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행복 전도사
백마강가에 선배 부부가 살고 있다. 공직생활을 마치고 농가를 사서 고쳐 사는 칠십대 부부다. 강물이 내려다 보이는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는 자리에서 선배부인이 이런 말을 했다.
“시골에 살다 보니까 힘들어하는 이웃이 있어요. 나이 육십까지 총각으로 살다가 캄보디아의 처녀와 결혼한 남자가 있어요. 먼 나라로 시집을 와 아이을 낳고 사는 캄보디아 여인이 불쌍한 생각이 들어요. 시골 사람들한테 소외 당하고 남편도 무시하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다가가서 마음을 열고 말도 걸어주고 아이를 봐주기도 했죠. 그렇게 하니까 너무 좋아하고 감사해 하더라구요. 그집 아이들을 우리 손자와 함께 데리고 수영장에 가기도 했어요. 나는 시골에서 작은 행복 전도사를 하기로 했어요.”
선배의 부인은 항상 명랑한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슬기로운 시골생활이었다. 그녀가 말을 계속했다.
“우리 부부가 나이를 먹어서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도와줄 사람을 찾다가 서울에 살던 동네 구석에 있는 작은 수리점 하나를 기억에서 떠올렸어요. 작은 뒷방이 딸려있는 어둠침침한 좁은 가게에서 나이 육십이 넘은 총각이 혼자 먹고 자면서 살고 있더라구요.
그 분에게 부여까지 출장 가서 일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죠. 할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 사람을 데리고 내려갔어요. 우리 부부와 같이 밥을 먹고 잠은 손님방에서 자게 했죠. 골방에서 혼자만 자던 사람이 좋았나 봐요. 다음에도 또 내려와서 일을 해주겠다면서 자기는 못하는 일이 없다고 그래요. 수도도 놔주고 처마 아래 작은 창고도 만들어줬어요.
그러면서 돈은 알아서 조금만 달라는 거예요. 비싸면 다시 안 쓸 게 아니냐는 거예요. 그 사람이 우리 집에서 일하는 게 괜찮았는지 나중에는 저보고 평생 머슴을 해드릴테니까 걱정하지 마시라고 하더라구요. 우리 부부가 그를 인정해 주고 감사해 하는 게 좋았던 것 같아요. 늙어서 외롭지 않으려면 주위에 사람이 있어야 해요. 그렇게 하려면 내가 다가가서 그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어야 해요.”
선배 부인의 말에 지혜가 담겨 있었다. 생활공간에서 자신의 따뜻한 마음을 주변의 이웃에 쏟을 수 있다면 더불어 내 마음도 따뜻함으로 채워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간단해 보이는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것 같다.
동해의 실버타운에 이년동안 있으면서 여러 이웃과 매일 대했었다. 나는 입주할 때 이웃 노인들에게 다가설 마음을 먹었다.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이 먼저 인사하기였다. 공동식당의 입구 근처의 식탁에서 밥을 먹는 노인은 매일 얼굴이 마주치기 마련이다. 그의 얼굴이 보일 때마다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때마다 그가 멋적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처음 보는 사람과 미소 짓고 인사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도 서먹해졌다. 계속 인사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나도 어정쩡해졌다. 한번은 손녀가 나를 찾아와서 탁구장에 있을 때였다. 그 노인이 지나가다가 손녀에게 다가와 탁구의 써브자세를 시범을 보이면서 가르쳤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 같았다. 그 다음에도 식당에 가서 그 노인을 볼 때 인사를 하면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내남없이 이웃에게 다가서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 같다.
식당의 내 옆 식탁에서 항상 혼자 밥을 먹는 영감이 있었다. 내 뒤에도 턱에 수염이 무성한 그런 노인이 있었다.
이년 동안 내가 밥을 먹을 때마다 옆의 식탁에 있는 노인에게 인사를 해도 고개를 푹 숙이고 밥만 먹을 뿐 반응이 없었다. 도대체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어느 날 복도에서 다른 사람과 얘기를 하고 있는데 옆 식탁의 무뚝뚝한 영감이 갑자기 중간에 끼어들어 말했다.
“변호사쥬? 내 일 말인데 거시기 괜찮겠쥬?”
밑도 끝도 없는 말이었다. 자기가 어떤 일이 있었다는 걸 내게 말해 준 적이 없었다. 그 영감의 정신세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렇게 이웃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고독한 상태로 지나는 노인들이 많은 것 같았다. 고독 속에서 사는 그들의 주위에는 항상 어둡고 찬 공기가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나 역시 이웃에게 다가서지 못했다. 오히려 누가 다가오면 밀어내는 성격이었다. 고치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예수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요약된다. 이웃사랑이다. 이웃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어디에도 있으니까. 미소 한번 짓고 상냥한 말 한마디로 세상의 온도가 올라가는데 왜 그렇게 힘이 드는지 모르겠다.
[출처] 작은 행복 전도사|작성자 소소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