情事/김문억
열이레 늦은 달이 사립문을 열고 나와
뒤척이는 바다를 끌고 서녘으로 가고 있다
순순히 잠옷을 벗고 알몸으로 누운 갯벌
달빛은 이내 먼 바다로 빠져들어
꿈꾸는 몽정으로 물안개가 자욱하다
경건한 밤이 깊어간다
뜨거운 밤
관능의 밤
해 하나 잉태하고 숨 고르는 만삭의 바다
비릿한 살 내음이 후끈 바람을 타고
잔잔한 진통으로 온다
여명으로 밝아 온다
*대부도로 밤낚시를 갔다가 훨훨 날아가는 달빛에 이끌려서 썰물로 빠지는 바다를 따라 나간 적이 있다
나가는 물에는 고기가 잘 안 잡힌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멀리멀리 뻘을 따라 가다가 바다와 달빛이 밤안개 속에서 합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김문억 시집 <지독한 시2008파루>중에서
달빛 아래서 썰물로 빠져 나가는 밤바다는 마치 잠옷을 벗은 것 같은 느낌이 왔다
잠옷을 벗고 알몸으로 드러나는 갯벌은 지극히 관능적인 밤바다였다
그렇게 달빛은 밤바다를 서녘으로 끌고 나가면서 情事를 하고 있었다.
보름 달 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나오는 달이 열이레 늦은 달이다
열닷새 열엿새 열여드레 달도 있지만 아래 받침이 없는 열이레 늦은 달이 혀가 부드럽게 돌기 때문에
낭송하기에도 좋은 문장이 된다
달빛은 아주 먼 곳까지 바다를 끌고 나가서 정사를 하고 있었다.
몽정으로 자욱한 밤안개 속에서
우리도 같이 달빛을 따라 나가면서 잡은 물고기로 소주를 마셨다.
그렇게 깊은 밤을 지새우고 나서 새벽안개 속으로 잉태 했던 아침 해가 솟아올랐다
벌겋게 하혈을 하면서 애 하나를 낳고 있었다.
정말 은밀하면서도 멋진 情事였고 나는 그 현장을 지켜보는 스토킹을 하고 있었다.
첫댓글 "새벽안개 속으로 잉태 했던 아침 해가 솟아올랐다
벌겋게 하혈을 하면서 애 하나를 낳고 있었다.
정말 은밀하면서도 멋진 情事였고 나는 그 현장을 지켜보는 스토킹을 하고 있었다."
참, 멋진 비유법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