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301〉
■ 초봄의 귀밑머리 (김지향, 1938~)
방금 머리 내민 봄
햇빛을 만져본다
빛꼬리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
풀밭에 뒹군다
햇빛의 발이 콩.콩,콩,
자죽을 찍는 풀잎마다
연두빛 얼굴이 된다
봄의 빛은 발이 간지럽다
(손으로 움켜잡으면
몸이 가루되어 먼지처럼 날리지만)
햇빛이 빗금을 그은 곳마다
아지랑이가 죽어버린다
아지랑이 뒤에 머리를 숨긴
풀이 쏘옥. 쏙 혀를 내민다
보들한 바람에
파란 혀를 날름대는 풀
초봄의 귀밑머리가 내 뺨에서
파르랗게 나팔댄다.
- 2000년 시집 <때로는 나도 증발되고 싶다> (모아드림)
*3월 말로 접어든 요즘, 여기는 어제만 해도 잠시 아침에 영하의 기온을 보였지만 오늘부터는 따사한 봄날이 계속될 듯합니다. 싱그럽고 부드러운 바람과 맑은 햇살 속에 점차 푸른 빛을 띄는 산과 들, 그리고 개성 있게 피어나는 다양한 꽃들 – 정말 맘도 설레고 나들이하기에도 적합한 봄날입니다.
바라건대 이런 봄날이 계속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금방 사라져 버리고 곧 반갑지 않은 무더위가 몰려오겠지요.
이 詩는 생동하는 어느 따사한 봄날의 풍경을, 마치 눈앞에서 슬로우 비디오로 펼쳐지는 것처럼 시각적으로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시인은 아마 햇볕 따뜻한 어느 봄날, 마당에서 느긋하게 봄이 오는 자연현상을 느끼고 하나하나 관찰하면서 봄을 즐기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 관찰결과에 대해 여성 시인 특유의 감성과 무한한 창의력을 바탕으로, 이처럼 섬세하고 감각적으로 그려내서 그 신선한 봄날의 정경을 우리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군요.
제목을 ‘초봄의 귀밑머리’라고 명명한 것은, 초봄의 변화하는 모습이 마치 머리털 중에서 젤 먼저 하얗게 변해가는, 그래서 눈에 우선 띄는 구레나룻의 특징과 닮은 데서 그렇게 이름 지은 게 아닐까요?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