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에... 옛친구 호중(浩中)이의 단상(斷想)
(이발소에서의 글과 모습을 보고...)

호중이를 생각하자면.. 호중이 자신은 전혀 눈치도 못 챈 나만의 꿍꿍이짓을 한 때가 있었다고
먼저 말해야 될 것 같다. 말하자면 호중이 네 모습이 시인(詩人)을 닮았다는 환상이었지.
누구나 십대 사춘기 시절에는 소월의 시를 애송하며 밤새도록 그 서정에 젖어들던 때였으니까
내 자신은 소월의 모습이 몹시도 보고팠지만 사진 한장 남기지 못하고 검은 아편 덩어리를
삼키고 요절했다는 글만 남아 있을 뿐...소월(素月)의 모습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고,
오직 하나 실루엣으로 처리된 가련한 시인의 초상만이
왠지 더 마음을 측은하게 했었지.(현재에도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것뿐임)
내 머릿속에는 내 나름대로 이목구비를 덧그리며 시대를 잘못 만난 시인이지만 그럴듯하게
순수하고 머리좋고 잘생긴 한국남자로서 형상화 하고 있을 때쯤에...
바로 호중이 네가 내 눈에 띈 거야..
쟤는 아마 커서..제2의 소월이 될 거야..그런 예감 말이야 ㅎㅎㅎ

고교3년생 / 졸업앨범에서; 김 목사 / 이발소에서
기왕에 호중이 얘기니까 조금 더 옛날 기억을 떠올리자면..
고3때 같은 반이었고..같은 문과(文科) 수업을 받았는데..호중이는 법대를 지망하고
특히 어학에 능해서 영어는 물론 독어 회화도 어찌 잘하던지..기가 찰 정도였고
하여튼 국어 한자 일반 상식도 대단해서 괴짜 질문으로 웃기고 막간에 몰래 보고온 영화 얘기
영화배우 데보라카를 좋아해서 그녀의 이름 스펠,액센트 까지 정확히 찍어대며 책벌레와
다른 면모로 유쾌한 화술로 인기도 좋았었지.
3학년 여름방학에 이미 S대법대 입학 실력을 충분히 갖췄다고 장담하더니만..
2학기 들어가자..느닷없이 공대 건축공학과를 지망한다고...두꺼운 수학2 책을 펼치고
미분 적분 삼각함수에 말만 들어도 골치 아픈 과목을 파고 앉았으니...
저런...장차 제2의 김소월이 이공계로 간다구 ?! 너무나 놀랬고..
그동안 쌓아온 문과 실력이 아까워서 몇번이나 네 심중을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물론 알아주는 수재였으니까..당당히 네 뜻대로 합격했고..(솔개는 낙방하공 참고)

