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지대교를,
지나 끝이 보이지 않는 갯벌을 보며 한숨 쉬고 달리면 선두리 포구 다 남쪽 섬 동검도를 마주 보고 있으니 강화
도에서도 가장 남쪽인데 선착장은 포구에서도 갯벌 한복판으로 한참을 뻗어있다 썰물이 되니 선착장에서 바라
보는 바다는 아득히 멀다 고깃배들은 갯벌위에 아무렇게나 몸을 뉘인 채 바다가 다시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그런
선두리에 해가 진다 기인 둑을 따라 걷노라면 밀물따라 노닐던 갈매기들이 무엇에 놀란 듯 슬금슬금 달아난다
물 위에 깔린 옅은 안갯속으로 보이는 두툼한 갈대밭 속에서는 큰 기러기떼가 무리 지어 여유로히 헤엄친다.
여름 내내,
저곳은 어였한 백로들의 터전이었는데 이제 그들은 보이지 않고 찬 대륙에서 날라온 건가 온통 저들의 세상이다
하동과 섬진강에서 매화꽃 폭죽이 터지는 게 3월이다.300년 넘은 고매(古梅)가 아니더라도 섣달에 피는 납월매
(臘月梅)는 고고함을 넘어 신비 그 자체다.
서울에선 매화를 배양하였으나 지종(地種)이 아니요 분재일 뿐이니, 삼남(三南)의 난지(暖地)에서 피는 것이 비
록 동매(冬梅)가 아닌 춘매(春梅) 더라도 납월매에 버금가는 자태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그것이 매화의 지닌
바 품위다 매화꽃 따라 그 강가에 복사꽃이 핀 지가 엊그제인데 들녘은 쓸쓸히 물들고 일찍 땅에 떨어진 나뭇잎
들은 바람에 서걱거린다 세월은 이렇게 여지없이 가슴을 흔든다.
마음을 다 잡고,
뒤를 돌아보니 산 등성 이를 온통 붉히던 도화 꽃도 매화 못지않았음을 느낀다.본시 복숭아꽃은 신선 화로 불리
며 불로장생을 상징했다 도연명이 도화원기(桃花源記) 에서 묘사한 무릉도원(武陵桃源)은 이런 복숭아꽃이 만
발한 별천지다 늙지도 않고 병들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신선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서왕모(西王母)가 ,
산다는 요지 궁에는 사철 도화 꽃이 피어나는데 전한(前漢) 시대 사람 동방삭이 몰래 숨어 들어가 천도복숭아를
따 먹고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전설이 생겨난 곳이다 몇 해 전인가 어느 가을날 아내가 혼자 웅얼거렸다 무릉도
원이 정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무슨 얘긴가 해서 신문 너머로 흘깃 보니 월간잡지에 나와 있는 한 그림에 시선
을 꽂고 있었다 만약 이런 곳이 정말 있다면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팽개치고 달려갈 거야 뭘 보고 그
리 흥분하니?
응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이 사람아 그건 그림 제목 그대로 꿈속 얘기야 그 이야기는 들은 지 마
는지 아내는 손가락으로 잡지 전편을 차지한 몽유도원도 그림을 찬찬히 짚어 가면서 여기는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 여기는 바깥 입구 여기는 안쪽 입구 그리고여기는 도원 하고 있다.
그러더니,
나를 돌아보며 의미심장하게 묻는다 만약 이 도원 입구를 발견하고 단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떡
할 건데 싱겁긴 그야 당연 당신을 들여보내지 피 순 거짓말 피식 웃으며 또 한참을 그림을 뚫어져라 살피더니 말
한다 근데 무릉도원은 순 바위산 돌로 되어 있는가 봐 안평대군이 꿈에 본 광경을 당대의 화가인 안견(安堅)에게
그리게 한 이 몽유도원도는 도가 (道家)적인 색채가 짙은 도연명의 도화원기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음은 그림이
완성 뒤에 스스로 그 경위를 밝히는 제기(題記) 에 잘 드어나 있다.
동양적 이상향의 구현체였던 이 그림은 네 개의 경 군(景群)들이 따로따로 떨어져 있으면서도 서로 시각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고원(高遠) 평원(平遠) 심원(深遠) 등 삼원 법(三遠法)이 자연스럽게 갖추어져 있으며 시時
서(書) 화(畵)의 세 가지 장르가 종합적으로 구현된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산수화이다.
몽유도원도는 안견이 술 취해 그린 것이 분명해 느닷없는 말에 깜짝 놀라 어디하고 아내가 가리키는 곳을 들여
다보았다 마지막 부분의 도원은 단지 몇 채의 집이 보일 뿐 대부분 만발한 복숭아꽃이 짙은 안갯 속에 휩싸여 있
고 주위의 산들은 기암절벽 형태이지만 질감의 부드러움과 명암의 적절한 효과를 통해 속세와는 전혀 다른 신비
의 세계를 연상케 한다.
