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소풍
초등학교 동기들과 관광버스를 전세 내어 가을소풍을 가기로 한 시월 둘째 일요일을 맞았다. 내 초등학교 모교는 세월 따라 폐교된 지 오래다. 그 자리는 청소년수련원으로 바뀌어져도 매년 봄 기수별 동기들이 모이는 전체 동창회가 열린다. 나는 그 행사에 한 번도 얼굴을 내밀지 못한 죄밑이 많다. 창원에서는 동기들이 격월로 만나 얼굴을 보는데 그 자리도 매번 가질 못했다.
가을이면 버스로 중부권으로 올라가면 몇몇 서울 친구들이 내려와 합류하는 소풍행사를 가진지도 십여 년 된다. 나는 친구들이 동행하자는 성화를 못 이겨 떠나긴 해도 빠진 경우가 많았다. 올해는 58 개띠 갑년이라면서 의미를 더 부여했다. 총무단에서 진작부터 전화가 와 동참을 권유해 피할 명분이 없었다. 부산에서 출발한 버스는 장유를 거쳐 정한 시각 창원시청 앞에 닿았다.
동이 터 날이 밝아오는 때였다. 몇몇 친구들은 차내에 있고 생활권이 같은 남녀 친구들을 여럿 만났다. 이어 마산에서 친구들을 더 태워 고향인 의령으로 향했다. 거기서 고향 친구들을 태우고 하루 동안 먹을 간식과 주류를 실었다. 식당을 하는 친구가 수육을 삶고 아침으로 때울 김밥까지 정성껏 마련했다. 동기 행사라면 손 걷어 부치고 신발 벗고 적극 나서는 열성파들이 있었다.
전세버스는 다시 남해고속도로로 나와 중부내륙고속도로로 노선을 갈아탔다. 인생살이 이런저런 모임에 엮인다만 초등학교 동기들만큼 스스럼없이 지내는 모임이 없다. 우리 사이 새삼스럽게 더 필요한 검증도 없고 자신을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우리는 눈빛만 봐도 서로를 잘 아는 사이다. 때로는 좀 거북살스런 욕설이 오가도 오히려 친근감의 표현으로 정겹게 받아주는 사이들이다.
현풍휴게소에 들렸더니 밀양에서 출발한 어느 고등학교 동창회 전세버스도 22회라 같은 숫자 인연으로 초면이지만 인사를 나누는 친구도 있었다. 근래 고속도로에서 차내 음주가무는 엄격히 규제한다만 기사 양반 양해 아래 적절한 수위조절이 있었다. 부산에서 온 친구는 전날 시장을 봐 둔 상어내장을 삶은 안주도 꺼내고 맑은 술을 공중 급유를 시키듯 연신 종이컵으로 주고받았다.
모니터로만 나오던 트로트에 흥을 못 이긴 한 여학생이 먼저 차내 통로로 나와 구성진 개사곡을 뽑자 연이어 무선 마이크는 뒷좌석까지 옮겨 다녔다. 군위와 안동을 지난 버스는 태백 준령을 넘어 울진으로 향하는 36번 국도로 달렸다. 국도도 고속도로와 진배없이 훤히 뚫린 길이었다. 단풍 남하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은 듯했다. 우리가 가는 목적지는 봉화 춘양으로 마침 5일 장날이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 일곱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이산가족 해후처럼 반가웠다. 시장 골목에 예약이 된 대표 맛집 식당으로 들리니 한우전골이 차려져 있었다. 총무는 현지에서 채집된 송이 3킬로그램을 같이 시켜 우리 손으로 찢어가며 전골과 익혀 먹었다. 나는 어디선가 들어온 양주를 한 병 꺼내 잔을 돌리고 갑년을 기념한 시를 한 수 읊었더니 가슴이 먹먹해 하는 친구도 있었다.
식후 춘양 장을 둘러보다 멀리 아스라한 소백산 자락을 바라봤다. 정상부부터 단풍이 제법 물들어 내려 왔다. 백두대간수목원으로 갔더니 경내는 일요일을 맞아 각처에서 온 탐방객들이 붐볐다. 작년에 개장된 수목원이라 그런지 아직 천연과 인공의 조화가 덜 된 듯했다. 나는 나무들보다 가을에 핀 들꽃에 관이 많아 몇몇 꽃을 사진에 담았다. 늙은 호랑이도 두 마리 볼 수 있었다.
한 시간 반 수목원 경내를 둘러보고 바깥 주차장에서 남은 안주와 술로 서울 친구들과 작별하는 이별주를 들었다. 당초 계획은 근처 약수탕으로 가서 몸을 담근다고 했으나 시간이 빠듯해 줄였다. 남녘으로 내려오는 길에서도 도로교통법을 법대로 지키기는 어려웠다. 아침에 출발한 역순으로 고향에 들려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들고 창원으로 복귀하니 밤이 이슥했다. 18.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