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정신은 아름답고 감명 깊다. 커티스 페이스의 ‘더 틀의 방식’에 보면, “도전을 하면 실패할 수도 있지만 성공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는다면 성공은 절대 불가능하다.” 라는 말이 있다. 이렇듯 굴하지 않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 정신’은 개인이든 국가든 간에 미래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登 小 平 1904~1967)에게는 ‘부도옹’이라는 별칭이 늘 붙어다녔다. 부도옹은 우리말로 오뚝이다. 덩샤오핑은 ‘세 번 채이고 세 번 올라섰다’는 그의 말처럼 문화대혁명과 1차 텐안먼 사건 등으로 심각했지만 좌절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덩샤오핑은 개혁과 개방만이 중국의 살 길이라고 주창하면서 상하이와 선전을 경제 특구로 지정해 ‘경제 중국’을 일으킨 불세출의 정치가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나탈리주(州)에 있는 더반은 인구 846만8천명에 아프리카 최대 항구 도시이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개최 도시로 한국이 출전 사상 첫‘원전16강’에 올랐던 곳이라서 더욱 친숙하게 느껴진다.
이 곳 더반에서 1974년 홍수환 선수는 세계펜턴급타이틀전 경기에서 아놀드 테일러에게 4차례나 다운을 뺏은 끝에 챔피언에 올랐다. 당시 홍수환의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자축 소감은 한때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그 후 홍수환은 1977년 파나마에서 당시 ‘지옥에서 온 사나이’라고 불리는 카라스키아에게 네 차례나 먼저 다운을 당하고도 다시 일어나 역전 KO승을 거둠으로써 4전5기의 오뚝이 신화를 창조했었다.
몇 해 전에 ‘오뚝이 정신’을 제대로 보여준 사건이 우리에게도 일어났다. 더반에서 열린 올 IOC총회에서 강원 평창이 2018 동계올림픽 유치를 했다. 이를 두고 외신은 평창 10년의 집념에 감탄한다고 전한 바 있다. PT의 여왕으로 떠오른 나승연 평창 유치대변인은 “실망스러운 결과를 딛고 일어나 여러분의 말에 귀 기울였고 실수를 통해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내가 죽었다가 새로 깨어났을 때였다. 학교 갔다 오는 길에 건널목에서 교통 사고를 당했다. 후유증으로 왼쪽 팔다리에 마비가 왔었다. 첫 발걸음을 내딛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병원 물리치료실에서 나의 첫 걸음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당시 중학생이었지만 새로 태어났으니 신체는 청소년이고 다른 건 ‘아기’나 다름없었다. 오른발 떼고 중심을 못 잡아 넘어지고 무릎팍 찢어지고, 연속하여 다섯 발짝을 목표로 울고 웃으며 연습했던 날들. 그 날 내가 불렀던 가요 한 소절이 기억난다. “~ 내 오늘은 울지만 다시는 울지 않겠다 ~”는 조용필의 ‘Q' 노래를 부르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물리치료실에서 운동을 하는데도 마음 먹은 대로 동작이 잘 되지 않아 눈물도 많이 흘렸다. 그 때 너무 속상하고 안타까워 ‘누가 이기나 두고 보자’ 하며 의사들은 코웃음을 날린 슬로건을 내세웠다. “나, 이지민은 학교에 가서 공부한다” 옳게 걷지도 못하고 똥오줌도 못 가리던 내가 물리치료실에서 오히려 의사들 들으라고 더 크게 외쳐댔으니, 의사들은 물론이고, 다른 환자의 보호자들도 기가 찰 노릇이었으리라. 가끔씩 운동이 죽도록 하기 싫은 날도 “지민! 학교에 가려면?” 하고 마음을 다잡곤 했다.
아이는 평균 2천 번은 넘어지고 나서야 걸음마를 익힌다고 한다. 나는 반신(半身)이 불편했으니 3천 번은 넘어지고 구르고 뒹굴었으니 현재의 내가 있다.
