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호 기자
◇아이돌그룹 생활의 고됨, 수학으로 달래
박양은 5세 때 연습생이 되고 나서 7세 때 가수로 데뷔했다. 똘망똘망한 눈을 비롯해 이목구비가 뚜렷해 아기 모델로 활동하던 중 추천을 받아 가수 오디션을 봤던 것.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연습생 생활은 기대와는 달랐다. 화려한 모습을 꿈꿨지만, 현실은 무척이나 고됐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래하고 춤추고 포즈 연습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데뷔를 하고 나서도 힘든 일상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특히 잠을 마음껏 잘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무대에 서기까지 준비과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어요. 그러다 무대 위에 올라가서는 활짝 웃어야 했죠. 저는 웃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웃어야 하는 일이 꽤 힘들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쁘다고 환호해주고 박수를 쳐줬지만, 저는 그것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지금 돌이켜봐도 좋았던 기억보다 힘들었던 기억이 더 많네요."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지루함은 '수학'을 만난 뒤 덜어졌다. 유치원과 학교에 제대로 나갈 수 없는 박양을 위해 그의 어머니가 매일 수학 문제집 3장씩 풀게 했던 것.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 도피처가 필요했던 박양은 문제를 풀면서 점점 수학에 빠져들었다.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어요. 문제를 풀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후딱 가죠. 수학은 답이 하나라는 점이 좋아요. 정확한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이 즐거웠어요. 그러다 점점 공부가 하고 싶어졌고, 결국 9세 때 그룹에서 탈퇴했습니다."
◇"연예인 벗어나 과학계의 영재 꿈꿔요"
학교에 온 박양은 그간의 생활은 잊고 오직 공부에만 몰두했다. 일단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충실히 들었다. 다른 친구들보다 기본기가 없을 수 있기에 수업시간에 집중하기로 한 것. '오늘 배운 내용은 반드시 머릿속에 담자'라는 생각으로 수업 때 집중하고 쉬는 시간에 복습했다. 복습을 미루면 배운 내용이 기억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방과 후에는 인천교대 영재교육원에 다니며 수학·과학 심화학습을 했다. 그러자 성적은 조금씩 계속 올랐고, 중학교 때는 전교 1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중 2 때는 KMO 경시대회에 참가해 전국 동상도 받았다. 그는 "아이돌그룹 생활만큼이나 바쁘게 지냈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다"며 "각자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고 말했다.
"주변에서 연예인을 왜 그만뒀느냐는 질문을 많이 해요. 특히 연예인이 되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많이 물어보죠. 저는 연예인을 하면 즐겁지 않을 것을 먼저 깨달았기에 조금의 미련도 없어요. 요즘 많은 친구가 연예인을 꿈꾸죠. 과연 자신이 연예인을 왜 하고 싶은지, 진심으로 하고 싶은지, 혹시 화려한 모습만 보고 쉽게 생각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그의 꿈은 화학자. 구체적으로는 국과수에서 화학을 담당하는 연구원이 목표다. 꿈을 위해 박양은 과학영재학교를 생각했다. 심화수업을 받고 과학관련 다양한 대외활동을 하기 위한 최적의 고등학교라 생각했다.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늦게 입시를 준비했지만, 운이 좋아 합격했다는 박양은 "한국과학영재학교 전형 중 '토론'이 있었는데, 떨지 않고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조리 있게 한 것이 좋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며 "어릴 때 무대에서 노래하며 자신감을 키운 것이 연예인 활동으로 얻은 유일한 수확"이라며 웃었다.
요즘 ‘7공주’란 말을 듣고 어느 여고의 ‘불량소녀’ 집단쯤을 떠올린다면 ‘구세대’다. 이 야릇한 단어는 이제 초등학교 입학 전후 어린 소녀들이 점령해버렸다. 작년 11월 ‘겨울…봄, 여름, 가을’이란 앨범을 발표한 그룹 ‘7공주’. 멤버들이 6~10세의 어린 소녀들이다.
