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갯가
아침 기온이 제법 쌀쌀해진 시월 둘째 토요일이다. 설악산은 단풍이 물들고 첫얼음이 얼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간 흐리고 비가 잦았는데 이제 전형적인 가을 날씨를 보여 하늘은 높아지고 티 없는 옥색이다. 여기저기서 축제가 열린다고들 하지만 내 마음을 얻지 못한다. 나는 그곳으로 갈 여건이 못 되고 겨를도 없지만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라면 모시러 와도 손사래 저을 것이다.
주말이라도 여전히 학교로 향해 길을 나섰다. 평일은 아이들 가르치러 학교로 출근하고 주말이나 방학은 자연에서 한 수 배우려 등교하는 학생이 된다. 이때 내가 찾아가는 산과 들은 나의 배움터다. 산자락에 피어나던 가을 들꽃은 웬만큼 완상하였는지라 갯가 사정이 궁금했다. 아침나절 구산면 바닷가로 나가보려고 도시락을 챙겨 마산역 광장 모퉁이 농어촌버스 출발지로 나갔다.
구산 해안은 저도 연륙교와 원전 낚시터로 알려져 있다. 저도 연륙교는 관광 명소가 되다시피 했고 비치로드 산책길이 있다. 원전은 태공들이 바다낚시를 즐기는 곳이고 야트막한 산자락 벌바위 둘레 길이 조성되었다. 두 곳 다 주말이면 사람들이 더러 찾는 곳이라 내 체질에 맞지 않다. 난 인적 드문 갯가를 걸으려고 행선지를 난포로 정해 놓았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해안선이다.
난포(卵胞)는 구산(龜山)과 구복(龜伏) 땅이름에 연관된다. 거북은 바닷가에 사는 동물인지라 해안선이 거북 모습이라고 붙여졌다. 그 가운데서도 난포는 거북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다. 마을 뒤 마산가톨릭교육관이 있는 산이 봉화산이다. 봉화산 산세가 바닷가로 내려가면서 거북의 모습이 되어 목을 빼어 바다에 이른다. 반동삼거리에서 원전으로 가는 길목의 작은 포구가 난포리다.
마산 어시장과 댓거리를 두른 농어촌버스는 밤밭고개를 넘어 현동 신도시를 지났다. 덕동 공영버스 차고지에서 면소재지 수정을 거쳐 백령고개를 넘어 반동삼거리에서 원전으로 가는 길목 난포에서 내렸다. 남은 승객은 종점 원전으로 가는 낚시꾼 여남은 명이었다. 나는 여러 차례 다녀본 난포리 지형지물에 익숙했다. 마을 앞 수산물 창고를 지나 인적이 드문 해안 탐방로로 갔다.
사계절 중 시야가 가장 좋은 때다. 미세먼지와 대기 습도가 적은지라 탁 트인 곳은 멀리까지 바라볼 수 있었다. 내가 이즈음 갯가로 나간 이유 가운데 하나는 맑은 하늘 아래 눈이 시리도록 푸르디푸른 바다를 보기 위해서였다. 구산 일대는 다도해에 점점이 뜬 섬들로 수평선은 볼 수 없어도 바다와 섬과 하늘을 같이 볼 수 있는 구역이다. 아침 이른 시각에 날씨는 약간 흐림이었다.
해안은 지난주 우리나라 남녘으로 태풍이 할퀴고 간 흔적이 역력했다. 그동안 계절을 달리해 옥계에서 난포로, 난포에서 옥계로 인적 드문 해안선을 답사한 적이 여러 차례다. 이번처럼 태풍이 스친 직후 들려보긴 처음이었다. 바다 위 떠돌던 쓰레기들이 태풍이 몰아치니 때는 이때다 싶어 해안으로 밀려와 겹겹이 쌓여 있었다. 가보진 안 해도 저만치 유무인도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거북목이랄까 거북머리 해안선으로 나가니 전에 보지 못한 낚시꾼이 몇 있었다. 태공들에겐 태풍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다 밑 사정이 예전과 달라졌지 싶을 테다. 저 멀리 아스라한 거가대교 연륙 구간 다도해를 바라보면서 배낭에 넣어간 곡차를 비웠다. 이왕 앞으로 더 이상 전망이 좋을 갯바위를 만날 수 없기에 느긋하게 도시락까지 비웠다. 한 시간여 바다와 하늘을 응시했다.
이른 시간 점심요기를 해결하고 봉화산 비탈을 올라 옥계로 가는 임도와 접선했다. 그 사이 내가 뱀이나 멧돼지보다 더 무서워하는 개옻나무 잎사귀들도 스쳤다. 옥계에 이르니 방파제에는 낚시꾼들이 여럿 서 있었다. 포구에 중년 부부가 그물을 맞잡고 손질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어선에서 한 할머니가 찬거리로 꺼내는 활어가 있었다. 어린 전갱이 녀석인데 날 보고 그냥 안겨주었다. 18.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