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꼭 가봐야할 사찰] 40 금빛 하늘 물고기가 사는 부산 범어사
“모든 부처님께서 다 이 문에 의지해 성불할 수 있었다”
금정총림 범어사 조계문(曹溪門). 일주문 가운데 유일의 보물이다. 조선 숙종 44년(1718) 기존의 문을 고쳐 4개의 큰 돌기둥으로 장엄하여 교리적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인왕경〉에 “모든 부처님께서는 다 이 문(門)에 의지하여 성불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산을 의지한 사찰은 또 하나의 산이 되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중생의 마음을 부처님의 마음으로 되돌려주고 있다. 산속의 절을 찾아가는 일은 바로 자신을 찾는 수행의 과정으로 새해를 맞아 불보살님을 찾아뵙는 일은 불자들의 덕목이 됐다.
범어사에는 남을 돕는 일을 수행으로 발원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가난하고 병든 사람에게 나누는 보시행(布施行)을 실천한 낭백(朗伯)스님이 계셨다. 이유원의 <임하필기>에 “낭백스님이 이르기를, ‘홍문(紅門) 밖에서 가마를 내려 절에 들어오는 자가 절의 노역(勞役)을 없애 줄 것이다’하고는 입적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경상감사 조인영(趙寅永, 1782~1850)이 절문 밖 하마비(下馬碑) 앞에서 가마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 사찰의 가혹한 노역 등 여러 가지 폐단을 모두 덜어 주었으니, 과연 글로 남긴 얘기가 들어맞은 셈”이라고 했다. 걸핏하면 승용차로 대웅전 앞마당까지 들어가는 무례를 범하지 말고 조인영의 하심(下心)을 본받아야 할 것 같다.
➲ 일주문 가운데 유일한 보물 조계문
먼저 범어사의 간판 얼굴인 조계문은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된 일주문으로 조선 숙종 44년(1718)에 명흡스님이 기존의 문을 고쳐 4개의 큰 돌기둥으로 장엄하여 교리적 의미를 나타냈다. <어제비장전>에서 “성인의 문을 묘한 열쇠로 열고자 하나 원래 자물쇠로 잠근 일이 없다”고 했으며, <화엄경>에 “차별이 있는 도리가 모두 깨달음의 바다로 돌아온다”고 했다. 이렇듯 일주문은 성인의 묘한 문으로 차별이 사라지고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걸음이 된다.
조계문은 “모든 것이 인연하여 생기므로 실체가 없다는 공문(空門), 모든 존재의 다름의 가치를 인정하여 분별을 떠난 무상문(無相門),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을 알아 욕심이 없는 무원문(無願門)” 등 삼해탈문(三解脫門)으로 만들어졌다. <대지도론>에 “이 삼해탈문에 들어가면 불법(佛法)의 뜻을 알아 어긋남이 없어 일체에 걸림이 없다”고 했다. 또한 큰 돌기둥으로 세운 것은 <잡비유경>에 사리불이 월자비구에게 말하길 “비유하면 돌기둥을 땅속 깊이 들어가도록 박아놓으면,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와도 흔들리게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비구가 심법(心法)으로 마음을 잘 닦아 마치고는 삼독심(三毒心)을 여의어서 법을 얻으면 그 비구는 스스로 ‘나의 생은 이미 다했고, 범행(梵行)이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다 마쳐 후세에는 몸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안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이 조계문에 걸린 큼직한 3개의 편액 ‘禪刹大本山(선찰대본산)’, ‘金井山梵魚寺(금정산 범어사)’, ‘曹溪門(조계문)’ 편액은 범어사의 선풍(禪風)을 느끼게 하고 창건 설화를 알려준다. 조계문에 들어서면 금빛 우물 속을 마음껏 헤엄치는 물고기가 나 자신임을 깨닫게 한다. <인왕경>에 “모든 부처님께서는 다 이 문(門)에 의지하여 성불할 수 있었다”고 했다.