여기 복숭아,
꽃잎들 좀 봐 이파리 끝이 모두 다르고 춤추는 것 같지 그건 술 때문에 붓을 잡은 손끝이 흔들렸다는 증거지 갑
자기 술 이야기를 들으니 언젠가 읽은 유흥준 교수의 글이 생각났다 화가에게 있어 술은 간혹 창작의 촉매제였
다 취옹(醉翁)이라는 호를 즐겨 사용한 인조시대 연담(蓮潭) 김명국은정말로 취필(醉筆)을 많이 남겼다 영의 한
스님이 '지옥도'를 그려 달라고 할 때 그는 술부터 사 오라고 했다.
마침내 그림이 완성되었다고 하여 찾아가 보니 염라대왕 앞에서 벌 받고 있는 사람들을 모두 중으로 그려놓은
것이었다 스님이 화를 내며 비단 폭의 값을 물어내라고 하자 연담은 껄껄 웃으며 술을 더 받아 오면 고쳐 주겠노
라고 했다 스님이 그대로 하자 술을 들이켜고는 중 머리에다 머리카락을 그려 넣고 옷에 채색을 입혀 순식간에
일반 백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설마 당대의 최고 화가인 안견이 술에 취해 이 명작을 그렸을까 마는 단순히 꿈에서 거닐었던 이야기에 자신의
상상력의 한계에 도전하여 단 사흘 만에 신비에 가득 찬 도원의 형상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아냈다면 그 경이로움
이야 말로 취옹 연담의 욕 취미 취간(慾醉未醉間)ㅡ술에 취하고는 싶으나 아직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만 명작이
나올 수 있다 는 경지와 같은 것이 아닐까.
억새밭에 어느새 밀물이 들어 찰랑거리며 흐르는 강화 바다에는 지는 해의 붉은 기운이 낮게 비춘다 훌쩍 키를
넘는 그 속에서는 먹이 찾아 몰려들었던 철없는 오목눈이들이 검은 꼬리를 흔들며 화들짝 튀어 오르고 어둑한
하늘에는 큰 기러기떼가 정겨운 그림을 그리며 무리 지어 날아간다.
포구에 앉아서 주억대는 긴 목이 곡선으로 휘어지는 거며 잘생긴 몸뚱이를 거침없이 떠 받히는 회색 및 날갯짓
을 보노라니 생명의 숭고함과 바다가 삼키는 석양의 아름다움에 경배한다.
장소는 달라도 안견이 본 무릉도원이나 지금 내 앞에 펼쳐져 있는 일몰의 숭고함이나 무에 다를 바 있을까 아내
가 책을 덮으며 한 말이 바늘로 찌르듯 다가온다.
무릉도원은 정말 없는 거겠지?아니 아니
아니 무릉도원은 스스로의 마음에 있을 거야
첫댓글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 함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이니 누구나 꿈꿀
수 있는 곳이겠지요 그러므로 사람들은
각각 자신에 맞는 이상향을 찾고 그것
에 심취하면
곧 무릉도원武陵桃源이아니겠습니까?
내 마음 안에 극락이 있으며 천국이 있
다고 선인들이 말한 바 있으며 천국과
지옥이 내 마음 안에 있음을 직접 경험
하였으나,객관성이 있다고 마초 절대
우기지는 않겠습니다.
무릉도원이든 유토피아든 이 마음이
만든 이상향이 아니겠습니까?
연담 김명국의 달마도는 엄청난 금액
으로 일본에서
사들여 왔다고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참고했으면 합니다
~단결~!
와~첫 댓글을 달기엔 식견이 부족 해서리 무릉도원에 대한 단상을 어쪔 이리도 잘 묘사해 낼수 있으신지요? 대단 하심니다
제가 이 글속에서 알수 있는것은 길상면 선두리 909번지는 저와 아주 가까운 벗의 집이 지금도 그곳에 있기에 학창 시절에
참으로 많이 드나 들었든 곳이기에 첫 댓글로 와락 달겨 들었씀니다 바다와는 100m쯤 떨어져 있는 집인데 가본지 오래네요
몇 해 전 충청도 어디에 있을 때 달빛이 아래 피어있는
복사꽃 언덕에서 이곳이 진정한 仙景이고 武陵桃源이
아닌가 하는 想像에 잠겼던 일이 생각나며 朝鮮 世宗
大王의 셋째 아들인 安平大君의 꿈이야기를 畵幅으로
옮긴 安堅의 夢遊桃源圖 를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에
서 보았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따스한 댓글주심에 늘 고마움을 표합니다
건건필하소서
늘 유익한 글 선배님 감사합니다
그래요 무릉도원은 다른 곳에 있는게 아닙니다
자신의 마음에 있다는 것에 공감합니다
멋진 사진과 글 감사한 마음으로 일고 갑니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아우님이 다 알아부모 내가 너무 씁씁 하잖아요 ㅎㅎ
안글 쉽니까요ㅎㅎ
늘 항구여일로 새칩은 글내림에 감사는 지가 더 하고 있쉼더 ㅎ
아랏지요 역시 고향말은 포근하고 정감이 간다 말씀이야 푸하하하
오늘도 멋지게 고고 렛츠고로요,
겨울의 선두리에서 시작된 글이 시공을 날아 몽유의 풍경을 그리고 있네요.