“흰 눈이 기쁨되는 날, 흰 눈이 미소되는 날, 흰 눈이 꽃잎처럼 내려와 우리의 사랑 축복해….”
TV, 라디오 또는 누군가의 휴대폰에서 적어도 한두 번씩 들어봤을 노래 ‘러브송’이 타이틀곡. 이효리의 ‘애니모션’이 등장하기 직전까지 수개월간 휴대폰 벨소리·통화연결음 다운로드 순위 선두권을 지켰다. 4개월여간 판매된 앨범 수는 9000여장. ‘대박’은 아니지만 ‘신인가수’치고 훌륭한 성적이다.
- ▲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의 한 댄스 아카데미에서 안무 연습 중인‘7공주’멤버들. 왼쪽부터 오소영, 황세희, 권고은, 황지우, 김성령, 박유림양. 오른쪽 아래는 드라마‘불량주부’출연과 학업을 이유로 최근‘7공주’에서 탈퇴한 이영유양. / 이진한기자
화사한 드레스, 미니스커트, 배꼽티, 때론 수영복을 입은 채, 발랄하게 춤추고 성숙하게 노래하는 ‘7공주’의 주 소비층은 초등학생. 소속사 예스 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공식 팬클럽 회원 2000여명의 70%는 초등학생이고, 1~3학년생들이 절대 다수다.
대중문화의 잠재 소비층으로 치부되던 어린이들은 인터넷·휴대폰의 일상화와 함께 개척의 여지가 무궁무진한 거대 시장이 됐다. 신(新)문물에 일찌감치 익숙해진 이들은 인터넷·휴대폰으로 노래·뮤직비디오를 다운로드하는 게 일상이다. 문제는 콘텐츠. 하이틴들이 ‘동방신기’에 열광하듯, 이들에게도 또래 스타가 필요했고 기획사는 이를 재빨리 간파했다. 이른바 ‘세계 최초의 프리틴(Pre-teen) 그룹’이라는 ‘7공주’의 탄생에는 그런 배경이 있다. 일본의 집단적 ‘로 틴(low teen)’ 그룹에서 더 나이를 낮춘 것이다.
멤버들은 학교에서 ‘스타’로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권고은(9)양은 “학교에 가면 사인해달라는 친구·언니·오빠들이 몰려드는데 선생님이 다 막아준다”고 했다. 황세희(10)·지우(7)양의 어머니 안수경(41)씨는 “등굣길 건널목 앞에 두 아이가 서 있으면 학생들 30~40명이 우르르 몰려든다”며 “왜 이러나 싶을 정도”라고 했다.
‘7공주’라는 ‘문화상품’이 확산되는 방식은 아이돌 그룹의 선례와 같다. ‘러브송’의 작곡자 전준규씨는 핑클 ‘내 남자 친구에게’를 만들었다. ‘겨울…’ 앨범에 참여한 스태프는 쿨, 보아, 핑클 등의 앨범을 작업했던 사람들. ‘7공주’가 다양한 영역으로 활동반경을 넓혀가는 것도 아이돌 그룹의 판박이다. ‘7공주’는 최근까지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브레인 서바이버’에 고정출연했으며, 앞으로 SBS 영어교육프로그램 ‘잉글리시 매직 스쿨’에 등장한다. 5월에는 ‘상상의 마법 칠공주 율동나라’라는 제목의 율동·요가 비디오를 출시하고, 동명의 뮤지컬도 계획중이다. 이들의 캐릭터가 들어간 네트워크 게임도 곧 세상에 나온다.
어른들의 동심(童心)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는 점도 성공 요인이다. 지난해 전국을 강타한 동요 ‘올챙이송’이 보여주듯, 빠르고 복잡한 세상 속에 ‘천진한 어린이’는 가장 중요한 문화적 코드 중 하나. TV를 켜보면 안다. 요즘 어린이가 등장하지 않는 CF가 몇 편이나 되는지.
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200504217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