이 가을에 까치밥 하나..남기는 여유.
대학 등교길에 이따금 청량리 이문동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만나면
수업 빼먹고 막걸리 집에서 인생론인지..하여튼 너의 얘기를 많이 들었지...
바둑은 내가 가르쳐줬는데...나중에 보니 나보다 고수가 되었구 술 담배도 잘하구..
담배는 이미 고교 때 너랑 무척 친했던 故 김청(金淸)이 한테 배웠을 거라는 심증이 드는데..
아깝게도 김청이는 그 어려운 CPA(공인회계사)시험 합격해서 좋은 직장에 다니디가 오래 전에
타계했다는 얘기도 하고 넘어가야겠지...물론 우리 동기들이 어림잡아 25명인가..별세했다네.
그리고
군대..직장 사회생활..남자들의 그런 세월이 엄청 흘렀구나..
호중이의 도미설은 벌써 알고 았었지만 그 후 단절의 시간이 너무 길었지 ..
몇몇 친구들이 모여 김호중 목사 님으로서의 근황을 알려 주었고..
이공계 출신의 수재가 미국 동부에서 목회 활동을 하신다니..
많은 친구들이 조금은 의아스럽게 생각되겠지만 말이야..
나는 이미 중학생일 때 그 예감을 했다는 것 아니겠니...ㅎㅎㅎ
김소월 시인의 마음을 닮은 목사 님으로 탄생...늦게나마 축하하고 싶네.
오늘 올린 이발소의 사진과 글은 말이야.. 가장 평범한 생활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림에서
생겨나는 행복이 가득한 방 안을 엿본 것 같구나
세월이 그렇게 흘렀어도 변함없는 너의 모습---환한 웃음하며 너그러움
평상적인 것에 진정한 삶의 뜻과 아름다움의 존재---
하느님과 진정한 언어의 대화자
내가 생각했던 제2의 소월을 만나서 기쁘기 한량없다.
이 가을 밤에.."진달래꽃" 노래를 띄우며.사랑하는 친구 호중에게
댓글 대신 몇자 적었네 원명이가.
첫댓글 척척 박사 시구만 .만병 통치 약일세(신례합니다).
부미씨,
"척척박사, 만병통치약"은 원명군한테 하시는 얘기일테니
나는 그저 "칭찬하시는 분위기만" 고맙게 받을게요.
그리고...
'신례'나 '실례'가 발음이 같으니, 뜻도 같겠지요? Really!
댓글로는 어찌 이 많은 사연을 다 올리겠수?
정현이, 짧은 댓글에 늘 기지(機智)가 번쩍여서 감탄을 하네.
글을 쓰면 퍽 잘 쓰실 것 같은데...
아아, 이 사람, 원명이!
따뜻한 위로의 글을 읽노라니 콧등이 시큰하군.
과분한 칭찬을 받으니 쑥스럽긴 한데, 자네야 말로 시인일세!
김소월, 데보라카, 술, 담배...
하! 아주 멀고 먼 옛 추억이야.
퍽 오랫동안 다른 모습으로 살아와서 그런지, 지금은 이 글 속에 나오는 김호중이 과연 나였던가 하고 신기한 느낌까지 드네.
바둑은 LA, Philadelphia, Washington DC, NY 등 여러 곳에서 우승하면서 70년대 초기에 제법 날렸지.
그래 맞아, 고3때 자네가 공책에 그려서 가르쳐준 것이 나의 바둑 첫걸음이었어.
근데 정작 스승이었던 자네의 은혜는 까맣게 잊고 지냈네. 이런 실례가 있나!
그러고보니 지난 15년은 바둑돌을 잡아볼 틈도 없었군.
내년 봄에 한국 가면 자네하고 술 담배야 같이 못하겠지만, 바둑은 한번 두어야겠네.
아아, 그리운 친구, 멋진 글을 올려서 많이 고마워.
실례가 맞는글. 척척박사는 호중씨한테 한 말이라구요. 만병통치도.........
과분한 칭찬이지만 고맙게 받을게요.
그리고 제가 시간 날 때마다 부미씨의 사진과 글을
여기 부고15에서 가져다가 부고USA에 부지런히 실을테니
마음에 드시는대로 수정하세요.
그런데 아무리 볼래도 내눈에는 않보이니 어쩐일인지? 하라는대로 하면 열리면 어듸를 눌러야하는지 몰라서 아직 못보았다구요. 마음에 드는것 마음대로 넣어도 되니까,마음놓고 하시오.
15 정청자 최원명 ( 솔개 ) 동기님 오랫만이군요.
최원명 & 김호중 동기 분들의 아름다운 글들을 읽으며, 글로 표현할 수 없는 흐믓함과 사랑이 교차 됌을 느낌니다.
BugoUSA 덕분에 동창분들의 좋은 글들을 접할 수 있음에 감사하지요. 두 분 다 수필가이며 시인이십니다.
최원명 동기님 이곳 BugoUSA 에서 종종 뵈옵기를…
10·11·15 20:31
15 임수자 정청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네가 했구나. 너도 시인.
원명(솔개)님이 올린 사진
호중님의
앳띠고 해맑은 얼굴 보니 저절로 웃음이
추억은 아름다운것!
10·11·15 21:07
부고필라에서 위 두 동문의 댓글을 옮겨 붙였습니다.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고
문득문득 살아 오르는 옛생각에 머물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요. 팍팍한 현실의 아픔 갈등마저 미화시켜주는
묘한 그리움을 닮은 감정에 사로잡힐 때가 있지요. 그런 느낌을 친구들과 공유하고 싶던 차에 이발소에서
머리 깎는 김 목사님의 모습이 어찌나 정겹던지... 또 3대를 이어가는 이태리계 이발사 표정에서도 삶의 경이와 지혜가
보이네요. 고마운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