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신바람 이박사'를 알고 있는가? 알고 있다면 당신은 테크노 음악에 대해 상당히 알고 있는 편이라고 자부해도 좋다. 하지만 모른다 해도 상관없다. 지금부터 내가 신바람 이박사가 누구인지 자세히 알려줄테니 괜히 머리를 쥐어뜯으며 '이박사도 모르는 나 따위는...'하며 자책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작년 한 해는 테크노의 물결이었다고 해도 과연이 아니었다. 이는 테크노 댄스로 화려하게 부상한 전지현의 인기와 '666'의 테크노 댄스곡 '아목'의 열풍이 이미 증명하고 있다. 그러한 작년 초, 낯설지 않은 뽕짝 가수 이박사가 일본에서 낸 음반에 대한 이야기가 인터넷을 통해 서서히 전해졌다. 이박사가 일본의 테크노 밴드 '명화전기'의 보컬을 맡아 발표한 앨범 <나는 우주의 환타지>을 들은 몇몇 사람들은 테크노 뽕짝이라는 무시무시한 음악 세계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나 역시 이박사의 골수팬으로서, 지난 5월10일 홍대앞 <명월관>에서 이박사의 공연이 열린다는 정보를 듣고서는 과감하게 오후 수업을 모두 제끼고 곧장 달려갔다. 그동안 수많은 공연을 보아왔지만 그의 공연은 어떻게 진행이 될지 예상할 수가 없었다. 일본에서 발매한 그의 앨범들...<뽕짝으로 키가 5cm크다>,<열려라 뽕짝> 등 제목만 보아도 얼마나 비범한 노래들이 실려있을지 기대하게 만드는 그의 능력에 새삼 감탄하고 있을 때, 이박사가 화려한 무대복을 입고 등장했다. 그날 공연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나우누리 이박사 팬클럽의 회원들이었다. 무대위에서 뛰노는 귀여운 핑클의 모습에도 시큰둥했던 그들. 메탈리카의 박력 있는 공연에도 하품을 하던 그들이 이박사의 등장에 일제히 환호를 던졌다. 그들 역시 이미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오프닝 곡 '로빈슨'으로 시작한 이박사는 일본의 유명한 뽕짝을 한국어로 번안하고 테크노 사운드로 편곡한 곡들로 1부 공연을 시작했다. 이박사의 간드러지는 목소리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창법에 이미 사람들은 맛이 가기 시작했으며, 자신의 노래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을 보며 기분이 좋아졌는지 이박사는 공연을 더욱 광란의 분위기로 이끌었다. 그의 무대는 정말 독특했다. 나는 이박사의 노래를 달달 외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따라서 부를 수가 없었다. 그의 노래는 애드립이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반 이상의 가사를 애드립으로 처리하는 천재적인 순발력은 이박사의 무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었다.
이박사는 올해 나이 마흔 일곱의 중년이다. 그 역시 우리나라보다는 일본에서 더욱 유명해진 뮤지션이지만, 그의 애국심은 남다르고 애국심을 표현하는 방법이 역시 남다르다. 그가 일본에서 발표한 곡들은 모두 한국어 버전이다. 또한 일본인들이 긍정적으로 한국을 바라볼 수 있도록 노래 중간 중간에 "좋다!", "멋있다!", "잘한다!" 등의 우리말로 된 환호를 외친다고 한다. 게다가 단순한 키보드 반주 하나로 그토록 열광적인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이박사 뿐인 것 같다. 그의 공연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절대로 관객들이 원하는 노래는 부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그가 흥이 나는 곡만을 부른다. 관객들이 'YOUNG MAN'을 불러달라고 애타게 호소했음에두 불구하고 "맨날 불러봐야 그 노래가 그 노래지 뭐"하며 아무도 들어볼지 못했던 그의 오리지널 곡 '인생은 60부터'를 부르던 이박사, 그에게 진정한 뮤지션이라는 칭호를 붙이고 싶다.
그날 공연에는 평소 이박사를 좋아하던 <황신혜 밴드>와 <볼빨간>이 등장하여 이박사의 곡을 불러주기도 했다. 하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시원찮았다. 그들에겐 이박사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이다. 이 공연은 KBS 2TV의 <오늘>에서 이박사를 취재하며, 그의 공연 모습을 찍기 위해 1시간 동안 열린 것이다(방송은 공연 다음날인 12일에 나갔다). 이박사는 시간이 없어 더 만나지 못하는 것(이박사는 공연을 만난다고 표현한다)을 무척 아쉬워했다. 원래 그의 무대는 6~8시간 논스톱으로 진행되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이박사라는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PAPER 식구들이 있다면 그의 정식 공연이 6월초에 있을 예정이니 손꼽아 기다리다가 한번 만나보시기 바란다. 만나보세~!
- NP 박정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