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구 안산에 안전하게 맨발 걷기를 즐길 수 있는 황톳길이 개장했다. ⓒ추미양
“산책로가 촉촉하고 말랑말랑해요. 맨발로 걸으니 발바닥이 시원합니다.”
“등산로를 걸을 때는 위험한 것들 살피느라 고개가 아팠는데, 여기는 안전해서 좋네요”
신발 주머니 매고 걷는 '맨발의 청춘'을 서대문구 안산에서 만났다. 발가락 사이사이 황토가 들어가고 발바닥은 누렇게 물들었다.
지난 8월 17일 목요일 11시, 서대문구 안산의 산복도로에서 황톳길 개장식이 열렸다. 야외지만 나무 그늘이 드리워지고 대형 선풍기 4대가 돌아가 더위를 식혀줬다. 서대문구청은 맨발 걷기의 필수품인 신발주머니와 발 닦을 수건을 참석자에게 제공했다. 평일 낮인데도 소식을 듣고 찾아온 200여 명의 시민과 구청 직원, 시·구의원이 자리를 꽉 메웠다.
황톳길 시작 지점에서 개최된 안산 황톳길 개장 행사에 많은 시민들이 참석했다. ⓒ추미양
서대문구청 푸른도시과장은 “맨발 걷기 열풍이 일면서 황톳길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많았어요. 저희 직원들은 대전 계족산, 강남구 양재천길, 도봉구 발바닥 공원, 김포 에코힐링센터에 있는 황톳길을 견학했고, 전문가의 조언도 경청했습니다.”라며 준비과정을 설명했다.
황톳길은 무좀이나 발에 상처가 있는 분, 반려견은 이용할 수 없다. ⓒ추미양
가볍게 걸어도 황토가 눌리면서 발자국이 생긴다. ⓒ추미양
외출할 때마다 당연히 신고 다니던 신발을 벗었다. 운동화 속에 갇혀 있던 발가락을 부채 모양으로 쫙 피면서 스트레칭도 한다. 평소 잘 사용하지 않던 근육이 갑자기 놀랄 수 있다며 의자에 앉은 채 준비운동을 한다.
개장식이 끝나자마자 바지를 걷어 올린 사람들이 걷기 시작했다. 나도 대열에 동참했다. 딱딱한 길만 걷다가 부드러운 흙을 밟으니 환호성이 절로 나온다. 신세계다. 황톳길은 황토와 굵은 모래인 마사토를 배합해 만들었다고 한다. 길이 450m, 폭 2m다.
안내판에 황톳길의 시작점과 종점, 황토족탕, 세족장, 쉼터의 위치가 표시돼 있다. ⓒ추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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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분수가 황토 표면에 수분을 뿌려주고 있다. ⓒ추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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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황톳길에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시설이 있다. 안개분수다. 황토가 말라버리면 표면이 갈라지고 딱딱해지니 적절히 수분을 공급해줘야 한다. 안개분수 위에는 조명등도 있다. 무더운 여름에는 낮보다 아침, 저녁에 산책하는 분들이 많다. 퇴근 후 운동하는 직장인도 있다. 어두운 저녁 시간에도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겠다.
시민들이 황토족탕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발 마사지를 하고 있다. ⓒ추미양
황토족탕에서 발을 깊이 넣었다 빼는 동작을 반복하면 발바닥이 지압된다. ⓒ추미양
출발지점을 조금 지나니 원형의 황토족탕이 세족장과 나란히 붙어 있다. '황톳길과 다른 점이 뭘까?' 궁금해 거치대를 잡고 제자리걸음을 해 봤다. 발이 푹푹 빠진다. 내 몸무게로 내리 누르니 마사지도 잘 되고 지압 효과도 크다. 그냥 걷는 것과 다른 느낌이다.
황톳길 중간에 딱딱한 지압 구간이 있다. 오돌도돌한 돌기가 촘촘히 있어 발바닥이 찌릿하다. ⓒ추미양
평소 빨리 걷던 분들도 황톳길에서는 천천히 걷는다. 성산동에서 오신 한 시민은 “황톳길이 평탄하지만 상당히 미끄러워요. 넘어지면 큰일 나죠. 조심조심 발에 집중하게 됩니다. 땅과 제 몸이 하나가 된 것 같아, 기분도 참 좋네요. 색다른 경험이네요”라며 “다음에는 친구와 같이 오겠다”고 말한다.
