20040428%2Fgoldriver25200404281852311ohka.jpg) |
영화속 경아(안인숙) |
오경아 |
1947년 3월8일 오전7시 강원도 어느 시골에서 태어났다.
단신 월남한 아버지는 기차역 인부로 일했고, 양조장 집 셋째 딸인 어머니와 결혼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 영등포 근처의 셋방으로 이사 와, 잘 살지는 못했지만 단란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고3때 아버지가 고혈압으로 쓰러지면서 불행이 찾아왔다. 어렵게 진학했던 대학(성악과)도 그만뒀다.
1968년 처음 취직한 무역회사에서 여섯살 위인 강영석을 만나 첫 사랑을 나눴다. 그러나 그는 떠나버렸고 경아는 낙태수술로 석녀(石女)가 됐다.
69년 17세 연상인 홀아비 이만준을 만나 잠시 결혼 단꿈을 맛보기도 했으나, 자신의 과거와 이만준의 결벽증으로 또 홀로 됐다. 눈만 뜨면 술을 마셨고 핸드백에는 언제나 신경안정제가 들어있었다.
72년 12월31일 추하고 비대해진 술집 작부의 모습으로 마지막 남자 김문오와 미아리 단칸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그리고 1년 후 겨울,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눈 쌓인 골목길에서 숨졌다. 그녀의 나이 스물 여섯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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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아는 제가 첫 남자가 아니었습니다. 저를 만나기 2년 전, 무역회사에서 주판알을 튕기며 경리 일을 보던 그녀는 동료 강영석에게서 순결을 빼앗겼습니다. 사랑을 가장한 남자의 욕정이었죠. 그녀는 임신을 했고 중절수술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강영석은 물론 꽁무니를 뺐죠. 이후 만난 이만준
이동혁 모두 같은 놈들이었습니다. 저까지도. 그녀를 끝까지 지켜준 것은 결국 몇 잔의 쓰디쓴 술밖에 없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경아에게 술을 먹였고, 차디찬 눈밭 위에서 죽게 만들었습니까. “별은 멀리 있으니까 예쁜 것이고, 내 고향은 별처럼 멀다”던 그녀가 술에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게 만든 것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첫 사랑 잘못 만난 탓이라고요? 모진 놈까지 만나 인생 망친 것이라고요?
고백하겠습니다. 경아를 죽인 건 바로 접니다. 당시 살길 막막한 내 자신의 초조와 절망감과 억눌린 성욕을, 길거리에서 만난 만만하고 순진한 그녀에게 배설한 제가 죽였습니다. 아니, 술에 취해 무책임하게 도심 골목 골목마다 방뇨한 우리 사내들 모두가 죽였습니다. 이동혁이 제게 들려줬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휘황찬란한 도시의 네온사인과, 그 밑을 불나방처럼 돌아다니며 하녀 같은 요정을 찾는 모든 사내들이 공범입니다.
세상은 너무 많이 변했습니다. 청바지와 통기타, 생맥주는 힙합과 MP3와 건강음료로 바뀌었습니다. 더 이상 그 놈의 유신이라는 것에 숨 졸이며 살지 않아도 됩니다. 한 TV에서 ‘긴급조치 4호 설명회’와 ‘유쾌한 청백전’을 잇따라 시청하는, 우스꽝스러운 여가를 보내지 않아도 됩니다. 가수 한대수가 더 이상 ‘물 좀 주소’라고 소리칠 필요가 없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이만준이 경아에게 준 ‘크리스찬 디오르’는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고, 그래서 여자아이들은 30년 전보다 더 영악해지고 대담하게 그 명품 핸드백을 사기위해 서울 강남의 지하 룸살롱에서 남자들과 술과 인생을 마시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만준은 새로 만난 애인의 과거를 의심하고, 강영석과 이동혁은 새 여자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경아 역시 어디선가 술에 취한 채 밤하늘의 별을 세고 있을 겁니다.
☆우원호의 문학카페:http://cafe.daum.net/woowonh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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