조계문을 지나면 바로 인간을 보살피는 사천왕이 머무는 천왕문과 분별하는 마음으로는 들어올 수 없다는 불이문이 나온다. 불이문에는 근세 선지식 동산선사께서 쓴 멋진 주련이 걸려 있다. “부처님의 광채는 밝아 만고에 길이 빛나니(神光不眛 萬古輝猷) 이 문안에 들어서면 안다는 생각을 버려라(入此門內 莫存知解)” 안다는 생각을 버리고 보제루를 바라보면 지금은 볼 수 없는 아름다운 빈도라발라타사 존자를 그린 벽화가 있었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은 보리수 가지에 걸려 바느질 끝나기를 기다리고 그 아래 둥근 멍석을 깔고 푸른 법의를 깁고 있는 존자의 고귀한 모습은 정말 멋졌다.
범어사 대웅전. 조선 중기 목조건축물로 내부의 화려한 불단과 정교하고 섬세한 보개가 목조공예의 뛰어남을 보여주고 있다.
➲ 도리천 궁전 보는 듯…당당한 대웅전
넓은 마당에 오르면 통일신라 흥덕왕 때 세운 3층 불탑과 장명등이 있고, 대웅전을 오르는 가파른 계단 삼도보계(三道寶階)가 있다. 삼도보계 입구에는 해학적인 법수석이 있고 계단을 오르면 도리천의 궁전을 보는 듯 당당한 대웅전을 마주하게 된다.
1658년에 중수한 대웅전은 맞배지붕에 다포 양식의 조선 중기 목조 건축물로 계단의 소맷돌에는 연꽃과 국화꽃이 아름답게 피어났다. 내부에는 화려한 불단과 정교하고 섬세한 보개가 조선시대 목조공예의 뛰어남을 보여주고 있다. 1661년에 조성된 수기삼존불인 제화갈라보살, 석가모니불, 미륵보살은 비례가 알맞고 균형 잡힌 몸매는 당당하고 풍만한 양감 속에 미소 띤 얼굴은 자비롭고 우아한 모습이다.
동쪽 벽화는 정유리광세계의 약사여래가 약합을 손 위에 얹었고 좌우에 밤낮으로 아픈 중생을 보살피는 일광ㆍ월광보살은 연꽃을 들었고 보관에는 해와 달이 표현되었다. 서쪽 벽화는 극락세계의 아미타불과 좌우에 정병을 옆에 둔 백의관음보살과 다라니를 얹은 연화가지를 양손에 쥔 대세지보살이 있다. 대웅전 내부벽화는 온화할 뿐만 아니라 채색이 아름답고 화려한 보관과 영락으로 중생의 마음을 한 번에 사로잡는다.
한 지붕 아래 나란히 있는 팔상전 독성전 나한전. 독성전 문틀은 하나의 통재를 반원형으로 구부려 만든 독특한 모습이다.
성보박물관에 있는 국보 '삼국유사'. 범어사 창건 기록을 담고 있으며 현존 삼국유사 가운데 가장 빠른 14세기 말 인출본이다.
➲ 한 지붕 세 전각…팔상전 독성전 나한전
한편 범어사에는 한 지붕 밑 3가족이 모여 사는 듯 팔상전, 독성전, 나한전이 나란히 있다. 특히 독성전은 문틀을 하나의 통재를 사용해서 반원형으로 구부려 만든 독특한 모습이다. 창방 사이의 삼각형 벽체 부분에는 통판(通板)으로 모란넝쿨을 새겼으며, 통판 아래에는 치마와 바지를 입은 부부내외가 모란넝쿨을 손으로 받들고 있는 모습도 이채롭다. 창호 또한 팔상전과 나한전이 교살창문인데 비해 독성전은 꽃살창문으로 장식되어 아름답다.
이뿐만 아니라 범어사 성보박물관에 있는 국보 <삼국유사>는 범어사 창건 기록 등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현존하는 삼국유사 가운데 가장 빠른 14세기 말 인출본이다. 또한 1863년에 그린 원효성사와 1767년에 그린 의상대사의 진영도 비교해 보면 재미있다. 걸림 없는 생을 산 원효는 신발을 신은 채 의자에 약간 삐딱하게 앉아 주장자를 짚고 염주를 굴리는 모습이라 저잣거리에서 부르면 곧 나갈 자세이고, 이와는 달리 의상대사는 지성인의 완벽한 외모, 올곧은 수행의 표본처럼 족좌대 위에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두고 꼿꼿하게 결가부좌한 채 오른손에 불자를 잡고 의자에 앉았다. 화엄을 질문하면 바로 대답해드릴 표정이라 원효와 대조를 이룬다. 이렇듯 부산 범어사는 타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볼거리를 교리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불교신문370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