종점 부근에는 잠시 쉴 수 있는 쉼터가 마련돼 있다. ⓒ추미양
황토에 수분이 많을수록 발이 깊게 들어간다. ⓒ추미양
어느덧 황톳길의 종점에 도착했다. 좀 더 걷기 위해 출발점으로 되돌아가는 분들도 있지만, 나는 바로 옆 세족장에서 발을 씻기로 했다. 개장 첫날이라 많은 분이 오셔서 기다리는 줄이 길다.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몇몇 주민이 아쉬운 점을 얘기한다. “수압이 약해 물이 졸졸 나와요. 수도꼭지가 세 개뿐이고요. 사람이 몰리는 주말에는 한참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종점에 있는 세족장에서 발에 묻은 황토를 씻고 있다. ⓒ추미양
숲길을 걷고 나면 발바닥에 마른 흙이 조금 묻지만, 황토는 잔뜩 묻는다. 발가락 사이사이에 꽉 채워진 흙도 제거해야 한다. 제법 시간이 걸린다. 급한 마음에 물휴지로 닦아보려니 한계가 있다. 드디어 내 순서가 왔다. 찬물이 발로 쏟아진다. 발가락을 주무르면서 닦으니 피로가 싹 풀린 듯 상쾌하다. “바로 이 맛이야!” 신발을 신고 걸어도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발이 가벼워졌다.
왜 사람들은 맨발 걷기에 열광할까? 개장식에서 만난 맨발걷기운동본부 박동창 회장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박동창 맨발걷기운동본부 회장이 맨발 걷기의 좋은 점을 설명하고 있다. ⓒ추미양
“맨발로 걸으면 지압이 돼 발 근육이 말랑말랑해지고 혈액순환이 잘 일어나 발이 건강해져요. 모든 장기의 지압점도 자극되고요. 접지(earthing) 효과로 볼 수 있죠. 즉 발과 땅이 접촉하면서 땅속 음(-) 전하가 몸속으로 올라와 양(+) 전하를 띤 활성산소를 중화시키죠. 땅에 물기가 많을수록 접지 효과가 크니 촉촉한 황톳길을 걷는 것이 참 좋죠. 혈액이 묽어져 혈류 속도도 빨라집니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도 안정돼 잠도 잘 오고 마음도 편안해집니다.”
하지만 모든 운동이 지나치면 독이 된다. 처음부터 맨발로 만 보 걷기에 도전하면 안 된다. 당뇨로 인해 발 감각이 떨어졌거나 상처가 있으면 맨발은 위험하다.
세족장 부근의 안내판에 황토 효능과 발바닥 지압점이 소개돼 있다. ⓒ추미양
서울에는 걷기 좋은 둘레길과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숲길이 많다. 서울 도심에 있는 안산에는 숲길과 무장애 산책로인 안산자락길이 있어 많은 시민이 건강을 다지기 위해 찾아온다. 안산에 오면 이젠 황톳길도 걸어보자. 서대문구청이나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 안산자락길 방향으로 걸어 올라가면 10분 만에 황톳길 입구에 도착한다.
‘서대문구 안산, 황톳길 걷고 치유숲 산책’ 프로그램이 10월까지 월요일 오후 2시부터 100분간 진행된다. 접수는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을 이용하면 된다. 산림치유지도사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건강하게 걷는 방법을 배우고 익히자. 건강은 스스로 지켜나가야 한다. 내 건강은 소중하니까.
안산 황톳길
○ 위치 :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산2-22 언북중학교 후문 인근~안산 산복도로 쉼터
○ 교통 : 지하철 2호선 신촌역 2번 출구, 7720번 버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하차 / 지하철 3호선 홍제역 4번 출구, 7713번 또는 7738번 버스, 서대문구청 하차
○ 예약 :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
○ 문의 : 서대문구청 푸른도시과 02-330-1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