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o-2]
깐돔블레는 흑인 노예의 자손들이 정글 속의 주술적 의식을 전습한 것으로 생각되는 싱커페이션을 가진 4분의 2박자의 카니발 음악이다. 밀롱가가 이 깐돔블레의 영향을 받아 탱고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때가 1875년이다. 또 한 가지 설은 앞에서 예거한 설에 대해서 아바네라와의 직접적인 연결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즉, 18세기 초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거리에서 유행하던 춤곡이 후일 볼레로와 아바네라의 영향을 받아 그 형태를 바꾸고 다시 유럽계의 춤곡인 폴카 등의 리듬이 섞여서 탱고가 탄생했다는 주장이다. 어쨌든 보카의 빈민가에서 발생한 춤곡은 처음에는 항구에서 기생하는 도박꾼, 밀수꾼 등의 세계에서만 명맥을 유지했으므로 ‘Musica Portena’이라고 했다. 뽀르트(항구)가 변한 것이 뽀르테냐이며, 이 단어는 속어로 ‘부에노스 아이레스 토박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일반 시민들은 ‘뽀르떼뇨스의 음악’이라고 불린 탱고를 처음에 음악으로서도 댄스곡으로서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하지만 지하 세계의 구성원들이 모두 만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빈민가에서는 금세 대중적인 춤이 되었다. 1880년대에 최초의 탱고 곡 바르똘로(Bartolo)가 탄생했다. 초창기의 탱고는 플루트와 클라리넷, 기타, 바이올린으로 연주했지만 1910년경 작곡가 로베르또 피르뽀(Roberto Firpo)가 처음으로 반더네온을 등장시켰다. 이때부터 탱고가 일반인들에게 친숙하게 되었다.
탱고는 반도네온 두 대, 바이올린 두 개, 피아노 한 대, 베이스 한 대의 편성이 표준적인 스타일(Orquesta Tippica)이다
이보다 소규모인 꼰훈또가 있다. 영어로는 ‘Combo’라는 뜻이다. 반도네온 한 대나 두 대, 바이올린 두 대, 피아노, 베이스 각각 한 대로 편성되어 있다.
그런 만큼 매우 밀도 높은 연주가 요구된다. 1952년 LP 레코드의 발명과 1959년의 스테레오의 등장은 탱고에 다시 영향을 주었다. 오르께스따의 편성은 바이올린과 반도네온이 3~5명, 피아노, 베이스, 여기에 가수 1~2명으로 구성된 기존의 형태에 비올라나 첼로도 추가되었다.
탱고는 급속도로 유명해졌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파리를 시발점으로 유럽에 퍼졌다. 전 유럽의 무도장과 상류 사회의 사교계가 탱고 열풍에 휩쓸렸다. 탱고 춤을 가르치는 교본이 수도 없이 출간됐다. 1914년 2월에 프랑스 잡지 ‘릴루스트라시옹’에 실린 한 판화는 교황이 탱고를 추며 원을 그리고 있는 커플들을 골똘히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비난의 소리도 뒤따랐다. 아르헨티나 쪽에서는 탱고를 ‘사창굴에서 온 파충류’라고 불렀고, 많은 아르헨티나 외교관들은 자신들이 비천하다고 생각하는 문화가 대중적 인기를 모으는 당황스러운 추세에 대해 노골적으로 혐오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탱고의 유행을 측면에서 지원해준 것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레코드이다.
탱고 역사에서 전설인 까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은 1917년에 ‘내 슬픔의 밤(Mi noche triste)’를 처음 녹음했으며 ‘La Comparsita’도 같은 해에 다른 가수에 의해 녹음됐다.
(옮김)
Bandon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