우리는 걷기 위해 2천 번은 넘어졌던 사람들이다. 2천 번을 넘어졌던 어린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당당하게 마음 놓고 걸을 수 있는 오늘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어른이 된 지금도 한두 번 넘어졌다고 낙심할 필요가 없다.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넘어지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졌다가 일어나 다시 달리는 오뚝이 같은 사람에게 사람들은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돌팔매질을 당하면 그 돌들로 성을 쌓으라는 말이 있다. 나는 쓰러지지 않는 게 꿈이 아니다.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나는 게 꿈이 되도록 할 것이다. 신(神)은 실패자는 쓰셔도 포기자는 안 쓰신다. 그 뿐일까?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난다고 하지 않는가.
고(故)장영희 교수는 이런 말을 남겼다.
“신(神)은 사람이 일어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
넘어져도 희망을 잃지 말라는 말이다. 지금 당장 두려워 일어날 용기가 나지 않더라도 옆사람의 부축을 받아 일어날 게 아니라 나 홀로, 스스로의 의지로, 무릎을 세워서 일어나야 한다. 나도 너도 우리 모두는 이미 2천 번이나 다시 일어섰던 사람이다. 이천 번 넘어지라고. 그래야 갓난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듯이 삶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다고. 장대높이뛰기도 아니고, 백미터를 10초에 주파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넘어지면 된다. 무엇이 어려울까. 일어나는 기술을 배우는 마술이라는데 말이다.
누구에게나 넘어지는 순간이 있고 두려움은 늘 찾아온다. 그러나 ‘두려워할 줄 아는 것'과 '두려움에 떠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두렵고 또 두렵지만 신념 때문에, 희망 때문에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렇게 두려움을 넘어서는 사람이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이다.
인생의 숲길에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수많은 삶의 돌을 만난다. 그 돌을 만나면 어떤 사람은 걸림돌이라 말하고, 어떤 사람은 디딤돌이라 말한다. 삶에서 오는 모든 장애를 불행과 원망의 눈으로 보는 것과, 또 그것을 발판으로 재기와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것과는 분명 큰 차이가 있을 거다. 오늘도 장애의 요소와 같은 돌을 곳곳에서 만나게 될 터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깔려 있는 돌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자세 아닐까. 나를 힘들게 하고 뒤처지게 하는 돌이라고 생각해온 모든 걸림돌을 오늘부터는 역으로 발판을 삼아서 디딤돌로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다. 지금은 오르막 길이라고 계속 오를 수만도 없고, 내리막길이라고 인생이 막장으로 다다른 것도 아니다. 모든 인생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이다.
사람들은 넘어지면 무너지려 하고, 무너지면 부서지는 줄 안다. 그래서 지레 겁을 먹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넘어졌을 때 아픔을 참고 일어서면 또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희망이란 건 내가 일어나서 발견해야만 볼 수 있는 것이리라.
나에게 불편한 건 주로 몸이었지만 장애는 정신적인 영역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평범한 이들보다는 훨씬 더 일찍 깊은 좌절감을 붙들고 한바탕 씨름을 벌여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놀랍고 감사하게도 십대를 넘기고 이십대 중반을 넘기면서 차츰 나를, 그리고 다른 이들을 그들 편에 서서 이해하게 되었다.
삶은 주어진 것이지만, 인생(人生)은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또한 내가 행복하면 내 옆 사람도 행복해지고 내 앞 사람이 행복해지면 우리 모두가 행복해진다고.
쑥스러운 얘기이지만 용기 내어 고백해본다.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어김없이 ‘오늘도 좋은 하루, 아시죠?’라고 외치며 ‘행복(幸福) 바이러스(virus) 퍼뜨리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오늘 주어진 것을 놓치면 내일의 열매를 기대할 수 없으니 현재에 충실하자는 카르페 디엠(carpe-diem)이 내 인생 철학이다.
감사합니다,, 사랑해용, 알죠? ^^^
첫댓글 감사 합니다. 행복 하십시오.
박수와 환호를 보냅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천사님!~~
커티스의 말이 진리 같습니다. 열심히 사십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사랑해도 될랑가모르겠네유.
에라몰겠다. 일은 저질러놓고보는거다!
"사랑합니다"고맙습니데이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