잘읽고 갑니다.
한때 나의 사후 무릉도원에서 노니는
신선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언제부터 가는 할일없이 휘적거리고
노니는 신선은 재미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흥미가 없어졌습니다.
짧은 내공속에 많은 것을 시사하는군요
감사드리며 오신님 고맙습니다
마초님의 박학다식함과 고졸(古拙)한 문체(文體)에 감탄하며
작가가 되지 않은 게 이상스럽네요.
혹시 필명으로 무협소설을 쓰신 적이 있으신지요?? ㅋㅋㅋ
허긴 작가가 되기엔 너무 자유스럽고,
활동적인 분 인지도
마초님의 무릉도원을 읽고 있으면
로마 바티칸 박물관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려져 있는 미켈란제로의
천지창조와 그 밑 벽의 최후의 심판 그림을 연상케 되는데
무릉도원이 곧 아무나 갈 수 없는 천당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마초님 멋집니다 정말로
늘 건 행하십시오^^*
컴을 열어보니 저를 오히려 칭찬일색.아차차!!
그런의미에서 쓴건 아닌데 얼굴이 화끈 거립니다
저역시 일천한 지식으로 단 한편의 글이랍시고
끄적거리고 올리는 자체가 너무 송구스럽습니다
필제가,
자연스럽게 흐르는 완벽한 입신의 걸작품을
천의무봉(天衣無縫)이라고도 하는데 글을
자유자재로 요리하는 솜씨가 자칼처럼 날카롭습니다.
휘날리는 필제 그 글재가.
언제나
조도의 책상머리에 않아 거침없이...
써 내려간 멘트에 봄에
솟아오르는 아지랭이처럼
싱그러움이 베여있네요
님의 고귀한 댓글 환한 미소로 감사드립니다
내 마음엔 천국과
지옥이 함께한 적 있었지요
이 모두가 다 지나가리
이 말한마디 가슴에 새기노라면
금방 햇살이 눈부시게
그렇게 살아온 제 인생 뒤안길
그 길이 요즘은 꽃길이
되어가고 있으니
청담골 잘 견디고
잘 버텄다
내 스스로를 칭찬합니다
선배님은 무릉도원
상상력 대단하십니다.ㅎ
내 고향 해운대 장산에는 육각수처럼
맑은 산 물이 가슴깊이 스며들고
앞산 쳐다보며 시한수 흥얼거리니
여기가 강물은 초록 거울 같아
양옆의 푸른 초목들을
그림처럼 비춰주네.
저 멀리 높고 푸른 산들은
운무 속에 신기루처럼 서 있구나.
황홀한 絶景 넋을 잃어
아무런 말도 안 나오네.
맑고 푸른 물결 가르며
작은 배로 미끄러져 나가니
이 길은 어디로 가는 길일까.
저 멀리 흰 운무 속에
무릉도원(武陵桃源) 있다면
나 거기로 들어가
神仙이 되어 이 세상을 마음껏
비웃어 주리라.
마초가 감히 님의 귀한 댓글에
무릉도원(武陵桃源)만 생각하다가 헛소리
찌그려 보았습니다 ㅎㅎㅎ
부티나는 댓글 고맙습니다
저에게는 마초님글이 어려운 글이지만
마초님의 속뜻은 파악이됩니다.
앞으로도 어려운?글 많이 올려주세요.
사명님 무슨 말씀을요?
어설픈 글귀에 난해 (難解) 하시디요
과찬의 말씀 부끄러울 뿐입니다.
누구보다 사명님의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업이군요
님이 필을 다듬고 다듬어 一文을 내..
놓는다면 그 휘광은 가히...
짐작 못하리만큼... 보석같은 길이
지금도 손끝에서
진행이 되고 있음을 말씀 드려봅니다
결코 지나친 겸손(謙遜) 은 결코 미덕이 아닌줄 아뢰오~ㅎ
힘있는 댓글 감사드리며
주말을 굿럭 으로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항 그러셨군요 군복무를 멋진곳에서 하셨군요
완만한 언덕처럼 생긴 초지대교, 육지를 떠나 잠시
하늘을 보았다가 섬을 밟아보지요.석양에 그림자
길게 드리워지고 동막 해변 모래밭에 둘이서
조용조용 발자국 찍어보고,발길 멈추며 서편하늘
조용히 바라보니 지나온 긴 세월이 엊그제 같더이다
서쪽하늘에 기울어지는 해가 천천히 바다로 빨리는
듯하다가,이윽고 스르르 빠져버린 그곳에 오렌지색
저녁노을 찬란하게 발하는모습 너무나 장관이지요
관심주신님 고맙습니다
아, 제가 한 때 살았던 곳입니다
초지대교가 막 놓일 때쯤 저는 부산으로 이사를 했지요
추억에 깊이 잠기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관심주심에
고마움을 표합니다